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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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의 우주선들은 우아한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다. 특히 정화 임무에 투입되는 제국모함은 가공된 다이아몬드를 닮아서 우주의 보석이라 칭하는 자도 있다.
어찌 보면 정확한 별명일지도 모른다. 제국모함의 생산비와 유지비는 어마어마하니까.
아름다운 우주의 보석이자 컬트 제국의 보물 제국모함, 그중 하나인 ‘다모스08의 심판자’.
컬트 제국의 안보를 위해 헌신하던 그 배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코스믹 파워의 흐름이 역행! 과부하가 200%를 넘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함선이 붕괴합니다!”
당장에라도 산산조각날 것처럼 흔들리는 상황실. 내부를 화려하게 빛내던 장식품들은 모두 떨어져 깨지고, 컴퓨터를 비롯한 기계 장치에서는 연신 스파크가 튀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서 있는 컬트 선원들이 다급하게 전황을 알려왔다.
“모함전단은 어떻게 됐습니까!”
“적의 사이킥 파워 공격으로 30%가 침묵 중!”
“겨우 일격으로?! 말도 안 돼!”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함장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상황실 중앙에 있는 이미지들을 확인했다.
제국모함이 다루는 암흑물질은 섬세하면서도 위험한 힘이다. 제국모함에 부착된 첨단 모듈들은 단순히 코스믹 볼트를 충전하고 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야수, 암흑물질을 통제 및 조율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모함의 상태를 전부 살핀 함장은 결정했다. 그는 사이킥 파워를 퍼뜨려 선내의 선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내에 있는 선원들에게 알린다. 전원 탈출선으로 후퇴하라.」
“함장님!”
“하, 하지만!”
선원들은 깜짝 놀랐지만 함장은 어디까지나 냉정했다.
“난 여기서 남겠다. 너희들은 이곳을 떠나라.”
“예?!”
“코스믹 볼트의 출력을 제어하는 장치가 망가진 상태다. 선원들이 탈출하기 전까지 누군가는 붙잡고 있어야 해.”
그렇게 말한 함장은 선원들 사이에 내려와서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사이킥 파워로 이루어진 이미지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온 그는 사이킥 파워 사용과 함선 컴퓨터 조작을 병행했다.
그 모습을 본 선원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뭐 하는 거지? 빨리 탈출하라니까!”
“…….”
부하들을 위해 희생하려 하는 함장을 본 선원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어서 도망쳐!”
“…죄송합니다!”
“윽?!”
젊은 선원 중 하나가 품에서 총을 꺼내 함장의 목뒤를 후려쳤다.
짧은 신음과 함께 기절한 함장. 쓰러지려는 그를 선원이 조심스럽게 지탱했다.
“함장님을 부탁하지.”
“탈출선까지 갈 수 있도록 우리가 최대한 시간을 벌어볼게.”
“자자, 시간이 없어. 모두 자리로!”
“저 새끼, 늘 함장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큭큭큭.”
유쾌한 표정의 컬트 선원들. 그들은 존경하는 함장을 희생시키는 대신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기로 한 것이었다.
젊은 컬트는 그들의 등을 한 번씩 눈에 담아둔 뒤, 함장을 등에 업었다.
상황실을 나선 그의 뒤에 컬트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용맹한 컬트들이여! 섭리가 우리를 거두시길!”
“섭리가 우리를 거두시길!”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반드시 제국에 전하겠다고 맹세한 그는 조용히 읊조렸다.
“섭리가 그들을 거두시길….”
잠시 후, 제국모함으로부터 수많은 탈출선들이 발사되었다. 일부는 주변에 있는 모함전단의 함선들에 인계되었고, 일부는 우주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탈출선이 발사될 때까지 견디던 제국모함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는지 붕괴하기 시작했다.
정제된 다이아몬드처럼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던 함선의 외장갑이 크게 뒤틀리며 부서지고, 중앙 상단에 위치한 상황실은 폭발과 함께 산화했다.
함선 중앙에 있는 코스믹 볼트 발사기관이 마치 무언가에 빨려들아가는 것처럼 급격히 우그러졌다.
