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26
나는 유일급 장비를 포식한 후, 야영지를 돌아다니면서 쓸 만한 물건들이 더 있는지 샅샅이 뒤졌다.
그동안 하늘의 어머니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죽은 동족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하루가 지나고 하늘의 어머니는 둥지에서 쉬고 있던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자기도 플레이어 사냥을 돕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런 비극이 다시 반복될 뿐이라고.
‘스스로 따라온다면 나야 고맙지.’
사실 그녀가 이곳에 남겠다고 해도 강제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성체가 된 이후 필요해질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그녀의 전투 실력이 탁월한 편이기에 내버려두기 아깝다. 그녀라면 26호와 아드하이를 보조하는데 도움이 되겠지.
하늘의 어머니가 동행을 자청했으니, 나도 궁금했던 사실들을 그녀에게 전부 물어 봤다.
플레이어 수가 얼마나 되는지, 게임 속 클랜처럼 그룹이 존재하는지, 이 세계에 건너온 시점은 다들 어떻게 되는지, 왜 아직 엔딩을 본 자가 없는지 등등.
그렇게 하늘의 어머니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느라 하루를 소모했다.
물론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녀는 뮤리엘보다도 훨씬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늘의 어머니가 말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플레이어들의 모임이 있었다라.’
그녀가 이 세계에 떨어진 시점은 15년 전이지만, 플레이어들의 모임은 훨씬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녀가 모임의 존재를 알았을 시점에는 이미 여러 플레이어 그룹으로 나눠져서 반목하던 중이었다.
그들의 갈등은 단 하나의 입장차로부터 시작했다.
‘엔딩을 보려는 자와 이를 반대하는 자.’
하늘의 어머니가 말하길, 모임에 참석한 플레이어들 중 상당수가 엔딩을 본 자들이었다. 덕분에 모임에 참여한 자들은 엔딩 이후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은하 정복자로 넘어가기 전, 게임을 계속할 것인지를 묻는 메시지가 나오니까.’
그들은 스페이스 서바이벌에서 엔딩을 볼 시 나오는 메시지를 근거로 이 세계를 탈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 방법이 문제지.’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자기 종족과 경쟁하는 종족의 수장이나 그에 준하는 지위에 있는 자들을 죽여야 한다.
플레이어들 중 메가콥 CEO, 컬트 제사장 등의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이 있었다. 이들보고 목숨을 내놓으라는 말밖에 안 되니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게다가 엔딩 이후 이 세계가 어떻게 될지 의문을 품은 자도 적지 않았다.
모임에 나온 플레이어들 중에는 수십 년, 심지어 백 년 넘게 생존한 자도 있었다. 그런 자들은 현생보다 이 세계에서 산 시간이 훨씬 길 터. 그들에게는 현실보다 이 세계에서의 삶이 훨씬 소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전 모임에서 엔딩에 도전한 자가 있었다고 한다.
모임 초창기, 엔딩에 도전한 자는 랭킹 1위의 사이보그 랭커였다.
그는 자기를 반대하는 다른 이들에게 함께 엔딩을 보자고 설득한 뒤,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
‘1위라. 역시.’
1위는 말도 안 되는 게임 센스를 자랑하는 플레이어로, 나도 그에게 몇 차례 도전했지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이처럼 본인 실력도 최고였는데, 그가 가진 플레이어 특전 또한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장비와 모듈 제작과 관련된 특전이었는데 게임에서는 절대로 추가 불가능한 옵션들을 제한없이 추가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가 능력을 적극 활용한 덕분에 모임에 참여했던 플레이어들은 적대 종족 수뇌부 살해 조건을 우회할 수 있었다.
그 뒤 남은 것은 레이드 보스인 볼텍스원 토벌.
이 부분에 대해서 모임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엔딩을 본 랭커들은 이미 게임에서 최소 한 번 이상 승리해 본 적이 있는 자들이니까. 심지어 1위는 게임에서 단독으로 볼텍스원 두 마리를 동시에 사살한 유일한 사람이고.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다.
도전 이후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볼텍스원에게 전멸했는지, 아니면 예상외의 적을 만난 패배한 것인지 살아남은 자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엔딩을 보려고 했던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사망했고, 1위 또한 전사했다는 것.
