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42화 (143/400)

Ep. 142

정신을 차리자마자 느낀 것은 내 몸을 둘러싼 액체들이었다. 양수처럼 걸쭉하면서도 따뜻한 그 기분.

팔을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마비라도 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통제를 왕창 맞은 것처럼 몸 전체가 둔한 느낌이었다.

‘아직 변이가 완료되지 않았나 보네.’

나는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납득했다.

눈꺼풀을 움직일 수 없어서 볼 수는 없지만, 지금 내 몸은 아직 흐물흐물한 상태일 거다. 고치 안에서 온갖 화학 작용이 일어나면서 내 몸을 새롭게 변이시켜 주고 있을 테니까.

‘얼추 한, 두 시간 정도 남은 것 같네.’

평소라면 이때 잠을 청하겠지만, 왠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옛 기억을 보기 전 뭔가 중요한 것을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중요한 것이었는데….’

머리 안에 무언가가 꽉 틀어막고 있듯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한참을 고민해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짜증만 쌓여 갔다.

‘…관두자.’

중요한 사실이라면 언젠가는 떠오를 터. 나는 기억을 떠올리는 일에 억지로 신경을 끊었다.

‘그보다 다들 뭐 하고 있는지 확인이나 해 보자.’

마음속에 쌓인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지상에 있을 녀석들에게 관심을 돌렸다. 고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지해 보기 위해 보조기관에 집중을 쏟았다.

역시 진화 도중이라서 그런 걸까. 머리 위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느끼는 것이 한계였다.

그리고 지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느껴지는 것은 스웜프킹의 단단한 다리 껍데기뿐.

‘다 어디 갔지?’

내가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은 진화할 때와 초월 시스템을 활용할 때다. 그래서 초월 2단계에 진입하기 전에 녀석들에게 나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녀석들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다.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26호는 말할 것도 없고, 아드하이는 나를 선망하고 있다.

나 또한 녀석들이 싫어하는 일은 최대한 배제하는 중이고. 혹시 녀석들이 바라는 일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들어 주고 싶다.

하늘의 어머니는 좀 애매하긴 하지만, 그녀도 목표가 있으니 나를 배신할 가능성은 낮다. 애초에 배신할 거였으면 내가 고치에 들어가자마자 쳤겠지.

녀석들이 이유 없이 나를 두고 떠날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 이 경우라면 한 가지뿐이다.

‘주변에 위험 요소가 있어.’

나에게 해를 끼칠 만한 것이 나타나 그것들을 배제하러 떠난 것이 분명했다.

‘이곳에서 나를 공격할 만한 요소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혼드 기간트 부부였다.

놈들의 서식지는 이곳에서 한참 떨어져 있지만, 지난번 해적들을 잡아먹은 뒤부터는 자꾸 숲속에 들어왔다. 인간과 컬트 고기의 맛이 신세계라는 것을 알고 기웃거리는 거겠지.

‘일부러 안전한 곳에 둥지를 만들었으니까 놈들은 아닐 거야.’

그밖에 다른 위험 요소라면 심해의 연구기지의 인원들을 구하러 온 구조대가 있지만, 이 또한 가능성이 낮다. 나의 둥지는 기지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져 있으니까.

‘아니면 혹시 뮤리엘의 동료들인가?’

전에 뮤리엘을 심문할 때 그녀를 후원하는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기 전에 구조 요청을 보냈다가 무시당했다는 것도.

‘흔적은 최대한 지웠어.’

저들이 나를 경계한다는 것은 뮤리엘이 상세히 말한 통화 내용으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내가 남겼던 흔적들은 가능한 대로 정리했다.

야영지를 떠나기 전 인공적인 구조물들과 무기들은 전부 ‘소각’하거나 땅 아래에 파묻었다.

뇌신에 맞고 폭발한 순양함의 흔적이 있긴 하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내 둥지를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내 둥지는 땅속에 있으니까.’

만에 하나 플레이어들이 내가 모르는 기술을 이용해 둥지를 발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이 둥지를 발견했다면 나는 이미 죽었어.’

뮤리엘과 동급이거나 이상인 플레이어 두 명이면 26호와 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를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을 거다. 내가 고치 안에 들어간 지 네다섯 시간이나 지났으니 상황이 종료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따라서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플레이어 둘이 직접 온 것은 아니라는 뜻. 수수께끼의 적의 수준이 애들과 교전이 가능할 정도의 상대라고 봐야 한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네.’

아무래도 변이가 끝나면 바로 찾으러 가 봐야 할 것 같다.

-

하늘의 어머니는 랭커다.

딱히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형 클랜을 운영한 경험도 있고, 보스급 생물 사냥을 위한 레이드 리딩을 담당한 적도 있었다.

