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21
어둠, 그리고 안개.
진지 곳곳에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비명과 폭음.
모든 것이 나와 내 둥지가 만들어 낸 결과다.
그런 소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있는 뮤리엘과 나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서로를 관찰하고 있었다.
언제 치고, 어떻게 빠지면 되는지.
적의 가진 수를 어떻게 파훼하고, 만약 실패할 경우 어떤 식으로 만회해야 할지.
그녀와 나는 적이지만 서로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
야영지를 습격하기 바로 전까지 나는 하늘의 어머니로부터 적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자기를 강화하면서 싸우는 타입이라.’
들은 바에 따르면 뮤리엘은 일반 컬트와는 상당히 다른 전투 스타일을 가진 유형이었다.
스페이스 서바이벌은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는 게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게임사가 제시한 플레이 방식에서 이탈할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메가콥 플레이어인 주제에 에이모프마냥 정수를 수집하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는다거나, 채식주의 에이모프를 추구한다거나 등의 플레이는 게임 진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렇다 보니 랭커쯤 되면 상대의 종족, 세력에 따라 어떤 전술, 전략으로 나올지 대체로 추측할 수 있다.
상대가 스타유니언의 사이보그라면 각종 모듈로 자기 자신을 강화하거나 각종 함정을 준비해서 싸울 가능성이 높고, 컬트라면 다양한 유틸성을 지닌 사이킥 파워 기술로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그러니 사슴뿔 컬트라는 최고의 카드를 뽑았다면 ‘컬트스러운’ 전술, 즉 수십, 수백 가지가 넘는 사이킥 파워 기술로 적을 농락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거다.
‘원래라면 그래야겠지만.’
하늘의 어머니가 말하길 뮤리엘은 사이킥 파워 기술을 다루는 실력보다 오히려 육탄전에 능하다고 했다.
설정상 컬트는 초능력에 능하지만 육체 능력은 인간 이하인 종족.
이곳이 현실이니 신체 능력을 어떻게든 올린다고 해도, 컬트가 신격화를 배운 볼프에게 근접전을 걸고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뮤리엘은 이러한 상식에서 벗어나 있었다.
‘자기를 강화해서 싸우는 스타일은 사이보그들이 많이 택하는 방법인데.’
그 예로 그녀가 입고 있는 남색의 전신슈트.
그 모습은 나노 스파르탄 모듈이 활성화되었을 때와 매우 유사했다.
나노 스파르탄 모듈은 이름에서 보이듯 몸 전체에 나노 강화 슈트를 입혀서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보조 장비다. 에이모프나 볼프를 약간 밑돌 정도로 강화시켜 주기에 사이보그 랭커들이 육탄전에 돌입할 때 주로 사용한다.
‘저건 사이보그 전용 모듈인데 어떻게 쓴 거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뮤리엘은 컬트를 비롯한 다른 종족은 사용이 불가능한 장비를 버젓이 몸에 걸치고 있었다.
‘통찰로 확인해 봐도 나오는 게 없고.’
「이름: 뮤리엘(본명 ■■■)
종족: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태: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착용 장비: 제사장의 황금창(유일급), 이외 다수
보유 기술: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통찰을 써봤지만, 나오는 것이라곤 그녀가 들고 있는 황금색 단창, ‘제사장의 황금창’ 뿐이었다.
‘통찰을 무효화하는 새로운 기술인지, 아니면….’
뮤리엘이 플레이어라서 알 수 없는 것인지 현재는 알 수 없다.
‘물어볼 것이 많네.’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고민을 끝낸 나는 등의 구멍으로부터 침식 촉수를 뺐다.
내가 뮤리엘을 봤을 때 느꼈던 것처럼 그녀 또한 게임에서 본 적 없던 나의 능력을 보고 눈살을 찌푸린다.
뮤리엘이 옆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어디부터 노릴지 정한 모양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탐색전의 종료를 알릴 신호탄.
“핫!”
선공은 뮤리엘이 가져갔다. 그녀가 짧은 기합성을 내지르고 땅을 박찼다.
그녀가 땅에서 발을 뗀 순간, 내 침식 촉수가 일제히 그녀에게 쏘여졌다.
단창을 들어서 촉수를 튕겨 내는 뮤리엘.
그렇다면 과연 내 거대한 꼬리도 막을 수 있을까.
나는 상체를 바닥에 바짝 붙이고 꼬리를 위로 번쩍 쳐들고 휘둘렀다.
그녀도 이건 막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허공에서 발을 굴렀다. 물리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채 허공을 지상마냥 밟고 뛰어다니던 그녀가 나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이 보라색으로 빛나자 내 움직임이 크게 느려졌다. 사이킥 파워 기술 중 상급 기술 중 하나인 ‘왜곡장’의 효과다.
