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36화 (137/400)

Ep. 136

게임에서 씨 데몬의 크기는 대략 20m에서 30m 안팎이다. 즉 내 몸 길이만큼 크다고 보면 된다.

준보스급 생물치고는 작은 편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바로 씨 데몬은 자기 크기와 형태를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

통상 모드의 씨 데몬은 20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전투에 들어가면 100m까지 몸을 불릴 수 있다. 위협적인 무기인 톱날 촉수도 몸에 맞게 커지는데다가, 씨 데몬 고유 특성인 ‘심해의 공포’ 특성의 범위도 같이 넓어진다.

26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씨 데몬은 대개 높은 지능을 지니고 있다. 자기 능력을 전투 중에도 적극적으로 잘 써먹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탱킹을 담당하는 플레이어들이 계산해야 할 부분들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날 수밖에.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이 녀석은 엄청 큰 걸.’

오래 살아서 그런 것일까. 놈의 시체는 얼핏 봐도 일반 씨 데몬의 크기에 두 배는 훌쩍 넘었다. 어찌나 큰지 50m 크기의 페일 마스크도 능가할 정도였다.

게다가 분홍빛 외피 곳곳에 크고 작은 상흔들이 남아 있어 놈이 여간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우주선 충돌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게 죽을 리 없어.’

그 증거로 몸통 부분에 내 몸 이상으로 긴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강력한 괴수인 녀석도 우주선과 충돌하면서 생긴 부상을 미처 회복하지 못한 것이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씨 데몬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26호가 가까이 접근했다. 녀석의 몸에서 수십 개의 촉수들이 나와서 시체에 달라붙었다.

‘뭐 하는 거지?’

혹시 추모하는 건가 생각했지만 분위기를 봐서 그건 아닌 것 같다. 녀석은 몸에서 나온 촉수를 전부 시체에 붙인 뒤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거대한 시체의 표면에서 보라색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초능력 반사 장갑을 두른 나조차 몸 안쪽까지 저릿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에너지였다.

보랏빛 에너지가 시체의 표면을 따라 움직였다. 막대한 사이킥 파워의 흐름이 향하는 곳은 26호가 붙인 촉수들이었다.

촉수를 빨대처럼 활용해서 에너지를 빨아들인 26호에게서 보라색 광채가 났다. 빛의 세기는 녀석이 감정을 표현할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내 보조기관은 부정했다.

녀석의 몸에서 막대한 사이킥 파워가 소용돌이치고 있다고. 녀석이 흡수한 에너지량은 나의 사이킥 브레스를 압도할 정도다.

그리고 녀석의 몸이 알이 깨지는 것처럼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흠칫했다.

녀석에게서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아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개입했으리라.

‘중요한 일일지도 몰라.’

나는 얌전히 녀석의 변화를 지켜봤다.

금이 간 외피가 곧 깨지고 사이킥 파워가 집약된 녀석이 크게 부풀었다. 연구기지에 갇혀 있는 동안 3m로 줄어들었던 몸이 급속도로 자라나서 10m 정도로 커졌다.

사이킥 파워가 너무 강렬해서 보조기관으로도 녀석의 모습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얼추 봤을 때 죽은 씨 데몬의 모습과 유사했다.

‘과연. 이런 식이었구나.’

게임 속에서 씨 데몬과 버블아메바 간의 관계를 추정한 플레이어들은 많았다. 두 생물이 유전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말이다.

그중에는 버블아메바가 성장해서 씨 데몬이 된다고 생각한 플레이어도 존재했다. 해양 생물 중 최약의 존재가 자라서 최강의 생물이 된다는 설인데,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스페이스 서바이벌 세계에 있는 야생 npc 대부분은 새끼에서 자라 성체가 되는 메커니즘을 갖는다. 그렇다면 씨 데몬도 유체 단계가 존재할 터.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바다 행성을 빠짐없이 뒤졌지만 유체 씨 데몬을 발견한 자는 없었다. 그렇다 보니 외형적으로 유사하게 생긴 버블아메바가 씨 데몬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물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많은 플레이어들이 버블아메바를 애완동물로 길렀다. 버블아메바가 커져도 특별히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점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랬는데 말이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니 성장설이 아주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26호, 즉 씨 데몬의 새끼는 버블아메바랑 거의 똑같이 생겼다. 촉수와 지느러미를 몸 안에 숨길 수 있으니 보이지 않고, 크기 또한 작으니까.

연약한 유체 상태의 씨 데몬은 버블아메바 무리에 섞여 살면서 그들을 지킨다. 이 과정에서 무리를 위협하는 포식자들을 역으로 사냥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이겠지. 그러다가 씨 데몬의 힘을 계승할 일이 발생하면 그때 성체로 변이하는 것이리라.