준보스급 생물인 씨 데몬 토벌을 이끌었다거나, 랭커는 되어야 감히 덤빌 수 있다는 레드 갤러곤, 볼텍스원 토벌전에 참여하거나 등등.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 자부하는 그녀였지만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은 매우 초현실적이었다.

“아아악!”

“모두 도망쳐!”

10m 이상 커진 씨 데몬이 숲 한가운데서 컬트 전사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중이다. 통나무보다 굵은 촉수가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컬트 전사의 상반신이 사라졌고, 몸통에서 안구 형태의 문양이 빛날 때마다 컬트들이 눈과 귀에서 피를 질질 흘렸다.

그들의 리더는 씨 데몬과 조우하자마자 촉수에 맞고 그대로 사망했다. 파리채에 맞은 파리꼴마냥 온몸이 뒤틀려서 말이다.

“실드 전개! 실드 전개에에에!”

여성 컬트 한 명이 촉수를 피하면서 악을 썼다. 그녀가 리더 다음으로 높은 전사인지 다른 컬트들이 시급히 실드를 전개했다.

하지만 갤러곤만큼이나 사이킥 파워를 능숙하게 다루는 씨 데몬한테 실드는 무의미했다.

“주, 죽어어어거거걱걱?!”

실드를 두르고 용감하게 뛰쳐나간 전사 한 명이 허공에서 덜컥 멈췄다. 그리고 팔다리와 허리가 주인의 뜻을 배반하고 제멋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어린아이가 개미의 다리를 뽑는 것을 보는 광경이 과연 이럴까. 씨 데몬의 ‘속박’을 5중첩으로 맞은 전사는 곧 사지뿐만 아니라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버렸다.

“소, 소용없습…으아아악!”

그 사이 다른 전사는 씨 데몬이 휘두른 굵은 촉수에 맞고 날아가 나무에 처박혔다. 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그는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끔찍한 살육의 현장이었다.

그런데도 하늘의 어머니가 초현실적이라 느낀 이유는 씨 데몬, 아니 26호가 컬트들을 공격할 때마다 내는 파장 때문이었다.

「나쁜 인간! 나쁜 인간!」

“아아악!”

「누가 중간애기 때리래!」

“히이익!”

비명 중간마다 26호는 나쁜 인간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면서 컬트들을 참살했다. 컬트와 인간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젠장! 놈의 촉수부터 봉쇄하라!”

여성 컬트의 말에 작살총 비슷한 무기를 든 컬트 두 명이 앞으로 나섰다.

‘이런!’

그 모습을 본 하늘의 어머니는 재빨리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저 작살총이 쏘는 그물은 사냥감에 맞는 순간 빠르게 줄어들어 옥죄는 효과가 있다. 그것만으로는 씨 데몬의 단단한 외피를 뚫을 수 없겠지만, 컬트의 그물은 블랙실버로 만든 그물이다.

‘블랙실버라면 26호가 다칠 수도 있어!’

26호가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지금 잠들어 있는 괴물이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거다.

그러나 그녀가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물에 닿으려는 순간, 26호의 몸이 확 쪼그라들더니 작은 풍선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작아진 녀석은 그물을 유유히 피해내고 다시 커져 촉수를 휘둘렀다.

그물을 쏜 컬트 중 한 명은 간신히 피했지만, 다른 한 명은 촉수에 맞고 상체가 날아가 버렸다.

살아남은 컬트는 일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바닥에 있던 돌과 금속 파편들이 덜덜 떨리다가 빠른 속도로 그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그 또한 얼굴에 구멍이 송송 뚫린 채 동료와 같은 길을 걷고야 말았다.

‘제법인데.’

유아스러운 말투와 달리 26호는 씨 데몬답게 매우 잘 싸우고 있었다. 자기가 가진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응용하면서 말이다.

‘여기에는 더 있을 필요가 없겠군.’

하늘의 어머니는 26호가 컬트들을 박살 내는 광경을 뒤로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발걸음이 향한 장소는 아드하이가 싸우고 있는 곳이다.

현재 아드하이가 다른 팀의 컬트들을 도륙하는 중이었다. 에이모프의 동료들 중 유일하게 고공비행이 가능한 아드하이는 자기의 장기를 적극 활용, 컬트들을 잡아다가 낙사시키는 방법을 썼다.

‘사이킥 파워 기술 중에 비행 기술이 있긴 하지만….’

총알보다 빠르게 날아다니는 아드하이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 녀석의 돌진에 부딪치면 그대로 저승행일 거다.

게다가 이 숲에 들어온 컬트들 전원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26호가 사용한 ‘심해의 공포’ 때문이다.

