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30
‘그러면 어디부터 시작할까.’
연구기지의 생존자들을 사냥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기지의 외벽을 부숴 내부 기압을 엉망으로 만들어 죽이거나, 아니면 수중 엘리베이터를 파괴해서 그들을 천천히 고사(枯死)시키는 방법도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만 문제가 있다. 자칫 잘못해서 기지가 무너지면 26호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식사도 해야 하니까 전통적인 방법으로 가야겠네.’
살아남은 인원들을 추적하고, 괴롭히다가 죽인다.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이다.
‘그 전에 탈출구부터 차단해둘까.’
연구원들을 어떻게 요리할지 정한 나는 26호와 함께 이동했다.
우리가 있는 구역은 엘리베이터와 이어진 통로가 없다. 수중 엘리베이터와 잠수정이 배치된 중앙 구역으로 가려면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생존자들이 오기 전에 수중 엘리베이터와 잠수정을 파괴해야지.’
그것들을 망가트리기만 한다면 이 기지는 인간들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그들을 속박하는 감옥이 된다.
‘피쉬리안이면 모르겠지만 인간들은 딱히 개조를 하지 않았으니까.’
탈출구가 사라진 인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만 남는다.
내 손에 잡혀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운이 좋게 다른 잠수정을 타고 기지를 빠져나간다고 해도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기지의 인간들과 협력 관계인 피쉬리안 마을은 하늘의 어머니와 아드하이가 공략 중이다. 높은 수준의 신격화에 도달한 그리폰이라면 저 정도 규모의 마을 정도는 쉽게 정리할 수 있다.
게다가 그녀는 랭커. 많든 적든 피쉬리안과 싸워 본 경험이 있으리라.
‘해양 괴수들하고 싸울 때 지겹도록 나오니까.’
씨 데몬이나 페일 마스크 같은 준보스급 해양 생물들은 보상이 매우 좋기에 상위권 플레이어들이 자주 잡으러 간다. 클랜 리더도 해 본 적이 있는 하늘의 어머니라면 피쉬리안을 상대한 경험이 적지 않을 거다.
‘혼자서 공략을 준비하느라 고생 많이 했는데.’
해양 보스들은 유용한 특성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에이모프라면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래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거의 다 잡아놨을 때 뒤를 쳐서 둘 다 처리하는 방법을 많이 썼다.
다른 사람들이 힘을 합쳐 잡는 생물을 혼자 잡아야 하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덕분에 욕도 참 많이 얻어먹었다.
아무튼 역겨운 어인들을 졸개로 부리는 무시무시한 레이드 보스 중 하나가 내 옆에 있다. 연신 수다스러운 파장을 쏘면서 말이다.
「큰애기야. 큰애기야. 작은애기랑 만났어?」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 즈즈즈즈(당연하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작은애기 많이 다쳤는데 괜찮아?」
[즈으으으 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아드하이는 내가 치료해줬어. 지금은 괜찮아)]
「치료? 치료가 뭐야?」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아픈 걸 낫게 했다는 뜻이야)]
「와 신기해! 큰애기 멋지다!」
26호는 나를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건지 아까부터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나 또한 녀석과의 대화가 딱히 부담스럽거나 싫지 않았기에 계속 받아주는 중이고.
「작은애기 못살게 구는 인간들 나빠.」
[즈즈(그래)]
「못생긴 인간들 때문에 동족들 많이 죽었어.」
[즈(응?)]
「제일 센 친구가 죽기 전에 도와주려고 했는데 인간들이 날 붙잡았어. 그래서 못 도와 줬어.」
이어지는 26호의 말은 예상하지 못하던 것이었다.
「친구가 죽어서 친구네 가족들이 큰일 났어. 나쁜 애가 와서 못살게 굴어!」
26호는 나와 아드하이보고 애기라고 부른다. 녀석에게 가족이나 동족이라 불릴 만한 존재는 하나밖에 없다.
‘동족은 버블아메바일 거고.’
버블아메바가 강해 봐야 거기서 거기일 테니 제일 센 친구라면 필시 씨 데몬을 말하는 것이리라.
‘씨 데몬이 죽었다고?’
이 행성만을 한정했을 때, 씨 데몬을 사냥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설마 뮤리엘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닐 거다. 26호 말을 들어 보면 우리가 이 행성에 들어온 뒤에 씨 데몬이 죽은 것 같으니까.
‘이상한걸. 씨 데몬을 죽일 만큼 강력한 무기는 안 보이는데.’
