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31화 (132/400)

Ep. 131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보려 했는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누가 복도마다 있는 차폐문을 죄다 닫아 놨다. 누가 이런 귀찮은 짓거리를 했나 확인하려고 강화유리에 얼굴을 갖다 대니 생존자들이 아주 자지러졌다.

격리구역에 있던 자들은 저쪽 문이 열리자마자 앞 다투어 빠져나가 버렸다.

도망치는 그들의 뒷모습을 주시하던 나는 강화유리에 바짝 붙였던 머리를 땠다.

「히익!」

고개를 돌리던 중 내게 붙잡힌 생존자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숨통이 막힌 닭과 같은 소리를 냈다.

쓰고 있는 헬멧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어떤 심정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가진 두려움을 빨리 끝내줘야 할 것 같다.

나는 전투용 손에 힘을 줘서 그의 몸을 쥐어짰다.

「아가각가각!」

강화복을 입은 몸이 으스러지자 헬멧 안쪽에서 이해 불가의 소리가 들렸다. 단말마를 끝으로 인간은 내 손 위에서 축 늘어졌다.

나는 손톱으로 그의 강화복을 벗긴 뒤 살점들을 뜯어서 입속에 집어넣었다.

‘그냥 씹어 먹어도 되지만.’

이들이 입고 있는 강화복은 오로지 착용자의 생존에만 치중한 형태라서 방어력이 매우 높다.

간단히 말해 몹시도 질기다는 것. 물론 내가 못 먹는다는 뜻은 아니고, 씹다 보면 이빨에 자꾸 껴서 귀찮다.

나는 붙잡은 인간들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격리 구역에 있는 문을 여유롭게 부쉈다. 내가 있던 구역에 가득 찬 바닷물이 C구역 복도로 빠져나갔다.

‘그럼 다른 구역으로 가 볼까.’

물살을 따라 느릿하게 들어온 나는 생존자들이 뛰어간 곳 대신 이 다음 구역, 즉 D구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차피 녀석들의 행동은 다 내 손바닥 안이지.’

생존자들이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생존자들은 자기들 움직임이 빨라서 내가 쫓지 못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내가 정말 움직임이 느려서, 혹은 차폐문을 부수는 것을 힘들어해서 그런 줄 아는가?

아니다.

26호와 아드하이를 괴롭힌 자들에게 절망을 주기 위해 시간을 들였을 뿐.

‘희망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통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도망친 곳에서 있는 것은 구원이 아니다.

‘나쁜 인간’에게 복수를 바라는 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녀석이 사냥하는 것도 구경해 보고 싶지만.’

이 기지에 살아 있는 자들이 많다. 그들로부터 정보를 빼먹어야 하니 서둘러야 한다.

엎드려 있는 내 몸이 간신히 잠길 정도로 복도에 물이 차올랐을 즈음, 이질적인 움직임이 느껴졌다.

‘음?’

움직이는 그것으로부터 염분의 짠 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금속의 냄새가 난다.

거대한 금속 덩어리의 수는 총 5개. 크기는 얼추 4m 정도 되는 것 같다.

고민은 잠깐이었고, 나는 금방 저 금속 덩어리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스타유니언의 워커랑 비슷하지만 다른 메가콥 전용 건설기계, MCAE(Multipurpose Construction Auxiliary Equipment)다.

MCAE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고전 전략 시뮬레이션에 나오는 인류의 자원 채굴 기계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건설기계다.

간단히 말해 건설과 관련한 여러 기능과 비행 기능이 추가된 우주용 로더(Loader)라 보면 이해하기 편하다.

‘MCAE가 왜 여기 있지?’

내가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는 너무나도 뜬금없기 때문이었다.

MCAE는 우주도시 건설 같은 대규모 공사에 주로 투입되는 장비다. 우주공간과 한참 거리가 있는 심해에서 볼 만한 기계는 아니다.

나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냄새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좁은 복도를 지나 창고처럼 보이는 탁 트인 공간이 나왔고, 거기에 활성화된 MCAE 5대와 피쉬리안 3마리가 보였다.

“…께서 말씀하신다아. 악마의 냄새가 난다고오.”

「젠장, 역시 탈출했나.」

「빨리 이 기지에서 벗어나야 해.」

“아버지께서 노하시기 전 피해야 한다아.”

「이쪽으로 쭉 가면 엘리베이터야.」

실내라서 비행 기능은 꺼둔 MCAE들은 안에 숨어 있던 바퀴를 빼서 움직이고 있었다. 상체의 조종석 옆에 달린 두 팔에는 문 폐쇄에 쓰이는 대형 토치와 건물 수리 용도로 사용되는 금속주입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피쉬리안들은 아까 본 녀석들과 다르게 손에 작살을 들었다. 전체적으로 필룸(Pilum)과 유사한 형태지만 창날이 회오리 모양으로 파였다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저 작살이 아드하이에게 피해를 입힌, 피쉬리안들의 전통 무기다.

