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61
‘대수령까지 플레이어라.’
지금까지 내가 아는 플레이어는 총 4명이었다.
사이보그면서 다른 종족으로 변환이 가능한 스페이스독 플레이어 뮤리엘, 볼프인 하늘의 어머니, 그리고 뮤리엘을 돕는 메가콥과 컬트 플레이어 둘.
이제는 거기에 스타유니언의 플레이어도 추가되었다.
‘스타유니언이 적이면 성가신데.’
기계를 주력으로 운영하는 세력이다 보니 유전자 정수를 모으는 에이모프와는 상성이 안 맞는 편이다. 적들을 아무리 많이 잡아먹어도 강해질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스타유니언을 상대로는 메가콥이나 컬트와 싸울 때처럼 복잡한 정치 구조를 이용해 기만전술을 펼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러 가문이 권력을 나눠 갖는 메가콥, 여러 정치 세력이 난립하는 컬트와 달리 스타유니언의 권력 기구는 오로지 하나뿐이다.
‘기계위원회.’
그리고 그 기계위원회의 수장이 바로 대수령이다. 즉, 그와 적대 관계가 된다면 스타유니언 전체와 적대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니까 벌써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와 협력하는 메가콥 플레이어가 과연 누구냐는 것.
‘헐크 뮤턴트 조작 기술을 지녔고, 스타유니언의 고위층과 쉽게 접할 수 있는 자.’
문득 뮤리엘을 지원하던 메가콥 플레이어가 떠오른다.
‘설마?’
나는 그녀를 돕던 플레이어가 가르멜다 가문의 고위직이라 추정했다. 플레이어들에게 장비를 개량 및 보급해준다는 점은 가르멜다 플레이어들의 특징이었으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가 사용하던 장비, 전부 스타유니언산이었다.
사이오니움은 설정상 메가콥에서도 암중에 거래되는 각성제이지만, 어디까지나 스타유니언에서 개발한 약품이다. 블러드 리버 또한 사이보그만이 제작 가능한 장비고.
당시에는 사이보그인 뮤리엘이 구한 것을 가르멜다 플레이어가 개량한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게 아니라 스타유니언 플레이어, 가르멜다 플레이어, 뮤리엘, 이렇게 세 명이 얽혀 있다면….
‘아니야. 근거가 부족해.’
블러드 리버는 고급 장비이긴 하나 제작비용만 충당할 수 있다면 충분히 제작할 수 있다. 다른 종족으로 위장할 수 있는 사이보그 해적인 뮤리엘이라면 어렵지 않게 제작 가능할 거다.
설령 뮤리엘을 돕는 또 다른 스타유니언 플레이어가 있다고 쳐도, 그가 대수령이라는 보장은 없다.
‘둘은 별개의 세력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뮤리엘을 지원하는 자들, 그리고 스크리머 관계자들. 이렇게 두 세력이 존재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거다.
정말 재수가 없으면 양쪽 세력이 서로 협력하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내가 싸워야 할 상대에 뮤리엘 지원 세력 말고도 스크리머 관계자들도 추가되겠지.
‘아직 확실하지 않아.’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측을 억지로 끊어냈다.
매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하게 조심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옳은 판단도 가로막는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면, 스크리머를 만드는데 협조한 메가콥 플레이어는 최소한 프라임캐피탈 이상이다. 유전자 조작 기술을 쓸려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헐크 뮤턴트를 생산할 수 있는 자라 하면 거기서 범위가 또 줄어든다. 전에 봤던 에저튼 가문의 기사들처럼 프라임캐피탈이 유전자를 조작해서 만들 수 있는 존재는 강화인간까지다. 헐크 뮤턴트를 제작하려면 노블캐피탈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노블캐피탈 중에서도 유전자 조작 시술이 가장 뛰어난 가문이 유진이지.’
이전에 싸웠던 시현 유진과 코드 블랙. 그 둘은 유진 가문에서 만든 작품들이다.
그들은 다수의 유전자를 한 몸에 지니고 있음에도 딱히 부작용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노블캐피탈은 그 정도로 잘 만들지 못한다.
‘근데 이 스크리머를 만드는데 그렇게 높은 기술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걸.’
나는 스크리머들을 모두 살펴봤다. 외형은 사이보그지만, 자세히 보면 몇 가지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띤다.
‘이 부분은 콜드블러드의 경질화 유전자를 빼온 거고, 이건 근육 강화 유전자로 인한 변화 같은데.’