내가 감지하지 못한 무기가 있다고 해도 이들이 씨 데몬을 공격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랬다면 피쉬리안들이 협력해 줄 리 없으니까.
‘…아니 잠깐.’
생각을 바꿔보자.
아드하이가 나를 찾아오기 전, 녀석에게 큰 상처를 입힌 존재들은 인간과 피쉬리안 연합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피쉬리안들이 씨 데몬을 섬긴다고 생각했다.
인간들은 씨 데몬인 26호를 인질로 삼아 그들에게 협력을 요구하는 중이라고.
26호는 이 블랙실버로 구성된 기지로 유인당한 뒤 무력하게 당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어.’
해양 포식자들을 신성시하는 피쉬리안이 감옥에 갇혀 있는 26호를 두고 얌전히 경비나 서고 있을 리 없었다. 하물며 갇혀서 쇠약해진 26호를 보고 그냥 넘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즉, 여기 군도에 있는 피쉬리안 마을은 씨 데몬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
‘공동의 적을 두고 인간과 피쉬리안이 협력관계를 맺은 건가.’
다만 아직 의문이 남아 있다.
피쉬리안은 극도로 호전적인 종족. 다른 생물을 보면 제물로 바쳐야겠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하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을 자기 편으로 어떻게 끌어들인 거지?’
무기나 장비로 꼬드겼을 가능성은 낮다. 그나마 씨 데몬의 약점 같은 정보를 줬을 가능성이 높지만 저 무식한 물고기 놈들이 그것만으로 수긍했을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인간들이 피쉬리안에게 씨 데몬을 약점을 알려 준다고 해도, 피쉬리안들이 씨 데몬을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저 강대한 괴수인 씨 데몬을 죽였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정보가 너무 부족해. 일단 주의해 두자.’
분명한 사실은 씨 데몬 말고 피쉬리안이 숭배하는 해양 괴수가 이 심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
‘씨 데몬이 아니라면 페일 마스크일 가능성이 제일 높아.’
씨 데몬급 생물로 드레드 히드라도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자기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신체 구조 자체가 물에서 이동하기 어려운 구조라 그렇다. 드레드 히드라는 심해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서만 서식해서 피쉬리안들과 접촉할 일 자체가 없다.
반면, 페일 마스크는 다르다.
놈들은 심해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적극적으로 먹이 사냥을 한다. 때로는 해수면과 가까운 곳까지 사냥하러 가므로 피쉬리안과 종종 마주치곤 한다.
‘페일 마스크가 적이라면 오히려 다행이야.’
페일 마스크는 씨 데몬보다 한 단계 아래에 위치한 심해 포식자. 수중 전투와 관련한 특성이 부족한 나라고 해도 맞서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내게는 26호가 있지.’
힘 자체는 아직 하늘의 어머니가 더 강하겠지만 26호는 나와 같이 싸운 경험이 많다. 녀석이 나를 보조해준다면 페일 마스크를 상대로도 충분히 우세를 점할 수 있다.
[즈즈즈 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가족들 못살게 구는 애는 인간들 혼내준 다음 알아보자)]
「응. 좋아.」
인간들을 정리할 때, 한 놈 정도는 남겨둬야겠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26호와 함께 어두컴컴한 물속으로 잠수했다.
-
「기지의 손상을 얼마 정도로 예측하나?」
「A구역까지 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H구역에서 추가 손상이 발생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엘리베이터 구역을 확인해 본 결과, 현재 정상 작동 중입니다.」
「휴, 다행이군.」
B구역 내에 있는 복도.
연구원 스무 명이 물에 잠긴 복도를 이동하는 중이었다.
큰 충격 후 제1상황실에 물이 끊임없이 쏟아졌기 때문에 버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상황실을 버린 그들은 비상용 강화복을 입고 탈출하기로 했다.
연구원들이 입고 있는 강화복은 우주복과 비슷한 외형이었는데, 사용자의 안전과 생존 기능에만 투자된 강화복이라서 이런 차가운 물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는 온도가 아니었으니까.
「다만 현재 다량의 물이 유입되면서 내부 기압이 불안정해졌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위치한 중앙구역은 아직 괜찮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지 전체를 총괄하는 A구역과 B구역은 이미 물에 잠긴 상태. 중앙컴퓨터에게 명령을 내려 물을 빼도록 지시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빌어먹을!’
돌연변이 씨 데몬은 생사 불명이고, 이 귀한 연구기지는 침수됐다.