‘게임의 씨 데몬보다 응용력이 뛰어나.’

설정상 심해의 공포는 씨 데몬이 품고 있는 강력한 사이킥 파워 에너지가 새어 나가면서 발생하는 일종의 현상이다. 그래서 놈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른 생물의 정신이 악영향을 받아 붕괴하게 된다.

그런데 26호는 사이킥 파워를 거미줄처럼 얇고 넓게 퍼뜨리는 방식으로 심해의 공포를 구현했다. 대부분의 적들은 정신이 거의 멀쩡했지만, 대신 그들이 지닌 통신 수단과 몇 가지 사이킥 파워 기술의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서로의 연락을 차단하고 각개 격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것이 26호가 의도한 바였다.

물론 녀석은 아직 성체가 되다 말아서 그런지 그 효과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직접 나서서 싸우기 시작한 이후 녀석이 쓴 심해의 공포 효과가 들쑥날쑥 흔들리고 있으니. 운이 없으면 통제에서 벗어나는 자들도 나오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전술 자체는 충분히 효과적이었기에 하늘의 어머니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누가 모프박이 친구 아니랄까 봐.’

만약 26호가 성체가 된다면 어마어마한 괴물이 될 거다.

‘어찌 보면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 무서운 괴물이 동료라는 생각에 안도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녀의 머리 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건 비명 소리였다.

하늘의 어머니는 즉시 달리던 것을 멈췄다. 몇 초 후 컬트 전사가 나뭇가지들을 뚫고 바닥에 떨어졌다.

폭탄 터진 것처럼 큰 소리가 나고 그의 몸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기 파편 위로 한 마리의 녹색 용이 우아하게 내려앉았다.

2m에 달하는 길고 날씬한 몸매와 몸통 이상으로 거대한 날개, 그리고 4개의 뿔과 통통한 꼬리가 인상적인 그 용은 아드하이였다.

한 명의 컬트를 낙사시킨 아드하이는 다른 컬트를 앞발로 붙들고 있었다. 초가속을 사용해서 들이받은 것인지, 붙잡혀 있는 컬트는 강화복을 입었음에도 몸이 절반으로 구겨진 상태였다.

「여기」「정리」「완료」

「빠르네.」

「나」「대단함」

「그래. 잘했어.」

한 팀은 이미 정리되었고, 다른 한 팀은 곧 정리될 예정이다.

그녀가 감지한 컬트 전사들은 총 세 팀. 이제 한 팀만 남았다.

「적」「남음」「사냥」「시작」

「잠깐 기다…이런.」

남은 팀은 함께 정리하려고 했지만 아드하이는 먼저 날아가 버렸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 아드하이의 뒤를 쫓아갔다.

-

“헉, 헉, 헉….”

컬트 전사 올라이는 나무 뒤에 숨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빌어먹을! 전사장, 에드린, 이사벨까지 전부 전사라니….’

이 행성에 온 전사단은 그를 제외하고 전멸했다. 연락도 안 되는데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닌 도구들 덕이었다.

올라이는 다른 컬트들과 달리 원시 종족의 장비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이른바, 혁신파 컬트였다.

임무가 시작되기 전 그는 다른 전사단원들에게 작은 칩들을 나눠줬다. 메가콥에서 주로 쓰는 군용 추적 칩이었다. 초장거리 임무라면 사용하기 어렵겠지만 지금처럼 한 대륙에서 특정 지역 주변에서 활동할 때는 문제없이 감지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지금 그가 입고 있는 강화복은 일반 컬트 전사들이 입는 강화복이 아니었다. 메가콥의 가르멜다 가문으로부터 구한 특제 커스텀 강화복이었다.

해당 강화복은 신체 보호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강력한 은신 효과가 있어서 잠입 임무에 제격이었다.

추가로 올라이는 몸의 기척을 지우는 사이킥 파워 기술을 습득한 상태였기에 그야말로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이런 좋은 것도 같이 좀 쓰자니까 왜 말을 안 듣고…!’

평소에 원숭이의 장난감이나 좋아한다고 멸시받던 그였지만, 그 원숭이들이 만든 장비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수송선에만 도착한다면 살 수 있다.’

지금까지 그가 본 괴물은 세 마리였지만 이외에 얼마나 위험한 괴물이 더 있을지 모른다. 필시 오염 때문에 발생한 변종들일 터. 정화 작업을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올라이는 근처에 괴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다시 움직였다.

‘이곳만 지나면!’

저 수풀 너머에 수송선이 있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이동하던 중 그는 급히 몸을 숙였다. 바닥에 검은 그림자가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저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의 동료 에드린이 증명해줬다.

‘갤러곤이 여기 왜 있냐고!’