왜곡장은 일정 공간 내에 있는 적의 움직임을 극도로 저하시키고, 시전자의 움직임을 매우 빠르게 만든다. 나의 속도를 늦추고 동시에 본인을 강화시키는 것이겠지만 그녀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
‘내게는 초능력 반사 장갑이 있지.’
“성가시긴!”
공중에 떠 있던 그녀의 인상이 구겨진다. 왜곡장의 부정적인 효과 중 30%가 반사되어 그녀에게 적용되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나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녀는 느려진 내 꼬리를 피한 뒤, 단창으로 반격했다. 피를 어지간히도 많이 먹였는지 제사장의 황금창이 어렵지 않게 내 꼬리 갑각을 관통했다.
꼬리에 작은 구멍을 내는 데 성공한 뮤리엘이 연달아 단창을 찌른다.
‘빠져야겠어.’
몸에 생긴 상처는 둥지의 효과 덕분에 빠르게 회복되지만 그렇다고 아무 공격이나 다 맞아줘도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몸을 크게 회전시켜서 꼬리를 거두는 동시에 머리의 뿔로 그녀를 후려치려고 했다. 그녀도 뿔과 함께 내 머리를 잘라버리기 위해 단창을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뿔과 창이 서로 맞닿은 순간, 대장장이가 망치로 검을 내려쳤을 때 나는 금속음과 비슷한 소리가 공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뭣?!”
예상과 다른 결과에 눈을 부릅뜨는 뮤리엘.
내 뿔은 나의 몸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인 머리 갑각과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제사장의 황금창과 부딪쳐도 흠집이 나는 것에 그칠 뿐 베이지는 않았다.
‘물론 몇 번 더 맞부딪치면 잘리겠지만.’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다시 창으로 후려칠 터.
그걸 막기 위해 내 침식 촉수가 사방에서 그녀를 노리고 달려든다.
“…칫!”
왜곡장 안이더라도 여섯 갈래로 접근하는 촉수들과 내 머리의 뿔들을 피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뮤리엘이 공중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그동안 나 역시 급히 바닥을 기어서 왜곡장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어딜!”
추격을 재개하려는 뮤리엘. 나는 꼬리로 바닥을 강하게 쓸었다.
공중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그녀는 가볍게 내 꼬리를 피했지만, 방금 내 의도는 그녀를 치는 것이 아니었다.
꼬리가 지표를 쓸면서 생긴 강한 모래 먼지가 둘 사이를 가렸을 때, 나는 전투용 팔로 땅을 마구 팠다.
순식간에 구덩이가 완성되고, 나는 재빨리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시야가 가려져도 나를 볼 수 있는 수단을 지녔는지, 뮤리엘이 내 꽁무니를 노렸다.
먼지를 가르며 쇄도하는 단창. 그녀를 막기 위해 내 꼬리 끝에 있는 가시침 발사 기관이 가시침을 쏟아 낸다.
“쯧.”
그녀가 먼지 속에서 날아드는 가시침들을 튕겨 내는 틈에 나는 완전히 땅속에 파고들어 갔다.
“성가시긴!”
땅 위에서 뮤리엘이 짜증을 내는 소리가 들린다.
탐지 기술을 지니고 있으니 내 위치는 알 수 있지만, 내가 땅속에 있다 보니 왜곡장을 깔기 어려울 거다.
‘시야가 닿는 곳에만 깔 수 있으니까.’
뮤리엘이 나를 따라오며 단창으로 땅속을 찌르기 시작했다. 두부를 찌르듯 쉽게 땅바닥을 꿰뚫은 단창이 내 등과 꼬리 부분을 찔렀다.
다행히 그녀가 가진 탐지 기술이 완벽한 것은 아닌지 내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이 정도면 금방 회복돼.’
나는 뮤리엘의 견제를 무시하고 맹렬한 속도로 중앙광장의 지하를 가로질렀다.
땅을 파며 빠르게 이동하다 보니 내가 이전에 깔아 뒀던 둥지로 이어지는 땅굴들이 보인다. 저것들은 이후 결정적인 순간에 요긴하게 쓰일 예정이다.
‘그것보다 지금은 이게 먼저야.’
나의 등허리 부근에 있는 이빨요정 둥지가 하나둘씩 터졌다. 강화된 식인벼룩들은 뾰족한 이빨로 흙을 파먹으면서 땅 위로 올라갔다.
이빨요정들을 내보내는 동시에 산성 진균샘을 활성화해서 진균들을 발사하지 않고 입안에 머금었다.
‘이 정도면 됐어.’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준비를 마친 나는 지표면을 부수고 뛰쳐나왔다.
크기 20m에 달하는 나의 움직임에 땅거죽이 뒤틀리고, 모래, 돌, 흙의 파도가 뮤리엘을 덮친다.
그녀의 시야가 일순 흙더미의 해일에 가려진 사이, 나는 그녀의 머리에 뼈 도끼를 내리쳤다.
