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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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들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규정한 ‘성지’에 궤도폭격을 가하는 것.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일은 아니다.
아니, 까놓고 말해 매우 드문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지는 컬트들이 신성시하는 ‘섭리’에 언급되는 구절을 예언자들이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해석한 뒤 지정하는 행성이기 때문이다.
섭리는 컬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경전이자 규범 같은 것.
그래서 섭리에 언급된 성지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설령 제국에 위험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원래는 그렇다만.’
아무리 신실한 신도라고 해도 종종 신앙과 현실 사이에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컬트들 또한 마찬가지다.
극히 예외적으로 성지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염물에 의해 행성 전체가 침식당하는 경우다.
제이슨도 그 점을 노리고 컬트 의회와 원로원을 강하게 압박해 정화 임무를 성사시켰던 것이다. 예언자들의 모임, 예언자회 소속인 신시아 또한 섭리의 기존 해석에 오류가 있다며 지원사격을 했고.
컬트 제국의 3대 권력기관인 의회, 원로원, 예언자회가 움직였기에 섭리에 위배되는 정화 명령이 이행될 수 있었다.
만약 정화 명령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지금처럼 문제시되지 않았을 거다. 컬트 제국에서 가장 위험시하는 오염물이 제거된다면 제이슨의 반대파도 비판할 명분을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화 임무는 실패했고 제국모함과 모함전단은 궤멸되었다.
제국에 엄청난 손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섭리를 어기면서까지 정화 임무를 추진한 제이슨과 신시아의 입장이 난처해진 것이다.
어떻게 일이 잘 풀려서 제이슨에 대한 압박이 줄어든다고 해도 그가 예전만큼의 권력을 되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수명이 긴 컬트는 종족 특성상 다른 세력으로 이주한 컬트를 제외한 대부분인 보수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들은 제이슨의 실수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게다가 진짜 큰 문제는 따로 있어.’
신시아는 제이슨이 의회의 출두 명령을 피해 은둔에 들어갔다고 했지만, 클로에는 그가 뭘 하고 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은둔은 지랄.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겠지.’
스페이스 서바이벌을 좀 오래 한 사람이라면 안다.
성지에 제국모함을 보내는 행위는 컬트가 아닌 플레이어나 할 법한 행위라는 것을.
5위 에이모프 랭커도 자기를 공격한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거나, 얼마 안 가 알게 될 확률이 높다.
즉, 저 악명 높은 모프박이가 노리는 다음 타깃은 바로 제이슨이라는 것.
‘놈이라면 우주 끝까지 쫓아가도 남을 걸.’
클로에도 겪은 적이 있어서 잘 안다. 5위인 줄 모르고 진화를 방해했다가, 놈의 보복 때문에 게임을 접을 뻔했으니까.
제이슨도 비슷한 경험을 한 거로 알고 있다. 그는 커뮤니티에 사과글을 올릴 정도였으니 그녀보다 더 심하게 당했다고 봐야 할 터.
‘…나도 도망쳐야 하나.’
클로에가 생각에 빠져 있는데, 침묵을 유지하던 비석 중 하나가 빛을 내뿜었다.
주바카의 비석이었다.
「함선이 전멸했다면 관련 기록은 어떻게 됐지?」
「관련 기록이라 하시면?」
「전멸이라고 해서 전부 전사했다는 뜻은 아니지 않나.」
“그게 무슨 말이야?”
「군사적으로 전멸이란 개념은 임무를 계속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전투 기능을 상실했을 때 사용하지. 모함전단이 전부 소실되었다고 해서 탈출자가 아예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중 주바카는 유일하게 군 관련 종사자다. 그는 스타유니언의 대수령이자 기계함대의 총사령관을 겸하는 자. 그래서 신시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파악했다.
주바카의 말에 신시아가 대답했다.
「모함전단에서 귀환한 함선은 50척 중 1척. 그마저도 반파되면서 선원 중 80%가 사망했고, 자동 운항으로 귀환한 것입니다. 제국모함 ‘다모스08의 심판자’의 함장은 전사했고, 탈출선에 탑승해 살아남은 자는 20명에 불과합니다.」
「반파 원인은 뭐지?」
「조사 결과, 정체불명의 에너지 발사체로 인해 코스믹 볼트의 암흑물질이 역행, 폭발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살아 있는 선원들은 뭐래?”