원래 피쉬리안 작살은 일반 금속으로 대충 만들지만, 놈들이 든 작살은 흑요석마냥 검은색이었다. 블랙실버가 함유된 금속으로 만든 게 분명했다.

‘저놈들이 아드하이를 공격한 건가?’

블랙실버로 만든 작살이 흔할 것 같지는 않으니 저 셋이 아드하이를 다치게 한 놈들이리라.

‘그렇다면 놓칠 수 없지.’

나는 잠수한 상태를 유지하며 천천히 MCAE 일행에게 접근했다. 그때 머리와 등에 쏨뱅이 가시가 난 물고기 인간의 시선이 내가 있는 방향을 향했다.

놈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의 존재를 느꼈는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냄새! 냄새가 난다아!”

다른 두 마리의 피쉬리안들도 놈과 동조해서 꽥꽥 소리를 질렀다.

“피 냄새!”

“동족을 죽인 놈이 있다아!”

더 이상 숨어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나는 몸을 일으켰다. 비상등 때문에 붉게 빛나는 나를 본 피쉬리안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게 뭐야!」

“괴물! 동족을 죽인 괴물!”

나는 물살을 가르며 놈들에게 돌진했다. 내 등에서 침식 촉수들이 먹이를 발견한 독사처럼 피쉬리안이 있는 자리에 내리꽂혔다.

“끄륵! 죽어어!”

“제물로 바쳐어!”

아까 만났던 녀석들과 달리 이번 피쉬리안 세 마리들은 나이를 제법 먹은 놈들 같았다. 놈들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내 침식 촉수를 피하고, 내 등에 달라붙었다.

“끄륵? 단단하다아!”

놈들은 독이 있는 손톱과 이빨로 내 외피를 잘근잘근 씹었지만 소용없었다. 플라즈마 런처에 직격당해도 파괴되지 않는 갑각을 그들의 연약한 몸으로 부술 수 있을 리 만무하니.

맨손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녀석들이 작살로 나를 마구 찔렀다. 블랙실버 재질이라 아드하이나 26호였으면 피해를 입었겠지만, 놈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등에서 침식 촉수 6개가 일제히 뻗어 나와 피쉬리안들을 후려쳤다. 두 마리는 피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한 마리는 내 촉수에 맞고 나가떨어졌다.

「이거나 먹어라!」

MCAE가 금속주입기에 담긴 액체화 된 금속을 내게 쐈다.

차가운 물속에 반쯤 잠긴 내 몸 위에 달라붙은 금속들은 순식간에 딱딱해졌다. 금속 덩어리가 매달린 전투용 팔이 급격히 무거워졌다.

‘기동력을 저하시키겠다 이거지?’

내 움직임이 느려졌다고 판단했는지 MCAE가 내 눈에 대고 대형 토치를 지져대기 시작했다.

공업용 토치로 내게 피해를 주는 것은 불가능하나 눈에 뜨거운 열기가 상당히 거슬린다.

나는 차갑게 식은 금속 뭉치가 달린 전투용 팔을 크게 휘둘렀다.

노리는 지점은 MCAE의 조종석. 사람 한 명이 들어갈 크기의 조종석이 내 팔에 맞고 크게 우그러졌다.

「컥!」

조종사가 일반인에 비해 3분의 1 정도로 작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살아남기 힘들 거다. 통제에서 벗어난 MCAE의 두 팔이 축 늘어지고 작동을 정지했다.

건설기계 한 대를 침묵시킨 나는 내 머리 위로 날아드는 피쉬리안을 전투용 팔로 쳐 냈다. 망치로 호두를 깬 것 같은 소리가 나면서 피쉬리안의 머리가 산산조각났다.

그 사이 다른 녀석이 반대편으로 달려들어 내 꼬리 위에 올라탔다. 녀석은 갑각 사이에 작살을 꽂아서 지렛대 삼아 뜯어내려고 했다.

나는 놈이 올라탄 꼬리를 수면 위로 쳐들고 몸 전체를 크게 회전시켰다. 피쉬리안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꼬리 갑각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것이 녀석의 실수였다.

「어, 어어어?」

「피해!」

내 꼬리가 물살을 가르며 MCAE 두 대를 노린다. 공격 기회를 잡기 위해 내 주변을 돌고 있던 놈들이 경악하며 물러나려 했지만, 내가 한 발 더 빨랐다. 육중한 꼬리가 4m크기의 MCAE들을 쓸고 지나갔다.

“껙!”

