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29화 (130/400)

Ep.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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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알 수 없다.

PH-101 연구기지의 연구팀장 런안의 좌우명이다.

가니메데 출신의 서드캐피탈이던 그는 부인을 잘 만난 덕에 프라임캐피탈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비록 부인이 자오 가문의 방계라고 해도 어쨌든 프라임캐피탈. 그런 여자와 결혼한 덕분에 그는 자오 가문의 말석 중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대형 연구기지의 연구팀장을 맡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그걸 보면 정말로 인생은 알 수가 없었다.

PH-101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하던 그는 심해 속에서 조난당한 이후 줄곧 나락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연변이 씨 데몬을 포획한 뒤로는 그의 기분은 한없이 위로 치솟았다. 포획 도중 팀원들 다수가 사망하긴 했지만, 딱히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죽은 자들은 전부 미들, 혹은 로우캐피탈들. 흔하디흔한 싸구려 인적 자원을 써서 씨 데몬을 잡았다? 누가 봐도 남는 장사였다.

그렇게 생각하던 것이 몇 시간 전.

지금은 장밋빛 미래는커녕 당장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 불투명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지진이 아니었어?”

제1상황실이 위치한 A구역.

런안말고도 자다 일어나 이곳까지 온 팀원들이 분주하게 상황을 파악해가는 중이었다.

“중앙컴퓨터의 보고에 따르면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거랍니다!”

“설마 씨 데몬인가? 놈은 그럴 여력이 없을 텐데?”

“아니면 드레드 히드라나 페일 마스크뿐일지도.”

“그럴 리 없습니다. 여긴 두 생물의 영역이 아니니까요.”

드레드 히드라는 길이가 50m에 달하는 초대형 말미잘이고, 페일 마스크는 드레드 히드라를 잡아먹고 사는 거대 포식자다. 둘 다 씨 데몬보다는 약하지만 만만치 않게 흉포한 심해 생물들이다.

두 생물의 서식지는 기지 옆 해저협곡 아래의 해구(海溝). 이 연구기지는 그들의 영역 밖에 설치되었기에 그들 중 하나가 덤벼들었을 가능성은 낮다.

“현재 E, F구역은 완전 침수됐고, C, D구역도 물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침수도 문제지만 수압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동의합니다. 내부 환경을 조정하는 기기에 큰 부담이 가는 바람에 언제 오작동을 일으킬지 모르게 됐어요.”

PH-101 연구기지는 수십km 아래의 심해에 위치해 있다. 아무리 가혹한 환경이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에 심해의 어마어마한 수압도 수월하게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안에 있는 사람은 얘기가 다르다. 내부의 기압을 안정시키는 장치에 오류가 생기면 여기 있는 자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

‘쯧. 버려야겠군.’

말없이 팀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던 런안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기압을 안정시키려면 E, F구역을 링에서 분리해야 해. 강제 명령으로 분리시키고 C, D구역은 상태를 봐서 결정하지.”

“티, 팀장님?!”

명령을 들은 팀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F구역과 G구역은 숙실이 위치한 곳이다. 야밤에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F구역에 남아 있는 자들의 수가 족히 수십 명을 넘는다.

그런 상황인데도 팀장은 F구역의 인원들을 전부 버리는 길을 택한 것이다.

“뭐 하는 거지? 내 말이 안 들리나?”

“아닙니다!”

살아서 구조를 기다릴지도 모르는 동료들을 전부 버려야 한다는 사실에 팀원들이 머뭇거리자 런안이 그들을 다그쳤다.

팀원들이 런안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려는데 기지가 크게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제1상황실에 있던 모두가 휘청거렸다.

“이게 무슨?! 또다시 습격인가?”

“아니야! 지금 건 내부에서 온 충격이야!”

“설마 수압 때문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상황을 확인해!”

“넵!”

런안의 명령에 팀원들이 서둘러 상황실 내에 있는 컴퓨터들 앞에 앉아 상황 파악을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 중 한 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 저기, 팀장님?”

“뭔가?”

“그, 원인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의 보고에 런안이 다가가 모니터를 확인했다. 곧이어 그 또한 팀원과 똑같은 얼굴이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이 E구역의 외벽을 뚫고 침입, 현재 G구역으로 이동 중?”

