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56화 (157/400)

Ep. 156

컬트와 스타유니언.

초능력으로 문명을 발달시킨 종족과 기계공학이 극한으로 발달하면서 생겨난 기계 종족.

닮은 점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양자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비슷해 보였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모든 힘을 다 쏟고 있으니까.

뾰족한 온도계를 닮아 길쭉한 타원형의 어뢰들이 어지럽게 날아들었다. 안드로이드들의 조종을 받아 무리 지어 움직이는 그 모습은 마치 바닷속 물고기떼 같았다.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어뢰의 무리들을 향해 컬트 함선이 반격했다. 마름모꼴 진형에서 육각형 형태로 진형을 바꾼 배들이 보라색 사이킥 파워를 내뿜었다.

어부들이 어망으로 물고기를 낚듯, 사이킥 파워의 그물들이 어뢰들을 덮친 순간, 강력한 폭발이 연이어 발생했다.

무음 속에서 대규모 불꽃놀이가 열리는 와중에 기계함대들이 우회해서 컬트 군함들에게 접근한다. 컬트들 또한 방심하지 않고 빠르게 다가오는 사이보그들의 배를 가로막는다.

그리고 나는 전쟁터 한 가운데에 있다.

원격 조종 어뢰, 사이킥 파워 열선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말이다.

‘오른쪽!’

나의 충실한 비서, 보조기관이 나에게 위험을 알린다. 배와 연결된 나는 급히 선체를 틀어서 오른쪽으로 날아오는 어뢰를 피했다.

사이보그 군함 4척이 나를 노리는 중이다.

‘사이킥 캐논 가동.’

나는 속도를 유지하면서 스타유니언의 함대에게 선제공격할 때 썼던 호위함의 함포, 사이킥 캐논을 가동시켰다. 6개에 달하는 사이킥 캐논들이 적들을 향해 불을 뿜었다.

내 뒤에 바짝 따라붙던 사이보그 함선은 내 포문이 6개나 될 줄은 몰랐는지 피하지 못하고 격추됐다. 그 모습을 본 나머지 3척이 각자의 방법대로 내 공격을 피해냈다.

‘나쁘지 않은 실력이네. 한 척만 빼고.’

2척은 우회기동으로 피했지만, 1척만은 속도를 줄여서 내 공격의 궤도를 빗겨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적이 나 혼자뿐이었다면 괜찮은 방법이었겠지만, 이곳에는 눈먼 공격들이 많다.

내 생각대로 어디선가 날아온 열선이 속도를 낮춘 사이보그 배를 관통했다. 선체에 큼지막하게 뚫린 구멍에서 불길이 치솟고, 연쇄폭발과 함께 산화했다.

‘좋아. 순조롭게 잘 풀리고 있어.’

양 세력이 격돌하게 만드는 것까지는 내 의도였지만, 이렇게나 빨리 난전에 돌입할 줄이야. 의외의 호재다.

‘이 분위기라면 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는걸.’

내 최종 목표는 적들의 추적을 끊고, 이 성계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

적들이 서로 싸우는 틈을 타 탈출할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전투가 종료된 이후 추격이 재개된다면 골치 아파진다.

나 하나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니 스타유니언은 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내가 ‘죽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보여 줄 생각이다.

나와 애들이 이미 떠난 배가 터지는 모습을 말이다.

‘적당한 기회가 올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자.’

나는 빠르게 날던 선체를 위로 크게 틀었다. 일반 비행체라면 선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적지 않았겠지만, 이 배는 사실상 내 수족이나 다름없다.

내가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내 뒤를 따라오던 어뢰들은 순간 목표를 잃고 다른 배나 떠다니는 배의 파편들에 충돌했다.

사이보그들 또한 나를 따라 위로 방향을 틀려고 했지만, 역시 나보다 속도가 많이 느리다. 나는 그들의 뒤로 우회기동을 하는 동시에 사이킥 캐논을 발사했다.

총알처럼 보이는 짧은 사이킥 파워의 덩어리들이 기계함선에 박혔다. 6발의 에너지탄을 동시에 맞은 배가 그대로 네 개로 쪼개졌다. 안에서 수많은 안드로이드와 사이보그들이 우주 밖으로 튀어나와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동료 의식이 희미한 스타유니언답게 그들을 구하려고 나서는 배들은 없었다. 남은 사이보그 함선 1척은 무중력 공간에서 죽어 가는 동료들을 내버려 둔 채 나에게 어뢰를 쏴 갈겼다.

[즈즈 즈 즈즈(모두 꽉 잡아)]

거리가 짧아서 전부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 나는 위로 날아오르던 선체를 급격히 꺾어서 다시 아래로 강하했다.

