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38화 (139/400)

Ep.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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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토피아02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생물이 무엇인가.

컬트의 고명한 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늪지대의 왕 ‘겔 아르마’, 인간들의 언어로는 스웜프킹이라 불리는 존재다.

선천적으로 사이킥 파워에 대한 강력한 내성, 덩치에 비해 날렵한 움직임, 단단한 갑각과 높은 지능, 그리고 방호구를 무력화시키는 능력까지. 컬트들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조건들은 죄다 지니고 있다.

본인의 능력만 강하냐고 한다면 그렇지도 않다. 스웜프킹이 서식하는 늪지대는 이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 방호복도 뚫고 들어오는 늪지대의 독기를 버티면서 저 강력한 괴물과 싸워야 한다.

방문자가 제정신이라면 절대로 늪지대에 발을 디디지 않을 터.

다행히도 스웜프킹은 영역 의식이 극도로 강한 생물이다. 자기 영역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랬는데.

지금 수수께끼의 방문자로 인해 그 상식이 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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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대 안쪽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스웜프킹은 문득 어떤 소리를 들었다.

처음 들은 소리지만 그 특유의 음률은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었다. 그가 어렸을 때 운 좋게 잡아먹었던 맛 좋은 먹이가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놈은 초롱불을 닮은 4개의 눈을 수면 위에 들어서 주변을 확인했다.

“■■줘. 누가 ■ ■■■….”

다시 들린 그 소리를 듣고 놈은 확신했다.

맛있는 먹이가 그의 영토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평소라면 늪지대에 숨어서 다가오는 적을 기습해 잡아먹었겠지만 이번은 아니다.

지능이 높은 스웜프킹은 기억한다. 저 먹이들은 홀로 다니는 경우가 없다. 이번에도 떼거리로 모여 다닐 것이 틀림없다.

다른 경쟁자들이 채가기 전에 그가 먼저 가서 몽땅 먹어 치워야 한다.

오랜만에 먹이 사냥을 나서야겠다고 판단한 놈은 거대한 육체를 일으켰다.

놈은 몸 앞쪽에 달린 집게발을 딱딱 거리며 먹이의 울음소리를 따라 이동했다. 10개의 긴 다리가 주인의 의지에 따라 늪 바닥을 밟으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누구 없어!”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한층 뚜렷했다. 4개의 눈이 일제히 소리가 흘러나온 방향을 향했다.

“제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소리는 썩은 고목들이 잔뜩 있는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곳은 늪의 수위가 낮아 몸이 무거운 스웜프킹이 자주 가지 않던 곳이었다.

「기이이이이」

놈은 잠시 고민했다. 과연 저 먹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먹으러갈 만큼 가치가 있는지 말이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놈의 다리가 움직였다. 그가 기억하는 그 먹이, 4개의 부속지를 가진 놈들은 육질이 부드럽고 영양도 풍부했다.

게다가 한 번에 수십 마리씩 몰려다니는 습성을 지녔다. 한번 포식하면 한 달 정도는 마음 놓고 잠만 자도 좋을 정도로 고열량의 먹이인데 놓칠 수는 없었다.

10m가 넘는 길이의 다리들이 움직일 때마다 고목이 박살 났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가던 그의 앞에 탁 트인 늪지가 나타났다.

“누가 날 좀 죽여 줘!”

그곳에 울음소리를 낸 장본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의 형태는 스웜프킹이 기억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원래라면 먹이의 머리 아래에 몸통과 4개의 부속지가 달려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먹이는 몸통은 어디 가고 웬 검보라색 고목에 박혀 있었다.

「기이?」

아니, 고목이라고 생각했지만 틀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고목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늪의 진흙에 반쯤 파묻혀 있던 나무 위에 날카로운 이빨과 새하얀 두 눈이 보인다.

게다가 그 고목 옆에 낯이 익은 물체들이 보였다.

“히익! 또 왔어! 또 왔다고!”

그것은 스웜프킹의 시체들이었다. 머리와 내장이 파인 동족의 시체 3구가 고목 옆에 쌓여 있었다.