간신히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그저 엔딩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뭐가 됐든 1위가 죽었으니 평화로운 방법으로 엔딩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
즉 엔딩을 보려는 자와 반대하는 자들 간의 반목은 불가피했다.
그리고 이 갈등을 한층 첨예하게 만든 새로운 정보가 있었다.
바로 특전의 약탈.
모든 플레이어들은 각자 받은 특전이 있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특전을 상대 플레이어를 죽이고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1위가 죽은 뒤, 어느 시점부터 이 정보가 모임에서 퍼져나갔다.
그 후 모임이 어떻게 됐을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플레이어들의 전쟁.
엔딩을 보려는 자는 잔류를 선택한 자들을 잡아먹고 강해지려 한다.
반대로 잔류를 택한 자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본인의 이익을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플레이어들을 죽이려 들었다.
‘…어찌 보면 엔딩을 보고 말고는 구실일지도.’
하늘의 어머니와는 다른 의미에서 그들 또한 현실과 유리되어 진정한 이 세계의 주민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몇 년 전부터 소강상태에 들어간 상태지만, 그전까지는 정말 치열했다고 한다.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죽어서 남은 사람이 열 명을 간신히 넘을 정도다.
‘물론 나처럼 나중에 이 세계에 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플레이어들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우리는 서로 간단히 자기소개했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정확히 누구였는지 알 수 있었다.
‘세비지 클랜의 리더였을 줄이야. 생긴 게 전혀 달라서 몰랐어.’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게임 속 닉네임은 하늘의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이름이었다. 외형도 호랑이 볼프 기반이었고 신격화 후 변신한 동물은 그리폰이 아니라 ‘누에(鵺)’였다.
이름도 모습도 전혀 달라서 언젠가 봤던 사람일 것이라 짐작하긴 했지, 밀림 행성에서 싸웠던 4대 클랜 사람이었을 줄은 몰랐다.
세비지 클랜은 나랑 싸운 뒤 풍비박산 났다. 클랜원들이 죄다 게임을 접고 클랜 리더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와 현실이 아닌 전혀 다른 세계에 와서 동행하게 된 것을 보면 세상일은 참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즈즈(해안가)]
현재 그녀는 그리폰 모드로 나와 함께 야영지를 떠나 바다 쪽 방향으로 이동 중이었다.
나는 꼬리 끝에 획득한 전리품들로 채운 백팩을 묶어놓은 채, 그리폰과 함께 전속력으로 숲속을 달렸다.
나무와 흙바닥, 바위 등 가리는 것 없이 죄다 헤집으면서 기어가는 나와 달리 그녀는 우아하게 땅과 나무 위를 오가면서 질주했다.
피딱지가 몸에 얽혀있던 그녀의 몸은 야영지를 나오면서 깔끔하게 씻은 덕에 매끄러운 금색 털로 빛났다.
지저분할 때도 암사자 특유의 조밀하면서도 탄탄한 근육이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거기에 추가로 아름다운 털까지 덮여 있으니 확실히 그리폰답게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가방을 들고 있는 것처럼 그리폰의 목에도 사파이어가 박힌 펜던트가 걸려 있었다.
사념파로 상대와 소통할 수 있는 목걸이로, 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도구였다.
‘뮤리엘의 동료 중에 장비를 담당하는 자가 있어.’
그녀가 나와 싸울 때 썼던 개량형 사이오니움, 나노 스파르탄 모듈, 블러드 리버 등의 장비는 전부 그 동료가 만든 물건들이었다.
뮤리엘과 하늘의 어머니가 한 얘기를 들어 보면 그 동료는 메가콥 소속의 인간. 그렇다면 상대의 정체는 정해져 있다.
‘가르멜다.’
노블캐피탈 중 강화복 개발을 담당하는 가문으로, 게임에서도 그쪽 플레이어들은 주로 보급을 담당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우주 도시에서 무장경찰들과 싸울 때, 그들이 입었던 강화복은 일반 강화복이 아니었다.
‘실드가 달린 중급 강화복이었지.’
실드가 부착된 보급형 강화복은 대부분의 메가콥 플레이어들이 꿈꾸는 장비였다.