‘이러니 다들 모를 수밖에.’

버블아메바는 애완동물이지 전투 보조 생물이 아니다. 누군가가 운 좋게 씨 데몬의 유체를 손에 넣어도 싸움을 시키지 않을 테니 성장시킬 수 없다.

하물며 저 강대한 해양 괴수인 씨 데몬과의 전투에 데려간다?

전투 능력이 전무한 버블아메바라면 100이면 100 죽을 거라고 생각할 거다. 자기 애완동물을 죽이는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데려가지 않는다.

버블아메바와 똑같이 생긴 씨 데몬 새끼를 구하고, 이를 죽은 씨 데몬의 시체 앞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니. 사실상 검증이 불가능한 방법이다.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 26호는 씨 데몬의 유산을 계속 빨아먹는 중이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흡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직 에너지가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속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녀석이 에너지 흡수를 멈췄다. 시체에 붙어 있던 10m 크기의 보라색 발광체가 천천히 떨어졌다.

씨 데몬 시체에 남아 있던 사이킥 파워는 점점 옅어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아깝네.’

순수한 사이킥 파워의 정수를 눈앞에서 놓치니까 살짝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부러졌다가 회복된 전투용 팔로 머리를 긁적였다.

에너지들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발광(發光)하던 26호. 녀석이 내뿜던 빛이 점점 작아졌다.

아니, 빛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몸 자체가 줄어드는 중이었다.

10m에서 5m, 그리고 1m. 한없이 작아질 것 같던 녀석은 50cm 정도의 크기에서 멈췄다.

‘응?’

정확히 내 머리 위에 올라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외형도 헤엄치기 위해 나온 지느러미를 제외하고 슬라임의 형태로 돌아왔다.

‘무늬가 생겼네.’

변화하기 전과 가장 달라진 부분을 꼽으라면 26호의 몸에 무늬가 생겼다는 점이었다. 짙은 분홍색 바탕의 외피에 연보라색의 나선형 물결이 부드럽게 요동치고 있었다.

여기는 해구(海溝) 중에서도 밑바닥이다 보니 빛이 들어오지 않지만, 만약 햇빛을 받으면 핑크 사파이어처럼 빛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변화를 끝마친 녀석이 지느러미를 흐느적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즈즈즈(끝났어?)]

「응!」

26호는 평소와 똑같이 활기차게 파장을 쏘며 대답했다.

「친구가 죽었으니까 이제 가족들을 지킬 새 친구가 생길 거야.」

[즈 즈즈(새 친구?)]

「응. 나는 다른 가족이 있어서 안 돼. 다른 친구한테 양보하려고 조금만 먹었어.」

녀석의 말을 들어 보니 좀 전에 흩어진 에너지는 물속에 섞여 다른 씨 데몬 유체에게 전해지는 것 같다.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다 먹지 그랬냐는 말이 괴물의 촉수 중간까지 올라왔지만 말할 필요는 없겠지.

씨 데몬과 녀석의 배려로 이 깊은 바닷속 어딘가에서 새로운 괴수가 태동할 것이다.

「친구가 할 일은 끝났으니까 큰애기가 먹어도 돼.」

[즈즈즈 즈(그래도 돼?)]

긍정의 뜻을 담아 몸을 빛내는 녀석.

이런 면을 보면 확실히 26호가 사람과 다르다. 사람이었다면 친구의 시체를 수습하려 할 테니까.

‘동족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과 시체는 별개인가.’

확실히 26호의 모습은 인간보다는 사회성을 지닌 고지능의 야생 동물에 가까웠다.

나는 녀석을 전투용 팔로 살살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쓰다듬어 줘서 기분이 좋은지 녀석이 몸을 반짝반짝 빛냈다.

녀석을 한 차례 쓰다듬고 씨 데몬의 시체를 바라봤다.

‘사냥의 표상을 쓸 수 있지만….’

‘악몽의 지평선’ 효과로 사냥의 표상의 지속시간이 20분으로 늘어났다. 50m에 육박하는 씨 데몬의 머리를 먹는데 충분한 시간이지만 문제가 있다.

‘위에 올라가서 페일 마스크도 먹어야 해.’

이 아래까지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은 거의 한 시간. 사냥의 표상 효과로 신체 능력이 극도로 향상된다고 해도 위까지 올라가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게다가 씨 데몬은 내가 죽인 게 아니지.’

놈은 우주선에 충돌한 뒤 생긴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그리고 죽은 지 시간이 꽤 지났다.

