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39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걸로 조건은 다 채웠어.’
스웜프킹 두 마리를 추가로 더 잡았지만 원하는 특성은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늪지대를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사냥해서 둥지 관련 융합 특성의 재료를 모아야 했다.
‘덕분에 14시간이나 걸렸고.’
그래도 집게발 같은 좋은 특성을 얻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겠다.
「큰애기야, 정말 우리만 먹어도 돼?」
[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난 많이 먹었으니까 괜찮아)]
조심스럽게 묻는 26호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초월 2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준비를 다 끝마친 나는 둥지로 돌아왔다. 스웜프킹의 시체 3마리를 들고선 말이다.
‘이 맛좋은 음식을 혼자만 먹으면 아까우니까.’
녀석들과 떨어져 있을 때도 이 스웜프킹 고기만큼은 반드시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스웜프킹이라. 오랜만에 먹어보네.」
「나」「궁금함」「이거」「맛있음?」
「내 취향에는 맞았어.」
의외로 하늘의 어머니는 스웜프킹을 포식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알기로 그녀의 단계에서는 늪지대의 독기를 방어할 방법이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뭔가 사연이 있나 보네.’
씁쓸한 눈으로 시체를 바라보는 그리폰.
그녀의 모습을 보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얼추 짐작이 간다. 추측컨대 그녀의 남편, 대지의 아버지가 사냥한 먹이를 함께 먹었겠지.
‘안타깝지만….’
그녀는 이걸 먹어야 한다. 스웜프킹의 육신은 볼프의 신격화 단계를 높이는데 필요하니까.
현재 하늘의 어머니는 나에게 협력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사이는 계약 관계다. 그녀는 복수를 대가로 내게 모든 걸 바치기로 약조했다.
그리고 나는 신격화가 최고 단계에 이른 볼프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성체 이후에 보험으로 써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딱딱한 갑각 속에 든 살점을 한 움큼 뽑아서 그녀에게 건넸다.
하늘의 어머니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 내가 건넨 고기를 입으로 물었다.
‘다행이네.’
이전에 나는 그녀를 치료할 때 머리에 기생충을 심어 놨다. 뮤리엘를 죽인 후, 나는 하늘의 어머니의 배신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생충의 간섭 단계를 최하로 낮춰놔서 그녀가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머리에 기생충이 있는 것은 사실. 언제든지 명령만 하면 그녀는 내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렇게 하면 그녀와의 관계는 완전히 최악으로 치닫게 되겠지. 그녀는 제법 유능한 전투원이기에 활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낭비다.
내가 성체가 되기 전까지, 아니 하다못해 아드하이가 화이트 갤러곤으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그녀의 협조가 필요하다.
「맛있음?」
「뭐 그럭저럭. 묻지만 말고 너도 먹어봐.」
「긍정」
그녀는 내 뜻을 이해한 것인지 잠자코 고기를 씹어서 삼켰다.
사별한 가족들을 떠올리는 걸까. 호박색 눈동자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차 있었다.
그래도 그 안에 나에 대한 원망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의 어머니를 시작으로 아드하이와 26호도 각자 시체를 하나씩 붙잡고 먹기 시작했다.
「맛있음!」
「응!」
입의 촉수를 빨대처럼 활용해 피를 쪽쪽 빨아먹는 아드하이, 촉수와 지느러미로 살점을 뜯어내 몸 안에 집어넣는 26호. 둘 다 맹렬한 기색으로 먹는 것을 보니 스웜프킹의 고기가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입맛에 맞는다니 잘됐네.’
식사를 막 시작한 그들에게 나는 중요한 사실을 말했다.
지금부터 초월 2단계로 진입할 예정이라고. 그러니까 나를 지켜달라고 말이다.
‘초월 2단계도 고치 안에 들어갈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초월 시스템으로 얻은 유일 특성인 ‘완전한 유기체’, ‘악몽의 지평선’을 적용할 때만 해도 거의 성장할 때랑 비슷하게 시간이 오래 걸렸다. 초월 2단계도 그에 비슷할 정도로 오래 걸릴 가능성이 높다.
「큰애기 또 크는 거야?」
「나」「부러움」「어른」「성장」「빠름」
[즈으으으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아드하이도 많이 먹으면 빨리 클 거야)]
「긍정」「나」「많이」「먹음」「먹음」
이미 내가 초월 시스템을 사용할 때 어떻게 되는지 아는 26호와 아드하이는 따로 질문하지 않았다.
「벌써 진화한다고? 성체 조건은 아직 다 못 채웠을 텐데.」
반면 하늘의 어머니는 내가 초월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는 얘기해주지 않았나.’
