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45화 (146/400)

Ep. 145

내가 들고 있는 앰플에 든 약물의 이름은 사이오니움.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사용자에게 강화 효과를 주는 대신, 지속시간이 무작위로 감소하는 약물이다.

나는 이전에 유진 가문의 유전자 개조 인간, 시현 유진과 싸울 때 쓴 적이 있다.

당시 유체였던 나는 사이오니움을 섭취해 일시적으로 아성체의 힘을 얻어 그녀와 맞서 싸웠다.

아무튼 이미 한 번 사용한 나다. 본래라면 지속 시간이 감소해야하는게 맞다.

‘그런데 이건 뮤리엘이 사용한 개량 버전이란 말이지.’

그녀는 일반 사이오니움에 비해 훨씬 긴 시간 동안 강화 효과를 누렸다. 그렇기에 그 효과가 얼마 동안 유지될지 나는 알 수 없다.

‘뭐가 됐든 지속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거야.’

최소 5분, 많아봐야 8, 9분 정도로 상정해야겠지.

다시 말해 ‘괴수의 왕’의 최대 지속시간보다 사이오니움의 효과가 더 일찍 끝난다고 봐야 한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괴수의 왕을 먼저 쓰는 게 맞을 테지만, 그 전에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에너지를 다 소모하면 상태가 해제된다라.’

‘유기적 진화’의 특성 설명에 보면 괴수의 왕으로 변신할 때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된다고 적혀 있다.

‘신의 회초리도 에너지 소비가 심하겠지.’

‘신의 회초리’와 괴물의 왕 모두 내 몸에 저장된 생체 에너지를 소모한다.

‘에너지 보유의 총량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초월 2단계로 진입하기 전 스웜프킹과 늪지대 생물을 배터지게 먹었고, 좀 전에는 혼드 기간트까지 통째로 삼켰다.

두 생물 모두 세인토피아02 대륙을 호령하는 강대한 포식자. 게다가 에이모프는 연비가 매우 효율적인 생물이니 에너지 자체가 부족할 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두 특성 모두 게임에서 등장하지 않은 신 특성이다. 당연히 내가 직접 써 본 적도 없고.

다만 게임에서도 비슷한 위기를 겪었던 적은 몇 차례 있다. 아웃스페이서의 대규모 강습에 맞서 대규모 학살을 벌인 적도 있고, 메가콥의 행성 파괴 병기인 ‘노바’를 피하고자 대기권까지 날아가 요격한 적도 있다.

오히려 지금은 그때보다 쥐고 있는 카드가 많으니 상황이 더 낫다고 해도 좋을 터.

‘에이모프의 뛰어난 감각과 내 감만 있다면….’

지금까지 그래 왔듯 이 난관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남은 것은 언제 코스믹 볼트가 떨어지냐는 건데.’

이 부분은 현 상황에서 내가 알아낼 방법이 없지만, 딱 하나 방법이 있다.

나의 위기를 알려주는 포식자 감각. 단편적인 미래가 내 눈앞에 떠오른 순간이 바로 내가 공격을 가할 시간이다.

판단을 끝낸 나는 뮤리엘의 키트에서 사이오니움 앰플을 꺼냈다.

그리고 입 속에 앰플을 넣어 보관했다. 무지막지하게 커진 덩치로 앰플을 손에 쥐기 위해 씨름하는 일은 피해기 위해서다.

‘괴수의 왕 상태가 되면 먹기 힘들 테니.’

준비를 마쳤지만, 아직 포식자 감각은 아무런 소식도 보내지 않았다. 나는 유기적 진화 특성을 활성화하고 괴수의 왕을 선택했다.

그리고.

「장소가 적합하지 않습니다. 아군과 거리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응?’

변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안 된다고?’

주변에 나무가 많긴 하지만 내가 있는 이 장소는 평지다. 특수 상태의 설명에도 필요한 공간이 반경 100m라고만 되어 있지 다른 말은 적혀 있지 않다.

‘장애물이 있으면 안 되는 건가…아. 잠깐, 설마?’

아군과의 거리.

내 앞에는 26호와 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가 있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잠깐 여기서 기다려)]

애들한테 말한 뒤, 나는 그 장소를 벗어났다.