‘그냥 먹으면 특성을 얻을 가능성이 매우 낮아.’

물론 심해 특성상 매우 온도가 낮기 때문에 시체 자체는 거의 부패되지 않았지만, 일단 내가 죽인 것이 아니기에 포식이 뜰 확률이 극히 떨어진다.

설령 사냥의 표상을 쓰고 먹는다고 해도 내가 직접 죽이지 않은 생물은 유전자 샘플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리고 사냥의 표상 상태에서 샘플을 먹으면 특성을 온전히 획득하지 못하고 0.5짜리 특성으로만 받는다.

‘반면 페일 마스크는 아니지.’

녀석은 내가 동료들과 함께 사냥한 전리품. 표상을 쓴다면 지금껏 그랬듯 거의 100%에 가깝게 특성을 얻을 수 있다.

‘표상은 뒤로 미루자.’

잠시 고민한 나는 이대로 씨 데몬의 시체를 먹기로 했다.

사냥의 표상을 써도 크게 이득이 될 부분보다 손해가 더 크다. 여기서 씨 데몬을 먹어서 0.5짜리 특성을 얻는다고 쳐도, 물 위까지 제시간에 못 올라가서 페일 마스크를 놓친다면 그거야말로 낭패다.

‘사냥의 표상 쿨타임은 일주일이니까 시간을 두고 먹는 것도 불가능.’

우리가 있는 군도 지역은 아열대 기후에 가까운 곳이다. 일주일은커녕 이틀만 지나도 페일 마스크의 유전자 정수가 모조리 손상되어 버릴 거다.

‘아쉽지만 이건 영양 보충하는 셈으로 치자.’

나는 씨 데몬의 시체에 다가가 전투용 팔을 휘둘렀다. 물살을 가르고 내 예리한 발톱이 씨 데몬의 외피에 박혔다.

‘역시 단단하네.’

말랑해 보이는 외견과 달리 씨 데몬의 외피는 상당히 두껍고 튼튼하다. 내구도도 페일 마스크 이상이므로 이대로 깨물어 봐야 이빨이 박히지도 않는다. 턱이나 이빨 관련 특성을 얻기 전까지는 내 팔을 이용해 고기를 뜯어내 섭취해야 한다.

‘침식 촉수는 삼키는 것에는 좋지만 절삭력은 떨어지니까.’

지금은 원시적인 방법을 써야 할 때다. 나는 날카로운 손톱들을 마치 나이프처럼 사용해서 씨 데몬의 시체를 썰었다.

혹시나 26호가 거북스러워할까 싶었지만 녀석은 동족의 시체가 어떻게 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지느러미로 내 꼬리 끝에 있는 가시침을 툭툭 치면서 장난을 칠 뿐.

녀석에 대한 관심을 끊은 나는 씨 데몬의 살점을 뜯어냈다.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한참 전에 죽어서 이미 응고되었기 때문이다.

‘어디 한 번.’

나는 살점을 입에 집어넣었다.

‘음.’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력한 이 해양 괴수의 고기에서는 그 힘만큼이나 신기한 맛이 났다.

식감 자체는 보기에 해파리를 닮았으니 양장피나 해파리 냉채 같은 맛이 날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살점은 오히려 연어 회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기존 연어 회에서 살짝 기름진 맛이라고 할까. 게다가 라임 비슷한 향긋한 향도 났다.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이네.’

살짝 아쉬운 점이라면 기대했던 것보다 특색이 없다는 것.

갓 잡은 씨 데몬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톡 쏘는 라임 향이 인상적이라는 것 말고는 그냥저냥 맛 좋은 음식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다른 살점들을 뜯어내서 입에 넣었다.

‘음?’

그 부위를 먹는 순간, 나는 방금 몹시도 경솔하게 판단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긴 또 맛이 다르네?’

놀랍게도 씨 데몬은 부위별로 맛이 천차만별이었다. 지금 먹은 부위의 살점은 정확히 달팽이 스프 맛이 났다. 어린 시절 뷔페에 가서 먹어봤던 그 맛이었다.

공통된 점이라면 이 부위에서도 라임 향이 난다는 것.

‘이거 참 신기한데.’

나는 감탄하면서 씨 데몬의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외피에 비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맛이 한층 더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죽은 지 시간이 지나는 바람에 피가 응고되었고, 전반적으로 온도가 낮아서 그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게 놀라움의 연속이 이어진 끝에 나는 지느러미를 제외한 씨 데몬의 머리와 뇌 부분을 전부 먹어 치울 수 있었다.

‘쩝. 결국 안 떴네.’

