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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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메가콥과 스타유니언은 전쟁 관계에 있다.
애초에 스타유니언이 메가콥 식민선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시작된 만큼 양자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몇 년 전부터는 국지도발 수준으로 무력 충돌의 수위가 많이 낮아졌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양 세력은 치열하게 싸웠다.
메가콥은 엄청난 수의 인간 병사와 헐크 뮤턴트를 대량으로 투입하는 인해전술로 스타유니언을 공략했다. 반면, 스타유니언은 안드로이드에 그렘린 어뢰 같은 나노 머신 폭탄을 달아 자폭시키는 테러 전술을 주로 사용했다.
인간 대 기계인데 뭔가 반대로 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스타유니언의 주축은 어디까지나 사이보그. 사이보그를 만들기 위해서는 멀쩡한 인간이 필요하다.
물론 다른 종족도 사이보그의 재료로 쓸 수 있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컬트는 신체가 약해서 사이보그 시술을 견디지 못했다. 볼프 같은 인간형 종족은 양산하기에 수도 적고, 유전자 개량 연구도 덜 되어 사이보그 시술 성공률이 많이 떨어졌다.
그러면 복제인간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해당 기술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복제인간들은 하나같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요소가 많아서 사이보그로 써먹기 좋은 재료가 아니었다.
결국 멀쩡한 ‘인간’만큼 우수하면서도 가성비 좋게 사이보그로 만들 수 있는 종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타유니언은 소수의 사이보그 지휘관과 다량의 드론을 운용하는 전략을 세웠다.
전쟁 초창기 이 전략은 유효했다. 메가콥에서 EMP무기를 동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주 공간에서 EMP무기는 어느 쪽이에게나 치명적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병사 대부분이 기계인 스타유니언의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반면 메가콥에서는 우주 공간에서 생존이 가능한 헐크뮤턴트를 써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EMP의 등장으로 전쟁이 종식될 것으로 보였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일반인들은 모르겠지만, 메가콥과 스타유니언의 수뇌부들 간에 밀약이 있었다.
그들은 전쟁을 조율할 수 있다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지성체를 다수 포획해야 하는 스타유니언, 인간 무역으로 막대한 크래딧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메가콥. 서로 뭐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던 수뇌부들은 양자 간의 전쟁을 사업화했다.
다만 대놓고 할 수는 없었기에 중간에 브로커를 뒀다.
약탈과 범죄로 먹고 사는 스페이스독, 노예제를 운영하는 컬트들이 그 중간상인 역할을 했다.
우주의 열강들이 관여하는 ‘사업’이 이어진 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오늘도 ‘인적 자원’을 실고 움직이는 화물선이 바삐 오가고 있다.
컬트 제국 변방에 위치한 JP-99 성계.
컬트 상인과 거래를 마친 사이보그 화물선이 고향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화물 체크는 전부 완료했어?”
「V100이 50번 컨테이너까지 체크 완료. 전부 이상 없음.」
“휴우, 50번이라.”
스타유니언의 사이보그 콘제이는 머리에 연결된 링크 케이블을 분리했다.
신체의 80% 이상을 기계로 개조한 그녀는 지금처럼 함선의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었다. 뇌를 보조하는 모듈의 성능이 부족하여 우주선 조종까지는 무리지만, 선내에 실린 화물들을 관리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이 화물선의 냉동 컨테이너 내부에는 사이보그가 될 비자발적 동의자들이 실려 있다. 종족 구성은 다양하지만 그들은 곧 스타유니언의 이름 아래에서 하나가 될 예정이다.
“이번에는 할당량을 못 맞출 것 같은데 큰일이네.”
콘제이는 안구에 출력된 데이터 그래프들을 보면서 눈가를 긁적였다.
본래라면 70번 컨테이너까지 채울 생각이었지만 실패했다. 컬트 상인들이 노예를 기존보다 훨씬 적게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내부 사정이 좋지 않아서 어렵다고? 섭리 좆빠는 소리 하네. 언제 그런 걸 신경 썼다고.”
이대로 가다간 인구관리부가 정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무거운 징계를 받게 될 거다. 그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콘제이는 다시 링크 케이블을 머리에 연결했다.
“맥에프. 이 근처에 사람 장사하는 카르텔 있어?”
「컬트 영역인데 어떤 미친놈이 여기서 장사를 해.」
“쩝. 그렇겠지?”
「근처에 있는 성계에 스페이스독이 있을 거야. 거기 가서 구하던가.」
“칫, 알았어. 혹시 거래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드론들 무장 단단히 시켜놔.”
「예압.」
통신을 종료한 콘제이는 주변 성계에 있을 법한 스페이스독 카르텔의 데이터를 띄워서 확인했다.
데이터를 차근차근 살펴보는 중인데, 함대 컴퓨터 브이(V)가 그녀에게 안내 메시지를 보냈다.
“생체신호라고?”
이 주변은 함선이 다니지 않는 길이다.
