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52화 (153/400)

Ep.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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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 완료.”

「좋아. 함선 방어 시설은 아직 미작동 중이야.」

“콘제이? 보여? 이런 생체 금속을 쓰는 함선은 본 적이 없어.”

워커와 동기화된 사이보그 6명이 수수께끼의 함선 내부에 발을 디뎠다. 문을 뚫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들어오고 나니까 이 배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의 겉면과 내벽 모두 새까맣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일반 컬트 호위함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워커에 부착된 생체신호 감지 모듈로 살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배 전체에서 감지되는 옅은 생명 반응, 생물의 살결을 연상시키는 온기, 우주의 함선답지 않게 습한 공기 등등. 일반적인 배의 특징과는 거리가 있었다.

“컬트가 이런 금속을 개발하다니. 기이한 일이군.”

“아웃스페이서로부터 얻은 건가?”

“시간은 많으니 차근차근 살펴보자고.”

배 내부가 예상하고 달랐지만 사이보그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탑승한 워커는 중장갑 전투보행병기 ‘센티널’ 모델. 함선에나 다는 강화 실드가 내장되어 있어서 컬트 전사단과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워커다.

일개 화물선에서 쓸 만한 무기가 아닌 만큼, 해당 워커들은 전부 스타유니언의 인구관리부에서 지원한 것들이다. 화물 수송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전투를 지원해 줄 소형 드론과 각종 무기들까지. 컬트 전사단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긴 어려울지 몰라도 질 수준은 결코 아니다.

아무튼 단단히 무장한 사이보그들은 맥케이를 필두로 탐사 드론들을 퍼뜨렸다. 작은 구체 형태의 소형 비행체가 함선 통로를 따라 안쪽으로 사라졌다.

브이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배에는 700명 이상의 화물이 실려 있다고 했다. 이 배와 비슷한 등급의 호위함에 승선하는 컬트가 200명이니 3배 이상의 인원이 승선한 셈이다.

사람이 많을 테니 금방 발견할 수 있으리라.

마침 탐사 드론들이 전방위로 촬영한 선체 영상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완성되는 함선 내부 지도를 보며 그들은 안쪽으로 진입했다.

“어이, 맥케이. 이것 좀 봐봐.”

“뭐야 이게?”

“어떤 식물종 같은데.”

온통 검은색뿐이라서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동료 사이보그가 지적하고서야 맥케이는 복도에 나무 넝쿨, 혹은 줄기 같은 것들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브이가 스타링크 데이터베이스랑 대조해봤는데 일치하는 생물 정보가 없데.」

“아웃스페이서도 아니고 이게 다 뭐지?”

“일단 채취할게.”

사이보그는 워커에 장착된 작업용 팔을 조종해서 복도에 붙은 줄기를 뜯어냈다. 뜯어진 줄기에서 검은색의 점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밀폐된 워커라서 다행이네. 라이트 워커였으면 토했을 것 같은데.”

“너 내장까지 다 개조한 거 아냐?”

“기름만 오지게 토할 듯.”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채취했으면 빨리 가자고.”

“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만 하고.”

그렇게 그들은 정보를 수집하면서 이동했다. 복도가 점점 좁아지고 아슬아슬하게 워커 끄트머리가 천장에 닿을락 말락 했다.

그런데도 컬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들이 본 생물이라고는 사방에 있는 넝쿨들과 불결해 보이는 점액들을 내뱉는 포자들밖에 없었다.

이상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음에는 오른쪽으로…어라?”

“왜 그래?”

“여기서 갈림길이 나와야 하는데?”

“무슨 소리야? 여기 일직선인데.”

“지도가 좀 이상한데. 다들 체크해 봐.”

맥케이 말에 각자 탐사 드론이 작성한 지도들을 확인했다. 가상으로 구현된 지도를 본 그들은 깜짝 놀랐다.

“지도가 다르잖아?”

함선 구조가 실시간으로 바뀐다면 이렇게 될까? 6개의 드론들이 만든 지도 중 동일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드론에 문제가 생긴 건가? 전파 교란에 당했다거나.”

“그러면 오작동을 일으키지 이런 식으로는 되지는 않아.”

“콘제이, 봤지? 상황이 심상치 않아.”

「씹…. 일단 함선으로 돌아와서….」

콘제이의 말을 들은 사이보그들이 후퇴하려는 순간, 배가 크게 흔들렸다.

“뭐지?”

“이봐, 콘제이. 무슨 일이야?”

「배가 움직, 치직, 주의, 치지지직」

“콘제이? 콘제…윽!”

“큭?!

링크된 워커의 수신기에서 강력한 소음이 울리자 사이보그들이 급히 통신을 차단했다. 맥케이는 통신 시스템을 재부팅해서 콘제이에게 연락했지만, 잡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젠장, 통신 시스템이 맛이 간 것 같은데.”