초월 시스템은 게임에 존재하지 않던 것. 랭커에 든 그녀라고 해도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초월 시스템에 간단히 설명했다.
여러 특성을 합쳐서 하나의 특성을 만드는 신규 능력이라고 말이다.
내 설명을 들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하긴 에이모프나 아웃스페이서는 나중에 특성 수가 너무 많아서 골치 아프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어.」
[즈즈(그래)]
「어쩌면 그게 네 특전일지도 모르겠네.」
[즈즈즈즈(그럴지도)]
이 세계로 건너온 플레이어들은 모두 특전이라는 것을 하나씩 받았다. 뮤리엘이 보유한 특전은 내가 강탈한 상태고. 하늘의 어머니 또한 특전을 지니고 있고, 나는 그녀가 지닌 특전이 뭔지 들어서 알고 있다.
‘볼프에게는 꽤 유용한 특전이겠지만.’
불행히도 그녀가 지닌 특전은 나와 상성이 좋지 않다. 따지고 보면 에이모프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까.
물론 뮤리엘의 경우처럼 내가 먹으면 나에 맞춰서 변할 가능성도 있다. 솔직히 내가 먹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만, 앞서 말했듯이 당장은 그녀를 살려 두는 것이 더 이득이다.
여하튼 그녀는 초월 시스템을 에이모프 고유의 특전으로 이해한 것 같다. 그 부분은 나도 반쯤 확신하고 있다.
‘애초에 그거 말고는 시스템상 받은 게 없으니.’
그나마 ‘포식자 감각’과 ‘괴물의 촉수’ 정도가 특전에 준할 성능을 지녔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아닐 가능성이 높아.’
파격적인 성능과 별개로 일단 포식 효과로 얻은 특성이다 보니 특전으로 보기에는 모호하다. 뮤리엘이나 하늘의 어머니가 말하기로 특전과 관련한 사항은 메시지 형태로 날아왔다고 했으니.
[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이 시스템을 쓸 때는 고치에 들어간다)]
「진화 때처럼 말이지? 그렇다면 약점도 비슷하겠네.」
[즈(그래)]
「…왜 씨 데몬과 갤러곤을 데리고 다니나 했건만.」
살짝 쓴웃음을 짓는 그리폰. 그녀도 랭커였기에 에이모프가 언제 가장 큰 위기에 처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정직하게 말해 그럴 의도가 아예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26호를 처음 구한 것은 호의가 맞지만, 녀석이 씨 데몬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 녀석을 키워서 나의 생존을 위해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드하이의 경우는 명백히 이득이 될 것으로 판단해서 챙겼고.
‘이제는 아니지만.’
녀석들과 함께 사선을 넘나들면서 깊은 정이 생겼다. 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녀석들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 부끄럽기도 하고, 그녀도 내가 어떤 생각인지 눈치챈 것 같으니까.
그 후 녀석들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은 나는 둥지 가운데에 파둔 땅굴 속으로 들어갔다.
섬에서 대륙으로 돌아온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둥지로 적합한 땅을 찾고, 그 아래에 땅을 파서 거대한 공동을 만들었다. 내가 들어가도 넉넉할 만큼 파내느라 주변에 흙으로 된 야산이 새로 생길 지경이었다.
다 파낸 뒤에는 둥지를 깔아서 무너지지 않도록 대비했다. 단단하게 굳은 점액질 덕분에 어지간히 심한 충격이 아니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초월 2단계를 대비하기 위해 만든 둥지.
나는 그 위에 누워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활성화했다.
「‘초월(2단계)’: 5개의 융합 특성을 합쳐서 신규 타입 관련 특성을 해금합니다. 재료로 사용되는 특성은 전부 다른 타입과 관련된 특성이어야 합니다. 신규 타입에 관한 정보가 해금됩니다.
사용 가능한 특성 목록: 흡혈 촉수(융합), 유령 발톱(융합), 부패 곰팡이 기관(융합), 보호색(융합), 변종 촉진 바이러스(융합)
추가 보상: 초월 1단계에서 발생한 금제가 해제됩니다.
*추신: 돌파를 위해 사용할 재료 특성은 다른 특성으로 교체할 수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좋아.’
설명에서 보이듯 초월 2단계 재료로는 각기 다른 타입과 관련한 융합 특성들이 필요하다. 재료로 소모될 특성은 내가 지닌 것들 중 원하는 걸로 골라서 넣을 수 있다.
‘육체 관련 특성에서는 흡혈 촉수를 쓰고.’
악몽의 지평선을 얻은 이후 흡혈 촉수를 사용하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중거리 견제용 무기로는 침식 촉수가 훨씬 길고 튼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재료로 쓰기 딱 적당하다.