스타유니언은 항상 시민들이 ‘자발적 선택’에 따라 사이보그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이보그 예정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배가 눈에 띄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렇기에 이 배에는 기계위원회에서 특별히 지원한 고성능 탐지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었다. 상대보다 먼저 정보를 습득해서 알아서 피하라는 뜻이었다.
“정체가 뭔지 확인할 수 있어?”
「외형은 자스빌02산 자마급 호위함으로 추정. 무장 수준은 파악 불가.」
“혹시 아웃스페이서는 아니지?”
「스타링크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한 결과, 불일치.」
“휴, 다행이네. 특수도료를 바른 배인가? 혹시 모르니까 외형이랑 생체신호 업로드해놔.”
「확인.」
수수께끼의 함선에 관한 데이터를 브이가 스타유니언의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하는 사이, 콘제이는 가상으로 구현된 상대의 함선을 살펴봤다.
“외부로 유출되는 생체신호는 어느 수준이야?”
「700명 이상 탑승한 것으로 추정.」
“700?! 미친. 뭐 그리 꽉 채웠지?”
그 말을 들은 콘제이는 갑자기 딴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저쪽도 노예선 같은데.’
콘제이가 굴리는 이 화물선은 상대보다 크기가 1.5배가량 거대하지만, 탑승한 인원은 오히려 적다. 화물 500명에 사이보그 30명, 그리고 전투용 드론 70대가 전부다.
‘수상해.’
정상적인 노예선이 아니다. 콘제이는 다시 맥에프에게 연락했다.
「왜 자꾸 통신질이야? 나 일하는 중이야.」
“야. 드론들 다 준비해.”
「뭐? 왜?」
“잘하면 한 건 건질 것 같아서.”
만약 저쪽의 무장이 높은 수준이라면 공격하지 않고 물러날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면….
“브이. 교란 시스템이랑 스텔스 시스템 가동해.”
「시스템 가동.」
700명이면 그녀의 할당량을 채우는 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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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광속 항해를 연달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전에도 메가콥 우주선을 장악해 초광속 항해를 쓴 적이 있지만, 이렇게 장기간 계속한 적은 없었으니까.
몇 주 이상의 긴 시간동안 초광속 항해를 이어 나가는 일은 고역이었다. 항해 도중 집중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지배를 유지하는 시간 자체는 넉넉한 편이다. 그저 지루한 항해 동안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언제 고라니가 뛰어들지 모르는 밤길을 한 달 넘게 쉬지도, 자지도 않고 차를 몰고 간다고 생각해 보라. 아무리 초감각을 지녔고 보조기관의 지원을 받는 에이모프라고 해도 힘든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중간마다 초광속 항해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한 달 만에 쉬는 중이다.
‘그래도 반쯤 왔으니까.’
한 달 정도 더 가면 용의 둥지가 있는 행성에 도착할 거다.
나는 침식 촉수를 활용해 저장된 고기를 꿀떡 삼켰다.
두텁고 단단한 갑피로 덮인 촉수가 순식간에 먹이를 소화해서 내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몸에 활력이 차오르면서 피로가 가시고 기분이 살짝 좋아진다.
‘그나저나 고기가 더 필요하겠지?’
이 배의 모든 시스템은 전적으로 나의 통제를 받는다. 그래서 저장한 식량이 부패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중이다.
‘그대로 썩는 것을 막기는 힘드네.’
남은 양도 많지 않다. 어마어마한 식사량을 자랑하는 나도 있지만, 성체에 가까워진 26호도 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먹이를 소비하고 있다. 피와 체액을 빨아먹는 아드하이도 장기간 보관된 고기를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늘의 어머니도 많이 먹는 편이지.’
아무래도 중간에 먹이를 보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우리가 있는 이곳, JP-99 성계에는 우주선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걸로 안다. 컬트의 영역이기는 하나 여기까지 오는데 다른 배를 본 적도 없다.
‘이 다음 성계로 넘어가면 배들이 많이 다니…음?’
먹이 수급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감각에 무언가가 잡혔다.
내가 만든 포자를 드리블하면서 선내를 뛰어다니는 26호와 아드하이의 움직임이 아니다.
내가 감지한 이 파장은 선체의 외부, 우주에서 생긴 것이다.
나는 식사를 중단하고, 파장이 날아온 곳을 향해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검은 종이 위에 쌀 알갱이를 쏟아 놓은 것처럼, 별빛만이 유일한 빛인 우주.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간처럼 보이는 그곳에 무언가가 있다.
함선을 숨기기 위해 발생한 특수한 에너지가 몇 겹 이상으로 겹쳐져서 흐르는 게 느껴진다.
‘군함인가?’
보아하니 저쪽이 먼저 나를 감지한 것 같다. 그러니까 저렇게 스텔스, 전파 교란 등의 온갖 잡다한 기능들을 다 활성화시킨 채로 있겠지.
‘적대…인지 아닌지 모호하네.’
보아하니 컬트쪽 군함은 아닌 것 같다. 이곳은 컬트의 권역. 허가받지 않은 배가 돌아다닌다면 바로 경고 사격을 가했을 거다.
