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34
짧은 소강상태가 끝나고 전투가 재개됐다.
수십m 이상의 크기를 자랑하는 놈의 지느러미가 해변의 모래를 세게 내리쳤다. 작은 지진이 우리의 몸을 흔들고, 뒤이어 어마어마한 크기의 모래와 흙이 솟아올랐다.
땅이 뒤집히면서 생긴 모래의 벽이 우리를 덮친다.
「위험」「회피」
하늘의 어머니를 태운 아드하이가 곡예비행으로 모래와 흙의 세례를 피하는 사이, 나는 재빨리 26호에게 기어갔다.
「끄으으응!」
녀석은 ‘속박’으로 모래들을 붙잡아두려고 했지만 소용없다. 지금 녀석의 실력으로는 대량의 모래들을 단번에 속박시킬 수 없다. 나는 녀석을 붙잡아 꼬리 갑각 위에 태웠다.
[즈즈(조심)]
바위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크기인 흙더미가 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커다란 모래뭉치들을 피하는데, 그 사이로 적의 다리가 날아든다.
‘나랑 씨 데몬 둘 다 독에는 면역이지만.’
그렇다 해도 저 촉수에 담긴 육중한 힘은 무시할 수 없다. 나는 버틸 수 있더라도 26호가 저 다리에 맞으면 그대로 2등분이 될 테니.
배갑(背甲) 속에 숨어 있던 침식 촉수가 내 의지에 반응해 밖으로 뛰쳐나온다.
전투용 팔에서 나오는 흡혈 촉수에 비해 내구도가 월등히 뛰어난 침식 촉수가 날아드는 페일 마스크의 공격을 튕겨 냈다.
‘이 다음은 브레스.’
모래 장벽 사이로 놈이 입을 벌리는 것이 살짝 보인다.
우리 중 놈의 소화액을 견딜 수 있는 자는 없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놈의 산성 브레스가 어디로 날아올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등에 있던 26호가 나섰다. 녀석이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큼지막한 바윗덩어리 하나를 조종해서 놈에게 쏜 것이었다.
「기이이?!」
돌에 머리를 얻어맞은 페일 마스크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틈에 나는 모래 세례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나와 마찬가지로 위로 높게 날아서 모래의 장벽을 피한 아드하이가 우회해서 다시 달려든다.
페일 마스크에게 붙어 있는 얼굴들이 충격파를 쏴댔지만 녀석은 뛰어난 곡예비행을 선보이며 멋지게 피해냈다.
허공에서 공기가 마구 터져 나가는 와중에도 녀석의 속도는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녀석이 페일 마스크와 가까워졌을 무렵, 하늘의 어머니가 나섰다. 그녀의 양손으로 제사장의 황금창이 들려 있었다.
「지금이야!」
「확인」
페일 마스크의 지느러미 위에 바짝 접근한 녀석의 속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그에 맞춰 하늘의 어머니가 단창을 크게 내질렀다.
단창이 지느러미에 깊숙이 꽂히자 아드하이가 다시 빠르게 치고 나갔다. 단창의 예리함에 녀석의 가속력이 더해지자 지느러미의 상처가 급격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기이익!」
순식간에 지느러미의 반을 잃은 페일 마스크가 고통 속에 신음했다. 놈은 몸으로 아드하이를 들이 받기 위해 다른 쪽의 지느러미를 이용해 몸을 일으켰다.
「칫!」
「위험」「회피」
하늘의 어머니면 몰라도 아드하이의 방어력은 그리 높지 않다. 50m 크기의 덩치와 충돌했을 때 무사할 가능성의 희박하다.
아드하이는 놈과의 충돌을 피해 서둘러 고도를 높였고, 하늘의 어머니의 공격은 중단되었다.
녀석들이 격렬히 싸우고 있는 동안, 나는 재빨리 생각했다.
페일 마스크에게 큰 피해를 입혔지만, 놈의 거대한 덩치에 비해서는 치명상이라 보기는 어려운 상황.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하다.
‘사냥의 표상 쿨타임은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어.’
따라서 전투 중에 쓰는 것은 불가능. 놈을 잡은 뒤 먹을 때 써야 한다.
사냥의 표상을 제외하고 비장의 카드라 할 만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유일급 장비를 포식해서 얻은 특성.
‘그 특성이라면 페일 마스크를 일소시킬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페일 마스크와 싸울 때 그 특성은 쓸 수 없다. 최면파로 인해 집중을 요하는 특성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이킥 브레스도 동일한 이유로 쓸 수 없다.
‘그리고 그 특성을 썼다간 포식은 물 건너갈 거야.’