어뢰와 충돌하려는 순간, 나는 선체를 비스듬하게 틀었다. 나를 파괴하기 위해 달려드는 어뢰들이 거의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공격에 실패한 어뢰들이 서둘러 궤도를 꺾으려 했지만, 그걸 내버려 둘 내가 아니다. 이미 사이킥 캐논 포문 5개가 어뢰를 겨냥하고 있었으니까.

보라색 불꽃과 함께 어뢰들이 그대로 사라졌다.

‘남은 건 너한테 한 발.’

하나 남은 캐논은 나에게 어뢰를 쏜 사이보그 함선을 위한 것이다. 보라색 에너지탄이 군함의 측면부와 충돌했다. 보라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불길이 착탄지점에서 피어오르고, 사이보그 함선이 크게 비틀거렸다.

마무리는 내가 아닌 다른 컬트 함선이 대신했다. 멀리서 날아온 열선이 적을 그대로 쓸어 버렸다.

「역시 게임에서의 실력이 어디 안 가네.」

“당연하지. 이런 적이 얼마나 많은데.”

게임에서도 함대랑 싸운 적이 족히 수십, 수백 번은 된다. 랭커들과 피 말리는 싸움을 한 적도 적지 않고.

‘생각해 보면 함대랑 싸운 경험이 더 많은 것 같네.’

용병이나 함선 운용이 장려되는 메가콥과 스페이스독 말고 스타유니언, 아웃스페이서 같은 종족들 역시 후반으로 갈수록 대규모 함대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컬트는 고유 시스템인 퀘스트 때문에 개인이 극단적으로 강해지는 것이 가능해서 약간 다르지만.

그들과 적대관계인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함대와 싸워야만 했다. 이를 위해 특성들을 새로 모으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우주전은 지상전과 결이 완전 다르니까.’

땅 위에서는 매우 유용하던 특성이 우주 공간에서는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지금의 나만 해도 그렇지.’

육체 관련 특성 중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이 상당수고, 기생 관련 특성이나 둥지 관련 특성도 마찬가지다.

이후 우주에서 싸울 일이 늘어날 것이 분명하니, 악몽의 지평선 말고도 우주전에 유용한 특성들을 모을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용의 둥지에 가면 우주에서 싸우는 데 필요한 특성들을 얻을 수 있다.

보통 갤러곤들이 서식하는 행성에는 다양한 야수와 포식자들도 함께 산다. 우주비행 같은 특성을 지닌 생물도 다수 있으니 도착하면 놈들부터 먼저 정리해서 특성을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드하이가 나를 불렀다.

「큰어른」「나」「전투」「참여」「바람」

나가고 싶다고 조르는 녀석. 바깥에서 연신 펑펑 터지는 배들을 보니 같이 싸우고 싶어진 것 같다.

「나」「비행」「빠름」「적」「느림」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안 돼)]

아드하이는 갤러곤치고는 크기가 작고 날렵하기에 나가서 싸운다면 잘 싸우겠지만, 여기는 너무 위험하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다.

‘배를 갈아 타기 전까지 못 돌아오면 큰일이지.’

녀석은 나나 26호의 몸에서 흐르는 사이킥 파워를 감지할 수 있으니 내가 다른 배로 옮겨 가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다. 문제는 내가 이 배를 버린다는 사실을 적이 알면 안 된다는 것.

만약 아드하이가 다른 배에 탑승하는 것을 적이 보면 의심할 수도 있다.

[즈즈즈 즈즈 즈즈(다음에 같이 놀자)]

「실망」

날개가 축 져진 아드하이를 다독이며 나는 계속 배를 움직였다.

스타유니언의 배들이 컬트들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하면서 전황이 변했다. 오사 위험이 높은 제국모함의 블랙홀탄이 봉인되었기 때문이다.

사이보그의 배들은 근거리에서 어뢰를 쏘거나 컬트의 함선에 들이받았다.

우주시대에 충각 전술이라니, 참 원시적인 전술로 보이지만 컬트랑 싸울 때는 나름 효과적이다. 준비만 잘 갖춘다면 말이다.

컬트 함선의 뛰어난 방어력은 사이킥 파워로 이루어진 실드 덕분이다. 그 실드를 무력화시킨다면?

컬트들에게 근접한 사이보그의 배들의 전면부가 전부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사이킥 파워를 방어하는데 쓰는 방어 장비, APD드론들이다.

저것들을 잔뜩 붙여둔 채 컬트 함선에 처박으면 해당 지점의 실드를 일시적으로 무효화시킬 수 있다.