꼬리에 매달려 있던 피쉬리안이 저 단단한 금속 기계와 충돌하면서 한순간에 핏물로 화했다. 나의 공격에 직격당한 건설기계는 조종석을 포함해 상체 전부가 완전히 날아갔고, 다른 하나는 공중에 붕 떠서 수면 위를 날아 벽면에 처박혔다.

「도, 도망쳐!」

이제 남은 것은 두 대. 삽시간에 동료들을 전부 잃은 MCAE들은 뒤로 빠르게 후퇴했다.

‘둘 다 남길까.’

원래는 한 명만 남기려고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느긋하게 헤엄치며 건설기계 뒤를 따라갔다.

씨 데몬의 살해, 피쉬리안들과의 협력관계, 심해의 연구기지에 뜬금없이 있는 MCAE 등등.

저들에게 물어볼 것이 아주 많다.

-

「헉, 헉, 헉, 헉.」

「힉, 힉, 놈이 더 이상 따라오지 않습니다! 힉, 힉.」

「헉, 헉, 멍청하긴! 계속 뛰어!」

C구역에서 수중 엘리베이터가 위치한 중앙구역과 이어진 복도.

비상등의 붉은빛에 대비되어 새까맣기 만한 검은 물속에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우주복을 닮은 두꺼운 강화복을 입은 그들은 런안 팀장을 위시한 생존자 집단이었다. 육체, 정신 양쪽 면에서 지칠 때로 지친 열여섯 명의 남자들이 힘겹게 물살을 헤치며 나아갔다.

「놈이 C구역에 들어왔어! 헉, 헉, 따라잡히기 전에 빨리 가야 해!」

느리지만 꾸준히 차오르는 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들은 모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저 물속 어딘가에 놈이 오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팀원들은 마편(馬鞭)을 맞은 경주마마냥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중앙구역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입니다!」

「내부가 침수됐는지 확인해!」

연구팀원이 아직 작동 중인 단말기로 안쪽을 확인하는 동안, 런안과 다른 팀원들은 놈이 오는지 안 오는지 감시했다.

음산하게 빛나는 비상등, 잔잔하게 흔들리는 수면,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헉, 헉, 헉.」

「힉, 힉, 힉.」

그리고 통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팀원들의 허덕거림.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요소가 그들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문득 런안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그것」이 의도한 것이라면?

이미 모든 탈출구가 놈에 의해 봉쇄된 상태고, 남은 생존자들은 고양이 앞의 쥐새끼처럼 희롱당하다 죽을 예정이라면?

‘내가 죽는다고? 웃기지 마!’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 식민지 출신의 런안이 화성의 프라임캐피탈이 되기까지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자오 가문으로부터 파견된 총독 보좌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는 안 한 일이 없었다.

그 결과, 그는 자오 가문 출신의 보좌관과 결혼할 수 있었고, 프라임캐피탈의 자격을 획득했다.

‘어떻게 얻은 지위인데!’

런안은 아직 메가콥 상류층의 삶을 제대로 즐겨보지 못했다. 여기서 죽으면 너무 억울해서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하리라.

「내부에 일부 손상이 발생한 것은 확인했지만 침수되지는 않았습니다!」

부하의 외침이 상념에 잠긴 그를 깨웠다.

다행스럽게도 중앙구역은 건재했다.

런안과 팀원들은 서둘러 에어로크 안으로 들어갔다. 물이 빠져나가는 작업이 완료된 뒤, 그들은 중앙구역 내부로 진입했다.

탈출선과 유사하게 생긴 잠수정이 5대가 벽면 부근에 배치되어 있었고, 가운데에는 게이트가 달린 대형 원기둥이 있었다.

원기둥의 정체는 수중 엘리베이터. 잠수정을 타고 저 원기둥 안에 들어가면 엘리베이터를 통해 수면과 가까운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내부 기압 안정적!」

「다행이군.」

“크헉, 켁, 휴우우….”

“우왜애애액!”

안전한 곳에 와서 다들 긴장이 풀렸던 것일까. 헬멧을 벗은 팀원 중 일부가 엎드린 채 토악질했다.

“여기서 산소 충전하고 잠수정을 타고 위로 이동하지.”

“구조대는 언제 올까요?”

“일단 통신은 보내놨으니까 얼마 걸리지 않을 거다.”

“옙.”

그렇게 산소를 재충전하는 등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는데, 팀원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잠수정이 망가졌습니다!”

“뭐?”

그 말을 들은 생존자들 모두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런안은 서둘러 다른 잠수정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5대 중 그가 살펴본 3대가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잠수정 한 대의 정원은 최대 3명까지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생존자들은 열여섯. 남은 2대가 멀쩡하다고 해도 이미 최대 정원을 한참이나 초과한 상황이다.

“이건 말도 안 돼! 우린 다 죽었어!”

“기, 기다려! 어떻게든 수리하면….”

