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59화 (160/400)

Ep. 159

‘엔진은 아까 무력화시켰고, 통신 차단은 방금 완료. 괜찮은 시작이야.’

내 앞에 있는 망가진 통신 설비가 마지막 스파크를 튀기며 작동을 정지했다. 나는 손에 쥔 케이블과 전선 다발을 바닥에 흩뿌렸다.

쓰레기 처리장에 숨어 있는 26호에게 부탁한 덕에 통신실의 보안을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EMP 효과로 인해 경비 안드로이드들이 잠시 정지해 있던 틈을 타 이곳에 몰래 잠입했다.

‘26호가 힘을 유지해도 되지만.’

굳이 이렇게 발로 뛰는 이유는 녀석이 쓴 사이킥 파워 흔적을 적들이 추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APD만 해도 사이킥 파워를 차단하는 기능 말고도 추적 기능이 보조 기능으로 붙어 있으니까.

은신처도 언젠가는 걸리겠지만, 벌써 들키는 것은 좋지 않다.

기계를 모두 망가트린 나는 통신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EMP효과로 인해 아직 정상화되지 않은 안드로이드들이 머리를 축 늘어트린 채 서 있었다.

26호가 쏜 사이킥 파워는 EMP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것이지 실제 EMP가 아니다. 몇 분 후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다.

물론 그때쯤 나는 이미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다음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는 엔진을 망가트린 뒤, 통신실이 아니라 드론 관리소를 칠 생각이었다. 이 시설은 메가콥이나 컬트 같은 다른 종족의 함선에는 없는, 스타유니언의 고유 시설이다.

‘스타유니언은 기계를 많이 사용하니까.’

가시가 삐죽삐죽 솟은 직사각형 박스처럼 생긴 스타유니언 함선에 중앙 상단, 혹은 하단 부근의 제일 긴 원통형 가시가 바로 드론 관리소다. 이름에서 보이듯 드론, 안드로이드를 관리하는 컨트롤 센터라 보면 된다.

그 시설을 부순다고 모든 드론과 안드로이드가 정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관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함선의 중앙 컴퓨터니까.

다만 드론과 안드로이드들의 행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즉 드론 관리소가 없어지면 배를 장악하기가 더 쉬워진다는 것.

그래서 엔진 다음 타깃으로 삼으려 했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천장에 거꾸로 붙어서 드론 관리소로 가던 중, 드론과 안드로이드의 움직임이 달라졌다는 것을 감지했다. 배 바깥에 있던 기계들이 속속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전투가 한창인데 수리에 열중해야 할 드론들이 귀환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바로 전투의 종료. 싸움이 끝나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려면 초광속 항해 상태에 들어가야 하니 드론들을 전부 수거한 것이리라.

‘의외로 일찍 끝났지.’

그 사실을 깨달은 직후 나는 통신실으로 방향을 틀어 빠르게 기어갔다. 도중에 26호에게 신호를 주면 배의 기계들을 고장 내라고 파장을 보내면서 말이다.

‘적절한 타이밍이었어.’

통신 설비를 엉망으로 만들기 전에 통신 기록을 한번 조회해봤는데, 마지막 기록이 기함과 연락한 내용이었다. 아마 초광속 엔진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보고한 내용이겠지.

‘통신 차단이 조금이라도 더 늦었으면 분명 지원 요청을 했을 거야.’

손과 발끝에서 느껴지는 균일하게 느껴지는 진동, 아까보다 훨씬 강렬한 열기를 보면 이 배에 달린 추진기가 맹렬히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대한 안전한 성계로 이동해서 자가 수리를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게 함장의 최대 실수지.’

수리함이나 지원 병력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리하겠다고 한 것. 그 선택이 이 배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외부와의 연락은 단절되었고, 이동 수단은 제한적이라.’

마침 내가 뛰어놀기 좋은 환경이다.

