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50화 (151/400)

Ep. 150

-

‘메가콥의 노블캐피탈이 나를 찾으러 왔다고?’

이곳은 사이길08 행성이 속하는 성계의 끝자락.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이곳은 컬트 제국의 영향에서도 벗어나 있지만, 메가콥의 권역과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

네른은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컬트식 탈출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함선과 함재기들이 이 거대한 우주선의 정박장에 배치되어 있었다.

화성의 프라임캐피탈이 건조한 백색의 군함, 우주도시 건축으로 유명한 노블캐피탈 가문이 만든 직사각형 형태의 초계함, 그리고 스타유니언에서 주로 사용하는 함재기들까지.

그가 알기로 메가콥의 노블캐피탈들은 매우 배타적인 존재다. 같은 급의 함선을 운용하더라도 세부 무장이라든가, 내부 구조를 바꾼다고 할 정도니까.

상대가 정말 유진 가문의 인간이라면 지금처럼 가문과 종족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한 함선을 운용할 리 없었다.

“유진 가문치고는 참으로 다양한 배를 지니고 있군. 수상할 정도로 말이야.”

“제 가문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군요.”

“메가콥 또한 제국의 잠재적인 적이니 당연히 알아야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현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녀는 네른에 목에 댄 칼을 치웠다. 예리한 칼날 형태를 띠던 그녀의 팔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옆에서 부하를 붙잡고 있던 기괴한 슈트의 존재도 제압을 풀었다.

“…뭐 하는 거지?”

“할 얘기가 있으니 따라오시죠.”

선택지가 없었기에 네른은 얌전히 시현 유진의 뒤를 따랐다. 기괴한 슈트의 존재는 선원을 다른 승무원에게 넘기고 네른의 뒤에 따라붙었다.

“그는 손님으로 대우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자꾸 뒤를 보는 네른에게 시현 유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깔끔한 백색 복도를 지나 시현 유진이 네른을 안내한 곳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응접실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마호가니 탁자 앞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기괴한 슈트의 존재는 관심이 없다는 투로 한쪽 벽에 몸을 기댔다.

‘부하인 줄 알았는데?’

몸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전부 가리는 희한한 디자인의 슈트를 입은 그 존재는 무슨 종족인지,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앉으시죠. 네른 함장.”

둘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그는 탁자 반대편에 앉았다. 시현 유진이 탁자 위에 놓인 케이크 접시를 그에게 밀었다.

“적잖게 굶주렸을 터. 이것부터 드시죠.”

“…원하는 게 뭐지?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은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네른의 질문에도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케이크 한조각에 눈짓을 할 뿐.

먹기 전까지 대답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여서 네른은 어쩔 수 없이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깜짝 놀랐다.

“맛과 에너지 공급, 둘 다 잡기 위해 개발한 고열량 초코 케이크입니다. 저와 뜻을 함께하는 분께서 큰 도움을 주셨죠.”

시현 유진의 시선이 기괴한 슈트의 존재에게 살짝 향했지만, 네른은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없었다. 푹신푹신한 케이크 파편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몸에 활력이 확 도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가 당신을 찾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당신만이 아는 정보를 사기 위해서죠.”

정신없이 케이크를 먹는 그에게 그녀가 용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정보?”

“네른 함장, 당신은 전함을 이끌고 과거 아웃스페이서의 침략 전쟁을 막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 공으로 당신은 제국모함 ‘다모스08의 심판자’의 함장으로 임명되었고요.”

“나에 대해 제법 조사한 것 같군. 내가 굳이 대답할 의무는 없겠지?”

“조사하다 보니 뭔가 이상한 점이 보이더군요. 전례 없는 규모의 아웃스페이서 무리를 전함 몇 척만으로 이길 수 있는가 말입니다.”

“…….”

“아무리 뛰어난 전략가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좀 더 파봤습니다.”

그 말을 들은 네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당시 전함에 탑승한 컬트가 정체불명의 유물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아웃스페이서 무리를 일소시킨 그는 곧바로 사라졌고, 에너지가 소실된 유물만 바닥에 남았다고.”

“그 사실을 어떻게…?”

“제가 그 사실을 어찌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네른 함장. 그 당시 전함의 승무원들은 유물이 위험하다고 판단, 아주 위험한 행성의 특정 지점에 보관하기로 했죠. 맞습니까?”

그녀의 말을 듣자 네른은 왜 상대가 자기를 찾아왔는지 이해했다.

“그 유물을 노리는군.”

“예. 당신은 저희에게 유물의 위치를 알려주시면 됩니다.”

“내가 그 말을 들을 것 같나?”

“네. 저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 줄 수 있으니까요.”

“하, 내가 뭘 원하는지 인간인 네가 어찌 알지?”

코웃음을 치는 네른.

그러나 이어지는 시현 유진의 말에 그의 표정은 바로 굳어졌다.

“아마 의회에서는 사이길08에 다시 제국모함을 보내지 않을 겁니다. 예언의 부작용을 우려해서요.”

“뭐?”

