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53화 (154/400)

Ep.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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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빅디가 당했어! 콘제이도!”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야! 계속 뛰어!”

고중량의 워커 5대가 소음을 내며 선내를 달렸다.

그들 뒤에 있던 구멍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사실에 그들은 안심하기는 커녕 도리어 미칠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전원이 죽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오른쪽? 왼쪽? 어디로 가야 해?!”

“다들 어디 간 거야? 어디로 가, 치직, 치지직”

“흩어지지 마! 다들 함께 다녀!”

아까 전까지는 없었던 수많은 갈림길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뒤늦게 따라오던 워커 한 대는 그대로 낙오되고 말았다.

‘이대로는 안 돼!’

그들이 탑승한 워커 ‘센티널’은 전투용으로는 적합하지만, 고립된 상황에서 생존하기에는 좋지 않다. 전력 소비가 매우 심해서 장기간 운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화물선은 끝장났고, 그들이 타고 온 함재기도 비슷한 꼴이 됐을 터. 이 괴물 같은 배 안에서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모른다.

“모두 멈춰!”

맥케이는 남은 워커 3대를 불러 세웠다.

“에너지 잔량 체크해! 워커가 멈추면 우린 죽은 목숨이야.”

그 말을 들은 사이보그들은 아차 싶었는지 서둘러 워커의 잔여 에너지를 확인했다.

“남은 에너지는 문제없지만…. 젠장!”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여기서 죽을 텐데!”“도망칠 곳도 없다고!”

동료들 말대로 그들이 처한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사실상 그들은 거대 짐승의 뱃속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래도 맥케이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기계위원회에서 구조대를 보낼 거야.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스타유니언의 최고기관인 기계위원회에서 모든 부서와 민간 우주선들을 대상으로 공지를 냈다.

알 수 없는 생물, 혹은 물질과 조우할 시 무조건 스타링크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라고 말이다. 게다가 모든 함선에 기계위원회에서 제작한 특수 신호칩을 의무적으로 부착하라는 지령도 함께 내려왔다.

우주에 다양한 생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일일이 보고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기다가 신호칩이라니. 대놓고 자기 활동을 감시한다는 뜻인데 이를 반길 민간 우주선은 거의 없었다.

만약 다른 세력이었으면 불가능했겠지만, 스타유니언은 가능했다. 기계위원회는 스타유니언에서 생산된 모든 안드로이드와 드론에게 강제 명령을 내릴 수 있으니까.

이러한 연유로 맥케이와 사이보그들이 타고 온 화물선에도 신호칩이 장착되어 있다. 배가 파괴되었으니 한, 두 시간쯤 지나면 스타유니언에게 이 소식이 전달되리라.

“하루만 견디면 인구관리부에서 보낸 구조대가 온다. 그때까지 기다린다.”

“뭐? 걔네가 우리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고?”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몇 시간 후면 스타유니언에 우리 소식이 전달될 테니까.”

이 배의 외형과 위치, 그리고 내부 가지를 채취해서 얻은 정보들은 이미 스타링크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됐다.

따라서 이 자리에 살아남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구조함대가 오기 전까지 시간을 끌어야 해.”

“시간?”

“이 괴물은 아마도 초광속 항해가 가능할 거야. 만약 다른 성계로 이동하면 구조함대의 수색시간도 길어져.”

사이보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JP-99 성계는 변방이라 해도 컬트의 지배를 받는 곳. 이런 거대 괴수가 초광속 항해가 없이 돌아다녔다면 진작 걸렸을 거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방해해야 해.”

“뭐? 말도 안 돼!”

“불가능해! 아까 봤다시피 이 배를 공격해도 소용없어. 금방 회복한다고.”

“그건 나도 알아. 무턱대고 쏴봐야 탄약만 아까워. 그러니 목표를 정해야지.”

“목표?”

맥케이는 대답하기 전, 탐사 드론들이 전송한 지도를 하나로 합친 파일을 모두에게 공유했다.

“이걸 봐봐.”

“?”

“다른 곳은 다 바뀌어도 몇 군데 동일한 부분이 있어.”

“그게 뭐 어쨌다고?”

“이 배, 아니 괴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놈도 생물이라면 주요 장기 같은 게 필요하겠지?”

“…그 말은 이 동일한 부분이 놈의 심장 같은 게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지?”

“그래. 이곳에 가서 장기를 파괴하면 놈의 초광속 항해를 방해할 수 있겠지.”

맥케이의 의견을 들은 사이보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주장에는 허점이 많다. 그의 말을 듣고 갔다가 함정이라면 그들은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문제는 그들에게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거지만.

