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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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님, 코스믹 볼트의 충전이 완료되었습니다.”
“…….”
“함장님?”
‘다모스08의 심판자’의 상황실.
선원이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알려왔지만 함장은 아무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려갔던 전사단으로부터 소식이 완전히 끊겼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연락을 안 받는 거냐! 레이스!’
레이스는 그가 총애하는 전사다. 그가 아무 이유 없이 함장의 명령을 무시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게다가 레이스와 함께 내려간 다른 전사단들 또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말은 저 아래에서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뜻.
‘…어떻게 할까.’
그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하나는 이대로 코스믹 볼트를 쏘는 것, 다른 하나는 새로 수색대를 내려 보내는 것이다.
다만, 함장도 알고 있다. 이 방법 중 후자를 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컬트 제국에서 오염 문제는 제국 안보에 가장 위험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염을 막기 위해 정화 업무를 수행 중인데 부하를 구하느라 시간을 지체한다? 하물며 노예를 구하라고 함장 개인이 보낸 부하들을?
이곳에 있는 함선들은 제국모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함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 나온 모함전단(母艦戰團) 소속 함선들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시간을 지체한 순간, 함장은 파직될 것이고 다른 함장이 이 배를 이끌고 코스믹 볼트를 쏠 것이다.
“함장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10분 후 발포하라.”
“알겠습니다.”
결국 함장이 택한 길은 코스믹 볼트를 쏘는 것이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라도 부하들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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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됐어?」
하늘의 어머니는 심각한 눈을 한 채 내게 물었다.
“발사 시간은 이미 지났다.”
「뭐? 그런데 왜?」
“알 수 없다.”
하늘의 어머니는 내가 지닌 인면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일부러 컬트 하나의 시체를 남겨 놨다. 그녀에게서 시체를 받은 나는 인면수 특성을 활용해 이곳에 온 컬트, 하미네의 기억을 읽었다.
기억의 중간에 빈 부분이 많았지만 중요한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행성이 오염 행성으로 지정되어 정화 명령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5분 전에 코스믹 볼트가 발사될 시간이었다는 것, 이렇게 두 가지였다.
왜 아직 발사되지 않았는지는 하미네도, 나도 모른다.
발사가 미뤄진 것은 정말로 다행이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칫, 얼마 안 가 떨어지겠네.」
하늘의 어머니는 눈썹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녀의 말대로다. 컬트의 정화 명령은 어지간해서는 취소되지 않는다. 설령 제국모함의 함장이 맛이 가서 임무 수행을 거부한다고 해도 대타가 나서서 집행할 정도다.
짧으면 몇 분, 길어봐야 한 시간 이내에 코스믹 볼트가 이 대륙 위로 떨어질 것이다.
‘도망치기에는 이미 늦었어.’
코스믹 볼트는 설정상 암흑물질과 사이킥 파워를 혼합해 만드는 일종의 응축된 에너지탄이다. 순간의 화력은 거의 태양에 준할 정도라서 행성에 떨어지는 순간, 행성 전역의 대기와 물이 전부 증발한다.
땅속에 숨는다고 쳐도 지각 수십 km 아래까지 영향을 미치는 코스믹 볼트를 피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어찌어찌 버틴다고 쳐도 26호와 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우주선도 안 돼.’
인간들이 가져온 연구 기지는 여기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 내 몸이 전보다 강화되었다고 해도 몇 분에서 한 시간 이내에 거기까지 가는 것은 무리다.
설령 엄청나게 운이 좋아서 코스믹 볼트가 수십 시간 뒤에 발사된다고 쳐도 문제다. 우주선을 타고 행성 밖을 나가자마자 제국모함을 호위하는 선단이 우리를 요격할 테니까.
‘그러니 여기서 막는다.’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든 저 제국모함의 공격을 방어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내 머리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약탈자의 부정형 다면체’로 만든 특성이다.
약탈자의 부정형 다면체는 장비를 포식해서 특성으로 전환시키는 능력.
나는 그 능력을 활용해서 뮤리엘이 지니고 있던 유일급 장비를 포식해 파괴적인 힘을 손에 넣었다.
바로 컬트의 궤도폭격 병기인 ‘뇌신’을 포식해서 말이다.
‘아니야. 그 능력만으로는 코스믹 볼트를 이길 수는 없어.’
내가 새로 얻은 ‘그 능력’은 뇌신에 비해 출력이 살짝 부족하다. 플라즈마 런처를 먹었을 때는 내 몸의 출력이 원본을 상회했지만 뇌신은 반대였다
원본 뇌신으로도 코스믹 볼트의 출력에 한참 못 미치는데 그것보다 줄어든 공격으로 내가 맞사격해 봐야 큰 의미는 없다. 기껏해야 몇 분의 시간을 버는 게 고작일 거다.
‘그래도 내가 지닌 무기 중 가장 강력한 것은 그것뿐이야.’
그러니 어떻게든 출력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사냥의 표상이라면 출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겠지만….’
본래 사냥의 표상 쿨타임은 24시간.
초월 2단계를 돌파하면서 사냥의 표상에 대한 쿨타임도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아직 쿨타임이 돌고 있었다.
‘미친! 내가 진화할 때 사용한 걸로 취급했어!’
사냥의 표상의 남은 시간이 18시간인 것을 보니 확실했다. 마찬가지로 악몽의 지평선 또한 쿨타임이 7일 남은 걸로 표기되어 있었다.
금제가 해제된 덕분에 둘 다 별개의 쿨타임으로 분리되었지만 현재 상황에서 둘 다 쓸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
무척이나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그 문제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젠장!’
비장의 카드인 사냥의 표상은 사용 불가.
‘…새 메시지창. 아직 확인 안 했었지.’