「…….」
클로에의 질문에 신시아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물어보면 술술 대답하던 신시아가 처음으로 머뭇거린 것이었다.
“뭐라고 했는데?”
「…번개를 부리는 세 머리의 악마라 했습니다.」
“어…설마?”
「Пиздец(빌어먹을)!」
세 머리의 악마. 그 별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클로에는 잘 안다.
“놈이 벌써 성체로 진화했다고?”
「성체라면 모함전단이 전멸한 것도 이해가 가는군.」
에이모프는 대기만성 종족답게 뒤로 갈수록 매우 강력해진다. 에이모프 성체는 정예군과 정예 함대와 싸워서 제압할 수 있다.
게다가 제국모함과 모함전단을 궤멸시킨 것을 보면 유일급 특성도 다수 확보했을지도 모른다.
「에이모프 성체라면 우리도 위험해진다. 알고 있겠지?」
“칫, 영감님에게는 내가 연락할게.”
「그리고 신시아. 놈을 촬영한 영상, 지금 띄울 수 있겠나?」
「화질이 좋지 않습니다만.」
「지금 화질 운운할 상황은 아닌 것 같군.」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응?」
“왜 그래…어라?”
셋이 대화하던 도중 바닥에 누워 있던 비석 하나가 허공에 떠올랐다.
이윽고 비석이 빛나고 늙은 남성의 목소리가 어두운 공동 내에 울려 퍼졌다.
「오랜만이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속담처럼 새 참여자는 클로에가 평소에 영감님이라 부르는 그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평안하셨는지요? 아키라 유진님.」
메가콥의 CEO이자 지구의 오래된 왕, 아키라 유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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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살겠네.’
제국모함의 공습을 막아 낸 지 이틀째 되는 날. 나는 겨우 전처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첫날에는 꼼짝도 않고 잠만 잤다. 중간에 깨면 26호와 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가 가져다 놓은 먹이를 먹어 허기를 달래고 다시 잠들었다.
그야말로 감기 몸살 환자처럼 정신없이 쉰 덕분에 마침내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온종일 나를 헌신적으로 간호한 26호와 아드하이는 내가 정상적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쓰러졌다.
26호는 피곤함 때문이었고, 아드하이는 정말로 생명이 위독해서였다. 지난번 혼드 기간트에게 공격당해 갈비뼈와 날개가 부러졌음에도 계속 먹이를 날랐으니까.
나는 급히 녀석들에게 공생물 포자를 붙인 뒤, 땅속 둥지로 옮겼다. 제국모함과의 대결로 인해 둥지의 80% 이상이 붕괴했지만, 26호와 아드하이가 누워도 될 정도의 자리는 남아 있다.
깨어나면 허기를 달랠 수 있도록 먹이들까지 넣어 둔 나는 현재 하늘의 어머니와 함께 이동 중이었다.
「추락한 함선 중에서는 이쪽에 있는 게 거리가 제일 가까워.」
“그런 것 같군.”
그녀 말대로다. 저 숲 너머에서 보조기관 끝에서 강한 열기에 그을린 합금판의 냄새가 은은하게 난다.
지금 우리는 나의 사이킥 브레스를 맞고 추락한 컬트 함선들을 찾아나서는 중이다.
추락한 함선 대부분은 바다나 다른 대륙에 떨어졌지만, 몇몇 배들은 우리가 있는 세인토피아02 대륙에 추락했다.
‘실험해볼게 생겼어.’
추락해서 크게 손상된 배도 지배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 말이다. 혹시라도 지배가 가능하다면 그 배도 침식 대상으로 고려해도 좋을 터.
‘본래는 심해의 연구기지를 타고 떠나려고 했지만.’
연구기지는 블랙실버로 만들어진데다가 크기도 매우 거대하다. 내가 침식한 뒤에도 블랙실버 효과가 여전히 남아 있다면 이후 우주에서 만날지도 모르는 컬트들과 싸울 때 큰 힘이 될 거다.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크니 승선한 적들을 훨씬 쉽게 농락할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물론 단점도 있어.’