생명이 걸린 일이기에 전원이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복도가 움직인다!”

“씹! 모두 뛰어!”

4대의 워커가 달리는 사이, 복도가 크게 뒤틀렸다. 좁은 형태의 공간이 일그러지고 거대한 방으로 변했다.

“내가 보고 있는 이거 현실 맞지?”

“씨, 씨발 도, 돌아버리겠네.”

중형 워커인 센티널의 높이는 8m 가량 된다. 그런 워커에 비해 족히 서너 배 이상을 될법한 높이의 넓은 공간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맥케이조차도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모,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

맥케이는 동료들을 다독이며 무기 시스템을 활성화시켰다. 누구든 보이는 족족 쏴버리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귀로 낯선 소리가 들렸다.

‘방금 그건?’

그 소리는 우주에서라면 거의 들을 일이 없는 소리였다.

‘바람 소리?’

그들 머리 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곳에서부터 묘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뭐가 됐든 바로 쏘기 위해 맥케이가 총구를 천장으로 향하는 순간, 소리를 내던 ‘그것’이 그들을 덮쳐왔다.

“악!”

짧은 비명과 이어서 들리는 굉음. 맥케이가 카메라를 돌려서 확인하니 워커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함선의 외벽보다는 내구도가 떨어지지만, 대신 함선용 실드가 내장된 워커, 센티널.

실드와 두터운 중장갑으로 보호받는 조종석에 2m 정도 크기의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플라즈마 커터로 자른 것처럼 정교하게 파괴된 흔적은 옅은 보라색으로 빛났다.

앞뒤로 관통된 워커 안에 조종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망가진 기계 부품들 사이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만이 조종사가 어떻게 됐는지 말해줬다.

“바, 방금 뭐야?!”

이제 남은 워커는 맥케이를 포함해 3대 뿐.

그때 또다시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공격의 전조라는 것을 깨달은 맥케이가 급히 외쳤다.

“놈이 온…!”

“어?”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또다시 워커 한 대가 쓰러졌다. 좀 전과 마찬가지로 2m 크기의 구멍, 관통된 부분에 남은 옅은 보라색 빛, 핏자국과 살점만 남기고 사라진 조종사까지.

“젠장!”

이 공간에 들어선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워커 두 대나 잃었다. 남은 자는 이제 맥케이와 동료 한 명뿐.

“바람 소리를 조심해!”

“애미…. 우주에서 웬 바람이 씹….”

덜덜 떨면서 경계하는 동료를 두고 맥케이는 재빨리 파괴된 흔적을 살폈다. 그러던 중 그는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을 발견했다.

맥케이와 동기화된 워커의 카메라가 핏자국을 따라 움직였다. 드문드문 이어져 있는 핏방울은 벽 앞에서 멈췄다.

그곳에는 그들의 동료 사이보그가 팔다리가 잘린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히익?!”

“…….”

사라진 동료를 발견했지만 문제가 있다.

‘나머지 한 명은?’

두 워커에 달린 카메라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벽과 천장의 모서리 부근에 ‘그것’이 있었다.

사이보그의 얼굴에 촉수를 박아 놓고 체액을 빨아먹는 녹색 악마가.

“끄, 끄윽, 끅, 끅, 끄윽….”

「■」「■■」

눈, 코, 입, 귀 등 얼굴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는 모조리 박혀 있는 촉수가 빨대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럴 때마다 붙잡혀 있는 사이보그는 기괴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본 맥케이는 생각했다.

도망쳐야겠다고.

“으, 으아아아아악!”

마침 그의 동료가 괴물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괴물은 신기루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공황에 빠진 동료가 놈의 시선을 끄는 사이 맥케이는 달렸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저 앞에 보이는 문.

저 문을 열고 나가야 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지배했다.

“끅?!”

그의 뒤에서 짧은 신음과 워커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맥케이가 탑승한 워커의 손이 차폐문에 닿는다.

악마의 날갯짓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차폐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휴….”

문을 닫고서야 그는 참고 있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문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안심하려는 찰나.

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먹이가 제 발로 들어왔네?”

이 끔찍한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탄한 어조의 목소리.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맥케이는 깨달았다.

악몽 같은 저 공간을 탈출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

‘수고를 덜었어.’

아드하이의 습격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쳐 온 워커는 나를 마주하더니 기겁했다.

원자로에 융합된 채 수많은 침식 촉수를 손처럼 사용하는 나.

귀여운 아드하이만 봐도 벌벌 떠는 사이보그다. 내 모습은 훨씬 무서워 보이겠지.