그제야 스웜프킹은 자기가 정체불명의 적에게 유인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고목을 닮은 「그것」이 입을 열었다.

“이·걸·로·넷.”

스웜프킹은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저 소리가 그에게 결코 좋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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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네 번째인가.’

스웜프킹은 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머리가 매우 좋은 동물이다. 설정상 놈들은 한번 기억한 먹이의 냄새, 움직임, 소리 등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마 이 행성에 찾아온 컬트를 잡아먹은 기억도 있을 터. 필시 놈이라면 컬트의 맛이 매우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다.

나는 그들의 높은 지능을 역이용해서 실험해 보기로 했다. 이틀 전 획득한 ‘인면수(人面獸)’ 특성으로 말이다.

그리고 내 실험은 성공했다.

“왔잖아!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이제 날 죽여 줘!”

내 등에 붙어 있는 얼굴이 아우성을 친다.

그 얼굴은 내가 연구기지에서 마지막으로 잡아먹었던 MCAE 조종사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좀 더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라는 점을 빼고 말이다.

원본, 페일 마스크가 지닌 기생 생물 특성과 에이모프에게 적용된 인면수 특성은 효과가 완전히 다르다. 에이모프의 몸에 생긴 인면수는 최면파도, 충격파도 쓸 수 없다.

‘대신 두 가지 효과가 있지.’

하나는 지금처럼 내가 잡아먹었던 고등 지성체, 인간이나 컬트 같은 존재의 습관과 기억 등을 일부 복사하는 것.

포식 효과가 뜨지 않더라도 대상의 유전자 정수는 내 몸 안에 저장된다. 그리고 내가 습득한 유전자를 이용해 인면수로 만드는 것이다.

의태기관과 비슷하게 마지막으로 먹은 자의 정보만 인면수를 만들 수 있는데 차이점도 있다.

의태기관이 페로몬으로 대상의 죽기 전 상태를 그대로 구현하는 능력이라면, 인면수는 대상의 유전자에 담긴 기억 자체를 복사한다.

간단히 말해 머리만 남은 복제인간이라 보면 편하다.

그렇기에 지금 내 등에 달린 얼굴이 자아를 가진 것처럼 시끄럽게 떠들 수 있던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에 대한 통제권은 내가 지니고 있기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조용히 시킬 수 있다.

‘기생 군체와 같이 섞어서 쓰면 첩보전에 꽤 도움이 되지.’

인면수 특성은 정보가 필요할 때 제법 잘 써먹을 수 있다. 유전자를 습득할 때 기억들 중 상당 부분이 손실되긴 하지만, 최근에 기억한 것들은 대부분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특성 덕분에 나는 대륙으로 돌아오기 전에 연구기지, 즉 우주선의 출발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내 쿨타임만 끝나면 언제든지 우주선을 타고 이 행성을 떠날 수 있다.

아무튼 정보 습득 기능과 더불어 인면수에는 전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효과가 있다.

‘적을 마비시키는 음파 공격.’

페일 마스크의 최면파가 적의 기술 일부를 봉인하는 류의 매즈기라고 한다면 내가 가진 인면수의 효과는 매우 직관적이다.

바로 음파를 통해 적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것. 마비 시간은 몇 초부터 몇 분 사이. 아무리 길어도 최대 5분을 넘기지는 않는다.

생각보다 짧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강적과의 싸움에서 적을 몇 분가량 아무 행동도 못하게 막는 기술이니까. 사이킥 파워 기술인 ‘속박’과 비슷한 효과 같지만, 인면수의 마비음파 공격은 상대의 초능력 저항력을 완전히 무시한다.

‘귀가 없는 적한테는 통하지 않지만.’

그런 적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내 앞에 서 있는 게를 닮은 괴수, 스웜프킹은 청각이 아주 좋다.

「기이이?」

놈에게 달린 4개의 눈이 방황한다. 아마 놈은 혼란스러울 거다. 수면 위에 떠 있는 덩치는 자기에 비해 훨씬 작은데, 옆에 있는 동족의 시체는 3구나 되니까.