전부 두 개, 아니면 세 개의 유전자로 합성된 헐크 뮤턴트들이다. 이 정도 수준의 헐크 뮤턴트는 다른 노블캐피탈들도 만들 수 있다.
‘헷갈리네.’
이 상태로는 스크리머 관련자가 누군지 추측하기 불가능할 것 같다.
나는 또 다른 플레이어인 하늘의 어머니에게 내 추측을 말했다.
「대수령은 사이보그가 엔딩을 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니까 플레이어일 수도 있겠네.」
[즈즈(그렇지)]
「어쩌면 네가 추측한대로 가르멜다의 랭커가 대수령과 결탁했을지도 몰라.」
[즈즈즈즈(어째서지?)]
「스크리머는 절반은 생물, 절반은 기계로 분류되잖아. 스크리머 재료로 쓸 헐크 뮤턴트를 양산할 거라면 기계, 무기 기술에 대한 이해도도 필요해.」
일리 있는 지적이다. 생체병기가 아닌 기계병기 쪽에서는 유진 가문보다는 가르멜다가 우월하니까.
「어쩌면 두 가문 모두 결탁했을지도 모르지.」
[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두 가문에 플레이어가 있다고?)]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한쪽에 있는 플레이어가 다른 가문을 설득했을 수도 있어.」
[즈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무리수라 생각하지만 주의해 두지)]
「나도 기억나는 거나 단서를 발견하면 바로 얘기할게.」
결국 스크리머 제작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얻지 못했다. 플레이어가 개입되었을 것이라 추측만 할 뿐.
‘남은 건.’
26호가 챙겨 온 싱싱한 먹이뿐.
「큰애기야, 빨리 먹어. 시간 지나면 맛없어.」
「부정」「그냥」「맛없음」
「시끄러.」
본래 게임에서는 스크리머를 죽여도 유전자 정수를 얻을 수 없었다. 생물과 기계가 반반씩 섞인 존재지만 시스템상 기계로 분류되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여기서는 아니지.’
헐크 뮤턴트라면 유전자 정수의 보고. 아직 살아 있는 스크리머들을 내가 죽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특성들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된다.
‘사냥의 표상을 쓸까?’
사냥의 표상을 쓰면 포식을 띄울 확률이 대폭 증가한다. 유전자 정수를 다수 확보하고자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다만 단점이라면 표상 효과가 끝나고 난 뒤에 발생하는 부작용. 이 변화는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므로 변신이 종료된 이후 엄청난 굶주림이 밀어닥친다. 나라고 해도 이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저 헐크 뮤턴트, 딱 하나 괜찮아 보이는 유전자 정수가 있는데.’
아까 확인해 본 바로는 스크리머 중 하나의 몸에 콜드블러드의 유전자 정수가 들어 있었다.
‘콜드블러드는 내부기관 관련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지.’
현재까지 내가 획득한 타입은 총 4개, 조건만 해금해 둔 타입은 3개다. 원래는 특수방어 타입과 우주괴물 타입 이렇게 2개였지만, 몇 시간 전에 스타유니언의 인력공급선을 통째로 집어삼킨 덕에 새 타입을 해금했다.
「⑦ 내부기관 관련: 근육 보강, 열 방출, 소화액 분비 강화
-내부기관 관련 융합 특성: 레버넌트 기관」
내가 먹은 인력공급선에는 꽤 다양한 종류의 지성체들이 실려 있었다. 그 덕에 쉽게 얻을 수 없는 내부기관 특성을 이렇게나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내부기관’ 특성은 일반 육체 관련 특성과 다르게 신체 내부의 여러 기관들을 강화 및 변형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직접적인 전투와 관련된 특성은 많지 않지만 다른 특성의 효과를 보조하는데 특화된 타입이다.
‘이 계열 특성은 대다수가 꽝이지만 일부는 효과가 매우 좋아.’
현재 내가 지닌 내부기관 특성 중 유용하다고 할 만한 것은 ‘가사상태’를 재료로 써서 만든 ‘레버넌트 기관’뿐이지만, 그것말고도 쓸만한 특성들이 제법 포함되어 있다.
‘특히 신경계를 변형시키는 특성들은 초능력 관련 특성과 시너지가 좋지.’