연기기지의 구역 수는 총 8개, A구역부터 H구역까지 존재한다. 원형 고리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에 G, H구역 다음은 이곳 A구역이다.

정체불명의 괴물이 제1상황실에 들이닥치는 것도 큰일이지만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H구역은 생물연구실이 위치한 곳. 즉, 그들이 어렵게 포획한 씨 데몬이 그곳에 갇혀 있다.

“당장 G구역을 분리해…!”

쿠우우웅

그가 급히 외치는 순간,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충격이 상황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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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내 침입을 모르나 보네.’

들어온 직후부터 인간들의 머리를 뽑으며 돌아다녔지만, 구역이 봉쇄된 것 말고 특별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저쪽의 대응이 늦은 덕분에 나는 편하게 26호를 찾으러 갈 수 있었다.

내가 기어갈 때마다 복도 절반 높이까지 차오른 수면이 크게 흔들렸다. 구역이 폐쇄되면서 바닷물의 유입이 뚝 끊겼기 때문에 복도 전체가 잠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탓에 나는 좁은 복도를 불편한 자세로 기어 다녀야만 했다. 허리를 조금만 위로 세우면 바로 머리 갑각이 천장에 닿아 버렸기 때문이다.

‘복도 천장이 더 낮았으면 먹이도 못 가져갔겠지.’

현재 나의 침식 촉수 6개들은 시체들을 뱀이 먹이 사냥할 때처럼 휘감고 있었다.

모습이 마치 굴비를 엮은 것 같아 썩 보기 좋지는 않았고, 이동하는데 불편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예전 유성의 연구선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연구원들은 26호에게 제대로 식사를 챙겨 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영양을 공급해 줄 뿐.

‘녀석도 배가 많이 고플 거야.’

내가 좀 불편해도 26호가 굶주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여긴가?’

H라고 표시된 복도를 지나니 두꺼운 금속 차폐문이 앞을 막고 있었다. 앞에 차폐문 하나를 이미 부쉈지만 이건 그것보다 더 두꺼워 보였다.

씨 데몬과 같이 위험한 해양 생물을 연구하는 곳이다 보니 다른 곳보다 보안 수준이 높은 것 같다.

‘그래 봐야 소용없지만.’

나는 턱 아래의 보조기관을 차폐문에 가까이 댔다. 안쪽에 또 다른 차폐문이 하나 더 있는 이중 문 구성이지만 상관없다.

이런 금속조각 따위로 나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

[즈 즈즈즈즈(금방 꺼내줄게)]

「응!」

26호를 안심시킨 나는 뒤로 물러났다.

산성 진균은 물에서는 효과가 반감되니 원시적인 방법으로 부숴야 한다.

문과 적당히 거리를 벌린 나는 뿔이 문을 찌를 수 있도록 머리를 숙인 뒤 돌진했다.

상반신에 달린 여섯 개의 전투용 팔이 복도의 바닥과 벽을 내리찍으며 내 몸을 앞쪽으로 이끌었다. 물에 잠긴 꼬리와 하반신 부분에 달린 발톱들도 맹렬히 움직이면서 내가 빠르게 전진할 수 있도록 물살을 밀어냈다.

애초에 심해에서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된 연구기지의 외벽도 뚫은 나다.

내 뿔에 충돌한 두꺼운 차폐문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걸로 모자라 그 뒤에 있는 차폐문까지 내 돌진에 의해 꾸겨진 종이 꼴이 되어 튕겨 나갔다.

내 뒤 복도에 있던 바닷물들이 부서진 문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음?’

“꾸륵?”

“적이다아. 꾸륵.”

차폐문을 부수고 들어오니 인간은 없고 대신 다른 존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업복을 입은 어인들이 나를 쳐다 봤다.

‘피쉬리안?’

바다 위 수상가옥에서 인간과 피쉬리안이 거래하는 것을 봤지만, 연구기지에도 있을 줄은 몰랐다.

작업복까지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이곳에서 보안 및 경비 관련 일을 맡은 것 같았다.

“꾸르륵. 저놈이 인간 둥지, 엉망으로 만들었다아.”

“꾸륵. 강해 보이니 제물로 바친다아!”

“제무우울!”

녀석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손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던 눈들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인간이었으면 바로 도망쳤을 텐데 역시 광신도답게 뒤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

게임에서 피쉬리안은 강대한 해양 생물의 부하로 주로 등장한다. 심해의 포식자를 섬긴다는 설정에 걸맞게 씨 데몬, 페일 마스크 같은 무서운 포식자들의 전투 보조 역할을 맡는다.