망가진 장갑 틈 사이로 암흑물질들이 밖으로 삐져나오려고 하는 그때.
사이길08로부터 날아온 황금색 번개가 검은색 에너지를 강타했다.
곧 초신성을 연상시킬 정도로 엄청난 빛이 모함과 모함전단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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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겼구나.’
제국모함이 폭발하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그대로 기절했다. 아직 남은 배들이 적지 않았기에 이대로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의지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저쪽이 물러난 것 같은…응?’
괴수의 왕 후유증인지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있는데도 뭔가가 입속으로 계속 꾸역꾸역 들어온다.
둔해진 미각을 일깨우는 그것의 정체는 생물의 고기였다. 혼드 기간트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고기들을 누군가가 내게 먹이는 중이었다.
바싹 구워진 고기들이 목구멍을 통과해 빠르게 소화되고, 활력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생겨났다. 외부의 파장에도 전혀 반응하지 못하던 괴물의 촉수와 보조기관도 조금씩 활성화 되었다.
그제야 나는 내 몸 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내 몸은 현재 사이오니움의 효과가 끝나 다시 준성체 상태로 돌아온 상태였다. 나를 보조하는 두 개의 머리는 사라졌고, 다리 역할을 하던 맨 아래쪽 전투용 팔은 다른 팔과 비슷한 외형으로 돌아왔다.
사이오니움을 통해 잠깐 성체로 진화했던 내 몸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감각이 회복되는 중에도 내 입 속으로 정체불명의 먹이가 들어오는 일은 계속됐다. 나는 턱 밑에 깔려 있던 보조기관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 나서야 누가 나에게 먹이를 먹이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에너지가 부족할지도 몰라! 계속 먹여야 해!」
「큰애기야! 죽으면 안 돼!」
「나」「기도」「큰어른」「생존」
내 머리 근처에 녀석들이 모여 있다. 하늘의 어머니와 아드하이가 먹이를 가져오면 26호가 그 먹이들을 적당히 잘라 내 입에다가 쑤셔 넣었다.
‘먹이를 뭐 이리 빨리 가져오지?’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게 위해 눈을 떴다. 촉수로 새까맣게 탄 동물을 토막 내고 있던 26호, 작은 동물 시체들을 나르는 아드하이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큰애기가 깨어났어!」
「큰어른」「생존」「확인!」
26호는 몸을 밝게 빛냈고, 아드하이는 입의 촉수들로 붙잡은 소동물 시체를 내던지고 내게 달려왔다.
「멈추지 마! 아직 체력이 덜 회복되었을 테니까!」
「응!」
「인정」
내 생존을 보고 기뻐하는 녀석들에게 하늘의 어머니가 사념을 쏘아 보냈다.
멀리 불에 활활 타고 있는 나무 사이에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온몸의 털이 그을린 그녀는 등 위에 대형 생물의 고기를 지고 있었다.
‘불?’
나는 시선을 올려 위를 바라봤다.
그곳에 불타는 하늘이 있었다.
제국모함이 파괴된 후, 그 잔해들이 유성우가 되어 지금도 행성 위로 쏟아지는 중이다. 그 모습을 보건대 이곳 주변만 불타는 것이 아닐 거다. 세인토피아02 대륙 전체, 아니 PH-101 행성 전체의 대륙들이 불바다가 됐겠지.
‘과연.’
입에 들어오는 먹이가 바비큐 맛이나 탄 고기 맛이 나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제 알겠다. 숲에서 불타 죽은 생물들의 고기를 집어다가 내게 갖다 준 것이다.
내가 정신을 차린 뒤에도 셋은 쉬지 않고 먹이를 내게 먹였다. 녀석들에게 괜찮으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 자리의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나는 아기새마냥 얌전히 먹이를 받아먹으며 생각했다.
‘시체를 쉽게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면 위험했겠어.’
괴수의 왕 효과는 매우 뛰어났지만 그 반작용이 심상치 않다. 제한 회수 이상으로 쏘면 정신을 잃게 만드는 사이킥 브레스, 잔여 에너지가 부족하면 폭주하게 만드는 사냥의 표상만큼이나 위험한 부작용이다.