“병신같은 소리! 수리하다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다가 몰살당할걸?”

“씨발, 그럼 뭐 다른 방법 있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강화복으로 버티는 것은 어떨까?”

“우주라면 모를까 이곳은 심해야. 아무리 강화복이 튼튼해도 수압 때문에 못 버텨.”

“니미, 죄다 안 된다고만 하고! 그럼 어쩌자는 건데?”

“이 새끼가!”

최후의 희망이 무너지니 팀원들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어떤 이는 다른 이의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했다. 어떤 이는 그저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울기만 했다. 어떤 이는 허공에 삿대질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에서 런안은 겨우 냉정함을 유지한 채 머리를 굴렸다.

‘남은 잠수정은 두 대. 내 옆에 있는 이건 외견만 봤을 때는 멀쩡해 보여.’

그가 잠수정 내부도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려는 순간, 팀원 한 명이 그에게 손가락질 했다.

“런안 이 씹새끼! 당장 거기서 물러나!”

“빌어먹을 개자식! 잠수정이 멀쩡하면 혼자 타고 도망치려고 했지?”

“크흠,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서로 반목하던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런안에게 향했다.

‘저 새끼가…!’

런안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들고 있던 가우스 소총을 만지작거렸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열다섯 명. 런안은 연구원이지 군인이 아니었기에 저 많은 인원을 총 하나로 제압하기 쉽지 않았다.

몇 명 정도는 죽이겠지만, 그 사이 남은 자들에게 공격당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결국 그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만!”

런안은 온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그의 외침이 중앙구역의 넓은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적대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팀원들도 깜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리원! 다징! 나를 그렇게 모르나! 내가 혼자 도망치려고 했다고?”

“그래! 우리가 네놈 생각을 모를 줄….”

“개소리! 우리가 이렇게 반목하는 동안에도 놈은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쓸데없는데 시간을 쓰고 있다니 모두 제정신인가!”

“그, 그건….”

런안의 말을 들은 팀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기 계획대로 되어 간다고 생각한 런안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 살다 보면 절망할 수도 있지. 이렇게 안 좋을 수도 있나 싶은 일이 더 악화할 수도 있고. 밖에 괴물이 우리를 노리고 있고, 여기 심해라고 하는 자연이 우리를 짓누르려고 하는 것은 나도, 너희들도 잘 알고 있다.”

런안은 열변을 토하면서 한 발자국 움직였다.

“하지만! 이 정도 고난은 가니메데에서의 혹독한 삶과 비교했을 때 아무것도 아니다! 그곳에서는 온도 조절 기기가 망가져서 한 번에 수백 명이 동사하는 일도 비일비재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아남는지 아나?”

“…….”

런안은 팀원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쳤다. 그러는 중에 잠수정과의 거리를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으며 말이다.

‘좋아.’

이제 손을 뻗으면 바로 잠수정의 문을 열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바로 서로 힘을 합쳐서 난관을 극복해내려고 하는 자들만 살아남는다! 알겠나? 자네들은 이 자리에서 애처럼 울다가 죽길 바라는가? 아니면 힘을 모아 살아남길 바라는가?”

“그, 그건….”

“옆자리 동료들의 얼굴을 봐라! 거기에 바로 탈출구가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팀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 봤다. 그들의 신경이 다른 곳에 쏠린 사이, 런안이 급히 잠수정의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기회!’

이 문을 열고 올라타서 바로 작동시킨다.

오로지 그것 하나만 생각하고 런안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

문을 열면 바로 보여야 할 기계 장치들 대신 분홍색에 부드러운 재질의 무언가가 있었다. 이어서 분홍빛 촉수들이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와 런안의 사지를 붙잡았다.

그가 비명을 지르기 전, 붙잡고 있던 촉수들이 런안의 몸을 잠수정 안으로 확 끌어당겼다.

우득 우드득 우직

잠수정 내부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들. 비명 소리라든가 고통에 찬 신음 소리 따위는 없었다.

이윽고 잠수정의 문 아래로 붉은색 피가 흘러내렸다.

“어, 어? 티, 팀장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았는지 팀원들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말에 회답이라도 하듯 잠수정의 문 안쪽에서 긴 촉수다발들이 튀어나왔다.

“히이이익!”

우지지직 꽈득

“으아악! 놈이 날 붙잡았어! 아아아아아!”

뚜둑 으그극 콰직

“모두 도망쳐어어어!”

촉수들은 가까운 팀원들부터 차례차례 붙잡아서 잠수정 내부로 끌고 들어갔다. 들어간 이후 들리는 소리는 그저 뼈가 부러지거나 살가죽이 찢어지는 등의 소름 끼치는 소리들뿐.

생존자들이 마지막 탈출구라 여겼던 중앙구역.

그곳에는 소리 없는 비명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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