이 연구기지가 얼마나 비싸고, 또 ‘다양한 기능’을 지녔는지 연구총책임자이자 ‘선장’인 런안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대단한 업적을 세웠다고 해도 이렇게 개판을 쳐놨으면 징계를 받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일이라 봐야 했다.
「아직 침수되지 않은 곳이 어느 구역이지?」
「C와 D구역이야.」
「여기가 B구역이니까 그쪽에 가서 중앙구역의 엘리베이터로 이동해야 할 것 같아.」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런안이 손익 계산을 위해 머리를 맹렬히 굴리고 있는 동안, 팀원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 논의를 끝냈다.
「어떻게 할까요?」
「…….」
「팀장님?」
팀원들이 의견을 물어도 침묵하던 런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 C구역으로 이동한다. 거기서 산소 충전을 끝내고 바로 출발하겠다.」
「옙.」
「그리고 가면서 닫히지 않은 차폐문은 전부 수동으로 폐쇄한다. 그렇게 하면 좀 더 시간을 벌 수 있겠지.」
손익을 따지는 것도 살아남아야 가능한 법. 기지 내부에 실시간으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들어 오고 있다.
게다가 그들을 쫓는 것은 바닷물만이 아니었다.
「폐쇄 완료.」
「좋아. 다시 이동한다.」
B구역의 복도를 이동하면서 중간에 문이 닫히지 않은 곳마다 멈춰 서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사태를 유발시킨 괴물. 그것이 그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쿵, 쿵, 쿵
「젠장, 또 저 소리야.」
「…아까보다 가까워진 것 같은데.」
「씨발, 불길한 소리 하지 마라.」
그 증거로 아까부터 계속 굉음이 들렸다. 처음 기지에 충돌한 이후 주기적으로 들리는 소리였다.
저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는 연구원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건 막아 놓은 차폐문과 뭔가가 충돌하는 소리였다.
팀원 중 한 명이 중얼거린 것처럼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
「…꿀꺽.」
저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연구원들은 심장이 옥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사형수가 교수대의 계단을 오를 때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거기다가 그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요소가 더 있었다.
「히이익?!」
「무, 뭐야?」
「시, 시체가….」
팀원 한 명이 복도에 가득 찬 물속에 떠다니는 익사체와 마주하고 뒤로 넘어졌다.
어제까지 함께 식사하고 회의에 참여했던 동료가 지금은 창백한 안색의 시체가 되어 둥둥 떠다니는 중이었다.
「머저리 새끼! 다른 놈들은 뭐 해? 저 새끼 부축 안 하고!」
부하의 멍청한 행동에 런안은 순간 손에 쥐고 있던 가우스 소총으로 쏴버릴 뻔했다. 간신히 참은 그는 짜증을 내며 팀원들을 닦달했다.
「팀장님, 시체에 뭔가 흔적이….」
팀원 중 하나가 시체를 보고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심해의 물고기들이 들어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시체들에는 무언가 작은 생물이 물어뜯은 자국들이 나 있었다.
「닥쳐!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빨리빨리 움직여야 한단 말이다!」
「네, 넵!」
그러나 이미 정신이 한계까지 몰려 있던 런안은 팀원의 의견을 묵살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불행을 겪어야 하냐고!’
런안은 속으로 계속 욕설을 중얼거렸다.
컬트들의 말에 따르면 섭리를 따르지 않고 죄를 지은 자는 지옥에 간다고 한다. 지옥의 종류 중 얼음물에서 죄인을 고문하는 지옥이 있다는 데, 그가 처한 상황이 딱 그 짝이었다.
분위기가 급격히 안 좋아진 상태에서 쉬지 않고 이동한 덕분일까.
그들이 바라던 끝이 다가 왔다. 팀원 한 명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팀장님! C구역까지 남은 거리는 20m! 거의 다 왔습니다!」
「오, 다행이야!」
「휴우, 드디어 좀 쉴 수 있겠군.」
고지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다들 힘을 내면서 열심히 움직였다. 신체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강화복 덕분에 높은 수압 속에서도 그들은 어렵게나마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그렇게 물속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던 중, 맨 뒤에 있던 한 팀원은 허리 부분이 간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응?」
아까 넘어졌을 때부터 다리가 간지럽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그 강도가 더 강했다.
마치 뭔가가 그의 등을 타고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 그저 등이 가렵나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얼마가지 않았다.