‘도망칠지 덤빌지 고민될 걸.’

놈과 달리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여태 3마리가 그랬듯이 놈도 동일한 선택지를 취할 테니까.

나는 놈이 덤벼들 것이라 확신하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기이이이이」

그리고 놈이 택한 것은 공격과 후퇴에 중간에 있는 선택지였다. 바로 시체메기를 불러서 먼저 공격하게 하는 것.

놈의 배갑(背甲) 아래쪽에서 하얀색 장어들이 튀어나와 늪지대 위로 퐁당퐁당 떨어졌다.

‘영리하네.’

지금까지 싸운 3마리는 전부 그대로 덤벼들거나 등을 돌려 도망쳤는데 놈은 그나마 머리가 좋은 개체인 것 같다.

‘스웜프킹이 생성한 시체메기는 방어력을 무시하는 공격을 하지.’

준성체가 되었기에 내 갑각의 방어력은 이전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높아졌지만 시체메기의 소화액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나는 늪지 위에 튀어나와 있는 등에서 침식 촉수를 뽑아 대응했다. 길쭉한 촉수들이 수면을 후려칠 때마다 시체메기들이 육편으로 화했다.

「기, 기이이이」

놈은 내가 다른 공격 수단을 꺼내지 않는 걸 보고 할 만하다 생각한 것 같다. 내 상체보다 훨씬 큰 놈이 내게 빠르게 다가온다.

몸 앞쪽에 달린 두 개의 집개발이 위협적으로 딱딱 거린다. 저 집개발로 내 머리를 뜯어버릴 생각이겠지.

하지만 놈이 원하는 대로 될 일은 없다.

‘이쯤이면 되려나.’

놈이 적당한 거리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나는 진정한 공격을 개시했다.

“싫어…끼기이이.”

나의 통제를 받는 인면수가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입을 쩍 벌렸다. 입안쪽에서 소용돌이 모양의 제2의 입이 튀어나왔다.

흉측한 외형의 제2의 입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음파가 발사되었다.

「기이?!」

달려오던 자세 그대로 멈춘 스웜프킹. 놈은 집개발을 벌린 상태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놈을 마비시킨 나는 이어서 두 번째 공격을 날렸다.

늪 아래에 묻혀 있던 내 하반신과 꼬리가 크게 꿈틀거렸다. 지하에 숨겨져 있던 내 몸이 스웜프킹 서 있는 땅을 산산이 조각내면서 위로 튀어나왔다.

「기이이이?」

무게만으로 따지면 페일 마스크만큼이나 무거운 스웜프킹이 내 꼬리에 맞고 공중에 잠시 떴다. 놈은 뒤쪽에 있는 다리로 뒤집어질 뻔했던 몸을 간신히 지탱했다.

그러나 자세가 무너진 것은 이미 기정사실. 내 꼬리와 하반신이 놈을 빠르게 휘감았다.

스웜프킹의 덩치도 제법 거대하지만 내 몸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사냥의 표상을 쓰지 않아도 몸길이가 20m를 훌쩍 넘을 정도니까.

꼬리로 놈의 배갑을 한차례 휘감은 나는 허리 부분의 근육을 이용해 놈의 위에 상체를 올렸다. 그리고 침식 촉수와 전투용 팔로 놈의 10개의 다리를 전부 붙잡았다.

「기이이이!」

스웜프킹의 다리 갑각은 매우 단단하다. 준성체가 되어도 놈의 다리 갑각을 부수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현재는 사냥의 표상을 써서 몸을 강화시킨 뒤 때려 부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나 꼭 다리를 부술 필요는 없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만 하면 되니까.

촉수와 팔로 놈의 다리를 단단히 붙잡은 것을 확인한 나는 꼬리로 놈의 배갑을 조이기 시작했다.

「기이이이이」

스웜프킹의 갑각 중 물리적인 방어력이 가장 떨어지는 부위는 배갑이다.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놈이 빽 소리를 지르며 집게발로 내 등과 꼬리를 후려쳤다.