“배도 없고, 의회에 인맥도 없는 당신은 이대로 은퇴. 평생 괴물에 대한 증오를 마음에 품고 살아야겠죠.”

“…….”

네른은 그녀의 말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 유물의 위력을 본 당신은 알 겁니다. 그 유물이라면 저 괴물 ‘따위’는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너를 돕지 않고 직접 유물을 찾으러 갈 수도 있다.”

“글쎄요? 유물이 보관된 장소는 아주 위험한 곳. 제국모함의 함장이었으면 모를까, 지금의 당신은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입니다.”

“…빌어 처먹을. 정말로 다 알고 왔군.”

네른은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유물이 숨겨진 곳을 알려 준다면 놈을 해치워준다고?”

“예. 제가 ‘세 머리의 악마’에게 복수하겠습니다.”

“흥, 대신 놈을 죽이는 자리에 나도 함께 하겠다. 유물이 있는 장소는 내가 직접 안내하지.”

증오에 찬 그의 눈을 본 시현 유진이 희미하게 웃었다.

-

‘뭐지?’

금속덩어리와 감각이 연결되었음에도 귓가가 가렵다는 느낌이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고 보면 에이모프는 귀가 없지.’

에이모프에게는 귀와 코가 없고, 그 대신 보조기관이라는 턱 아래에 달린 가느다란 촉수가 존재한다.

아성체까지는 2개, 준성체부터는 4개인 이 기관은 공기의 흐름을 감지해서 소리와 냄새를 함께 인지할 수 있다. 게다가 전자파나 사이킥 파워 같은 무형의 에너지 흐름까지 감지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만능에 가까운 감각 기관이라 해도 좋으리라.

그 보조기관 덕분일까.

악몽의 지평선 특성을 통해 컬트 호위함과 일체화된 상태에서도 나는 이 길쭉한 마름모꼴 선체를 내 몸처럼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감시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어떠한 함선 내 탐지 센서보다도 훨씬 정밀한 보조기관은 우주 공간에 돌아다니는 장애물들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지금도 선체 외벽에 달린 침식 촉수들이 날아드는 우주 쓰레기나 암석들을 쉬지 않고 처내는 중이니까.

현재 우리는 행성의 표면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을 비행하는 중이다.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 악몽의 지평선 쿨타임이 끝났다. 그 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친 우리는 마침내 컬트들의 성지, PH-101을 떠났다.

누군가는 어린 동족을 두고, 누군가는 원통하게 죽은 가족들의 흔적을 두고 말이다.

그러나 아쉬워하는 녀석은 없었다.

하늘의 어머니는 모든 복수를 끝낸 뒤 행성에 묻히고 싶어 했다.

‘그녀는 내가 무슨 계획인지 알고 있지만.’

하늘의 어머니도 랭커다 보니 에이모프의 승천 조건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다. 자기 목숨이 내 진화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그런데도 그녀는 살고자 하는 의지보다 복수에 대한 갈망이 더 컸기에 나와 함께하기를 택했다.

‘물론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만에 하나 그녀가 진화를 위한 재료로 사용되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때 그녀에게 다시 한번 물어볼 생각이다.

진정 복수 때문에 죽기를 원하느냐고.

원래 물어볼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그녀에게 진 빚이 있으니까.

‘그녀의 반응은 예상했지만, 그것보다 26호의 태도가 의외였지.’

녀석이 동족 대신 나를 택했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행성을 떠날 때 조금이라도 우울해할 줄 알았는데 녀석은 오히려 신나는 것처럼 보였다.

배를 장악한 뒤, 파장을 쏴서 물어보니 녀석은 이렇게 답했다.

새로운 먹이들을 먹어서 강해진 다음 동족들에게 알려줄 거라고. 녀석은 행성의 바다에서 동족들이 번성하기를 바랐다.

‘녀석에게도 새로운 꿈이 생겼어.’

꿈은 지성체의 특권이다. 추상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일종의 미래 계획이기에.

26호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녀석이 언젠가 동족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목표는 제한적으로 실현되었다. 26호는 죽은 씨데몬의 힘을 이어받았고, 다른 버블아메바들과 교감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26호가 먼저 자기 포부를 나에게 알린 것이다. 자기 스스로 새 목표를 설정해서 말이다.

‘힘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장하는구나.’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인간 시절 나는 가족,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좋은 기억이 많지 않았다. 내 어린 시절은 병원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니까.

그런 나였는데, 성장하는 26호를 볼 때마다 가슴 한편에서 뭉클한 감정이 든다. 어쩌면 이것이 부모님이 자식을 기르면서 느끼는 그런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큰어른?」

그리움인지 씁쓸함인지 모를 감정에 빠져 있는 나를 깨운 것은 한 가닥의 사념파였다.

내 앞에 있는 아드하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임?」「나」「설명중」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미안. 다른 생각을 했어)]

「큰어른」「피곤함」「나」「이후」「설명」「가능」

[즈즈즈(괜찮아)]

행성을 떠났음에도 아직 초광속 항해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다음 행선지로 가는 길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가는 곳은 일반 우주선의 항로에는 기록되지 않은 곳. 우주의 심연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외진 곳이자 위험한 곳이다.