나를 보고 당황하던 워커는 스톰건으로 나를 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수많은 침식 촉수들이 워커의 팔과 다리들을 얽어맸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녀석도 많이 늘었어.’

하늘의 어머니가 잘 가르친 덕분일까. 아드하이는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서도 ‘초가속’ 능력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초가속이 그린갤러곤의 고유 능력이긴 하나 어디까지나 이동, 혹은 회피용이다. 녀석처럼 이렇게 폐쇄된 공간에서 저렇게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이전 같았으면 크게 다쳤을 텐데.’

아드하이는 퍼플 라이트닝을 전신에 두르고, 충돌과 동시에 사이킥 파워로 적을 녹여 버리는 전술을 사용했다.

간단히 말하면 퍼플 스프레이건의 초능력 화염을 몸에 두른 상태로 적들을 들이받는다고 보면 된다.

‘생각해 보니 저거 컬트 플레이어들이 많이 쓰던 방법인데.’

사이킥 파워로 무기에 실드를 깐 뒤 적을 후려친다거나, 아드하이가 한 것처럼 몸에 초능력 불길을 두르고 돌진한다거나 등등.

새로 배운 방법 덕분에 아드하이는 충돌할 때 입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돌연변이다 보니 신체 능력이 다른 갤러곤에 비해 부족한 녀석에게 어울리는 기술이라 봐도 좋으리라.

물론 저 방법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린 갤러곤의 사이킥 파워는 그리 강력하지 않다. 출력 자체가 부족한 상태에서 사이킥 파워로 몸을 감싼다고 해도 완전히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

전보다 공격적으로 나서도 되지만, 화이트 갤러곤이 되기 전에는 여전히 몸을 사려야 한다.

‘용의 둥지에 가면 아드하이를 진화시킬 방법을 찾아보자.’

에너지도 적당히 채웠겠다, 이 사이보그만 정리하고 바로 출발해야겠다.

원자로와 융합한 상태인 나는 침식 촉수들을 활용해 워커를 분해했다. 밤을 까듯 워커를 해체하자 안에서 케이블이 주렁주렁 붙어 있는 사이보그가 툭 떨어졌다.

나의 침식 촉수가 애처롭게 덜덜 떠는 중인 남성 사이보그를 휘감았다.

‘이 자로 한번 실험해 볼까.’

함선에 정수수확자의 턱을 만들어서 먹는 경우에는 인면수 특성의 재료로 쓸 수 없었다. 좀 전에 수백 명을 대상으로 실험해봤지만, 포식 효과만 뜰 뿐 유전자 정보는 저장되지 않았다.

‘배와 일체화된 상태라서 그런가?’

배와 일체화된 상태에서는 육체 관련 특성 중 일부만 사용이 가능하다. 그중 인면수 특성은 사용 불가니까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좀 전까지 수백 명을 잡아먹은 나지만, 붙어 있는 인면수들은 여전히 컬트를 기반으로 한 것들이다.

‘의태 기관은 되는데 말이지.’

이 거대한 배로 어떻게 위장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실제로 시도해 보려고 했지만 뭔가 조건이 필요한지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그건 일단 됐고.’

내 촉수가 사이보그를 통째로 삼키기 위해 입을 쩍 벌렸다. 그 모습을 본 사이보그가 실성한 듯 웃었다.

“크, 큭큭! 나는 여기서 죽지만, 쿨럭, 너도 곧 죽는다.”

늘 살려달라거나 잘못했다거나 등의 말만 들었는데, 이번에는 꽤 색다른 유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살려줄 생각은 없지만.

무시하고 녀석을 먹어 버리려는데, 녀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나를 멈췄다.

“고, 곧, 스타유니언의 하, 함대가 올 거다! 네놈은 도망칠 수 없어!”

“스타유니언의 함대?”

이들이 중요한 인력공급선인 것은 맞으나 스타유니언 입장에서는 필요악과 같은 존재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 껄끄러운 요소 말이다. 그런 존재를 뭐하러 구하러 온다는 말인가.

하물며 여긴 컬트의 세력권. 스타유니언이 중대한 외교적 마찰까지 감수하고 나를 찾으러 올 가능성은 낮다.

‘잠깐.’

문득 든 불길한 생각에 워커의 잔해를 뒤졌다. 그중에는 워커에 탑재된 컴퓨터도 있었다. 나는 작은 촉수들을 활용해서 반쯤 해체된 컴퓨터를 켰다.

거기에는 스타유니언의 중앙 데이터베이스인 스타링크에 보낸 통신 기록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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