감염 관련 특성이 둥지 관련 특성과 시너지가 있는 것처럼 초능력 관련 특성은 내부기관 관련 특성 중 몇 가지와 시너지가 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찾아다니는 에너지 소모 효율을 높여주는 특성도 내부기관 특성으로 분류된다.
‘이것들을 먹는다고 바로 얻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나는 아직 죽지 않은 스크리머들을 보며 갈등했다.
‘그러고 보니 영리한 약자에 에너지를 보존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설명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실험해 보자.’
나중에도 영리한 약자 상태로 사냥의 표상을 쓰게 될 수 있다. 아직 내게 직접적인 위기가 닥치지 않은 지금 같은 상황에 미리 확인해 둬야 나중에 문제가 안 생긴다.
나는 애들에게 내가 또다시 정신이 나갈 수 있다고 주의를 줬다. 그렇게 되면 재빨리 다른 시체를 내게 넘기라고 말이다.
「큰애기가 배가 많이 고팠구나. 불쌍해.」
「큰어른」「먹보」
26호는 안쓰러워하는 파장을, 아드하이의 놀림 섞인 사념파를 보냈다. 녀석들을 한차례 쳐다본 난 마지막으로 하늘의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녀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표시였다.
그제야 안심한 나는 사냥의 표상을 활성화했다.
-
“젠장!”
98번 함선 함장 케인즈큐는 연신 검은불이 들어오는 생체신호창을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알 수 없는 괴물의 습격이 개시된 이후 사이보그들과의 연락이 줄줄이 끊기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기계위원회로부터 받은 스크리머들까지 빠르게 죽어 나가는 중이었다. 케인즈큐는 스크리머가 범죄자들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전쟁병기가 전투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 강력한 무기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것은 적이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비상전력을 동원해 카메라 재활성화.」
98번이 그나마 희소식이라 할 만한 것을 전달해줬지만, 케인즈큐는 안심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한 마리가 아니잖아!’
드론 관리소가 파괴되는 바람에 드론에 달린 카메라의 영상 정보는 원거리에서 열람이 불가능하지만, 안드로이드는 아니다.
함선 카메라처럼 이 자리에서 카메라 옵션을 조정할 수는 없지만 안드로이드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안드로이드 수십 개의 시야와 동기화한 케인즈큐는 이 배에 올라탄 괴물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 두 마리, 4족 보행하는 털 달린 야수,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하는 분홍색 풍선 괴물까지.
스타유니언의 야수투기장에서도 그런 괴물은 본 적이 없었다.
“놈들에 대한 분석은 어떻게 됐어?”
「C, D타입 미확인 생물 분석 중. C타입은 매우 민첩한 몸놀림, 강도 높은 발톱과 부리를 보유. D타입은 고밀도의 예언자급 사이킥 파워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
“A랑 B는? 그놈들은 눈에 안 보이는데 왜 그런 거야?”
「B타입은 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됨. 안드로이드가 공격당할 당시의 손상 수준을 통해 추정하면 함재기 이상의 속도로 추정.」
“…이 배에 자동 항해가 가능한 드론이 몇 대 있지?”
「드론 관리소가 파괴되어 현재 6대만 가능합니다.」
“칫, 일단 그 드론에다가 지금까지 확보한 정보들을 전부 전송해.”
「전송 중.」
“내가 나간 후에 자동 항해 모드로 발사, 10시간 후에 구조 신호를 띄우도록 조정해 놔.」
「확인.」
그 말을 끝으로 케인즈큐는 머리 뒤의 케이블을 뽑았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그가 소속된 함대, 네메아 함대에게 어떻게든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주요 시설부터 공략하는 것을 보면 놈들은 단순히 힘만 강한 괴물이 아니야.’
이 정도로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괴물들이라면 그가 함재기를 타고 도주할 것을 예상하고 있을 터. 어차피 도망갈 길이 없다면, 마지막까지 싸울 생각이었다.
‘내 복수는 네메아 함대가 해 줄 거다. 괴물놈!’
자리에 일어난 그는 상황실에 배치된 무기들을 챙겼다. 무장한 뒤 밖으로 나가려는 그에게 98번이 보고했다.
「설정 완료.」
“…그래. 수고했다.”
「좋은 여행되시기 바랍니다.」
상황실을 나설 때면 항상 출력되는 메시지였지만, 그의 각오를 응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왜일까.
케인즈큐는 어둠에 잠긴 복도에 나왔다.
수많은 사이보그와 안드로이드가 파괴됐음에도 상황실 앞 복도는 고요하기만 했다.