「어, 어어? 어어어억!」
「이봐? 왜 그래?」
뒤에서 따라오던 동료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이동하던 열아홉 명의 연구원들이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오, 옷 안에 뭐가 들어왔어!」
「뭐?」
「꺼내, 꺼내줘어어어억! 아아아아악! 놈들이 내 몸을 뜯어먹고 있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비 꼬는 연구원.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몹시도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그 모습을 보고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빌어먹을! 잠깐 기다려!」
「헉?! 이, 이게 뭐야?」
다른 팀원 둘이 그의 팔목에 달린 단말기를 확인했다. 단말기를 통해 강화복 내부에 들어온 이물질을 확인한 그들은 곧 기겁했다.
그의 허리 부근에 손바닥 크기의 생물체들 여러 마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생물체들은 확인 도중에도 끊임없이 위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강화복을 착용한 연구원의 몸을 물어뜯으면서 말이다.
「커헉!」
퍽
잠시 후 연구원이 토한 피가 헬멧을 적셨다. 헬멧 안쪽이 한순간에 시뻘겋게 물들고 팀원의 몸이 축 늘어졌다.
「자, 잠깐? 이봐? 서, 설마?」
「사, 상태 확인하겠습니다!」
「이 멍청이들아! 열지 마!」
뒤늦게 런안이 외쳤지만 이미 다른 연구원이 늘어진 동료의 헬멧을 살짝 열었다. 그 안에는 검은색 벼룩같이 생긴 벌레 대여섯 마리가 피범벅 된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으아아악!」
「히이이익!」
연구원들이 경악한 사이, 그것들은 헬멧 밖으로 튀어나와 물속 저편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 자리에 있는 생존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얘기지만 이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벌레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직후,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좀 전에 그들이 지나온 차폐문이 뚫린 것이다.
「모두 뛰어!」
런안이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팀원들이 이제 막 깨어난 듯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헉, 헉, 헉, 헉!」
「헥, 헥!」
강화복 헬멧 내부에 연결된 통신기에서 그저 헐떡이는 소리만 들리는 동안, 「그것」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헉?!」
「흐억!」
꽁무니에 있던 두 사람의 깜짝 놀란 신음 소리가 통신기에 짤막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유언이었다.
「우드득, 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통신이 끊겼다. 통신기를 켜 둔 모두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말없이 달려서 C구역의 차폐문 앞에 도착했다.
「빨리 열어!」
「시, 시간이 없습니다!」
「빌어먹을! 야! 너, 너, 너까지 셋! 당장 가서 저놈을 막아!」
「네? 씨발 미치셨어요?」
「저걸 어떻게 막습니까!」
항의하는 팀원들을 보고 런안은 들고 있던 가우스 소총으로 팀원들을 겨눴다.
「동료들을 위한 희생, 내 잊지 않겠다. 가서 놈을 막아.」
「팀장 이 씨발 새끼!」
「그 무기로 놈을 쏘면….」
「마지막으로 말한다. 빨리 가서 막아.」
런안이 연구원들을 미끼로 보내는 사이, 다른 팀원이 차폐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구역 중간마다 존재하는 에어로크와 유사한 격리 공간이 나오자 열여섯 명의 인원들이 안으로 진입했다. 공간이 넓지 않다 보니 우주복을 닮은 강화복을 입고 있어서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금세 꽉 찼다.
‘이럴 줄 알고 세 명을 보냈지.’
급한 상황이라도 역시 노련한 판단이었다고 짧게 자찬한 런안.
다른 팀원들도 안심했는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들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티, 팀장님!」
「뭔가?」
「저, 저거….」
팀원이 런안을 부르며 문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본 런안은 숨을 삼켰다.
에어로크에 있는 작은 강화 유리 너머.
그곳에 「그것」의 눈이 있었다.
놈의 하얀 눈이 천천히 움직이며 에어로크 안을 살폈다. 안에 몇 명이 있는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기억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놈의 집요함에 소스라치게 놀란 런안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빠, 빨리 물 빼! 물 빼라고!」
「넵!」
팀원이 서둘러 에어로크의 단말기를 조작했다. 격리공간에 차오른 물이 외부로 배출된 후에야 그들은 C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뭐야? 여기도 물바다잖아?」
「팀장님, 어떻게 합니까?」
쿵
「젠장! 놈이 따라옵니다!」
「모두 뛰어!」
그들은 강화복을 벗을 새 없이 물에 반쯤 잠긴 C구역의 복도를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