정수수확자의 턱 효과로 나는 머리만 먹어도 몸 전체를 남김없이 먹는 것과 동일하게 포식 효과를 띄울 수 있다. 머리를 전부 먹었지만 포식 효과는 뜨지 않았다.

조건이 워낙 안 좋아서 안 뜰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전부 떨쳐 내기는 힘들었다.

[즈즈 즈즈(이제 가자)]

「더 안 먹어?」

[즈즈즈(괜찮아)]

몸의 일부와 지느러미는 먹지 않고 남겼다.

이미 내가 먹은 고기만 해도 내 몸 크기를 한참이나 뛰어넘는다. 이 이상의 영양분은 불필요하다.

그렇게 나와 26호는 씨 데몬의 잔해를 두고 다시 위로 출발했다.

떠나는 우리 뒤로 버블아메바들이 빛을 뿜으며 배웅해줬다. 26호는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내 곁에 붙어서 함께 헤엄쳤다.

「큰애기랑 같이 있으니까 좋아.」

[즈즈 즈즈(나도 그래)]

26호의 크기는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훨씬 크지만, 비율만 봤을 때는 녀석을 머리에 얹고 다닐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옛날 생각을 하면서 헤엄쳐서 그런 것일까.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데도 딱히 지루함은 느끼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수영한 끝에 우리는 다시 섬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올라오자마자 우리를 반긴 것은 몸의 5분의 1정도가 사라진 페일 마스크의 사체였다. 그 옆에는 엎드려서 털을 고르고 있는 하늘의 어머니가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네.」

나를 보고 눈인사를 건네는 하늘의 어머니.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즈으으으즈(아드하이는?)]

「방금 전까지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저기로 뛰어가더라.」

그녀가 고갯짓한 방향에 있는 커다란 바위. 그 뒤에 아드하이가 숨어 있는 것이 감지되었다.

턱 아래 보조기관을 통해 녀석의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거세게 뛰는 것을 보니 녀석은 현재 두려움에 빠져 있다.

‘갑자기 왜 저러지?’

딱히 위험 요소도 없는데 왜 저러는지 몰라 원인을 찾고 있는데 아드하이의 사념파가 내 촉수를 건드렸다.

「어른」「위험」「도망」「불가」「위험」「위험」「위험」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이곳에 위험한 것은 없어. 왜 그래?)]

「동족」「이곳」「찾아옴」「나」「어른」「죽음」「죽음」「죽음」

불안하게 흔들리는 사념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왜 아드하이가 무서워하는지 알아차렸다.

‘설마 26호 때문인가?’

26호는 보기에는 앙증맞아 보이지만 막대한 사이킥 파워를 흡수한 상태. 아직 완전한 성체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한 사이킥 생물, 화이트 갤러곤이랑 단신으로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녔다.

사이킥 파워에 매우 민감한 아드하이다. 26호를 화이트 갤러곤이나, 그 다음 단계인 블랙 갤러곤으로 착각해도 무리는 아닐 터.

나와 비슷하게 생각한 것인지 머리 위에 있던 26호가 아드하이를 불렀다.

「작은애기야! 나야.」

「작은어른?」

「나 많이 먹고 힘세졌어!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 말을 들은 아드하이가 바위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작은어른」「맞음?」

「응.」

이후 대화가 몇 분가량 더 이어진 끝에 아드하이는 안심하고 바위 뒤에서 나왔다.

「나」「기억」「작은어른」「큼」「지금」「작음」「이해 불가」

「이제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어. 신기하지?」

「나」「신기함」「신기함」

「자 봐봐. 이렇게 하면 쭉 커진다?」

「나」「놀람!」

둘이서 사념파와 파장으로 재잘거리는 와중에 하늘의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머리는 남겼어.」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다른 부위가 많이 남았는데)]

「…저놈 크기가 얼마인데. 며칠간 먹어야 할걸.」

[즈즈즈(그런가)]

「그나저나 변신이 가능하다고? 그럼 씨 데몬 성체가 됐다는 뜻이야?」

[즈즈즈즈 즈즈즈 즈(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

「…하. 정말 괴물이 다 됐군.」

하늘의 어머니가 감탄인지 경악인지 모를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괴물이라니.’

그녀는 뭘 모른다. 지금부터 더한 괴물을 볼 텐데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즈즈즈 즈 즈즈즈(이제는 더 놀라겠군)]

「뭐?」

나는 대답 대신 사냥의 표상 특성을 활성화했다.

「어…어어?」

엎드려서 나를 바라보던 하늘의 어머니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준성체가 된 이후 처음 쓴 사냥의 표상.

이름 그대로 사냥과 포식에 최적화된 형태로 내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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