솔직히 씨 데몬 같은 준보스급 생물과 싸우는 플레이어들에게 피쉬리안은 성가신 날파리에 불과하지만 그런데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피쉬리안 수컷에게는 손톱과 가시에 독이 있어.’

그들의 등과 머리에 있는 쏨뱅이의 독침을 닮은 저 알록달록한 가시는 장식이 아니다. 현실에서 바다에 사는 짐승들의 독이 대개 강력한 것처럼 피쉬리안의 독 또한 매우 강력하다.

또한 피쉬리안은 본인이 독의 위력을 조정할 수 있어 내가 지닌 신경독의 상위호환이라 볼 수 있다.

녀석들에게 안타까운 점이라면 내가 ‘완전면역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거다. 준성체 특전 중 하나인 완전면역체는 독과 질병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면역력을 부여하는 특성. 독 사용에 특화된 플레이어가 아닌 이상 독으로 내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존재는 많지 않다.

‘그리고….’

“꾸룩!”

잠수하던 녀석들이 순식간에 나에게 접근해 물 위로 뛰어올랐다. 녀석들의 손톱이 내 외피를 할퀴고 지나갔다.

“꾸륵?!”

“단단하다아!”

애초에 손톱이 박히지 않으니 독이 있어도 쓸모가 없다. 혹 적들이 가시에 있는 독샘을 이용해 물에 독을 흘렸으면 모를까.

나는 전투용 팔을 뻗어 피쉬리안들의 허리를 붙잡았다. 이럴 줄은 예상 못했다는 듯 녀석들의 눈동자들이 거침없이 흔들렸다. 손에 힘을 주자 녀석들의 허리가 뚝 소리가 나며 부러졌다.

“괴물! 괴물이다아!”

“꾸륵! 제물 어렵다아!”

내 손에 잡히지 않은 녀석들이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도망치려 한다. 나는 이미 숨이 끊어진 피쉬리안 시체를 던져두고 녀석들의 뒤를 덮쳤다.

침식 촉수에 엮인 먹이 목록에 피쉬리안들을 추가시킨 나는 남은 시체들을 바라봤다.

‘들고 가기 좀 애매한데 그냥 맛이나 한 번 볼까?’

나는 피쉬리안 시체의 머리를 한입에 물어뜯었다. 물고기 특유의 비린 냄새, 독샘에 남아 있는 독의 찌릿하고도 강렬한 맛에 이어 독특한 풍미의 식감이 기분 좋게 입 안을 간질였다.

‘맛있네.’

유전자 개조한 인간, 스웜프킹같이 천상계의 맛은 아니지만 매우 독특한 풍미가 느껴진다.

지방이 거의 없어 기름지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담백했고, 탄탄한 근육 때문인지 씹는 맛이 제법 훌륭했다. 또한 뇌와 가시 사이에 있는 독샘에서 흘러나오는 독은 마치 회에 와사비를 얹어 먹는 것처럼 짜릿한 즐거움을 줬다.

‘이것들은 26호한테 갖다 줘야겠다.’

나는 침식 촉수로 휘감고 있던 시체 중 인간 시체 몇 개를 버리고 피쉬리안으로 채웠다. 씨 데몬인 26호는 나보다 더 강한 독 저항력을 지니고 있을 테니 피쉬리안 고기를 즐겁게 즐길 수 있으리라.

‘아드하이한테 줄 때는 독샘 부위는 피해서 줘야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구역 안쪽에 들어가니 단단해 보이는 감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큰애기야?」

[즈즈즈즈(오랜만이네)]

「큰애기야!」

나를 본 26호가 폴짝 뛰면서 기쁨을 표시했다.

오랜만에 본 녀석의 덩치는 이전보다 많이 작아진 상태였다. 5m 정도 되던 덩치가 지금은 2m에서 3m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고양이 발바닥을 연상시키던 분홍빛 몸체도 생기가 없이 푸석푸석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거겠지.’

녀석이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움찔할 정도였다.

내 생각과 달리 26호는 나를 봐서 제대로 신이 났는지 몸에 빛을 내면서 파장을 마구 쏘아 보냈다.