‘변신 한 번 했다고 이 정도라니.’
에이모프는 성체가 되면 보유한 에너지의 사용 효율이 크게 증가한다. 성체로 변하지 않았다면 괴수의 왕 때문에 에너지가 순식간에 바닥나 죽었을 거다.
실제로 깨어나기 전까지 보조기관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바낙난 상태였다. 성체가 아니었다면, 아니 나 혼자였다면 제국모함을 해치운 뒤에도 아웃이었다.
‘애들이랑 하늘의 어머니 덕분에 살았어.’
내가 지금까지 숨이 붙어 있는 것은 그들이 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다.
‘아군이라.’
아까는 상황이 너무 급해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분명 메시지에 ‘아군’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아군이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니다.
에이모프는 시스템상 타 생명체들과 교류할 수 없는 존재. 오로지 사냥, 살육만 반복하는 살인기계 같은 종족이다.
그런 에이모프가 동료를 만드는 것을 시스템이 인정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나, 아니 에이모프는 진화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사회성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들은 자기보다 강한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육식동물이라면 위험부담이 큰 먹이를 수적 우위를 통해 제압할 수 있다.
높은 사회성을 지닌 인간을 봐도 그렇다. 인간은 생존에 불리한 요소들을 다수 지니고 있지만 그 사회성 덕분에 번성할 수 있지 않았는가.
‘공생물 포자를 쓸 때만 해도 그런 메시지는 뜨지 않았는데….’
그 말은 이전과 지금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인데, 짚이는 바가 있다.
‘우주괴물 타입.’
나는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열어 맨 아래에 위치한 타입을 확인했다.
「⑥ 우주괴물(유일): 완전한 유기체(유일), 악몽의 지평선(유일), 유기적 진화(유일)」
거기에는 기존에 각각 육체 관련 타입과 둥지 관련 타입으로 분류되던 ‘완전한 유기체’와 ‘악몽의 지평선’이 옮겨져 있었다.
전부 초월 1단계, 즉 ‘유일 특성 합성’ 시스템을 활용해서 얻었던 특성들이다.
‘…둥지 관련 특성을 미리 얻어두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타입은 한번 획득할 때마다 새 타입을 획득하기 위한 특성 요구 개수가 기존에서 2배로 증가한다.
가령 둥지 강화 타입과 특수방어 강화 타입 2개의 요구 특성 개수가 각각 8개라고 치자. 이때 둥지 강화 타입을 먼저 획득할 시, 특수방어 강화 타입 타입을 획득하는데 필요한 특성 수는 16개로 증가한다.
문제는 이렇게 타입을 얻기 위한 특성 요구 개수가 증가한 상태에서 이미 획득한 타입의 특성이 빠지는 경우다.
융합 재료로 써서 다른 타입과 관련한 특성이 되거나, 아니면 유일 특성 재료로 쓰거나 하면 특성이 소모되는 경우 말이다. 그럴 때는 이미 획득한 타입도 미획득한 것으로 간주, 강화 효과를 상실한다.
주의해야할 점은 타입 필요 개수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입을 얻을 때는 8개만 있어도 됐지만, 타입 획득 후 필요 개수가 16개로 증가한 상태라면? 특성을 16개까지 채워야 타입 강화 효과를 받는다.
‘누굴 엿 먹이려는 것도 아니고. 이걸 메시지 하나 없이 마음대로 바꾸네.’
혹시라도 내가 확보한 특성 수가 적거나 했다면 둥지 강화 타입을 잃어버리는 등의 큰 손해를 봤을 거다.
다행인 것은 내가 초월 2단계로 진입하기 전, 14시간 동안 늪지대를 돌면서 잡다한 특성들을 다수 확보했다는 것.
당시 ‘집게발’ 특성 말고도 감염 관련 특성과 둥지 관련 특성을 몇 개를 획득했다. 덕분에 지금처럼 특성이 제멋대로 이동해도 타입 효과를 상실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는 재료로 쓸 수 있을까 싶어 모아 뒀는데 전화위복이 됐어.’