워커들 간의 통신은 멀쩡한데 정확히 화물선하고만 연락되지 않는 상황이다.

화물선과는 연락 두절, 기괴한 구조를 지닌 함선, 사람은커녕 이상한 포자랑 줄기만 가득한 복도.

사이보그들의 뇌리 어딘가에 잠겨 있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공포라는 이름의 감정이.

“모두 진정하고. 함재기로 돌아가자.”

사이보그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불안해 하는 것을 진정시키기 위해 선두에 맥케이가 섰다.

쿵쿵 하고 무거운 워커 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린다. 발자국 소리가 금속 벽을 흔들 때마다 선체에 어지럽게 뻗어 있는 저 검은색 줄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실제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맥케이는 그 모습을 보고 왠지 배가 살아 있는 생물 같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괴수의 내장. 이 자리에 있는 사이보그들은 이미 먹혀서 소화되고 있는 중이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맥케이는 떠오른 생각을 애써 부정했다. 이런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러나 잔혹한 현실은 그의 노력을 무참히 짓밟았다.

“씨, 씨발 이게 뭐야!”

“…….”

들어올 때만 해도 일직선이었던 통로 대신 갈림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황에 빠진 사이보그 하나가 욕설이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맥케이도 자기가 잘못 봤다고 생각해 동기화된 워커와 연결을 해제해봤을 정도였다. 그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갈림길은 여전히 그들 앞에 있었다.

“젠장, 어떻게 해?”

“탐사 드론을 다시….”

“씹, 그래 봐야 또 바뀔 거 아냐!”

“진정해! 그러지 말고 아예 벽을 부수는 것은 어때?”

“벽을 부수자고?”

“센티널의 산소 공급 기능 덕분에 우주 공간에서 버틸 수 있어. 밖으로 나가서 함재기까지 걸어서 가는 거지.”

위험하지만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적어도 수시로 바뀌는 함선 내를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터.

워커에 장착된 스톰건의 총구가 복도 벽을 향했다. 이어서 무시무시한 화력이 합금 벽에 쏟아졌다.

벽에 붙어 있는 포자와 가지가 새까맣게 탄 재가 될 때쯤,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구멍 안쪽에 새로운 복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사이보그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씨발, 네가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해보자고.’

그렇게 몇 차례 벽을 파괴한 그들은 기대하던 함선 외벽에 도달했다.

“여기만 나가면 돼!”

“좋았어!”

탄창에 들어 있는 열화우라늄탄이 사이보그들의 희망을 안고 벽에 틀어박힌다.

스톰건이 과열되어 강제로 사격이 중단될 때까지 쏴 재낀 그들은 마침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외벽 너머에서 보이는 풍경은 그들이 상상했던 현실과 달랐다.

“어?”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어떤 함선의 선체였다. 긴 직사각형 모양에 잿빛으로 빛나는, 익숙한 형태의 함선. 그것은 그들이 타고 온 화물선이었다.

그 화물선이 지금 두 동강이 났다. 거대한 집게발이 우주를 유영하며 화물선을 잘근잘근 토막치는 중이다.

화물선 안에 실린 수많은 컨테이너들이 우주 밖으로 쏟아진다. 뱀의 형태를 닮은 길쭉한 촉수들이 떠다니는 잔해들을 수확한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이보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그들이 타고 온 화물선이 지금.

괴물로 변한 이 배에 의해 먹히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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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것처럼 확실히 장단점이 있네.’

내 앞에 반 토막이 난 배의 잔해가 떠다닌다.

내가 장악한 호위함보다 수 배 이상 거대한 인력공급선은 수십m가 넘는 거대 집게발에 의해 완전히 박살이 났다.

‘파괴력 하나는 일반 상태일 때보다 월등하지만….’

중대한 단점이 있다.

집게발이나 정수수확자의 턱, 꼬리 등을 배 외벽에 만들어냈을 때는 이동 속도가 떨어진다는 것. 그리고 구현된 신체 부위도 움직임이 상당히 느리다는 것.

저쪽 배가 일반 배가 아니라 전투용 군함이었다면, 아니 내가 접근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반응했다면 지금처럼 쉽게 토막 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26호가 강해진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되네.’

씨 데몬의 힘을 흡수한 26호의 사이킥 파워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졌다. 게다가 내가 장악한 이 컬트 호위함은 사이킥 파워의 효과를 강화시켜 주는 문실버 합금으로 제작된 배.

이 두 가지 조건 덕분에 26호는 새로운 힘을 선보일 수 있었다.

‘사이킥 파워로 만드는 EMP라.’

26호는 사이킥 파워를 특정 지점에 강하게 응집시켜서 전자 장비를 무력화시키는 영역을 만들어냈다. 게임에서도 EMP 기술이 존재했지만, 전부 피아 식별이 불가능했다.