상대는 공격 대신 느린 속도로 이쪽을 향해 접근하는 중이었다.
‘컬트 군함이 아니라면 나야 좋지.’
상대가 스페이스독이든 정체불명의 배든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내가 먹어도 뒤탈이 없다는 뜻이니까.
나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척하며 움직였다.
수수께끼의 함선은 자기 앞에 거미줄이 깔려 있다는 것도 모르고 다가왔다. 거리를 좁혀 오던 상대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아마 내 배를 스캔하려는 것이리라. 나 또한 저쪽 배의 탑승자를 탐지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흠.’
미약한 움직임을 보이는 수백 명의 생명체, 그리고 금속 냄새를 강렬하게 풍기는 30명의 인간형 생물. 그밖에 강렬한 전기 신호를 보내는 70개의 기계들이 느껴진다.
‘아하, 뭔지 알겠네.’
스타유니언의 인력공급선이다.
사이보그, 휴머노이드, 안드로이드, 드론 등 기계들이 세운 공동체 스타유니언. 자손을 남기기 어려운 종족 특성상, 스타유니언은 시민 수를 늘리기 위해 다른 세력으로부터 노예를 구입한다.
‘대부분은 사이보그화 대상이고, 특별한 몇몇은 인체실험용.’
스타유니언은 육체는 나약하니 기계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다. 그런 집단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몰래 인간을 사온다는 것만큼 아이러니한 일은 없을 터.
따라서 저런 식의 인력공급선은 극비로만 운영한다. 거래도 컬트나 스페이스독 같은 제3자하고 비밀리에 진행되고.
‘이런 점을 보면 메가콥이나 스타유니언이나 비슷해.’
스페이스 서바이벌에서 스타유니언은 중립 세력으로 분류되지만 어둠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메가콥과는 또 다른 형태의 인명경시 사상과 블랙 유머가 만연한 곳이니까.
그때 저쪽에서 함재기를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함선의 외벽이 내 외피 색에 맞춰 어두운 보라색이라는 점, 무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다는 점을 빼고 이 호위함의 외형은 기존 모델과 완전히 동일하다.
이 배에 플라즈마 포대나 사이킥 파워 주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좀 전 스캔으로 확인했을 터. 내가 만만한 상대라고 여긴 것이 분명했다.
‘나를 노리겠다 이거지?’
왜 저러는지 이유는 얼추 짐작이 간다. 정해진 할당량을 못 채웠거나, 아니면 나중에 할당량을 못 채웠을 때를 대비하려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 배는 컬트가 굴리는 함선이 아닌데.’
저쪽의 무력 행동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먹이가 제 발로 들어오는데 그냥 보낼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볼까.’
이전처럼 악몽의 지평선을 써서 새 배로 갈아탈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내가 장악한 호위함이 아깝다. 인면수들의 조언을 받아 개조한 상태라 일반 배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고, 초광속 항해로 들어가는 에너지 소모율도 낮은 편이다.
‘강탈할 생각만 하지 말고 응용을 해 보자.’
지금까지 나는 악몽의 지평선을 일차원적으로만 사용했다. 적 선원들이 배 안에 침입할 때를 노린다거나 혹은 배에 무기들을 추가해서 메탈릭 그렘린 같은 애들과 싸우거나 등등.
‘이전에는 어쩔 수 없었지.’
악몽의 지평선으로 우주선을 장악한 상태에서는 육체 관련 특성을 전부 쓸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초월2단계에 진입한 지금은 아니다.
「*‘침식 촉수’: 우주선을 침식시켜서 사용자의 의식에 지배받는 복합생물로 만듭니다. 우주선과 연결된 상태에서 ‘육체계열 특성 일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비축한 에너지가 모두 떨어지면 특성 효과가 자동으로 취소됩니다. 침식 촉수는 7일에 1회, 하나의 우주선에 1번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사용 가능한 육체 특성: 재생력, 의태기관, 가시털 발사 꼬리, 강화 대형 꼬리, 정수수확자의 턱, 집게발」
‘이제부터는 우주선을 장악한 상태에서도 육체 관련 특성을 쓸 수 있지.’
초월 1단계로 인한 금제가 해제되면서 악몽의 지평선의 효과에도 변동사항이 생겼다.
원래는 육체계열 특성 사용 불가였는데, 그 문장이 사라졌다. 대신 사용 가능한 육체 특성이라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다시 말해 이 배에도 집게발이나 입 같은 신체 기관을 덧붙일 수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 아웃스페이서들이 우주선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걸 보고 부러워했는데.’
이제는 나도 우주선에 들어 있는 존재들을 한입에 삼킬 수 있다.
‘그 전에 먼저 손님부터 맞을 채비를 할까.’
주변을 맴돌던 함재기들이 배에 붙어 승선을 시도하려 한다.
스스로 먼저 먹히겠다고 자진해서 나서는 기특한 먹이들.
기쁜 마음으로 환영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