내가 향하는 방향은 바로 강가. 그곳에는 나무와 같은 장애물이 없다. 녀석들과의 거리도 떨어져 있고.

궤도폭격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니 나는 전력을 다해서 달렸다. 6개의 전투용 팔, 꼬리, 그리고 뭉툭한 발톱들. 나의 신체 기관 전부가 근육의 한계치까지 사용해 내 몸을 앞으로 밀어냈다.

그렇게 강가에 도착한 나는 다시 특성을 활성화했다.

「장소가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뜨는 적합하지 않다는 메시지.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 장소는 강기슭이지만, 숲의 끄트머리라고 봐야 할 정도로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나 있는 편이었다.

아군에 대한 말은 없고 장소에 대한 말만 있는 것을 보니, 괴수의 왕 설명에서는 아무래도 장애물 부분이 생략된 것 같다.

나는 서둘러 강 속에 뛰어들었다. 강 중앙에 도착하고 나서야 괴수의 왕 상태로 변신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 정도면 100미터를 훌쩍 넘겠는데?’

이 강의 폭은 그리 좁은 편이 아니다. 강의 중앙으로부터 기슭까지 100m는 가볍게 넘을 정도니까.

도대체 얼마나 커지려고 이러나 생각하는 순간.

내 시야 앞으로 무언가가 지나갔다.

‘왔다!’

대기를 찢고 만물과 생명을 집어삼키는 검은 불길, 코스믹 볼트가 떨어지는 장면. 그 장면을 인식하자마자 나는 즉시 괴수의 왕으로 변신했다.

‘으으윽?!’

「고통 경감 발동!」

다른 진화 때와 다르게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극심한 통증이었다.

심지어 고통 경감이 발동되었음에도 이 정도다. 어렸을 때, 전신 화상을 입었던 기억이 없었다면 바로 정신을 잃어 버렸을 거다.

게다가 통증만 심한 것도 아니었다. 변신 중인데도 에너지 소모율이 무지막지했다. 사이킥 브레스를 연속으로 세 번 쏜 것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탈력감이었다.

‘크, 크으으윽! 지, 지금 먹어야…!’

나는 어떻게든 정신줄을 붙잡고 입 안의 그것을 깨물었다. 작디작은 앰플이 깨지고 그 안에 든 사이오니움이 내 목구멍으로 쏟아졌다.

「그으, 그으으, ■■■■■■■■■■!」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던 나는 크게 울부짖었다.

강물이 증발하고 기슭에 있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나가는 것과 함께 강렬한 에너지의 파도가 내 시야를 가렸다.

-

“코스믹 볼트 발사 준비 완료.”

“에너지 출력 500% 충전 완료. 암흑물질 조정기 작동 중. 정화 작업 개시합니다.”

“좌표 입력 완료.”

“예상되는 피해 측정 완료. 정화 임무와 대조 중.”

코스믹 볼트 발사 준비가 한창인 상황실에서 함장은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발사하기 전까지 그의 부하들은 오지 않았다.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사이길08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는 몰랐다.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겠지.’

전사한 부하들을 생각하며 함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카운트는 빠르게 떨어졌다.

“어? 함장님! 강력한 에너지의 파장이 감지되었습니다!”

그때 행성 내 에너지 흐름을 관측하는 컬트 선원이 외쳤다. 그의 말에 함장이 눈을 떴다.

“에너지 파장? 혹시 자기장 폭풍인가?”

“알 수 없습니다! 이, 이건?! 전 행성에 걸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선원이 사이킥 파워로 이미지를 띄웠다. 행성 내 한 대륙 전체가 거대한 에너지 폭풍에 덮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상황실의 컬트 전원이 경악했다.

“마, 맙소사!”

“저런 에너지의 흐름은 본 적이 없어!”

자기장 폭풍은 행성 전방위에 걸쳐 발생하기에 저렇게 인위적으로 한 지점에 쏠리지 않는다. 즉, 저 에너지 파장은 특정 존재가 인위적으로 일으킨 것이다.

‘설마 저게 오염원?’