그는 스톰건의 경량화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펄스건을 한 손에 든 채로 드론 단말기를 조종했다. 깔끔한 구체 모양을 한 드론이 그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안드로이드와 스크리머도 전멸했는데 그들보다도 무장 수준이 떨어지는 그가 괴물들을 이길 가능성은 희박했다.
‘상관없어.’
이미 그의 복수 계획은 실행됐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복도 앞을 주시했다.
그렇게 복도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갑자기 어떤 울림을 느꼈다.
이 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그였지만 지금 발밑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상당히 낯설었다. 익숙하지 않은 그 울림은 균일한 박자로 복도를 둘러싼 합금 벽을 진동시켰다.
‘놈이 오고 있다!’
케인즈큐는 펄스건을 든 손에 힘을 꽉 줬다. 괴상한 진동이 느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스크리머가 내는 숨소리랑 비슷했지만 훨씬 더 거칠고 낮았다. 초광속 엔진이 움직일 때 나는 소리와 유사했지만 더 사나웠다.
그 소리가 괴물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라는 것을 케인즈큐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젠장! 어디 있는 거야?’
소리와 진동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탐사 드론 또한 놈을 발견하지 못한 채 계속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발소리는 들리는데 열 감지 시야로도 보이지 않고…잠깐, 소리?’
케인즈큐는 재빨리 탐사 드론의 옵션과 자기 시야를 조정했다. 진동과 파장을 통해 적의 모습을 파악하는 모드로 말이다.
그렇게 하자 복도 끝에 서 있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복도 통로를 꽉 채우고 있는 그 괴물의 모습은 실로 공포스러웠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길고 굵은 뿔 6개를 단 괴물의 얼굴은 마치 동물의 해골을 닮았다. 길쭉하게 앞으로 뻗은 주둥이는 잘린 스크리머의 머리를 물고 있었고,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삐죽삐죽한 가시와 골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가시와 골판들이 보이는 각도에 따라 눈처럼 보이기도 해서 오히려 더 두려움을 자아났다.
턱 아래에는 뿔만큼이나 위협적으로 보이는 뾰족한 뼈 칼날 4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뼈 칼날들은 당장에라도 적을 잘라낼 준비가 되었다는 듯 쉴 새 없이 까딱거렸다.
그 아래에 있는 몸은 긴 털로 뒤덮여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놈이 숨을 쉴 때마다 살짝 드러나는 다리들을 봤을 때 놈의 다리가 여러 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할 뿐이었다.
“…….”
놈의 모습과 마주한 케인즈큐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저 괴물을 상대로 시간을 번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질 나쁜 농담 이하였다.
「적 발견.」
만약 드론이 보고하지 않았다면 그는 꼼짝도 못한 채 놈에게 죽었을 거다. 정신을 차린 그는 놈과 반대 방향 복도로 미친 듯이 달렸다.
그가 도망치자 놈이 스크리머의 머리를 단번에 삼키고 움직였다. 거대한 놈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복도가 쩌렁쩌렁 울렸다.
죽을힘을 다해 달리던 케인즈큐는 목뒤에 닥치던 섬뜩한 느낌에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괴물의 턱에 달린 칼날이 복도를 베고 지나갔다. 단단한 합금 벽이 가위로 종이를 자르듯 깔끔하게 잘렸다.
“헉!”
방금 공격은 피했지만 자세가 무너졌다. 케인즈큐는 몇 발 못 가고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히, 히익!”
곧 닥쳐올 죽음을 예감한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그는 죽지 않았다. 그가 한쪽 눈을 살짝 뜨자 그의 코앞에 놈의 얼굴이 보였다.
“너, 함장이지?”
“…….”
놈의 입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 그는 너무나도 긴장했기에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덜덜 떨고 있는 그에게 괴물이 다시 한번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너 함장이냐?”
“네, 네!”
그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놈이 고개를 뒤로 뺐다.
총으로 자살하려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불발이 된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죽다 살아난 케인즈큐는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놈의 행동은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하마터면 쓸모 있는 애를 죽일 뻔했네.”
그 말과 함께 놈이 팔을 내밀었다. 놈의 두터운 털가죽 안쪽에서 무언가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제부터 네가 섬길 자는 스타유니언이 아니다.”
털 사이에서 튀어나와 꿈틀거리는 검은색 지렁이를 본 케인즈큐는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