게임에서야 밸런스 때문에 제작이 불가능했지만 여기는 현실. 내가 메가콥 플레이어라면 어떻게든 만들려고 할 거다.
가르멜다에 플레이어가 없다고 해도 그렇게 머리가 좋은 자들을 내버려 두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불리해지는 것은 나다.
‘용의 둥지 다음에는 그쪽부터 처리하자.’
승천을 목표로 한다면 뭐가 됐든 지구와 화성은 공략을 끝내놔야 한다.
그런데 장비 개발을 담당하는 플레이어가 붙어 있으면 행성 전체의 방위력이 하염없이 상승할 테니 미리 정리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용의 둥지보다 이쪽을 먼저 정리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하늘의 어머니가 내게 사념파를 쐈다.
「해안가라니? 혼드 기간트를 먼저 노릴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네.」
[즈즈즈 즈즈(필요한 일이 있어)]
「필요한 일?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기 위해 수중 생물의 정수를 먼저 노리는 건가.」
내가 알기로 하늘의 어머니는 15위의 볼프 랭커. 그래서 그런지 이 행성에서 에이모프에게 뭐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틀렸지만.’
[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아니. 다른 대륙은 나중에 갈 거다.)]
「아니라고?」
[즈즈즈 즈즈즈 즈(친구들부터 찾는다)]
그보다 26호와 아드하이를 먼저 찾아야 하니까.
그런데 내 파장을 들은 그리폰의 눈빛이 묘해졌다.
「네가 친구가 있다고?」
[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그래. 이 행성에 들어올 때 헤어졌지)]
그 말을 들은 하늘의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친구가 있다고?」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몇 번을 다시 말하게 하지 마라)]
「흠. 믿기 힘든데.」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여긴 게임이 아니니까 제약이 없지)]
「아니. 에이모프라서 그런 게 아니다. 너와 우호적인 생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군.」
단정하듯 말하는 하늘의 어머니.
그 말을 들은 나는 어이가 없었다.
‘누굴 괴물로 아나?’
그녀의 눈을 보니까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현실이든 게임이든 친구가 없던 것은 사실이다.
현실에서야 여러 이유가 있었고, 게임에서는 에이모프다 보니 친구나 동료를 만드는 것보다 잡아먹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즈즈즈 즈즈즈 즈 즈즈즈 즈즈즈(여기서는 동료가 있는 편이 이득이다)]
「…과연 너랑 같이 다니는 ‘친구’가 누구일지 궁금하네.」
[즈즈 즈즈즈즈(좋은 녀석들이지)]
「…….」
하늘의 어머니는 입을 쩍 벌렸다가 곧 다물었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매우 많아 보였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꼬박 한나절동안 달리기만 했다.
식사는 이동 도중에 발견한 야생 생물들을 각자 잡아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녀나 나나 잠을 자지 않아도 몇 주 이상 버틸 수 있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녀는 내가 정말로 동료를 만나러 가는지 반신반의하는 것 같았지만 그 얘기를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
아무튼 쉬지 않고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 두껍고 거대한 레드우드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붉은색과 녹색 물감이 흩어지고 대신 나타난 것은 파란색 물감으로 칠한 도화지였다.
나는 꼬리에 매달아 놓은 백팩을 푼 뒤, 푸른 파도가 몰아치는 백사장 위에 자리를 잡고 섰다.
지금부터 괴물의 촉수를 이용한 사이킥 브레스를 쏠 생각이다.
‘준성체가 된 이후로 쓴 건 처음인가.’
사이킥 파워에 민감한 아드하이라면 먼 거리에서도 충분히 감지해낼 거다.
「뭐 하는 거지?」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물러나라. 녀석을 부를 테니까)]
아직도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딴소리를 할 정도로 멍청한 볼프는 아니다. 그리폰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느낀 나는 특성을 준비했다.
머리 갑각 아래에 달린 촉수다발들이 오랜만에 일하기 시작했다.
선명한 보라색의 촉수들이 문어의 다리처럼 꿈틀거리며 일제히 앞쪽으로 향한다.
이어서 내 꼬리 끝부터 에너지들이 머리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전과 달리 에너지가 이동할 때마다 내 외피에 있는 문양들이 단계적으로 보라색 빛을 내뿜었다.