그야말로 섬전 같은 속도였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왜곡장을 펼쳤다.
그녀의 머리까지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서 내 몸이 극단적으로 느려진다.
허리를 뒤로 젖혀 내 도끼를 어렵지 않게 피해낸 그녀.
그녀의 손에 들린 황금색 단창이 주인의 의지에 따라 내 옆구리를 꿰뚫는다. 내 상처에서 검은피가 솟구치고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깃든다.
그러나 진정 웃고 싶은 것은 바로 나다.
‘잡았어!’
옆구리에 꽂힌 창을 내 전투용 팔들이 붙잡는다. 그녀가 뺄 수 없도록 말이다.
미소를 짓던 표정 그대로 굳는 뮤리엘. 그리고 좀 전 땅속에서 불러냈던 이빨요정들이 그녀의 얼굴과 상체에 달라붙었다.
“잔재주를…!”
이빨요정들이 시선을 가리자 뮤리엘이 짜증 섞인 고함을 지른다. 그녀 말대로 잔재주일 뿐. 시야가 가려진다고 해서 왜곡장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노린 것은 그게 아니지.’
내 턱이 양쪽으로 활짝 벌이지고, 안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산성 진균이 물줄기처럼 쏘여졌다.
왜곡장은 영역 내 생물의 움직임만 느리게 만들 뿐, 다른 물리법칙까지 뒤틀어버릴 수는 없다.
“!”
불길함을 감지한 것인지 뮤리엘은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급히 고개를 틀었다. 덕분에 진균 대부분이 빗나가고 일부만이 그녀의 얼굴 한쪽에 튀었다.
그러나 산성 진균의 무서움은 강산성이라는 부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방울 정도의 진균액이라고 해도 순식간에 퍼져나갈 수 있으니.
“꺄아아악!”
진균이 퍼져나가며 얼굴 한편과 뿔을 녹이자 뮤리엘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이빨요정들 또한 진균에 의해 장렬히 산화했다.
‘기회야!’
정신이 흐트러져서 그런지 왜곡장의 효과가 약해진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꼬리를 강하게 휘둘렀다.
“큭!”
내 꼬리에 맞고 멀리 날아가는 그녀. 그녀는 엉망이 된 광장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얕았어.’
얼굴이 녹아내리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뮤리엘은 나의 공격을 막기 위해 여러 개의 방어 수단을 동시에 사용했다.
물리 피해를 10%만 받는 대신 초능력 피해를 50% 추가로 받게 만들어 주는 사이킥 파워 기술인 유령 피부, 슈트의 손목 부분에서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원형 방패까지.
나의 공격이 적중하긴 했지만, 그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을 거다.
‘컬트였다면 지금 공격으로 넉다운이 되었겠지만….’
“씨발씨발씨발씨발!”
내 예상대로 흙을 뒤집어쓴 그녀가 금세 일어났다. 머리를 제외하고 몸만 감싸고 있던 슈트가 거미줄처럼 얼굴까지 뻗어 나가 상처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역시.’
빠르게 회복되는 그녀의 얼굴에서 일반 생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였다.
절반이 녹아내린 그녀의 피부 안쪽에 있는 것은 하얀색 뼈 대신 아이보리색의 합금 골격, 그리고 붉은 근육 사이에 껴 있는 작은 기계 장치와 칩들이었다.
처음부터 의문이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게임 속에서의 뮤리엘은 스페이스독 소속의 사이보그였으니까.
또한 사이보그만 사용할 수 있는 장비를 쓰면서도 컬트의 장기인 사이킥 파워 기술도 자유롭게 썼다.
싸우던 중에도 컬트답지 않게 육탄전을 선호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의문점이 전부 해소되었다.
‘컬트와 사이보그의 융합체라니.’
게임에서 모든 사이보그 플레이어들이 간절히 바라는 조합이자, 밸런스상의 이유로 절대 불가능했던 조합이 내 앞에 서 있다.
녹아내린 뿔을 빼고 회복을 마친 사이보그가 나를 노려본다.
“어·떻·게·그·럴·수·있·지?”
밸런스와 별개로 설정상 육신이 허약한 컬트는 사이보그 개조 시술을 견디지 못한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컬트들 중 기생충에 저항을 시도한 자가 한 명도 없는 것도 그 통증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고려해보면 뮤리엘이 컬트로 시작해서 사이보그로 개조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반대야.’
사이보그로 시작해서 ‘모종의 수단’을 통해 베이스 종족을 컬트로 바꿨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닌 초월 시스템하고 비슷해.’
볼프와 유사한 변신 능력, 아웃스페이서만 지닌 함선 장악 능력 등.
초월 시스템으로 에이모프의 한계를 초월하는 나.