‘다모스08의 심판자’가 받은 명령은 오염된 사이길08을 정화하는 것. 저 비정상적인 폭풍은 행성을 오염시킨 존재들이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젠장! 그래서 다들 전멸했구나!’

저 대륙은 볼프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대륙이다. 필시 전사단은 볼프들을 포획하러 갔다가 재수 없게 저 오염원과 조우한 것일 터.

대륙 단위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염원이다. 아무리 전사단의 무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저 말도 안 되는 존재로부터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함선 카메라로 오염원을 관측할 수 있는가?”

“그, 그게 에너지의 흐름이 워낙 강렬해서…. 그래도 시도해 보겠습니다!”

컬트 선원들은 사이킥 파워 기술을 운용하면서 상황실의 컴퓨터를 조작했다. 몇 초 후, 관측된 지상의 이미지가 상황실 중앙 위에 나타났다.

오염원의 모습을 확인한 컬트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함장은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도 ‘그것’을 본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으니까.

알 수 없는 이유로 화질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것’의 외형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그것’의 덩치가 매우 거대한 탓이었다. 주변에 있는 나무들과 어림잡아 비교해 봤을 때 놈의 길이는 족히 200m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오염원은 총 3개의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세 머리는 가운데 머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두 머리는 동일한 외형이었다.

오른쪽과 왼쪽에 달린 두 머리는 사이길08의 토속 생물인 ‘마누크 아르마’처럼 주둥이가 뾰족한 육식룡을 닮았는데 눈으로 보이는 시각 기관이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뿔이 자라나 있었다.

눈이 없는 대신 턱 아래에 있는 길고 얇은 촉수가 감지 기관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화면 속의 이미지에서도 두 개의 머리들은 쉴 틈 없이 촉수를 까딱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가운데 머리. 그 머리는 여섯 개의 거대한 뿔, 마치 왕관을 떠올리게 만드는 길고 넓은 뒷머리 갑각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양 옆에 달린 머리와 다르게 그 머리에는 눈이 있었다. 그 눈은 마치 교활한 뱀처럼 쉴 새 없이 주변을 훑는 중이었다.

뿔, 뒷머리 갑각, 눈. 함장은 저 머리가 가장 높은 주도권을 지닌 머리라 생각했다.

세 개의 머리를 지탱하는 목은 상당히 길고, 또 굵어서 뱀을 연상시켰다. 긴 목과 머리가 닿아 있는 부분에는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촉수 다발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혐오스러운 외형이었는데 몸으로 가면 더 가관이었다.

컬트들이 사용하는 암흑물질로 이루어진 것처럼 새까만 갑각이 놈의 등을 감쌌다. 그 등에는 8개의 회오리 모양의 구덩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구덩이의 가운데에는 파이프와 비슷하게 생긴 관들이 일렬로 자리 잡아 꼬리까지 이어졌다.

관에서 끊임없이 성분을 알 수 없는 기체가 쏟아져 나와 하늘 위로 떠 올랐다. 아마 저 기체들 때문에 함선 카메라가 관측한 이미지의 화질이 떨어지는 것이리라.

등의 갑각에서 내려가면 6개의 다리가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앞쪽 다리 4개, 다른 팔에 비해 훨씬 큰 뒤쪽 다리가 있었다.

어쩌면 놈이 자세를 웅크리고 있어서 팔을 다리로 착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리들은 전부 등과 비슷한 재질의 갑각으로 감싸져 있었고, 관절은 일반 생물보다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거미 같이 다리가 긴 벌레를 연상시켜서 본능적인 혐오감을 줬다.

특히 다리들 사이에는 살들이 접힌 주름들이 가득해서 결코 보기 좋지 않았다.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주는 용도라면 그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했다고 해도 좋으리라.

끔찍하게 생긴 다리 다음으로 마지막으로 꼬리. 머리가 세 개인 놈은 꼬리 또한 다수였다. 몸의 3분의 1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놈의 꼬리는 하반신의 어느 지점부터 두 갈래로 갈라진 상태였다.

즉 꼬리가 두 개라는 뜻. 오른쪽 꼬리는 그 끝에 거대한 집게발을 달고 있었고, 왼쪽 꼬리에는 전갈의 독침을 닮은 침이 박혀 있었다.