약탈자의 부정형 다면체로 획득한 그 특성, 지금까지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특성은 사이킥 브레스를 ‘따위’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놈이 그 특성에 맞는다면 시체가 남김없이 증발할 거다.
‘페일 마스크로부터 얻을 수 있는 특성들 대부분이 유용하지.’
50m 이상의 생물들이 지닌 공용 특성인 ‘거대생물’이라든가, 최면파를 쏘는 기생 생물을 몸에 생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특성이라든가 등등.
그런 좋은 특성들을 전부 날릴 수는 없다.
아직 그렇게까지 불리하지 않은 상황이니 일단 ‘그 특성’은 보류하도록 하자.
‘대신 지형을 이용해볼까.’
놈은 커다란 덩치를 가진 해양 괴수지만 지상 위에서는 아니다. 육상전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를 지닌 만큼 이동이 제한된 상태. 그 틈을 노려야 한다.
나는 26호를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놈에게 달려갔다.
그 사이 다시금 지느러미로 땅을 내려쳐 모래 장벽을 세우려는 페일 마스크. 내가 기어 오는 것을 본 놈이 행동을 멈추고 방어 태세를 취한다.
하지만 내가 노리는 것은 놈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놈의 ‘밑’.
나는 놈과의 거리를 좁힌 뒤, 달리는 것을 멈추고 전투용 팔로 땅을 헤집었다. 순식간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구덩이가 생겼다.
「기이이?」「기이이!」「기이이!」
내가 또 무슨 짓을 할지 경계한 녀석이 입을 크게 벌렸다. 강력한 산성 브레스가 내가 있는 방향으로 발사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한 발 더 빨랐다. 놈이 산성 브레스를 토해냈을 때, 나는 이미 땅속에 몸을 숨긴 후였다.
페일 마스크가 누워 있는 곳 아래로 기어들어 온 나는 전력을 다해 전투용 팔로 땅속을 마구 헤집었다. 놈이 몸을 크게 움직인다면 그대로 땅속에 파묻힐 수 있도록 말이다.
‘넓고 깊게 파야 해.’
내 전투용 팔과 침식 촉수가 굴착기가 되어 단단한 지반을 부수고, 파낸 흙들은 몸 여기저기에 달린 발톱들이 뒤로 밀어냈다.
팔 한쪽이 부러진 탓에 처리하지 못한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데, 이 부분은 꼬리가 대신 처리했다. 나의 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꼬리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흙들을 정리했다.
해변의 지반이 급속도로 약화되었지만, 위에 있는 놈은 아직 모르는 기색이다. 놈은 자기를 귀찮게 하는 애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놈이 위치한 곳 말고도 그 주변에 있는 지하까지 전부 깊게 파헤친 나는 괴물의 촉수를 이용해 애들에게 파장을 쐈다.
[즈즈 즈 즈즈즈즈 즈즈즈즈(놈이 크게 움직이도록 유도해 줘)]
「이해」
「응!」
「뭐? 지금 뭐 하는…으헉?!」
내 뜻을 바로 이해한 녀석들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최면파가 보조기관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어서, 위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다만 땅이 무지막지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니 아주 제대로 날뛰고 있는 것 같았다.
「기이이!」「기이이!」
결국 페일 마스크도 도저히 못 참겠는지 분노의 울음소리를 냈다. 지금까지의 진동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강렬한 충격이 땅 아래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기익?!」
약화된 지반이 무너지며 놈의 지느러미가 구덩이에 빠졌다. 그 타이밍에 맞춰 나는 꼬리에 힘을 줘서 몸을 위쪽으로 강하게 밀었다.
승천하는 용처럼 내 몸이 반쯤 무너진 지반을 뚫고 허공에 날아오른다. 지하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나를 본 페일 마스크의 눈동자가 크게 확대된다. 마치 네가 거기서 왜 나오느냐는 듯한 눈빛.
나는 대답 대신 녀석의 위를 덮쳤다. 땅에 반쯤 파묻힌 데다가 자세가 무너진 녀석은 나를 피할 수 없었다.
무려 20m에 달하는 길고 거대한 몸을 자랑하는 나의 무게가 실린 바디 프레스다. 나와 놈이 충돌하는 순간, 섬의 해변가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기이익?!」
방금 충돌에 의한 충격이 워낙 컸는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페일 마스크.
나는 기세를 몰아 다시금 놈의 머리를 몸으로 휘감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머리끝이 아니라 몸통과 가까운 부분을 노렸다.
즉, 눈과 입이 있는 부분.