-

「보이십니까? 이건 충돌로 인한 손상이 아닙니다.」

「함장님, 아무래도 저희 말고 다른 게 이 배에 있는 것 같습니다.」

“…….”

케이블을 통해 영상을 전송받아 확인한 케인즈큐는 신음을 흘렸다.

‘엔진에 이어서 통신 설비, 그리고 드론 관리소까지 무효화됐다.’

그 사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는 알고 있다.

98번 함선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공격받고 있다. 그것도 선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말이다.

“어떻게든 복구 안 되겠나?”

「그게, 회로가 산성 용액? 이거 때문에 완전히 녹아버렸습니다. 드론 관리소가 정상화되려면 못해도 6시간, 길면 12시간까지 걸릴 수 있습니다.」

“통신 설비 쪽은 어떻지?”

「여기도 비슷합니다.」

재수 없으면 12시간 동안 바보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나마 추진기는 손상되지 않아서 다른 성계로 이동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안심할 수 없다.

이 배에 있는 존재가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에게 명확한 적의를 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으니.

‘젠장, 너무 안일했어.’

그 존재가 어디서 왔는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98번 함선이 소속된 네메아 함대가 JP-99 성계로 온 이유인 생체함선. 그것과 충돌했을 때 불청객이 그의 배에 올라탄 것이리라.

“일단 그쪽에는 가용 가능한 수리 드론과 안드로이드를 보내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시 시스템에 걸린 놈은 없는가?”

「정말 이상한 것이 통신실이든 드론 관리소든 카메라에 찍힌 것이 없습니다.」

스타유니언은 공식적으로 무신론을 지향한다. 살, 근육 대신 금속 파츠, 근섬유 모듈로 이루어진 안드로이드에게 사후세계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니까.

사이보그인 케인즈큐도 유령이라든가 그런 미신들을 믿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정말 귀신이 한 짓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98번. EMP가 어디서 발사됐는지는 확인했어?”

「흔적과 정보가 지나치게 적어 확인 불가. 내부에서 발생했다는 사실만 확인 가능.」

“이 배 안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군. 사이보그와 안드로이드, 드론 셋을 섞어서 경계 근무를 설 수 있도록 짜봐.”

「선체에 사이보그 인원 부족함.」

“…쯧, 부족한 부분은 스크리머로 채워.”

「확인.」

12시간만 버티자. 케인즈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생각이 오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 후로 3시간이 지난 후였다.

함선 내 복도에 있는 카메라와 전등이 전부 꺼진 것이었다.

“젠장! 카메라랑 전등만 불이 꺼졌다고? 설마 함선 원자로가 공격받은 것은 아니겠지?”

「원자로에는 이상 없음. 전선 설비에 오류 발생. 외부적인 요인 때문으로 추정됨.」

“그런데도 카메라에 전혀 안 찍혔다고? 그게 말이 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배에 있는 카메라 수는 수백 개 이상. 일반 감시 기능뿐만 아니라 열 탐지를 비롯한 다양한 시야 기능까지 탑재된 고성능 카메라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시설 쪽에 배치된 카메라는 사각이 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런데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해 불가능한 이 사태를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애쓰는 그였지만, 진정한 재난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전선 설비 구역에 배치된 사이보그 31번부터 35번, 연락 두절. 생체신호 반응 없음.」

“뭐?”

그는 서둘러 사이보그들의 생체신호 관련 정보를 띄웠다. 98번 컴퓨터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이보그 중 5명의 신호에 검은빛이 들어온 상태였다.

불청객이 본격적인 습격을 개시한 것이었다.

-

「모든 경계조는 습격에 대비하라! 가진 무기 다 써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놈을 죽여!」

“이런 젠장!”

“시야 전환 완료.”

“방어 준비 완료.”

명령이 내려오자마자 전투형 안드로이드 6대가 바로 반응했다.

메가콥의 안드로이드에 비해 훨씬 기계적으로 생긴 그들은 성능 또한 좋은 편이었다.