사이보그의 한계를 넘어 사이킥 파워까지 손에 쥔 뮤리엘.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게 느껴졌다.
“…좋아. 랭킹 5위라 이거지?”
뮤리엘은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비어 있는 왼손으로 목 부분을 꾹꾹 눌렀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에 반투명한 버튼 같은 것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윽고 그녀가 누른 버튼의 효과가 나타났다.
그녀 몸에 있던 근육이 크게 부풀고, 눈은 보라색 안광으로 강렬히 빛났다. 제사장의 황금창을 들지 않은 왼팔은 슈트와 융합하여 기계 팔 형태로 변화했다.
‘사이오니움을 흡수했어.’
에이모프가 사이오니움을 섭취할 시 다음 단계의 진화 능력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처럼 컬트나 사이보그도 마찬가지다. 컬트의 경우는 특정 퀘스트로만 해금할 수 있는 사이킥 파워 기술을 쓸 수 있게 되고, 사이보그는 한 번에 장착할 수 있는 모듈 개수 제한이 해제된다.
‘과연 어느 종족을 업그레이드시켰을까?’
인간을 베이스로 한 사이보그는 종족이 사이보그로 취급되다 보니 사이오니움 효과로 모듈 제한이 풀렸다고 보면 되지만, 뮤리엘은 그보다 복잡한 존재다.
종족이 컬트 사이보그라는 기상천외한 조합이다 보니 어느 쪽이 강화되었는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어쩌면 둘 다 영향을 미쳤을지도.’
머리에 쓰고 있던 머리띠가 보랏빛 헤일로가 되어 그녀 머리 뒤에 떠오르는 것을 끝으로 그녀의 변신이 끝났다.
“너 때문에 사이오니움이랑 아끼던 장비까지 써버렸어. 그 대가, 이따가 듬뿍 치르게 해 줄게.”
그렇게 말한 그녀가 순식간에 내 앞에 당도했다. 초월적인 감각을 지닌 에이모프도 간신히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위험!’
본능적으로 머리를 틀자마자 뒤이어 공기를 찢는 위협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찌른 창이 낸 소리였다.
만약 피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공격으로 정수리가 꿰뚫려서 위험했을 거다.
‘신체 능력이 말도 안 되게 상승했어.’
그 사실을 인지한 나는 꼬리를 휘둘렀다.
좀 전까지 나의 꼬리를 피하던 그녀가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기계 팔로 내 꼬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꼬리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고통 경감 발동!」
꼬리의 두꺼운 갑각을 부수는 것으로 모자라 꼬리 안에 있는 뼈들까지 부러트리고 있었다. 이 정도 힘이라면 왼손으로 내 꼬리를 뜯어낼 수 있을 터.
나는 전투용 팔로 뼈 도끼를 뽑아서 그녀를 내리쳤다.
하나 그녀는 단창으로 내 공격을 쉽게 막아 냈다. 단창 자체의 공격력은 그대로지만 힘이 워낙 강해져서 그런지 공격을 가한 내 팔이 역으로 저릿할 정도였다.
“질리지도 않네. 이런 방법이 내게 통할 것 같아?”
“그·건·어·떨·까?”
“뭐?”
가학적인 미소를 띠고 있던 그녀가 반문한다.
‘네가 지랄 맞은 성격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어.’
숨겨둔 카드는 그녀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카드를 쓰기 위해 그녀를 붙들어 두고 있었던 거고.
나는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전투용 팔과 침식 촉수로 그녀를 붙들었다.
우리의 발아래에서 내가 전에 심어뒀던 기생충이 신호를 보낸다.
숙주가 지금 올라간다고.
“설마?!”
뮤리엘이 외치자마자 우리가 서 있던 땅이 폭발했다.
「뮤리에에에에엘!」
땅을 뚫고 올라온 것은 사자의 거대한 앞발.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와 같은 포효와 함께 사자의 앞발이 뮤리엘의 두 다리를 향해 날아든다.
“젠장!”
종아리가 반쯤 잘렸을 때, 그녀의 몸이 보라색으로 빛나더니 내 손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곳에서 그녀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니미 개좆같은 모프박이 새끼가! 니가 무슨 에이모프야!”
“무·슨·말·이·지?”
“에이모프가 무슨 동료를 데리고 다녀?!
“아·그·건·게·임·속·얘·기·고.”
“이익!”
분노한 뮤리엘에게 내가 태연스럽게 답하는 사이, 땅속에서 하늘의 어머니가 기어 올라왔다.
“최서아 이 병신같은 년이 뒈지지도 않고…!”
「가족들의 복수를 끝내기 전까지, 네년의 살점을 하나하나 씹어 먹기 전까지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어.」
사이오니움을 쓴 뮤리엘, 피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다짐하는 하늘의 어머니.
그리고 준성체가 된 나까지.
주연이 다 모였으니 이제부터 2차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