‘유령 발톱은 아깝긴 한데 경쟁자가 너무 쟁쟁해서 어쩔 수 없네.’
유령 발톱의 경쟁자는 포식자 감각, 괴물의 촉수, 공포의 주시자, 초능력 반사 장갑이다. 전부 전투에 큰 공을 세운 유용한 특성들이라 안타깝게도 유령 발톱을 재료로 써야 할 것 같다.
마찬가지로 감염 관련 특성들도 모두 유용한 특성들이었지만, 그나마 제일 범용성이 떨어지는 특성인 부패 곰팡이 기관을 골랐다.
‘부패 곰팡이는 생물형 적에게만 유효하니까.’
특수방어 관련 특성인 ‘보호색’은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재료로 쓰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재료인 ‘변종 촉진 바이러스’.
변종 촉진 바이러스는 이름에서 보이듯 특정 생물에게 강제로 돌연변이화를 촉진시키는 효과를 지녔다.
이 융합 특성이 발동된 둥지에 오래 머물고 있으면 보유한 특성 중 하나가 영구적으로 바뀐다.
‘까놓고 말해 특성용 랜덤박스지.’
얼핏 듣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 이 특성은 왜소화만큼이나 부정적인 효과를 지닌 특성이다.
왜냐하면 변동되는 특성이 완전 무작위인데다가, 특성 사용자인 나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재수가 없으면 포식자 감각이나 괴물의 촉수가 사라지고 강인한 생명력이나 왜소화 따위로 바뀔 수 있는 거다.
‘변이 대상을 지정할 수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가 원하는 특성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전에는 그 사실을 몰라서 아예 캐릭터를 새로 키워야한 적도 있다.
이런 탓에 게임에서 나는 나보다 강한 플레이어, 특히 아웃스페이서 랭커와 싸울 때만 변종 촉진 바이러스를 사용했다. 상대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특성이나 유용한 특성 중 하나를 아예 봉인시킬 수 있으니까.
대신 이 특성을 맞은 플레이어와는 완전히 원수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하지만.
‘빨리 재료로 써서 치워 버려야겠다.’
특성 점검을 마친 나는 마지막으로 재료들을 한 번 더 살펴봤다.
「초월(2단계)를 해금하시겠습니까?」
‘해금 확인.’
해금을 묻는 텍스트박스의 질문에 답한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
모프박이가 진화에 들어간 지 2시간이 지났다. 최대한 빠른 시간 영양을 섭취해야 하는 에이모프와 달리 이 자리에는 그 정도로 급한 생물이 없었다.
그래서 셋은 긴 시간 동안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중간애기야, 더 안 먹어?」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으니 괜찮아.」
「?」
「배부르다는 뜻이야.」
「못생긴 친구」「덜 먹음」「성장」「늦어짐」「문제」「못생김」「심화」[안타까움」
「…….」
하늘의 어머니는 아까부터 자꾸 깐족거리는 도마뱀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다는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다. 앞에 있는 26호 때문이었다.
해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앞에 있는 저 작은 씨 데몬은 어마어마하게 강력해져서 돌아왔다. 그녀가 녀석과 1대1로 싸우면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얌전히 있는데 26호가 촉수를 뽑아 아드하이의 머리를 때렸다.
「중간애기 놀리지 마.」
「나」「사실」「말함」「못생김」「진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아드하이가 대들자 26호가 다시 촉수를 휘둘렀다.
이번 목표는 아드하이가 아니라 근처에 있는 레드우드였다. 지름만 수m가 넘는 나무가 촉수에 맞자 두부가 잘리듯 쉽게 쪼개졌다.
수백 년 넘게 산 거목이 저 작은 촉수에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본 하늘의 어머니와 아드하이가 경악하는데 26호가 한마디 했다.
「시끄러워.」
「인정」「나」「잘못함」「침묵」
「…….」
26호의 무시무시한 힘에 아드하이는 바로 얌전해졌다.
하늘의 어머니는 속으로 26호의 위험도를 다시금 상향 조절했다. 상당한 출혈이 아니라 치명적인 부상을 감수해야 할 상대라고.
‘씨 데몬치고는 얌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씨 데몬은 높은 지능을 지녔음에도 준보스급 생물로 취급받는 이유는 그 난폭함에 있다. 놈들은 자기 영역에 들어온 생물을 모조리 죽일 때까지 절대로 멈추는 일이 없다. 놈에게 찍히면 바다에 들어갈 때마다 씨 데몬의 습격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26호는 일반 씨 데몬에 비하면 천사나 다름없을 정도로 성격이 좋지만 마냥 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서열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한 듯 보였다.