그린 갤러곤에 붙잡혀 수km 위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진 동료를 생각하며 그는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풀을 통과했을 때 그가 기대하던 수송선이 앞에 있었다.

다만 수송선의 상태는 그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크르르르르르.”

“크릉.”

머리에 거대한 뿔이 달린 대형 수각류 두 마리가 수송선을 부수고, 안에 있던 조종사를 씹어 먹고 있었다.

그것들의 정체는 컬트의 언어로 ‘마누크 아르마’, 메가콥에서는 혼드 기간트라 부르는 포식자였다. 사이길08의 토착 생물이자 화산 지대에 서식하던 괴물들이 이 숲 안쪽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크르, 킁? 킁킁.”

“크르르르르.”

마누크 아르마 중 한 마리가 무언가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킁킁거렸다. 그의 고개가 정확히 올라이가 서 있는 위치를 향했다.

놈은 후각이 매우 예민하다. 땀에 흠뻑 젖은 그의 냄새를 놓칠 리 없다.

올라이는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났다. 수풀 뒤로 들어간 그는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뒤에서 놈들이 내는 포효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무시하고 미친 듯이 뛰었다.

‘제에에에엔자아앙!’

안타깝게도 그의 도주는 길지 못했다. 하늘 위를 돌던 그린 갤러곤이 놓치지 않고 그를 덮쳤다.

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마다하지 않던 올라이였지만, 운마저 어찌할 수는 없었다.

음속 이상의 속도로 날아온 2m이상의 덩치와 충돌한 그는 손바닥에 맞은 벌레 꼴이 되었다.

-

「숨박꼭질」「끝」

방금까지 적이었던 것의 파편들을 보며 그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그녀는 큰어른과의 관계가 전보다 소원해졌다고 느꼈다. 작은어른이나 못생긴 친구는 큰어른이랑 함께 하는 일이 많은데, 그녀는 딱히 큰어른과 같이 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생각했다.

멋진 공을 세워서 큰어른에게 이쁨을 받자고.

오늘 하루 동안 그녀가 사냥한 먹이만 10마리가 넘는다. 이 정도 공이면 큰어른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이 틀림없다.

몸에 묻은 피를 핥은 그녀는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새로운 적이 그녀를 들이받지 않았다면 그랬을거다.

“크아아아아아!”

「아픔!」

갑자기 나타난 괴물과 부딪친 그녀는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부딪치기 전 미리 반응한 덕분에 치명상은 면했지만, 날개 한쪽이 크게 찢어졌다.

「너」「나」「고통」「줌」「죽임」

그런데도 아드하이는 전의를 잃지 않고 네 다리로 똑바로 서서 놈을 노려봤다. 현재 작은어른과 못생긴 친구는 한참 뒤에 있다.

마음이 급한 바람에 지나치게 앞서나간 탓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오기 전까지 버텨야 한다.

“크르르르르!”

「둘?」

절망스러운 사실은 놈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

놈들 중 그녀를 뿔로 들이받은 놈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찢어진 날개 때문에 간신히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어서 날아오는 두 번째 공격, 놈의 꼬리까지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놈의 두꺼운 꼬리에 맞은 그녀는 뒤에 있던 나무에 날아가 부딪쳤다.

「아픔!」

지금의 충격으로 머리에 붙어 있는 촉수들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녀는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했지만 네 개의 다리는 덜덜 떨릴 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크르르르르.”

어느새 다가온 놈이 입을 크게 벌린다. 날카롭게 솟아 있는 이빨들. 잠시 후면 저 이빨이 그녀의 연약한 몸을 갈기갈기 찢으리라.

「죽음」「싫음!」

“크아아아아!”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 퍼플 라이트닝을 발사했다. 보라색 번개가 놈의 눈을 찌르고 피가 튀었다.

눈이 터졌으니 고통이 적지 않을텐데도 놈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공격이 화를 돋군 것인지 놈은 번개를 맞으면서도 놈은 입으로 그녀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큰어른」「미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했지만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듯했다. 죽음을 직감한 그녀가 눈을 감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진동이 느껴졌다. 이빨에 잘근잘근 씹히는 것이라기에는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미약하던 진동. 점점 커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누가 그녀의 몸을 붙잡고 흔드는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뭐임?」

“크릉?”

“크르르르?”

지진은 그녀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두 마리의 짐승들도 갑작스러운 지진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땅이 폭발하면서 그녀 앞에서 입을 벌리던 짐승이 나무 위로 퉁겨져 나갔다.

[즈 즈즈즈즈 즈즈(이 미친놈들이 감히!)]

지축을 울리는 포효를 내지르는 거대한 용.

그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큰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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