‘소용없어.’

이전이었다면 지금 공격으로 상당한 부상을 입었겠지. 실제로 아성체 시절 사냥의 표상을 써서 놈한테 덤볐을 때는 집게발 때문에 등의 팔이 부러질 뻔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준성체. 이 정도 공격으로는 내게 유효한 피해를 줄 수 없다.

‘그렇다고 안 아픈 건 아니지만.’

참고 버틸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나는 놈의 저항을 무시한 채 놈의 배갑을 휘감은 꼬리에 힘을 줬다.

「기, 기이이이! 기, 기긱끽」

호두 껍질이 깨지는 소리 비슷한 파열음이 놈의 배갑에서 흘러나온다. 공황에 빠진 스웜프킹이 비명을 지른다. 평생 살면서 자기보다 큰 존재에게 압사를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놈이 북을 치는 것처럼 집게발로 나를 마구 후려쳤지만 조여드는 죽음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몇 분 후 배갑이 완전히 으깨지고 놈은 내장을 흩뿌리며 죽었다.

늪지대의 왕이라는 이명 치고는 참으로 초라한 죽음이었다. 놈이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나는 몸을 풀었다.

‘이번에는 뜨면 좋겠네.’

이걸로 네 번째 스웜프킹 사냥이다.

나는 둥지 관련 융합 특성의 재료를 얻기 위해 이곳에 왔다.

다른 녀석들은 내가 숲속에 마련한 둥지에 있다.

나 혼자 사냥하는 이유는 늪지대의 독을 견뎌낼 수 있는 생물이 26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드하이나 하늘의 어머니도 독에 대한 내성이 있지만, 늪지대를 통과할 정도로 높지는 않다.

26호는 늪지를 헤엄쳐도 될 정도로 내성이 높지만 녀석은 스웜프킹과 싸우는 데 적합하지 않다. 녀석이 성체 씨 데몬에 가까울 정도로 강해지긴 했지만 스웜프킹의 초능력 내성을 깰 정도는 아니다.

결국 일행 중 같이 올 녀석이 없으니 나 혼자 사냥할 수밖에.

‘제발 이번에는 좀.’

이미 식구에게 줄 시체들은 하나씩 챙겨 놨다. 이 녀석한테서 포식 효과가 뜬다면, 그것도 내게 필요한 특성이 뜬다면 오늘 사냥은 종료다.

나는 스웜프킹의 배갑을 뜯어내고 안쪽에 머리를 처박았다.

‘맛은 있는데….’

킹크랩을 연상시키는 풍미의 고기를 씹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벌써 똑같은 음식만 네 번째다. 하루 세 끼 똑같은 음식만 먹는다면 아무리 맛 좋은 요리라고 해도 질리는 법이다.

그렇게 반쯤 억지로 먹어치운 끝에 내가 바라던 텍스트박스가 떠올랐다.

「포식 효과 발동! 집게발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스웜프킹’의 특성 중 ‘집게발’을 탈취.」

「‘집게발’을 적용시키겠습니까?」

‘아.’

집게발도 전투에 매우 유용한 특성이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특성을 적용했다.

집게발 특성이 반영되면서 상반신 맨 아래쪽에 달린 팔 두 개의 형태가 변했다. 스웜프킹의 집게처럼 크고 단단하지만, 크기는 작은 집게손으로 말이다.

이 집게발은 스웜프킹이 가진 초능력 내성 효과도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 그렇기에 내가 지닌 ‘초능력 반사 장갑’ 특성과 중복되어 적용된다. 아마 이 집게손이 내 몸에서 가장 초능력 내성이 높은 부위일 거다.

‘대(對)초능력 집게발이라.’

나는 입맛을 다시며 새로 생긴 집게손을 딱딱 부딪쳤다. 네 번째에 포식 효과가 뜬 것은 희소식이긴 하나 절반의 성공이었다.

게임과 다르게 이곳에 스웜프킹은 무한정 생성되지 않으니까.