「큰애기 많이 커졌어! 나보다 훨씬 커졌어!」

[즈 즈즈즈 즈즈(밥 잘 먹어서 그래)]

「잘 먹어서 기특해! 큰애기 잘했어!」

[즈 즈즈즈(바로 꺼내줄게)]

「응!」

[즈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 즈즈(맛있는 거 챙겨 왔으니까 나오면 먹어)]

「와!」

기뻐하는 녀석을 두고 나는 감옥을 살펴봤다.

‘과연. 스타유니언산(産) 특수감옥이네.’

왜 26호가 이렇게 기운이 없어 보이나 했는데 바로 이해가 됐다.

감옥 철창은 순수한 블랙실버로만 만들어졌기에 칠흑처럼 새까맸다. 철창 사이와 바닥, 천장에는 스프링클러 모양으로 생긴 특수한 장치들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저 장치는 블러드 리버처럼 다른 생물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장치다. 빨아들인 에너지는 장치 자체의 동력으로 활용되기에 아무리 강력한 생물이라 해도 오랜 시간 가둬둘 수 있다.

‘주변에 물이 있어서 그렘린 이끼는 못 쓰는데.’

나는 감옥 옆에 있는 감옥을 관리하는 컴퓨터로 다가 갔다. 가슴 쪽 작은 팔로 컴퓨터를 만져 봤지만 이 구역 전체에 들어온 물 때문인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냥 맨손으로 열어야겠네.’

관리 컴퓨터가 망가져서 시간이 지나면 저 에너지 흡수 장치도 무력화되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전투용 팔 6개를 동원해 감옥 철창을 꽉 붙잡았다.

잡는 순간, 내 몸에서 에너지가 쭉 빠져나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빠져나가는 에너지보다 철창을 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더 크니까.

내가 붙잡은 철창들이 엿가락마냥 휘다가 짧은 파열음을 내며 뜯어졌다. 몇 번 반복하니 26호가 충분히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철창들을 부술 수 있었다.

또한 부순 철창 주변에 붙어 있는 에너지 흡수 장치들도 모조리 박살내서 녀석이 무사히 나올 수 있도록 했다.

[즈즈 즈즈즈(이제 나와도 돼)]

「와! 큰애기 힘쎄!」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26호가 폴짝 뛰어와서 나에게 안겼다. 우주도시를 떠날 때만 해도 녀석과 내 몸의 크기가 비슷했는데 지금은 녀석이 훨씬 작아졌다.

‘옛날 생각이 나네.’

작아진 녀석을 껴안으니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유성의 우주선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우주도시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당시 나는 녀석을 머리 위에 얹고 다녔다.

‘이제는 머리 위에는 못 얹고 다니겠지만.’

‘거대생물’ 특성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등에 태우는 게 고작일 거다.

[즈즈즈즈(고생했지)]

「난 괜찮아. 큰애기는?」

[즈즈즈(보다시피)]

26호를 몇 차례 쓰다듬은 나는 포옹을 풀었다. 여전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 녀석에게 미리 준비해 놓은 먹이들을 건넸다.

「고마워! 정말 좋아!」

배가 고팠는지 바로 몸에서 촉수를 뽑아 먹이들을 집어삼키는 26호. 나는 고생했다는 의미를 담아 녀석을 계속 쓰다듬었다.

‘구출은 성공했고. 다음은….’

26호는 내가 가져온 먹이를 금세 다 먹었다. 이걸로 녀석의 허기가 다 채워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큰애기야! 할 말이 있어!」

내 생각대로 식사를 마친 26호가 나를 불렀다.

[즈 즈즈즈(아직 배고프지?)]

「응. 근데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즈(응?)]

「여기 있는 부속지 달린 생물들. 아주 못됐어.」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부속지면 인간을 말하는 거야?)]

「응! 인간들 나빠!」

26호의 몸이 크게 부풀고, 빛이 정신없이 점멸한다. 녀석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본다.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걱정 마. 인간들 혼내주러 갈 거니까)]

「응! 혼내주자!」

[즈(좋아)]

지느러미와 촉수를 위협적으로 흔드는 26호.

그 귀여운 모습을 보고 나는 재차 결심했다.

26호를 화나게 만든 놈들, 그들에게 피의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원래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간단히 죽여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심해의 연구기지에 있는 인원들은 전부 고통과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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