그 다음은 쉽다.

‘컬트 배의 내구도는 스타유니언에 비해 떨어지니까.’

사이보그 함선이 컬트의 배와 충돌할 때마다, 보라색 빛이 번뜩이다가 사그라졌다. 실드가 무효화된 컬트 배들은 저 가시 같은 포대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컬트 함선들이 당황해하는 것이 보이지만 섣불리 공격하는 배는 없었다. 동료 의식이 거의 없는 사이보그들과 달리, 컬트들은 아군이 휘말릴 것을 우려해 함부로 사격하지 못했다.

함재기들이 나서서 견제하는 동안, 다른 컬트 함선들은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그러지 못한 배들은 사이보그들에 의해 우주의 먼지가 되었다.

결국 동족들이 죽어 나가는 꼴을 보다 못한 제국모함이 전방에 나섰다.

나는 후방으로 물러나는 컬트들의 배에 섞여서 후퇴했다.

다이아몬드를 닮은 아름다운 저 절대병기에는 사이킥 캐논 수백 개가 탑재되어 있다. 이어서 엄청난 수의 보라색 에너지탄 사이보그들에게 날아들었다.

전면부는 APD 덕분에 보호받는다고 쳐도 측면이나 후면은 그렇지 않다. 수십 발의 에너지탄에 얻어맞은 사이보그 함선들이 박살 났다.

일부 무모한 사이보그들은 제국모함을 상대로 충각 전술을 실현하려고 했다.

‘멍청하긴.’

제국모함은 실드 자체도 강도가 더 뛰어나지만 장갑 자체도 매우 단단해서 지금과 같은 전술로는 파괴하기 어렵다.

내 예상대로 저들의 시도는 전부 무위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몇몇 배들이 더 시도하려다가 급히 멈추는 것이 보였다.

‘지휘관이 제지하고 있어.’

사이보그 함대가 일시에 여러 방향으로 쪼개지더니 각자 우회에서 후방에 있는 컬트 함대에게 날아들었다. 제국모함보다 그를 보조하는 다른 함선부터 정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미친개처럼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사이보그, 거리를 벌려서 원거리 전투로 끌고 가겠다는 컬트.

양자 모두 팽팽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아직 사이보그 측에서는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슬슬 배를 옮길 때가 됐네.’

사이보그가 나를 들이받을 때가 배를 갈아탈 기회다.

나는 지금껏 회피 위주로 움직이던 것을 그만두고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컬트든 사이보그든 상관하지 않고 에너지탄을 쏟아 냈다.

그렇게 몇 척 이상을 파괴하자 사이보그 측에서 나를 주목하는 게 느껴진다. 그와 함께 26호가 나에게 파장을 보냈다.

「큰애기야, 저기 저 커다랗고 못생긴 애가 뭔가 하는 것 같아.」

[즈(그래?)]

「못하게 할까?」

[즈즈 즈즈(아니, 내버려 둬)]

26호가 말한 것은 아마 적 기함에서 나를 향해 정밀 탐사를 시도하는 것일 터. 이쯤 되면 녀석들도 알 거다.

이 생체함선에 자기들에게 이상한 메시지를 보낸 사이보그가 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배가 이 사태를 만든 원흉이라는 것을 말이다.

미세한 파장이 나의 몸을 가볍게 쓸고 지나갔다. 정밀 탐사가 완료된 것이리라.

그 이후 적들의 공격이 전에 비해 한층 더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무려 10척이나 되는 배가 나를 마크하기 위해 따라붙었으니까.

‘자자, 여기 있으니까 빨리 들이받아라.’

일부러 간발의 차로 어뢰들을 피하면서 알짱거리자 사이보그 배들도 제대로 열이 받은 것 같다. 자기들을 견제하는 컬트 함재기들을 무시하고 나만 쫓는 것을 보니까 확실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저 멀리서 사이보그 배 한 척이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것이 느껴진다.

‘남은 시간은 2분도 안 돼.’

나는 시급히 우리의 위치를 원자로가 아닌 다른 지점 근처로 옮겼다. 아까부터 붙잡고 있던 사이보그, 맥케이만 빼고 말이다.

“어, 어어? 나도 데….”

그의 마지막 외침은 살아 움직이는 벽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이동을 무사히 마친 나는 재빨리 ‘악몽의 지평선’을 해제했다. 금속과 동화된 몸이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나는 ‘유기적 진화’ 특성을 발동시켰다.

이번에 변신하려는 특수상태는 바로….

‘영리한 약자!’

특성이 발동되자마자 내 몸이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그와 동시에 배가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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