‘이 이상 스웜프킹이 몇 마리나 더 있으려나.’

많아봐야 두 마리 정도일 터. 남은 녀석들을 잡아도 뜨지 않는다면, 아예 다른 생물들을 잡아먹어서 융합 특성을 얻는 방법도 고려해 봐야겠다.

초월 2단계 재료로 쓰기 위해 둥지 관련 융합 특성을 찾는 것이니 꼭 좋은 특성을 만들 필요는 없다.

계획을 수정한 나는 늪지대 안쪽으로 들어갔다. 침식 촉수로 지금까지 확보한 스웜프킹의 시체를 붙잡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 정확히 14시간 후.

나는 간신히 둥지 관련 융합 특성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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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의 행성 정화병기이자 양산형 모함(母艦) 중 하나인 ‘다모스08의 심판자’.

평소라면 우주 공간만큼이나 정적에 휩싸일 선내가 지금은 바삐 돌아다니는 선원들로 인해 몹시도 분주해졌다.

“이틀 후 출발할 테니까 모두 준비하라!”

“사이킥 엔진 조율은 어떻게 됐지?”

“이틀 후 운행할 수 있도록 조율 완료했습니다.”

“모의 훈련을 마친 함재기 조종사들은 정비 작업을 잊지 않도록!”

“의회에서 보낸 함대가 정화 이행에 참여하겠다고 합니다!”

“일단 합류를 허가하고 선장들은 모함 집무실로 오라고 하라. 할 말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함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복잡스러운 상황실을 주시했다.

모든 선원들이 각자의 일에 집중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다들 하나 같이 얼굴에 활력이 넘친다는 것.

함장은 재능 넘치는 인재들이 이런 변방에 처박혀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다. 하물며 그들이 전쟁 영웅인 자신을 자발적으로 따라온 것이었기에 더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쯧. 이번 사이길08 정화 작업이 끝나면 본성에 가 봐야겠어.’

그는 의회의 암투에 염증을 느껴 이곳에 있는 것이지만, 부하들은 아니다. 제국의 인재들을 이런 곳에서 썩히는 것이야말로 제국에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섭리파의 제사장이 똑똑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던데 그를 찾아가야 하나?’

함장이 기억하기로 제사장이 나타나기 전까지 섭리파는 역사만 깊지 별 볼 일 없는 파벌이었다. 섭리파가 주장하는 패권주의는 우주의 신흥 강자인 메가콥이나 스타유니언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상이었기에 지지를 받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성체들과의 교류와 계몽을 강조하는 혁신파의 세가 훨씬 강했다.

그랬던 것이 한 컬트 왕족의 등장으로 전부 바뀌었다. 그는 섭리파를 단번에 의회 최고의 파벌로 만들어 놨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치질만 잘하는 컬트라 생각할 수 있지만 놀랍게도 그는 군사적 재능도 뛰어났다.

아웃스페이서의 침략을 훌륭히 방어해낸 덕분에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제사장에 임명할 정도였으니까.

함장 또한 제국모함을 이끈 경력이 짧지 않았기에 젊은 제사장이 얼마나 유능한지 모르지 않았다.

‘여자관계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지만.’

여성 노예를 성적으로 학대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함장은 믿지 않았다. 성공한 자에게는 응당 시기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니.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작업 시작 전에 내려가서 노예라도 찾아볼까.’

며칠 전 함장은 사이길08에 대한 정보를 조사했다. 그 행성의 어느 대륙에는 원시적인 문명 수준을 유지하는 볼프들이 살고 있다.

만약 제사장과 관련된 소문이 사실이라면 암컷 볼프는 그에게 환심을 사는데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어차피 정화 작업이 개시된다면 전부 죽는다.’

오히려 노예가 되는 것이 그들에게는 구원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일궈낸 문명은 멸절하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보좌관에게 말해 둬야겠군.’

함장은 지원함대의 선장들이 방문하기 전까지 어떻게 하면 제사장의 호감을 살 수 있을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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