‘갤러곤의 둥지.’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에서 아드하이를 살려줄 당시, 나는 녀석과 계약했다. 녀석은 자기를 지켜 주면 용의 둥지로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제 녀석이 약속을 지킬 차례다.

‘갤러곤은 설정상 귀소본능이 있어.’

갤러곤은 자기 둥지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느 방향에 둥지가 있는지 금방 안다. 뛰어난 사이킥 파워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짐승 특유의 본능으로 아는 것인지 원인은 불명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 배에 식량은 넉넉히 챙겨뒀다. 아니면 중간에 다른 배를 사냥해서 먹이를 공급해도 좋고. 음식을 구할 수단은 많으니까 시간이 많이 걸려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드하이가 다시금 사념파를 쐈다.

「나」「필요」「지도」

[즈즈(지도?)]

「반짝」「반짝」「빛」「지도」

녀석이 앞발을 들어서 허공에 대고 동그라미 모양을 그렸다.

‘홀로그램 지도를 말하는 건가?’

이 배를 장악하기 전, 아드하이는 나와 함께 선내를 뒤졌다.

나는 생존자나 쓸 만한 도구가 있는지 찾아보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녀석은 그때 상황실에서 홀로그램의 잔재를 봤나보다.

‘한번 띄워볼까.’

이 배는 내 몸이나 다름없다. 나와 동화된 원자로 옆에 사이킥 파워로 구성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저기」「확대」「요청」

녀석은 그 지도를 보더니 날개 끝으로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그 지점을 확대하자 녀석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 부분을 보더니 날개 끝으로 특정 지점을 콕 찔렀다.

‘설마?’

지도를 확대하고 이동시킬 때마다 녀석이 날개와 앞발을 이용해 새로운 지점들을 가리켰다.

그렇게 몇십 번 반복한 끝에 어떤 섹터가 나타났다. 녀석은 섹터 외곽에 위치한 행성을 향해 고갯짓했다.

「여기」「용 둥지」

‘헐.’

사실 나는 그렇게 잘 놀라는 편이 아닌데, 이번만큼은 아니다.

갤러곤 특유의 귀소본능을 활용해 아드하이를 생체 내비게이션으로 쓸 생각이었는데, 녀석은 아예 이 자리에서 용의 둥지까지 이어지는 항로를 만들었다.

옆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봤는데도 믿을 수 없던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즈즈즈 즈즈 즈즈(어떻게 만든 거지?)]

「?」「나」「별자리」「기억함」

[즈즈즈(별자리?)]

「별」「위치」「지도」「대조」「쉬움」

녀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왜소화 돌연변이인 줄 알았는데 사실 지능에 돌연변이가 있는 거 아냐?’

만약 용의 둥지에 갔는데 다른 갤러곤들이 이 정도 지능을 지녔다면 내가 그들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다.

내가 가만히 있자 녀석이 설명을 덧붙였다.

「동족」「별자리」「모름」「관심」「없음」

[즈(그래?)]

「동족」「힘」「강함」「기억」「필요」「없음」「머리」「필요」「없음」

녀석의 얘기를 들어 보니 용의 둥지에 있는 갤러곤들은 녀석만큼 똑똑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아드하이야말로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는 표현의 산증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다행인가.’

「큰어른」「질문」

안심하고 있는데 아드하이가 사념파로 나를 불렀다.

「나」「용 둥지」「설명」「큰어른」「계약」「종료」

[즈(응?)]

「큰어른」「나」「버림?」

녀석은 좀 전과 똑같이 반쯤 누운 자세였지만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날개도 살짝 떨리는 것을 보니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둥지를 알려주는 대신 살려 준다는 조건으로 계약했지.’

아드하이는 내가 자기를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전이라면 그랬을지도.’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함선과 동화된 상태라 직접 쓰다듬을 수 없었기에 나는 침식 촉수를 뽑아서 녀석의 머리를 아주 약하게 쓰다듬었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너희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야)]

「진실?」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너희를 버리는 일은 앞으로도 없어)]

「다행!」「기쁨!」「기쁨!」「기쁨!」

나의 마음을 느낀 아드하이가 기뻐하며 날개를 퍼덕였다. 녀석은 꼬리를 씰룩씰룩 흔들며 원자로와 붙어 있는 내 주변을 맴돌았다.

기쁨을 표하며 돌아다니는 녀석의 목 뒷 부근에 살짝 하얀 비늘이 보였다.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봤지만 하얀 비늘은 보이지 않았다.

‘아드하이 덕분에 금방 도착하겠네.’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어서 초광속 항해로도 몇 달 정도 걸릴 것 같지만 문제없다.

‘그럼 출발해 볼까.’

나는 침식한 함선 내 컴퓨터에 아드하이가 알려 준 좌표와 항로를 입력했다.

다음 공략할 대상은 ‘용의 둥지’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