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19화 (120/400)

Ep.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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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진지 내 사령관용 캠프에 앉아 있던 뮤리엘은 차가운 시선으로 모니터를 노려봤다.

좀 전까지 격렬하게 요동치던 생체신호 그래프가 이제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두목, 여기 대량의 혈흔이 남아 있습니다.」

부하들이 보낸 영상 속에 피 웅덩이가 보였다. 유전자 검사기로 검사한 결과, 전부 하늘의 어머니가 흘린 피였다.

저 정도로 많은 피를 흘렸고, 칩의 위치도 감지되지 않는다면 하늘의 어머니가 어떻게 됐을지 예상할 수 있었다.

에이모프는 동료를 만들지 않는다. 지금쯤이면 하늘의 어머니는 잘게 조각나서 에이모프의 위장 속을 헤엄치고 있을 터.

“칫. 귀찮게 됐네.”

뮤리엘이 하늘의 어머니를 살려 둔 이유는 그녀와 뜻을 함께하는 동료가 암컷 볼프 노예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하늘의 어머니는 동료의 까다로운 취향에 부합하는 대상이었다. 적당히 조교한 뒤 보낼 생각이었는데 일이 틀어졌다.

‘그 빌어먹을 새끼!’

저 악명 높은 모프박이가 하늘의 어머니를 먹고 특성을 얻었다면 골치 아파진다.

그녀도 에이모프가 특성을 획득할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

‘내가 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뮤리엘은 캠프에 있는 금고를 열었다.

금고 안에는 낡은 통신기와 다이아몬드 형태의 키트가 들어 있었다.

뮤리엘이 가진 무기 중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것은 ‘뇌신’이다.

하나 뇌신은 어디까지나 전투를 유리하게 만들어 주는 수단에 불과할 뿐.

그녀가 가장 ‘잘 사용하는’ 무기는 바로 이 키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다.

그녀는 통신기를 품속에 넣고,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키트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쯧, 이번 싸움이 끝나면 새로 보충해야겠네.”

그녀는 혀를 차면서도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천천히 키트를 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약물들과 작은 기계 장치들이었다.

사용자의 잠재력을 한 단계 끌어올려주는 사이오니움, 사이킥 파워 기술의 정밀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약물인 울트라 컨트롤러, 신체 피부를 극도로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동시에 회복력을 올려주는 나노 스파르탄 모듈 등등.

하나같이 강력하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다. 만약 그녀가 ‘특전’ 덕분에 일반인과 ‘다른’ 신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사용하는데 심사숙고했으리라.

물건들을 꼼꼼히 살펴본 그녀는 키트를 닫고 밖에 있는 부하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오빠, 곧 습격이 올 거야. 붙잡아 둔 노예들을 전부 중앙 광장에 집결시켜.”

“노예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볼프 노예들은 모두 단창의 강화 재료로 쓸 생각이었다.

기껏 모은 장난감들 전부 버리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깟 소모품들은 언제든지 다시 구하면 그만이니까.

그보다도 순양함에, 어렵게 얻은 하늘의 어머니, 그리고 귀한 약물과 강화 모듈까지.

에이모프가 그녀에게 입힌 손해는 결코 적지 않았다.

‘모프박이 새끼, 곱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

지금까지 뮤리엘은 자기에게 손해를 입힌 자를 그대로 보낸 적이 한 번도 없다.

랭킹 5위의 에이모프는 본인의 피로 빚을 갚게 될 것이다.

-

‘완성됐어.’

열 번째 둥지가 알아서 몸을 불려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링크를 해제했다.

귀여운 포자들이 점액과 유독성 안개를 마구 내뿜고, 바닥에 깔린 검은색 파도는 멈출 줄 모르며 전진한다.

지금까지 나는 뮤리엘의 야영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포위하는 형태로 둥지를 심었다. 지상에 다섯 개, 지하에 다섯 개 총 10개의 둥지를 완성했고, 이 중 아홉 개는 이미 서로 맞닿아 하나로 합쳐진 상태였다.

10분 안에 열 번째 둥지도 다른 둥지와 합쳐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적의 보금자리를 향한 나의 공습이 시작되리라.

‘그 전에 확인할 것이 있지만.’

나는 미리 파놓은 땅굴을 통해 여섯 번째로 심은 둥지로 향했다.

이전까지 흙과 돌, 나무뿌리 등으로 차 있던 땅속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은 끈적끈적한 점액질, 악성 종양, 역겨운 점액을 토해내는 농포, 공기를 끊임없이 오염시키는 포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누가 보면 역겨워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지만 나에게는 친숙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길쭉한 땅굴을 통과하니 내가 파 놓은 지하 공동, 여섯 번째 둥지가 나를 반겼다.