크기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피격 면적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함대전 중에 피격 면적의 증가는 사실 득보다는 실이 많다.
물론 내가 배의 내구도를 강화시킬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공격을 안 맞는 것은 아니니까.
또한 블랙실버라는 재질도 양날의 검이다. 내가 사이킥 브레스를 쓸 때 제한을 어떤 영향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 컬트 함선은 전투용으로 더 적합해.’
지난번 스페이스독의 배를 탈취했을 때 이미 경험한 바다.
메탈릭 그렘린의 습격을 방어하면서 배에 있는 무장을 적극적으로 운용했다.
하물며 그 배는 전투용이 아니라 무역선이었다. 컬트의 군함을 침식해 지배한다면 훨씬 강할 테지.
‘뭐 이것도 손상이 얼마나 됐을지, 침식은 가능할지 아직 모르니까.’
하늘의 어머니는 나 이상으로 시력이 뛰어나다. 그녀라면 이미 추락한 배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른다.
“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추락하면서 땅에 처박히는 바람에 조금밖에 안 보여. 땅 위의 부분만 봐서는 손상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군.”
나는 옆에서 달리는 하늘의 어머니를 흘낏 쳐다 봤다.
잘 익은 보리밭을 연상시키는 황금색 털. 지금은 윤기가 흐를 정도로 말끔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나는 기억한다. 나를 간호할 때 온몸에 그을림이 잔뜩 묻었던 그녀의 모습을 말이다.
26호, 아드하이와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나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언젠가는 보답해야겠지.’
그녀의 행위가 나와 맺은 계약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은 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의 어머니가 나를 간호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녀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미안하다는 말을 못 했지.’
아드하이를 지키지 못한 죄로 그녀를 잡아먹으려고 했지만 오해였다.
26호와 하늘의 어머니에게 뒤처진다고 느낀 아드하이가 돌발행동을 한 것이었지, 그녀는 잘못이 없었다.
사과하려고 했지만 연달아 일이 터져서 아직 말을 못 꺼낸 상황이다.
「이 앞에 배가 있어. 너도 알겠지만 생존자들이 몇몇 있는 것 같네.」
“잠깐. 그 전에 할 말이 있다.”
「할 말?」
나는 빠르게 움직이던 다리를 멈춰 제자리에 섰다. 내가 갑자기 멈추자 그녀도 따라 달리는 것을 그만뒀다.
우아한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를 보고 말했다.
“지난번 아드하이와 관련한 일.”
「응?」
“ 내가 오해했다. 그러니 사과하고 싶다.”
「어. 어어?」
내 사과를 들은 그녀가 눈을 껌뻑인다. 자기가 들은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그녀가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 봐.」
“너를 믿지 못해 미안하다.”
재차 사과한 나를 보고 하늘의 어머니가 입을 쩍 벌렸다.
“내가 경솔하게 판단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도록 하지.”
「솔직히 지금 안 믿기는데, 한 번만 더 말해줘.」
“…미안하다. 앞으로 조심하겠다.”
그녀는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이해했는지 더 이상 나를 놀리지 않았다. 그녀는 진지한 눈으로 내 눈을 마주봤다.
「알았어. 내가 사과를 받을 입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드하이를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니 나도 사과할게.」
“알았다.”
「그럼 이걸로 끝.」
“좋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와. 게임에서도 못 들어 본 모프박이 사과를 여기서 들을 줄이야. 믿을 수가 없네.」
그녀는 감탄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게임에서는 그녀에게 사과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고 지적할까 했지만 관뒀다.
‘쩝. 내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보조기관에서 무언가의 움직임이 잡혔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발소리와 긴장한 상태를 드러내는 심장 소리, 땀과 쇠가 뒤섞인 독특한 냄새.
이를 종합해 보면 적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즈즈즈(적이다)]
「그러네.」
나보다 살짝 늦게 인지한 하늘의 어머니의 시선이 나무들 사이를 향했다.
「컬트 생존자들이야. 수는….」
[즈즈(여섯)]
「무장은 퍼플 스프레이건을 제외하고는 조잡한 수준이야.」
[즈즈즈 즈즈즈(어렵지 않겠군)]
하루 동안 쉬었던 몸을 풀기에는 적당한 상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