아무튼 유일 특성을 합성시키는 시스템으로 확보한 특성들만 새로운 타입에 옮겨 간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더 강력한 괴물로 변신하는 ‘완전한 유기체’, 함선을 침식 및 지배하는 ‘악몽의 지평선’. ‘거대생물’ 특성과 ‘왜소화’ 특성을 교체하면서 쓸 수 있는 ‘유기적 진화.’
‘에이모프의 한계를 넘나드는 특성이야.’
게다가 타입 중 ‘유일’ 타입은 게임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처럼 설명이 첨부된 타입도 없지.’
에이모프가 획득하는 모든 타입에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어떤 종류의 특성들이 속하는지 전혀 설명이 없다. 오로지 플레이어가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만 한다.
그게 원칙인데도 우주괴물 타입에는 유일급 타입이라 그런지 설명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우주괴물 타입에 딸려온 텍스트박스를 열었다.
「우주괴물(유일):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종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해당 타입은 ‘초월’ 시스템으로 획득한 특성이 추가될 때마다 단계적으로 부가효과를 받습니다. 해당 타입은 타입 획득으로 발생하는 페널티를 무시합니다.
*1단계(필요 특성 개수 3/4)
*2단계(필요 특성 개수 3/8)
*3단계(필요 특성 개수 3/??)
*4단계(필요 특성 개수 3/??」
내용을 보니 왜 설명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초월 2단계 보상답게 타입 효과도 상당히 특이했다.
‘단계적으로 강화시켜 주는 타입은 처음 보네.’
일반적으로 타입은 해금만 했을 때는 아무런 효과도 없고, 조건을 채워서 ‘획득’한 뒤에야 비로소 효과를 발휘한다. 우주괴물 타입처럼 특성 몇 개 이상 모으면 특별한 효과를 주는 경우는 없다.
‘무슨 효과를 주는지는…역시나 안 쓰여 있어.’
단서가 전혀 없어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매우 강력한 효과를 주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제 남은 것은 특성 강화 시스템인데….’
바로 확인하고 싶지만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든다. 배가 서서히 불러오고 주변에 난 화재 때문인지 땅도 뜨뜻하니 자고 싶다는 욕망이 마구 샘솟는다.
「큰애기야, 졸리면 자도 돼.」
「큰어른」「피곤함?」
「…급한 불은 껐지만 쉬는 게 좋을 거야. 게임에는 없던 특성이니까 어떤 부작용이 닥칠지 모르잖아.」
나 때문에 힘들 텐데도 쉴 것을 권하는 그들.
「즈즈….(고마…)」
나는 감사의 뜻을 제대로 표하지도 못하고 급격히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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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이자 태양계에서 가장 작은 행성인 이곳은 공식적으로 메가콥의 노블캐피탈 중 가르멜다의 지배를 받는다.
달을 소유한 유진 가문, 수성을 지배하는 가르멜다 가문, 화성의 위성 포보스와 데이모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티앤씨, 가니메데를 두고 경쟁하는 프라임캐피탈 등등.
이처럼 메가콥의 7개의 가문들은 태양계의 여러 위성과 행성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보통 노블캐피탈이나 프라임캐피탈들이 다른 별의 구매하게 되면 가문 사람을 총독으로 보내 대리 통치를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가르멜다만은 약간 달랐다.
가르멜다 가문의 현(現) 가주 클로에 가르멜다. 그녀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수성에 위치한 무기 연구 시설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았다.
오죽하면 그녀의 별명이 ‘수성의 여왕’이겠는가.
가주가 가문을 돌보지 않으니 그녀의 입지가 흔들릴 만도 한데 놀랍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개발하는 장비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무기, 강화복, 병사들을 강화시키는 특수 약물까지.
매년마다 새로운 살인병기를 창조해내는 그녀 덕분에 가르멜다는 역대 최고로 부유한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젊은 나이, 가문 일에 관심이 없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장로들의 강한 지지를 받았다.