둥지 위에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습을 한 볼프가 누워 있었다.

그녀는 독수리의 머리와 갈기 비슷한 긴 머리카락, 사자와 인간이 섞인 몸을 지니고 있었다. 손과 상체는 사자의 털이 덮인 여인의 모습이었고, 하체는 사자의 하반신이었으나 꼬리는 없었다.

‘짐승에 가까운 것을 보니까 신격화 단계가 높은가 보네.’

만약 그녀가 부상이 심하지 않았다면 제법 난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녀는 공생물 포자 효과 덕분에 빠르게 회복하고 있지만 완벽히 치료되려면 며칠 더 걸릴 거다.

나는 둥지 가운데에 몸을 뉘인 뒤 그녀를 불렀다.

“깨·어·있·는·거·아·니·까·일·어·나.”

「…….」

둥지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녀가 깨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기절했을 때랑 달랐으니까.

그리폰 볼프가 조용히 눈을 떴다.

「의외네. 날 죽이지 않는 건가?」

“아·니.”

「응?」

“너·의·몸·은·차·후·에·쓸·일·이·있·다.”

그리폰 볼프를 죽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를 향후에도 계속 살려 둔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기어가서 바닥에 고인 피를 손가락으로 찍은 뒤 입속에 집어넣었다. 몸에 피 대신 꿀을 넣고 다닌다고 해도 믿을 만큼 단맛이 느껴졌다.

‘당장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그리폰 볼프가 살아 있는 것이 내게 여러 가지 방면에서 유리하다.

단기적으로 본다면 그녀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당장 뮤리엘과 싸울 때 필요한 정보부터 시작해서 플레이어의 존재에 대한 정보까지.

뮤리엘과의 전투에 필요한 정보만 빼낸 뒤 죽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후 뮤리엘을 사로잡아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를 빼낸다고 해도 교차 검증할 대상이 없다면 그게 진실인지 거짓말인지 알기 어렵다.

‘그리고 그리폰 볼프는 뮤리엘을 증오하고 있어.’

그리폰 볼프의 실력은 내가 봐도 괜찮은 편이다. 그런 그녀를 데리고 뮤리엘과 싸운다면 괜찮은 전력이 되겠지.

그녀가 기절했을 때 기생충을 심어 놨기에 배신은 불가능하다. 감염 강화 타입으로 인해 기생충이 주는 고통의 강도도 매우 올라갔기에 그녀가 배신한다면 바로 즉사할 거다.

내가 기생충에게 명령해서 회수하지 않는 이상, 그녀가 내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단기적인 부분에서의 장점 말고도 장기적으로 봐도 그녀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나중에 승천 진화 조건을 채울 때 쓸 수 있으니까.’

준성체 이후부터는 진화 조건이 이전에 비해 훨씬 까다로워진다. 지성체 몇 마리를 잡아먹고, 타입 몇 개를 획득하면 진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신 특정 생물을 사냥하거나 유일 특성을 얻거나 해야 하지.’

나는 새로 갱신된 진화 조건을 띄웠다.

「‘준성체’->‘성체’ 진화 조건 중 일부가 충족되었습니다.

에이펙스(APEX) 0/30(미달성)

보유한 유일 특성 2/10(미달성)

보유한 타입 4/6(미달성)」

준성체에서 성체로 진화하려면 최상위 포식자, 즉 ‘에이펙스’로 분류되는 희귀 생물 30마리를 사냥하고, 그들이 보유한 유일 특성 10개를 확보해야 한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굳이 먹이를 먹지 않고 사냥에 성공하는 것만으로도 조건이 카운트된다는 점이랄까. 정수수확자의 턱처럼 유전자 정수 흡수 매커니즘에 영향을 주는 특성을 얻었기 때문에 변동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쉬워진 것은 아니지만.’

에이펙스에는 갤러곤 같은 강력한 사이킥 생물부터 스카이웨일과 그 상위종인 아케인오르카 등의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닌 생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에이펙스로 분류되는 생물들은 하나같이 그 힘이 강대한데다가, 굉장히 희귀해서 찾는 것 자체도 고역이다.

‘아드하이와 계약한 것도 준성체를 넘기는데 필요하기 때문이었지.’

갤러곤은 대표적인 에이펙스로 분류된다. 아드하이의 안내를 받아 용의 둥지로 간다면 진화 조건을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을 거다.