뭔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로 날아온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초월 2단계 해금 보상으로 신규 특성 ‘유기적 진화(유일)’ 특성이 제공됩니다!」
「신규 타입 ‘우주괴물(유일)’ 타입을 해금했습니다.」
「신규 시스템 ‘특성 강화’가 해금되었습니다.」
‘응?’
초월 2단계의 보상은 신규 타입 해금, 내가 보유한 특성에 대한 제약을 해제하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특전 해금에는 관련 특성이 필요하니까 같이 얹어줬구나.’
나는 홀린 듯 텍스트창의 설명들을 읽어 내려갔다.
「유기적 진화: 강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한 자가 강한 것입니다. 두 종류의 특수 상태 중 하나를 선택해 변신할 수 있습니다.
* 괴수의 왕: 초대형 생물로 몸을 성장 및 강화시킵니다. 특성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은 반경 100m 이상입니다.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특수 상태이기에, 에너지가 전부 소모되면 상태가 해제됩니다. 최대 지속시간은 10분, 쿨타임은 30일입니다.
* 영리한 약자: 소형 생물로 몸을 축소시키고 체내 에너지를 보존합니다. 축소된 상태는 최대 5m를 넘기지 않습니다. 몇 가지 특성 사용이 제약되는 대신 특수 상태와 관계된 특전이 제공됩니다. 사용자가 임의로 해제할 수 있습니다. 최대 지속시간은 7일, 쿨타임은 30일입니다.
* 변신 도중에는 취소 및 변경할 수 없습니다. 두 특수 상태는 쿨타임을 공유합니다.
* 이후 보유 특성 획득에 따라 신규 특수 상태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추신: 진화와 순환. 그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신이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좀 전까지 게임사를 욕하던 나였지만 지금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유기적 진화라. 이건 쓸 만하겠어.’
정확히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모르겠지만 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데 유용할 것으로 보이는 게 있다.
바로 ‘괴수의 왕’이라는 특수 상태.
설명에 보니 신체를 성장 및 강화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거라면 출력을 올릴 수 있을 거야.’
사냥의 표상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비슷한 카드가 손에 들어왔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다만 아직 불안 요소는 남아 있었다.
‘이 특성이 얼마나 강화시켜 주냐가 관건인데.’
쿨타임과 제한점이 많은 걸 보면 사냥의 표상이나 악몽의 지평선이 떠오른다. 이 특성의 효과가 상당히 강력할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도박은 좋지 않아.’
자칫 잘못하면 여기서 우리 모두 전멸한다. 저 코스믹 볼트를 막아 내려면 최대한 끌어올 수 있는 것들은 다 끌어와야 한다.
‘출력, 출력, 출력을 높일 방법이….’
발사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저 특성을 사용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할 터. 언제까지 계속 고민할 수 없다.
‘…1분만 더 고민하자.’
나는 뭔가 더 방법이 없을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작은애기야, 많이 아파?」
「아픔」
「장난감? 이거 갖고 놀래?」
「괜찮음」
내 눈에 26호와 아드하이의 모습이 보였다. 26호는 어느새 전리품 가방을 챙겨 와서 들어 있는 물건을 아드하이 앞에 하나둘씩 꺼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코스믹 볼트의 새까만 빛이 이 위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코스믹 볼트의 화력이라면 녀석들은 고통 하나 못 느끼고 전부 불타 죽겠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이 1분이 지났다. 새롭게 떠오른 아이디어는 없었다.
‘이대로 가는 수밖에 없…어? 잠깐.’
26호가 들고 있는 가방을 보니 문득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
저 가방은 내가 뮤리엘을 죽이고 얻은 장비와 물품들을 넣어 둔 가방이다. 제사장의 황금창이라든가 블러드 리버라든가 등등.
그리고 그 중에는 그녀가 썼던 물약도 있었다. 나는 급히 26호에게 다가 갔다.
「응? 왜 그래?」
[즈즈 즈즈즈 즈즈즈(가방 잠깐만 줘볼래?)]
「큰애기도 장난감 필요해?」
[즈(응)]
가방을 건네받은 나는 안에서 자그마한 키트 하나를 꺼냈다. 키트를 열자 안에 보라색으로 빛나는 앰플 하나가 있었다.
‘좋아! 아직 하나 남았어!’
이 물약의 정체는 사이오니움.
물약을 마신 대상의 상태를 일시적으로 한 단계 상승시켜 주는 물약이다. 사이오니움을 마신다면 나는 바로 성체로 변할 수 있다.
성체가 된다면 엄청난 혜택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지금에 비해 그 힘이 엄청나게 강해져서 코스믹 볼트와 맞설 수준이 된다는 것.
두 번째는 바로 머리가 셋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머리가 늘어나는 것은 그리 좋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원래 머리의 증가가 갖는 의미는 정수수확자의 턱의 효용을 증가시키는데 있다. 머리가 셋이면 적의 머리를 수집하는데 용이하니까.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야 침식 촉수가 있는 탓에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머리가 늘어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뇌신을 먹어서 만든 특성의 이름은 ‘신의 회초리’.
뇌신의 번개를 응축한 에너지 열선을 쏘는 능력이다.
어느 부위로 쏘냐고 묻는다면 바로 입이다. 플라즈마 런처를 흡수해서 플라즈마 열선을 쏠 때처럼 나의 입에서만 그 열선이 나간다. 침식 촉수라든가 다른 부위에서는 발사되지 않는다.
‘즉 성체가 되어 머리가 세 개라면….’
뇌신에 준하는 에너지 열선을 세 개의 머리에서 동시에 쏟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성체, 괴수의 왕, 그리고 뇌신을 포식하고 얻은 특성.
‘이 세 가지만 있다면!’
행성을 정화하는 컬트의 절대병기, 코스믹 볼트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