「…….」
뒤에 있던 하늘의 어머니는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사이킥 파워를 느꼈는지 뒤로 한참 물러났다.
꼬리에서 하반신, 하반신에서 허리와 가슴팍, 그리고 목 위 머리 부근의 촉수까지.
괴물의 촉수가 내 몸속 곳곳에 깃들어 있던 사이킥 파워들을 모조리 끌어냈다.
그리고.
‘좀 많이 크네?’
눈앞에 지름 6m의 보라색 태양이 나타났다. 나의 길이가 20m이니 내 몸에 비하면 큰 편은 아니지만, 이전에 썼던 사이킥 브레스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크기였다.
‘대신 충전이 좀 더 걸렸지만.’
나는 그 상태로 고개를 들었다. 괴물의 촉수가 불러낸 사이킥 파워의 정수 또한 내 움직임에 맞춰 위로 올라갔다.
‘…너무 커져서 감당하기 어려워.’
겉으로는 정적으로 보이지만 구체 내부에는 용의 숨결이 요동치는 중이었다.
이쯤이면 됐다 싶었던 나는 봉인된 에너지를 해방시켰다.
나의 머리 위에서 우주의 용이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른다. 용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주변에 깔려 있던 하얀 모래들이 휘날리고, 파도의 물결이 역행한다.
턱 아래에 있는 보조기관을 먹먹하게 만든 사이킥 파워의 열선이 공기를 찢고 한없이 위로 올라간다.
더, 그리고 더.
그것은 저 파란색 하늘 바다 위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을 찢어발길 때까지 날아가다가 마침내 멈췄다.
용이 날아가고 난 뒤에 남은 것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눈처럼 내리는 보라색 입자 알갱이들뿐.
이 정도면 됐다고 판단한 나는 위로 높게 들었던 고개를 내렸다.
[즈 즈즈즈(이제 기다린다)]
「…….」
내가 사이킥 브레스를 쏘는 광경을 목격한 하늘의 어머니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데. 분명 준성체일 텐데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설마 이게 특전 효과인가? 아니야. 종족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건….」
내가 백사장에 누워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하늘의 어머니는 사이킥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를 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의 시간이 흘렀다.
한참을 중얼거리던 하늘의 어머니는 어떻게든 납득했는지 백사장에 누워 있었다. 다만 그녀의 눈빛에 두려움이 깃들어 있는 것을 보니 딱히 나처럼 편히 누울 기분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신경을 끈 채, 내 앞을 슬금슬금 기어가던 게를 집어다 입속에 넣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음?’
그때 하늘의 어머니가 멀리서 뭔가를 봤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보다 뛰어난 시야를 가진 그녀가 주황빛에 물들어가는 하늘 너머를 노려봤다.
「모프박이.」
[즈(뭐지?)]
「…설마 네가 말하는 동료가 그린 갤러곤은 아니겠지?」
이 행성에서 그린 갤러곤이라면 한 마리밖에 없다.
‘아드하이가 왔어.’
나 역시 몸을 일으키고 녀석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한 5분쯤 기다리자 나에게도 아드하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응?’
근데 뭔가 이상했다. 아드하이의 움직임에 평소보다 훨씬 느렸고,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무엇보다도 물속에서 따라와야할 26호의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나는 급히 해변가에 새로운 둥지를 펼쳤다.
크기는 아드하이와 26호가 누울 정도면 된다.
그런데 둥지를 만들고 있는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아드하이가 더는 못 날겠는지 모래 위로 추락한 것이다.
[즈으으으(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가 재빨리 날아올라 입으로 아드하이를 붙잡은 뒤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아드하이의 상태는 빈말로라도 좋다고 하기 어려웠다. 녀석을 물고 있는 그리폰의 부리와 백사장의 모래가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나는 하늘의 어머니로부터 아드하이를 받아 공생물 포자를 이식한 뒤 둥지 위에 올려놨다.
공생물이 꿈틀거리며 녀석의 몸에 치유액을 주입하자 아드하이의 숨결도 한층 편해졌다. 내장과 뼈가 보일 정도로 심한 상처도 느리지만 아물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날아온 아드하이. 그리고 보이지 않는 26호.
어두워지는 밤하늘처럼 새까만 불안감이 내 마음에 내리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