‘그것 말고 초월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 내게는 두 개의 유일 특성이 존재한다. 전부 초월 시스템으로 얻은 특성이다.

초월 시스템이 있으니 에이펙스를 잡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문제가 있다.

‘특성 효과를 모르는 것과 다른 특성 사용에 금제가 걸리는 것.’

이 두 가지가 초월 시스템의 큰 단점이다.

초월 시스템으로 얻는 유일 특성은 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특성.

그렇다 보니 이것이 당장 내게 유용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기 어렵고, 어떤 금제가 걸릴지도 특성을 얻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에이펙스 사냥과 초월 시스템 둘 다 적절히 활용해야겠지.’

아무튼 그리폰 볼프를 살려 둔 것도 아드하이와 계약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체에서 승천으로 올라갈 때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조건을 요구한다.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시점에서 봤을 때 그녀의 목숨이 필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 여전하네.」

그녀는 내가 왜 자기를 죽이지 않았는지 어렴풋이 느낀 듯 보였다.

그런데도 나에 대해 딱히 분노하거나 불쾌해하지 않았다.

‘나를 적대한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을 테지만.’

현재 그녀는 부상이 심각한 상태다. 그리고 내가 그녀 몸에 붙인 공생물 덕분에 치료 효과, 둥지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에 대한 면역 효과를 받고 있다.

기생충을 쓰지 않아도, 공생물을 해제하기만 해도 그녀는 죽는다.

물론 그녀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플레이어다. 이 상황에서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잘 알고 있을 터.

「상관없어. 약속만 지켜 준다면.」

“뮤·리·엘·은·고·통·받·다·죽·을·것·이·다.”

「좋아. 나 하늘의 어머니는 너를 따르겠어.」

내 예상대로다.

본인을 하늘의 어머니라 칭한 그녀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누워 있던 그리폰 볼프는 억지로 몸을 일으킨 뒤 내게 고개를 숙였다.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회복할게.」

“상·관·없·다. 필·요·한·대·로·쓰·면·그·만·이·니.”

사실 그녀가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는 뮤리엘이 입힌 피해 때문만은 아니다.

‘반쯤은 나 때문이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녀를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유령 발톱으로 그녀 뒤통수에 있던 생체신호기를 제거했다.

그 과정에서 약간 실수를 했다.

손재주 특성 없이 유령 발톱만으로 칩을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덕분에 엄청난 양의 출혈과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뭐, 그리폰 볼프면 금방 나을 테니까.’

일반 볼프라면 내가 칩을 빼낸 순간 죽었을 테지만 그녀는 아니다.

‘신격화’ 단계가 제법 높아서 변신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리폰 모드가 됐을 때의 능력과 모습을 계승한 상태다.

그리폰의 회복력에 더해 공생물 포자의 치료 효과도 받고 있으니 내가 뮤리엘을 칠 때 같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될 거다.

그보다 당장 내게는 필요한 것이 있다.

“뮤·리·엘·의·약·점. 말·하·라.”

둥지가 완성되기 전까지 뮤리엘이 가진 장비, 그녀의 강점과 약점, 전투 중의 습관 등에 대해 최대한 알아 둬야 한다.

하늘의 어머니가 누구고, 플레이어들에 대한 정보는 뮤리엘을 정리한 뒤에 들어도 충분하니까.

-

한밤중인데도 방어진지 내부와 주변 숲은 대낮과도 같이 환했다.

높이 솟은 감시탑의 대형 전등은 진지를 둘러싼 방벽들과 그 밖에 대한 감시를 멈추지 않았고, 진지 내부에서는 해적들 수백 명이 눈을 부릅뜨고 적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있는 해적의 모습은 군인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들이 이렇게 경비에 열중하는 이유는 그들의 두목 뮤리엘 때문이었다.

그녀는 광장에 모아 놓은 볼프 노예들을 일일이 단창으로 찔러 죽였다.

마치 동물을 도축하듯이 말이다.

휴머니티 카르텔의 해적들은 분노에 미친 두목에게 밉보였다간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기강이 제대로 잡힐 수밖에.

게다가 좀 전에 밖에 수색을 나갔던 해적들과의 연락이 모조리 끊겼다는 사실 또한 요새를 지키는 해적들을 한층 더 긴장하도록 만들었다.

「1번 감시탑, 이상없음.」

「2번 감시탑, 이상없음.」

「3번 감시탑, 갑자기 안개가 낀다.」

“여기 4번 감시탑, 3번과 마찬가지로 안개가 보인다.”