“세, 세 머리의 악마….”

누군가가 화면 속 오염원을 보고 중얼거렸다. 함장은 그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놈의 모습은 그야말로 컬트 신화에 등장하는 악룡 그 자체였다.

선원이 말한 ‘세 머리의 악마’이자 컬트 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오염원.

함장은 목청이 찢어지도록 외쳤다.

“당장 저 불경한 존재를 소각하도록!”

“알겠습니다! 좌표 수정합니다!”

코스믹 볼트의 포문(砲門)이 모독적인 존재를 겨눈다.

잠시 후 저 오염원은 제거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말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

새로운 육신을 얻었으나 나는 그 변화를 살펴볼 수 없었다.

보유 에너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완전한 오판이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실시간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괴수의 왕 상태가 된 후, 보조기관의 감지 영역은 어마어마하게 넓어졌다. 내가 서 있는 이 세인토피아02 대륙의 3분의 1에 달하는 범위를 감시할 수 있을 정도니까.

에너지 소비에 더불어 막대한 정보량 속에서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유지했다. 주변에 쓸모없는 정보들에 대한 부분은 최대한 처내고 행성 대기권에서 코스믹 볼트가 떨어지는 것에만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괴물의 촉수로 녀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즈즈 즈즈즈 즈즈(모두 알아서 피해!)]

아마 하늘의 어머니라면 내가 무엇을 말한 건지 이해할 터. 아니 이해해야만 한다.

애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조금이라도 정신을 놨다간 그대로 쓰러져 버릴 것 같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왔다.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코스믹 볼트가 천천히 이곳에 떨어진다. 하늘이 갈라지고 공기가 진동하며 내 발밑의 대지가 요동친다.

정지한 것처럼 느려진 시공간 속에서 나는 고개를 하늘 위를 향해 들었다.

‘신의 회초리!’

칠흑 같이 어두운 검은색의 등, 그곳에 일렬로 난 파이프들이 차례차례 황금색으로 빛난다. 황금의 물결이 내 긴 목들을 타고 올라간다.

빛이 괴물의 촉수들을 통과하고 내 목구멍에 도달한 순간.

나를 통해 신이 징벌의 회초리를 휘두른다.

그것은 번개 같기도 했고, 수백, 수천, 수만 개의 가느다란 열선들이 하나로 합쳐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 번개를 닮은 열선이 총 세 군데에서 나간다는 것.

지상을 태우기 위해 내려오는 검은 화염과 황금색으로 찬란히 빛나는 번개가 격돌한다.

그 순간.

하늘이 찢어졌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이 행성의 대기가 찢어지고 있다. 세 개의 머리가 쏜 번개와 코스믹 볼트가 격돌하면서 막대한 충격파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구름들은 사라지고 자기장이 기이하게 뒤틀린 하늘에서 난데없이 오로라가 발생했다. 기상이변과 함께 주변 하늘에 수십 개의 불꽃 회오리가 하늘에서 땅 위로 내려왔다.

내가 서 있는 땅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강물은 빠른 속도로 증발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의 반경 수km에 달하는 곳의 나무들이 일제히 불에 타올랐다.

‘큭!’

성체에 괴수의 왕, 거기다가 뇌신의 힘이 담긴 신의 회초리까지.

이 정도라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만만치 않다. 나는 번개를 토해내는 와중에도 남은 에너지를 가늠해봤다.

‘앞으로 잘해봐야 3분!’

사이오니움 효과야 풀리지 않겠지만 괴수의 왕과 신의 회초리는 다르다. 에너지 잔량이 다 떨어지면 바로 취소된다.

‘조금만 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번개가 검은 화염, 코스믹 볼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좀 더 밀어붙인다면 제국모함도 과부하가 걸려 코스믹 볼트가 강제로 중단될 터.

여기서 좀 더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수십 개의 열선들이 내게 쏟아졌다.

‘모함전단!’

코스믹 볼트에 신경을 쓰느라 보지 못했는데 어느새 컬트의 군함들이 하늘에 떠 있었다. 제국모함이 나와 격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모함전단 소속의 군함들이 지원을 온 것이었다.