하늘의 어머니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26호가 그녀를 불렀다.
「중간애기야. 물어볼게 있어.」
「응?」
「중간애기는 엄마가 된 적 있어?」
씨 데몬의 질문에 맹금류의 머리를 지닌 그리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이름은 지금은 떠나보낸 남편의 이름에 맞추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이 대륙의 볼프들은 대지의 아버지와 하늘의 어머니, 합쳐서 둘을 만물의 부모라고 불렀다.
‘근데 이걸 뭐라 대답해야 하지?’
둘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으나, 그녀는 아직 출산의 경험이 없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자식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의 어머니는 원주민 볼프들을 친자식처럼 키웠다. 그들이 그녀를 어머니라 부른 것도, 그녀가 그들을 자식이라 부른 것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래. 엄마의 역할을 한 적이 있다.」
「와! 중간애기 대단해!」
그녀의 말에 26호가 몸을 반짝반짝 빛냈다. 순수한 녀석의 반응에 그녀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26호의 질문이 그녀를 지금보다도 훨씬 어색하게 만들었다.
「나 궁금한 게 있어!」
「뭐지?」
「애기는 어떻게 만들어?」
「뭐?」
순간 하늘의 어머니는 앞에 있는 분홍색 슬라임이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농담이라 보기에 26호의 반응은 매우 진지해 보였지만.
워낙 당혹스러운 상황이라 입을 다물고 있는데, 아드하이도 끼어들었다.
「나」「궁금함」「나」「큰어른」「알」「원함」
아드하이는 사념파로 대화하다 보니 녀석이 무슨 생각하는지까지 직접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가 느끼기에 아드하이의 발언은 순도 100% 진심이었다.
옆에 있던 26호는 아드하이가 끼어들자 몸을 어둡게 빛냈다.
「작은애기가 알이 필요하데. 그래서 내가 물어보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기분이 안 좋아 보였지만, 하늘의 어머니는 씨 데몬의 감정 표현 방법까지 상세히 알 정도로 박식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그녀는 이 두 작은 괴물들의 질문에 당황해서 26호의 기분까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지금 나보고 씨 데몬과 갤러곤에게 성교육을 하라고?’
그녀가 알기로 씨 데몬, 갤러곤은 게임 속에서 생식 방법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생물들이다. 하물며 씨 데몬에게 유체가 있다는 사실도 26호를 보고 처음 알았다.
‘아드하이는 암컷 같기는 한데…가 아니라. 그건 둘째치고 씨 데몬도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거야?’
「그, 그건….」
「그건?」
「나」「궁금함」「궁금함」
생식 활동에 진심인 두 녀석들을 보니 하늘의 어머니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그때, 그녀의 감각에 무언가가 잡혔다.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눈으로 울창한 숲 안쪽을 꿰뚫어 봤다. 눈만큼이나 뛰어난 탐지능력을 자랑하는 귀와 코 또한 주인의 의지에 따라 맹렬하게 움직였다.
「잠깐.」
「잠깐?」
「이런! 적이다!」
그녀의 감정을 느낀 26호와 아드하이가 즉각 반응했다. 둘은 재빨리 흩어져 주변에 있는 나무와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적? 나쁜 애들이 왔어?」
「나」「안 보임」「적」「어디?」
「…여기서는 한참 떨어진 곳이지만 이쪽으로 올지도 몰라.」
지하에 있는 에이모프를 제외하고 이 자리에 있는 괴물 중 가장 탐지능력이 뛰어난 그녀였기에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수 km 떨어진 곳에 완전 무장한 컬트 전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찾는 듯 숲속을 샅샅이 뒤지며 움직이는 중이었다.
「너희들도 알 수 있을 거야. 집중해 봐.」
「알았어. 해볼게.」
「집중」
컬트들의 몸에서는 종족 특성상 강렬한 사이킥 파워가 흐른다. 씨 데몬과 갤러곤은 사이킥 파워에 가장 민감한 생물들. 아무리 멀다고 해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그녀의 예상대로 26호와 아드하이는 수수께끼의 컬트들을 금방 감지해냈다.
「모프박…크흠, 큰애기는 아직 못 움직여. 진화 도중이니까.」
「맞아. 큰애기가 자기가 커질 때는 아무도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어.」
「긍정」「우리」「적」「침범」「방어」
하늘의 어머니는 진지한 눈빛으로 26호와 아드하이를 쳐다 봤다.
「맞아. 우리가 저들을 막아야 해.」
그녀의 말은 짧았지만 작은 두 마리의 괴물들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바로 이해했다.
바로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
26호의 몸과 아드하이의 눈에서 보라색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