내 전투용 팔과 침식 촉수가 날렵하게 움직이며 놈이 입을 벌리지 못하게 턱을 단단히 붙잡았고, 나의 몸체와 꼬리가 놈의 머리 위쪽부터 아래까지 휘감았다.
「기이이?!」「기이이!」「기이이!」
전보다 훨씬 단단하게 조여진 것을 감지한 놈이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놈은 아까처럼 머리를 땅에 내리찍어 나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주변 지반은 내가 다 헤집어 놨기에 전혀 단단하지 않다. 물렁한 땅 위에서 놈이 나를 매단 채 땅에 후려쳐도 큰 피해를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여기서 추가로.’
나는 놈의 몸을 휘감은 상태로 놈의 상처 부위들을 살폈다. 나와 가까운 곳에 내가 아까 전 뿔로 찔러서 만든 상처가 있다.
나는 턱을 양 갈래로 크게 벌려서 그 부위에 이빨을 박았다. 그리고 부패 곰팡이 기관과 산성 진균샘을 동시에 활성화했다.
「긱?!」
놈의 가죽은 매우 두껍고, 독에 대한 면역력을 제공하므로 부패 곰팡이나 산성 진균을 쏴도 뚫을 수 없다.
하지만 외피 안쪽의 속살은 얘기가 다르다.
외피에 비해 곰팡이나 바이러스 등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지는데다가 이곳은 머리 부위. 경뇌유와 두터운 지방층으로 보호받는다고 해도 급소와 가까운 곳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덩치가 큰 놈이다 보니 부패 곰팡이와 산성 진균이 효과를 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아직 자기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치를 채지 못한 놈은 다음 행동에 나섰다. 아예 몸 전체를 뒤집어서 나를 깔아뭉개려고 한 것이었다.
놈의 무게는 나의 5배 이상. 놈에게 깔린다면 나는 그대로 압사당하겠지.
「기이이?」「기이이!」「기이이」
하나 이번에도 놈은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놈은 반쯤 몸이 모래 속에 파묻혀 있는 상태. 지느러미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쉽지 않을 거다. 물속이었으면 아주 쉽게 이룰 수 있는 행동이지만 여기는 육지. 놈이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인 육중한 몸이 여기서는 거추장스러운 요소에 불과하다.
게다가 놈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자는 나만 있는 게 아니다.
새벽의 밤하늘 위에 떠 있는 용, 그리고 그 등에 탄 그리폰 수인이 보인다. 하늘의 어머니를 태운 아드하이가 페일 마스크에게 급강하한다.
하늘의 어머니가 든 제사장의 황금창 덕분에 둘의 모습은 마치 황금색으로 빛나는 유성을 연상시켰다.
이어서 빛나는 별이 포악한 해양 괴수와 충돌했다.
급강하하면서 생긴 가속도 덕분에 하늘의 어머니가 든 단창이 저 두터운 지느러미를 어렵지 않게 베어냈다.
「끼이익!」
팔이자 몸이나 다름없는 지느러미가 거의 통째로 잘리자 놈이 비명을 질렀다. 상처 길이만 10m가 넘다 보니 잘린 부위에서 푸른색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몸을 뒤집기 위해 지느러미에 힘을 주고 있던 놈은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무기로 쓰는 것 말고도 수영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느러미가 극히 일부만 남기고 떨어져 나갔다. 놈이 설령 이 자리에서 무사히 빠져나간다 쳐도 회복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놈도 지능이 있으니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터.
「기이이!」「기이이!」「기이이!」「기이이!」「기이이!」「기이이!」
놈에게 독기만 남았다는 것을 보여주듯 몸에 달린 얼굴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창백한 여인의 얼굴에서 악귀 형상으로 일그러진 얼굴들이 아드하이를 노려봤다.
기생 생물들이 일제히 입을 크게 벌려서 충격파를 발사했다. 보이지 않는 공기의 탄환들이 아드하이와 하늘의 어머니를 향해 날아갔다.
이에 아드하이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면서도 정교한 곡예비행을 하며 날아드는 충격파를 전부 피해냈다.
「오른쪽 날개 부근을 조심해라!」
「확인」
중간에 녀석이 놓친 부분은 예리한 눈을 지닌 하늘의 어머니가 공기의 흐름을 읽어서 아드하이에게 전달해줬다.
다만 아직 아드하이는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았다. 지금은 잘 피해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조이고 있던 몸에 힘을 더 강하게 줬다. 꼬리와 몸 여기저기 있는 뭉툭한 발톱들이 페일 마스크의 두꺼운 가죽을 뚫고 들어가 단단히 파고들었다. 뱀처럼 휘감은 내 몸이 조여 들자 섬뜩한 마찰음이 들렸다.