‘여기서 나눠서 공격하는 것은 힘들어!’

괴수의 왕 효과 덕분인지 저들이 쏜 열선은 내게 치명상을 주지 못했다. 아픈 것은 사실이지만 버틸 수 있다.

다만 열선이 계속 쏟아지는 바람에 집중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뭔가 방법이…아!’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나는 남은 에너지를 계산해봤다.

‘가능해!’

신의 회초리를 쏘면서도 저 귀찮은 날파리 같은 배들을 처치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단점으로는 괴수의 왕을 지속하는 시간이 약간 줄어든다는 것이지만.

내 의지를 받아들인 괴물의 촉수가 움직인다. 머리가 세 개인 만큼 뒷머리와 목에 나 있는 괴물의 촉수도 세 군데에서 생성된 상태다.

‘그러니 사이킥 브레스도 세 방향으로 쏠 수 있지.’

그동안 나는 사이킥 브레스의 방향을 딱히 조종한 적 없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집중을 유지해야 한다는 제약만 있지 방향 자체는 조종이 가능할 거다.

유일한 문제는 내가 실제로 시도해 본 적이 없다는 것.

또다시 도박을 해야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내가 지면 전멸이다. 지금이야말로 승부수를 던질 때다.

좀 전에 금색으로 빛나던 파이프가 이번에는 보라색으로 번쩍였다. 신의 채찍을 쓴 것과 비슷하게 꼬리 끝부터 보라색 빛이 차례대로 위로 전진했다.

그동안 나는 괴물의 촉수들을 목표 쪽으로 겨냥하기 위해 애썼다.  세 개의 머리에 있는 괴물의 촉수를 동시에 조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에이모프의 뛰어난 감각이 나를 돕지 않았더라면 바로 실패했을 정도로 섬세한 작업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 눈과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지만 무시했다.

뇌가 타버릴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지만, 결국 성공했다. 괴물의 촉수들이 나의 명령을 듣고 적 함선들이 있는 방향을 조준했다.

‘됐어!’

보라색의 사이킥 파워를 모조리 흡수한 괴물의 촉수가 지휘자의 지휘봉처럼 부드럽게 흔들린다.

지휘에 맞춰 번개를 토해내는 용의 머리 앞에 보라색 구체가 떠오른다.

전에 사이킥 브레스를 쓸 때도 그 크기가 제법 거대했는데, 지금은 200m 이상이 된 내 몸에 맞춘 것인지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내가 만든 사이킥 파워의 정수를 감지한 것인지 적 함선들이 허둥지둥 물러나려고 한다.

‘어딜 가시게.’

도망치는 그들의 꽁무니를 향해 용의 숨결이 작렬했다. 수km 밖까지 뻗어 나가는 보라색 열선이 함선들을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대규모 폭발만이 남았다.

내 열선의 범위를 벗어난 함선들은 재빨리 행성 대기권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렇지 못한 함선들은 합금의 비가 되어 대지 위로 추락했다.

‘이제 잘해봐야 2분, 아니 1분 정도 남았나?’

함선들을 후퇴시킨 나는 모든 정신을 신의 회초리를 쏘는데 쏟아 부었다.

잔량 에너지가 거의 바닥에 가까워지니 시야가 흐려진다. 나의 몸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팔과 다리는 힘이 빠져 후들거린다.

언제나 나와 함께 생사를 헤쳐 나온 턱 아래 보조기관만이 나에게 계속해서 에너지 소모량을 보고하고 있을 뿐이다.

‘제발!’

「■■■■■■■■■■■■■■■■■■■■■■■!」

마지막으로 나는 절규하듯 포효하면서 번개를 쏟아냈다.

그것이 통했던 것일까.

모든 것을 절멸시키기 위해 내려오던 코스믹 볼트.

반경 수백 m에 달하는 검은색 열선이 고장 난 전등처럼 깜빡이더니 그대로 소멸했다.

이무기가 승천해서 용이 되듯, 내가 쏜 번개는 아무런 장애물 없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어서 저 높은 하늘 위에 두 번째 태양이 떠올랐다.

그것이 신의 회초리에 의해 파멸한 제국모함이 내는 마지막 섬광이라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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