그 정도로 뛰어난 무기 개발자인 수성의 여왕이 오늘 드물게도 휴가를 냈다.
“최근에는 가주님께서 휴가를 자주 쓰시는군요. 몇 주 전에도 휴가를 쓰시더니.”
바이오 돔 형태의 가르멜다 무기 연구 기지에서 연구원들이 보도를 거닐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돔 중앙을 향했다. 저 중앙 지하에는 클로에 가르멜다의 가주용 거주지에 위치하고 있다.
“잘 됐지. 지나치게 일에 열중하시니까. 저러다 몸이라도 상하시면 큰일이야.”
“가주님께서 안 계시는 동안 저희끼리라도 신장비 테스트나 한 번 더 돌려봅시다.”
같은 시설의 하수인들에게 지지를 받는 클로에는 현재 가주용 거주지에 위치한 어느 공간에 있었다.
어두컴컴한 그곳에는 전선들이 연결된 다이아몬드 비석들이 쓰러져 있었다. 이 중에서 단 2개의 비석만이 불이 들어와 공중에 떠 있었다.
특수 개발된 공중 부양 의자에 앉아 있던 클로에는 비석 2개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이슨 오빠, 제국모함 파견 건은 어떻게 됐어? 내 위성은 중간에 쪼개져서 상황 파악이 안 되거든?”
「나도 그게 궁금하군. 모함전단들 때문에 첩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제이슨, 클로에, 주바카.
각각 컬트, 메가콥, 스타유니언의 권력자인 그들은 몇 주 전 악명 높은 5위 랭커 에이모프를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5위 랭커가 숨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PH-101, 컬트들이 사이길08이라 부르는 행성이 오염되었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컬트 의회가 정화 명령을 내리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제국모함 ‘다모스08의 심판자’가 사이길08으로 향했다.
제국모함을 수호하는 모함전단이 사이길08 주변에 있는 메가콥, 스타유니언의 위성을 모조리 파괴하는 바람에 클로에와 주바카는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정화 명령이 내려진 지 시간이 제법 지난 지금,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제이슨을 부른 것이었다.
“준성체니까 크게 어렵지는 않았겠지?”
「모프박이니까 모른다. 모함전단에 제법 큰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겠군.」
“어차피 다들 장난감인데 뭘 신경 써. 망가지면 다른 애들로 채우면 되지.”
「메가콥답게 인명 경시 사상으로 가득 찬 발언이군.」
“뭐래. 독재자가.”
클로에와 주바카가 이처럼 여유롭게 농담따먹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에이모프가 토벌되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5위 랭커가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행성의 모든 생물을 말살시키는 제국모함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 약간의 저항이 있었을 수는 있지만, 필시 모함이 쏜 코스믹 볼트에 의해 한 줌의 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지도 않던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갑자기 들려온 맑은 여성의 목소리가 잔혹한 현실을 그들에게 일깨워줬다.
「오랜만입니다. 클로에 님, 주바카 님.」
“어? 신시아? 네가 왜 제이슨 오빠의 비석을….”
「…….」
손톱을 다듬던 클로에는 비석에서 흘러나오는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주바카는 놀라기 보다는 불길한 느낌을 받은 것인지 침음성을 흘렸다.
「평소라면 제 비석을 활용하겠지만 상황이 급박하여 제이슨 님의 비석을 대리로 사용했습니다.」
“급박? 뭐가 급박한데?”
「…설마?」
「제이슨 님께서 주도하신 정화 명령은 완전히 실패. 제국모함과 모함전단은 전멸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의회에서는 섭리를 어기고 성지를 공격하려고 한 제이슨 님을 규탄하는 중입니다. 제이슨 님은 출석 명령에 불응, 현재 은둔 중이십니다.」
“…….”
「…….」
「저도 예언을 잘못 해석한 죄로 온종일 청문회에 불려 다니다가 간신히 이곳에 온 겁니다. 부디 양해해주시길.」
상상하던 미래 중 최악의 미래가 현실화됐다.
그 사실을 깨달은 클로에는 자기도 모르게 들고 있던 네일 그라인더를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