즉, 이번에 인력공급선만 무력화시킨 26호의 기술은 녀석만의 오리지널 기술이라 할 수 있다.

‘길어봐야 몇 분이지만.’

내가 인력공급선에 접근하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내가 장악한 호위함에서 거대한 입과 집게발이 생기는 것을 보고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인력공급선은 물러나던 도중에 내 집게발에 잡혀서 그대로 선체가 쪼개졌다.

‘함대전 중에는 지금처럼 싸우는 것도 좋겠어.’

상대가 소수라면 이 방식으로 쉽게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수십 척이 넘는 함대랑 싸울 때는 초능력 소용돌이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지만.

‘그래도 먹는 것 하나는 편해서 좋네.’

호위함 정면부에 돋아난 초대형 턱이 부서진 배로부터 쏟아지는 화물 컨테이너들을 모조리 삼켰다. 문실버 합금과 생체 조직으로 구현된 ‘정수수확자의 턱’이 컨테이너들을 부수고 그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흡수했다.

순식간에 수백 명의 유전자 정수가 내 몸에 스며들고 포식 효과를 알리는 텍스트박스가 여러 개 나타났다. 마취된 상태로 냉동캡슐에 들어간 이들이기에 죽음에 대한 공포나 고통은 전혀 느끼지 못했을 거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로부터 시급히 도망치려하는 자들, 그리고 나에게 대항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편히 죽음을 맞이하기 어려울 거다.

폭발하는 배 안에서 함재기 몇 대와 다수의 전투용 드론들이 튀어나왔다. 경량화된 스톰건을 달고 있는 전투용 드론들이 내게 포화를 퍼붓는다.

그사이 도망치려는 함재기들. 드론이 미끼가 된 사이에 빠져나가려는 것이리라.

‘도망치게 둘 수는 없어.’

선체와 동기화된 내 몸에서 침식 촉수 수십 개가 솟구쳐 나왔다. 신화 속에 나오는 수백 개의 머리를 가진 뱀처럼 다수의 촉수들이 함재기들의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함재기들이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발악했다. 하지만 그들 주변을 뒤덮는 촉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결국 단 하나의 함재기들도 도망치지 못하고 내게 붙잡혔다.

길고 얇은 침식 촉수들이 함재기들을 휘감고 조종석을 감싸는 합금 유리를 부쉈다. 그리고 함재기와 육체가 연결된 사이보그를 통째로 뜯어냈다.

멀리서 보이는 작은 별들만큼이나 작은 여성 사이보그가 울부짖는다. 우주 공간이다 보니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뭐라 외치는지는 짐작이 갔다.

살려달라든가 잘못했다든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어.’

애초에 그쪽에서 먼저 나를 노렸다. 내가 약했다면 그쪽에서 나를 죽이려 들었겠지.

그들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선택지를 골랐다.

그렇게 함재기에 탑승한 사이보그들은 차례대로 침식 촉수의 양분이 되었다.

‘음?’

그때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인력공급선의 잔해에 집중하던 신경을 분산시켜 배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확인했다.

‘얘들은 또 언제 나왔데?’

내 몸속으로 진입한 워커 6대가 내 옆구리를 찢고 나와 내가 만든 결과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면이 가려진 중장갑 워커라서 그들의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적잖게 놀랐을 것이다.

‘쟤네도 정리할까.’

나는 그들 근처에 있는 침식 촉수들에게 명령했다. 워커들을 전부 포획하라고.

“■■■! ■■ ■■!”

“■■ ■!”

날아드는 침식 촉수들을 본 워커들이 자지러지며 내 몸 안으로 도로 기어들어 갔다. 뒤에 있던 워커 하나만 내 촉수를 피하지 못하고 붙잡혔다.

“■ ■■ ■■■! ■■!”

촉수에 붙잡혀 버둥대는 워커. 팔에 장착된 스톰건으로 내 침식 촉수를 끊어내려고 했지만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침식 촉수는 그것 말고도 많이 있으니까.

저항하던 워커는 결국 촉수에 의해 전신이 물어뜯겨 파괴되었다.

‘남은 것은 5대.’

이대로 배 구조를 바꿔서 전부 압사시킬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한두 명 정도는 인면수로 써도 되겠지.’

컬트들한테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받았다. 그들에게 새 친구를 소개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마침 아드하이도 심심한 것 같으니.’

아드하이는 가끔 항로 설정에 대해 도움을 주는 것 말고는 26호와 놀거나 하늘의 어머니와 사냥 훈련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특히 하늘의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녀석은 보유한 ‘초가속’과 ‘퍼플 라이트닝’을 훨씬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아드하이에게 맡겨볼까.’

나는 녀석에게 내 의지를 담은 파장을 쏘아 보내고, 다시 포식에 집중했다.

인력공급선이 비어가는 중에도, 우주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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