「끼익?!」「끼기긱!」「끽!」
얼굴들이 내뱉는 울음소리가 이상해졌다. 숙주가 극도의 위험에 처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놈은 아드하이를 향해 충격파를 연신 갈기는 동시에, 몸에 달린 다리들을 전부 사용해 내 배갑(背甲)과 외피를 후려쳤다.
‘큭!’
통나무로 두드려 맞는 듯한 충격이 밀어닥치고, 외피 조각들이 깨져나갔다. 결코 작지 않은 고통이었지만 나는 고통 경감 하나만 믿고 어떻게든 버텼다.
그때, 주변에 듬성듬성 깔려 있던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 몇 개가 떠오르더니 놈의 다리를 향해 날아갔다.
「기이이!」「끽!」
바위 덩어리를 맞을 때마다 다리의 궤도가 뒤틀려 휘감고 있는 나의 몸 대신 자기 몸을 후려쳤다.
「큰애기야! 도와줄게!」
멀리서 26호가 지휘자가 지휘하듯 촉수를 흔드는 것이 보인다.
해변가를 둘러싼 나무나 바위들이 뽑혀서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촉수의 움직임에 맞춰 날아가 페일 마스크의 몸과 다리들에 꽂혔다.
「끽!」「껙?!」「케엑!」
두터운 가죽으로 덮여 있는 몸에 비해 놈의 몸에 달린 기생 생물들은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떨어진다. 창백한 여인의 얼굴들이 돌과 나무에 맞아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됐다.
충격파를 쏘는 존재가 줄어드니 아드하이 또한 다시 이쪽으로 날아왔다. 페일 마스크의 몸 중에서 땅 위에 튀어나온 부분에 녀석이 바짝 붙을 때마다 하늘의 어머니가 단창을 찌르고 벴다.
페일 마스크가 대응하려고 하면 또다시 날아드는 바위와 나무 파편들. 26호는 놈이 ‘작은애기’를 괴롭히는 것을 용서치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나의 몸은 착실히 놈의 머리를 조이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기익!」「끼이이!」
계속 조이고 있는데 안쪽에서 풍선 같은 뭔가가 짓눌려 터지는 느낌이 났다. 놈의 안구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손상된 것이다.
눈알이 터지자 놈이 발광했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이겠지.
놈은 그나마 멀쩡한 다른 한쪽 지느러미와 다리들을 이용, 땅을 마구 헤집었다.
죽기 살기로 간신히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놈은 자신의 고향, 새벽의 빛이 내리깔린 저 바다를 향해 기어갔다.
하지만.
「기, 기이이?」「기이익?!」「끼익!」
열심히 모래를 기던 놈이 크게 비틀거렸다. 숙주가 왜 이러는지 이해 못한 얼굴들이 의문 섞인 울음소리를 낸다.
‘좋아. 효과가 있어.
아까부터 내가 계속 주입하고 있던 부패 곰팡이와 산성 진균이 슬슬 효과를 발휘하는 중이었다. 겉은 멀쩡해도 안쪽은 부패 곰팡이로 인해 살점이 썩는 중이고, 근육과 혈관은 산성 진균에 의해 녹아내리고 있으니까.
이제 놈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게다가 나의 친구들, 아드하이와 26호는 놈이 스스로 죽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 듯하다.
아드하이는 죽어 가는 먹잇감을 희롱하는 대머리수리처럼 집요하게 페일 마스크를 노렸다. 녀석의 등에 탄 하늘의 어머니의 단창 또한 쉬는 일이 없었다.
둘이 협공을 가하는 동안 26호도 지지 않고 계속 ‘데몬 크래시’를 날려 놈의 가죽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에이모프, 갤러곤, 씨 데몬, 그리고 볼프까지.
4마리의 괴물에 의해 해양 괴수는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히이이….」「히이이….」「히이이….」
페일 마스크의 움직임이 점점 굼떠지더니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숙주가 죽어 가자 기생 생물들의 상태도 급격히 안 좋아졌다. 충격파를 쏘는 얼굴은 거의 없었고 나머지는 그저 알 수 없는 신음 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바다와 몇m도 안 남은 곳에서 놈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놈은 마지막으로 가쁜 숨을 한 번 내쉬고 곧 조용해졌다.
「끼야아아악!」「끼에에엑!」「끼이이이이!」
페일 마스크에 달린 얼굴들이 끔찍한 단말마를 내질렀다. 마지막까지 혐오스러운 짓거리를 잊지 않은 기생 생물들은 곧 숙주의 뒤를 따라갔다.
새벽이 다 가기 전, 군도의 피쉬리안들이 섬기던 아버지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