기계의 반란으로 로봇 개발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메가콥과 달리 스타유니언에게는 그런 제약이 없었기에 지속해서 개량이 이루어졌다.

4족 보행하는 모델이라든가 다섯 개의 팔과 두 개의 머리가 달린 모델 등등.

인간 형태에서 벗어나 전투에 최적화된 모델들이 장착된 무기들을 활성화시켰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스톰건의 화력과 연사력을 폭발적으로 향상시킨 헤비 런처라는 장비를 장착하고 있었다.

다연장로켓을 닮은 헤비 런처는 여러 개의 총구로 일순간에 엄청난 화력을 쏟아 내는 무기이지만,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어지간히 개조하지 않은 사이보그는 컨트롤하기 어려울 정도라 헤비 런처는 스타유니언 안드로이드들이 주로 사용한다.

다만 지금처럼 복도만 있는 일방통행 구조의 전장에서는 그 낮은 명중률이 단점이라 하기도 모호하지만.

“놈이 보이면 바로 쏴버려!”

“확인.”

각각 3대씩 복도 양쪽에 배치한 사이보그 두 명은 드론 조종용 단말기를 조종했다. 본래라면 그들도 같이 전투에 나섰겠지만, 드론 관리소에 문제가 생긴 이 상황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드론을 정밀하게 컨트롤하려면 지금처럼 단말기로 확인하면서 운용해야만 했다.

사이보그들이 단말기를 조종하자 몸에 3개의 총구를 단 구체형 드론들이 공중에 떠올랐다.

스타유니언의 서포트 드론이다. 지금처럼 보이지 않는 적을 탐지하거나 안드로이드의 시야를 보조하는 용도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특수 카메라로 대체한 자기 눈을 조정해서 열 감지 시야로 전환했다. 복도에 불이 완전히 꺼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사이보그 둘은 긴장한 상태로 각자 전방과 후방을 주시했다.

열 감지 시야 특유의 잿빛 색상의 복도 위에는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들을 노린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복도 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소리 또한 선체에서 들리는 미세한 금속음과 옅은 잡음 뿐. 이러한 분위기 때문일까. 어딘가 모르게 그 소리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잠깐, 잡음?’

후방에서 경계하고 있던 사이보그는 경계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알 수 없는 잡음이 자꾸 신경 쓰였다. 저것을 놓치면 안 된다는 듯, 개조된 뇌의 어딘가에서 그에게 경고가 날아오고 있었다.

결국 그는 청각을 담당하는 시스템을 살짝 조율했다.

덕분에 좀 전보다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마치 물렁한 무언가가 단단한 금속판과 부딪치는 소리 같다.

‘이건?’

그는 예전에 다리를 개조하기 전 맨발로 바닥을 걸었을 때 나던 소리를 떠올렸다. 그의 시선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하려는데 갑자기 전방에 있던 동료가 그의 어깨를 쳤다.

“뭐야?”

“쉿.”

동료는 손가락을 뻗어 복도 저편을 가리켰다. 어둠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어야 할 복도. 그 끝에서 생물이 발산하는 열기가 옅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곧이어 수십 개의 작은 열기 덩어리들이 이쪽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젠장! 사격 개시!”

“헤비 런처 가동.”

기괴한 외형의 안드로이드 6대로부터 엄청난 양의 탄환들이 쏟아졌다. 하나하나 위력이 만만치 않은 열화우라늄탄을 초당 백여 발씩 쏟아 내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놈들을 유린했다.

“삐빅, 우회하는 적 발견.”

“대응 완료.”

놈, 아니 놈들은 벽과 천장에 붙어서 총탄을 피하며 움직였다.

그러나 이를 막으라고 드론을 깔아놓은 것. 공중에 떠 있는 서포트 드론들이 사격과 동시에 안드로이드에게 놈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전달해줬다.