「5번 감시탑, 안개라고? 비도 안 왔는데 왜 갑자기…앗, 이쪽에서도 보인다.」

감시탑에서 불길한 무전이 오가는 가운데, 해적 3명은 광장에 널려 있는 볼프 시체를 창고로 옮기고 있었다.

“두목 제대로 빡친 것 같던데?”

“하씨, 오늘밤만 무사히 넘기면 좋겠는데.”

“야, 나한테 영험한 부적이 있는데 살래?”

시체를 절반 정도 옮겼을 때 탁한 안개가 방어진지 위에 깔렸다.

온도가 높고 습한 밀림에서 야밤중에 안개가 끼는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비도 안 왔는데 이처럼 짙은 안개가 끼는 경우는 드물었다.

거기다 안개에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스페이스독으로 활동하는 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익숙한 냄새였다.

그것은 죽음의 냄새였다. 부패한 시체를 노리는 까마귀들이나 좋아할 법한 냄새.

“쿨럭!”

“켁, 웬 시체 썩는 냄새가…?”

“우왝, 빨리 처리하고 가자고.”

시체를 치우고 있던 해적들은 헛구역질하면서 서둘러 창고로 발을 옮겼다.

창고에 도착한 그들은 카트에 실린 시체들을 구석에 쏟아버렸다. 이미 수십 구에 달하는 볼프 시신들이 그곳에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었다. 창고의 흙바닥은 시신으로부터 흘러나온 피와 내장 조각으로 푹 젖어 있었다.

그곳에 쌓여 있는 시신들은 하나같이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너희의 죄를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는 듯이.

그 섬뜩한 모습에 해적 한 명이 진저리를 쳤다.

“씨발, 내가 본 광경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좆같은 광경인걸.”

“개소리 집어치우고 좀 돕지 그래.”

“쯧, 알았어. 퉤!”

침을 뱉은 해적은 동료들을 도와 다른 곳으로 튀어나온 시체들을 옮기려고 했다.

“어?”

그가 눈을 돌리기 전에 시체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방금 뭐였지?”

그는 눈을 비비고 다시 시체를 주시했다.

그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듯 쌓여 있는 시체들 중 바닥에 닿아 있던 시체들이 새까만 흙 속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그는 이 기괴한 현상을 동료들에게 알리려고 했다.

그가 입을 벌리려는 순간, 땅속에서 길고 거대한 손이 튀어나왔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땅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야! 도와달…어라? 얘 어디 갔어?”

“어어? 좀 전까지 저기 있었는데?”

창고 천장에 전등이 달려 있어서 내부가 그리 어둡지 않았다. 그런 밝은 곳에서 동료가 사라진 것이었다.

“씨, 씹새야! 장난치지 마!”

“이런 때도 장난이냐! 빨리 튀어나와!”

그들이 소리 지른 것을 동료가 들은 것일까. 쌓여 있던 시체 더미가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해적들은 동료의 짓꿎은 장난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시체들 사이에서 솟아난 것은 그들의 동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6개의 날카로운 부속지를 가진 뱀이었다.

뱀이 총알 같은 속도로 해적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순식간에 머리가 사라진 해적의 목구멍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어?”

옆에 있던 해적은 동료의 피를 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그는 자기 동료 두 명이 창고에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으, 으아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넘어진 덕분에 그는 동료를 죽인 뱀의 습격을 간발의 차로 피할 수 있었다.

그는 다리 사이로 내리꽂힌 뱀을 보고 기겁하며 창고 밖으로 기어나갔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는 목에 걸린 호각을 크게 불었다. 창공을 비상하는 맹금류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방어진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적습이다!”

“어디야?”

“창고다!”

진지 내부 여기저기서 해적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고, 호각을 부른 해적은 어떻게든 일어나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 그의 뒤에서 굉음이 들렸다. 그건 분명 건축물을 지탱하는 철근과 지붕을 박살내는 소리였다.

달리는 그의 눈에 창고였던 건물 파편들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도망치던 그의 머리 위에 레드우드만큼 굵고 긴 물체가 떨어졌다.

콰직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거대한 물체에 압사 당했다. 그렇기에 그는 거대한 물체가 어떤 생물의 ‘꼬리’라는 사실을 끝까지 알 수 없었다.

「■-------!」

해적 한 명을 꼬리로 내리쳐 피떡으로 만든 ‘그것’이 크게 포효했다.

이제부터 이 요새 안에서 ‘밤사냥’을 개시하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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