전투는 금방 끝났다. 적이 섬멸된 것을 확인한 안드로이드들이 사격을 멈추고, 사이보그 둘은 앞에 나섰다.

“어떤 놈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그러게.”

사람 머리를 노리면 머리와 상반신 자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헤비 런처다. 그 무기에게 당한 놈들 중 흔적을 제대로 남긴 존재는 없었다.

그나마 제일 큰 부위가 놈들 중 한 마리의 상반신이었다.

“좆같이 생긴 벌레로군.”

“벌레치고는 이빨이 과하게 발달되어 있는데. 이 치열 좀 봐. 무슨 사람 이빨도 아니고.”

“니미, 꿈에 나올까 두렵네.”

시체 파편을 확인한 둘은 그 흉측한 모습에 진저리쳤다.

“이 좆같은 놈들이 더 있을지 몰라. 먼저 보고부터 해 두고….”

함장에게 보고하려던 사이보그는 말을 멈췄다.

귀에 또다시 그 소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 소음이 들리는 천장 부근으로 향했다.

‘드론…이 없잖아?’

조금 전까지 그 자리에 있던 드론 3대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을 동료에게 알리기 위해 그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순간, 무언가 뜨뜻한 액체가 그의 얼굴에 튀었다.

“쿨럭?”

그리고 들리는 동료의 기침 소리. 열 감지 시야에 보이는 그의 동료가 천천히 공중에 떠오르더니 그대로 삼등분이 되었다.

“저, 저놈을 죽여!”

그 모습에 사이보그는 기겁하며 안드로이드들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의 명령에도 안드로이드들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방금까지 무차별적으로 화력을 퍼붓던 살인기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순한 모습이었다.

“쏘라고! 놈을 쏴서 죽여!”

“적 발견되지 않음.”

“사격 불…과아아아아.”

이어서 안드로이드들도 그의 동료와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안드로이드를 무자비하게 찢어발겼다.

다섯 개의 팔이 달린 안드로이드의 팔이 뜯어지면서 합성 석유가 바닥으로 흘러내렸고, 4족 보행하는 안드로이드는 상하체가 분리되어 벽과 천장에 처박혔다.

금속 냄새밖에 나지 않던 넓은 복도가 순식간에 피와 석유 냄새로 가득 찼다. 그 자극적인 냄새가 공황에 빠진 사이보그를 일깨웠다.

‘도, 도망쳐야 해!’

그는 최대한 놈에게 멀어지기 위해 복도를 내달렸다. 달리는 중에 그의 귀로 멀리서 아련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총 소리.

다른 곳에서도 여기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리라.

‘수, 숨어야 해!’

그의 눈에 복도 한편에 있는 문이 들어왔다. 그곳은 사이보그용 전투식량을 보관하는 식량 창고였다. 그는 급히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구석에 몸을 숨겼다.

‘여, 여기라면 괜찮을 거야!’

사이보그용 전투식량은 특유의 타이어 비슷한 맛만큼이나 냄새도 매우 고약하다. 이 냄새라면 놈에게 걸리지 않을 거다.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이고 있으니 밖에서 나는 소리가 한층 더 잘 들리는 기분이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들리던 총소리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아마 저쪽 상황도 결코 여의치 않다는 뜻일 터.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발 누가 좀 와줘!’

대수령 주바카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신 걸까. 식량 창고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시선이 문가에 향했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도대체 왜 안 보이는…잠깐.’

문득 불길한 생각이 그에게 엄습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열 감지 시야를 해제했다. 대신 청각과 시야를 연동해서 진동으로 물체를 보는 모드로 전환했다.

시야가 변동되자 새로운 세계가 그의 눈에 펼쳐졌다.

그가 허둥대며 들어오느라 쏟아진 전투식량들. 가지런하게 쌓여 있는 박스들. 그리고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

‘꼬리?’

그의 눈이 집게발을 달고 있는 꼬리의 위쪽으로 이동했다.

꼬리와 함께 땅을 지탱하고 있는 탄탄한 4개의 다리가 보인다. 꼬리와 마찬가지로 모두 단단해 보이는 갑각과 털로 덮여 있다.

그 위에 보이는 두꺼운 몸체와 4개의 팔들. 단단한 갑각과 탄탄한 근육으로 구성된 그 팔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 네 개가 달려 있었다. 안드로이드와 사이보그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팔들답게 흉기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머리가 있었다.

콜드블러드를 닮은 길쭉한 주둥이와 등 뒤쪽으로 쭉 뻗은 거대한 머리 갑각, 6개의 우람한 뿔이 달린 「그것」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과연. 진동 앞에서는 숨길 수 없나보네.”

그것의 입에서 평범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음에도 그는 안심할 수 없었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그것」.

양 갈래로 갈라지는 입을 크게 벌린 채 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

식량 저장고에서 사이보그를 단번에 먹어 치운 나는 바닥에 떨어진 전투식량을 주웠다.

‘사이보그 맛은 별로란 말이지.’

육질 자체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기계 부품이 많아서 씹을 때마다 매우 거치적거린다. 마치 살점 없이 뼈만 잔뜩 붙은 갈비를 먹을 때 기분이랄까.

‘이건 어떨까?’

나는 전투식량의 봉지도 뜯지 않고 그대로 입에 넣었다.

‘으으으으음. 미묘한데.’

스타유니언의 전투식량은 예전에 먹은 카카오 100% 맛보다 텁텁하고 독한 맛이 났다. 맛 자체는 메가콥의 칼로리바보다 좋지만, 식감은 이쪽이 더 안 좋았다.

‘이건 함선 장악 후에 먹어야겠다.’

함선 지배는 함장과 몇몇 쓸모 있어 보이는 사이보그들에게 기생충을 심은 뒤 진행할 예정이다.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 혹시나 다른 함선의 사이보그가 이 배에 연락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고장을 이유로 이탈한 배다 보니 중간에 기함 쪽에서 연락이 올지도 모르니까.

‘그보다는 침식 촉수를 못 사용해서 그런 것이 크지만.’

사실 이게 제일 큰 이유다. 침식 촉수를 사용할 수 없다 보니 악몽의 지평선으로 배를 침식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예 침식 대상인지부터가 확인이 안 돼.’

배를 지배하려면 ‘영리한 약자’ 상태를 해제한 뒤, 침식 촉수로 장악해야만 한다. 변신 능력인 ‘유기적 진화’는 쿨타임이 한 달로 절대 짧지 않다. 그래서 배에서 발생할 위험 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장악할 생각이다.

‘나가서 다른 쪽도 정리하러 가 볼까.’

식량 저장고를 나선 나는 복도를 따라 이동했다. 멀리서부터 26호와 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가 날뛰는 소리가 들린다.

‘다들 심심했나보네.’

복도 쪽이 다 정리되면 모아서 중요 시설을 점거하는 것도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동하는데, 저 복도 앞에서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윽고 거친 숨소리와 함께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우우」「쿠우우」

‘스크리머.’

이전 전투로 인해 안드로이드와 드론은 나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 마지막에 잡아먹은 사이보그는 전투 전에도 나에 대해 인지했다.

‘소리나 진동은 못 숨겨.’

‘미지생물의 털가죽’은 털의 움직임이 관측 장비를 교란시켜서 감지되지 않도록 하는 특성. 진동이나 소리까지 감춰주지는 않았다.

강화 흡반 특성을 이용해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고 있지만, 생물인 이상 소리 자체를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크리머라면 어떻게 되려….’

「쿠우우」「적 발견. 제거.」「쿠우우」

‘아.’

기대와는 달리 핏발선 눈으로 날 주시한 스크리머.

절반은 인간, 절반은 기계인 괴물이 6개의 금속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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