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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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에 실려 있는 자료들은 스타유니언의 함선 컴퓨터가 분석 및 정리한 데이터와 함선 내부의 촬영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암석구름의 미세한 입자들에 부딪쳐서 그런지 저장된 자료들 중 일부가 소실된 상태였다.
불완전한 상태에 암호화까지 진행된 까다로운 자료들이지만, 시현과 라일라에게 그 부분은 딱히 장애가 되지 못했다.
유진의 그림자 역할을 수행하며 첩보 기술을 익힌 시현, 가문의 촉망받는 기대주로 특별한 교육을 받았고 첨단 슈트까지 착용한 라일라.
둘 다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데이터 내용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정체불명의 생물 4종에 의해 X2급 구축함에 승선한 군인이 궤멸이라니.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스타유니언의 함선 컴퓨터가 기록한 정보니 왜곡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하긴 영상으로도 남아 있으니 사실이겠죠.」
스타유니언의 AI성능은 메가콥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 항로 계산이나 에너지 출력 계산 같은 함선 운용 부분에서는 양자 간에 큰 차이가 없으나, 지금처럼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분석하는 능력은 스타유니언 측의 AI가 더 뛰어나다.
오죽하면 시현 유진의 기함도 스타유니언의 AI를 사용하고 있을까.
라일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워낙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보니 꺼내 본 말이었다.
지금 둘은 드론에 저장된 영상 기록을 직접 보고 있는 중이었다.
사이보그와 안드로이드들은 4종류의 괴물의 습격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저 D타입 생물, 혹시 버블아메바인가요? 덩치 차이가 많이 나지만 비슷하게 생겼네요.」
“모르겠군. 버블아메바가 저렇게 강한 사이킥 파워를 휘두른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 없어.”
「어쩌면 에저튼이나 자오에서 만든 실험체일지도 모르겠군요. 그쪽에서 버블아메바 연구에 관심이 많다고 그랬으니.」
라일라가 지나가듯 흘린 말을 들은 시현은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버블아메바, 사이킥 파워, 실험….’
시현이 클론 제작 시설에서 깨어난 이후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자기가 죽기 직전의 기억이었다. 그녀는 아키라 유진의 손녀 키사라기 유진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키사라기 유진은 사이오니움과 헐크 뮤턴트 연구에서 매우 뛰어난 성과를 보인 인물. 헐크 뮤턴트 사업으로 권력을 쥔 아키라 유진에게 중요한 존재였기에 어떻게든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시현 유진은 키사라기를 제거하면서 다른 가문들의 음모로 인한 것으로 꾸밀 생각이었다.
그녀의 계획대로 키사라기 유진은 죽었다. 나머지는 그녀가 직접 키사라기의 죽음을 조작할 일뿐.
일이 결정적으로 뒤틀리게 된 것은 그 부분부터였다.
키사라기가 죽은 우주선에 타 있던 괴물이 그녀를 방해한 것이다.
그녀는 그 괴물이 유전자 조작 기술의 최정점이라 할 수 있는 그림자보다 훨씬 상위에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간파해냈다.
그렇기에 생포하려고 했지만, 그 괴물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괴물과 치열하게 싸운 그녀는 결국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인해 패했다.
‘연구선에 있던 버블아메바.’
무력한 존재이기에 관심 밖에 두고 있었는데, 그 무력한 존재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를 방해했다.
방금 영상에서 본 것처럼 사이킥 파워를 사용해서 말이다.
‘키사라기의 마지막 연구 주제가 버블아메바로부터의 사이킥 파워 잠재성이었지.’
그녀를 죽이기 위해 정보를 수집했기에 시현 또한 그녀가 무엇을 연구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사이킥 파워를 사용하는 버블아메바가 우주선에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영상을 보는 라일라를 두고 시현은 드론에 있는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4종의 생물 중 유일하게 A와 B타입 생물에 대한 정보가 가장 부실했다. 둘 다 은폐 능력을 지녔는지 영상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시현이 관심을 갖는 존재는 A타입 생물이었다. 그녀는 컴퓨터가 남긴 A타입의 정보를 열람했다.
기록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놈은 육체적 능력이 탁월하며 함선을 녹일 수 있는 산성 체액을 만들 수 있다. 또한 매우 높은 지능을 지녔으며 기습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현은 그 글을 보며 자기를 죽였던 그 괴물을 떠올렸다. 버블아메바를 데리고 다니며 산성피를 흘리고, 지능이 매우 높은 괴물.
그렇게 생각하면 스타유니언의 군인들을 궤멸시킨 A타입 생물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그녀가 조우했을 때보다는 많이 성장한 것 같지만 말이다.
‘괴물! 역시 살아 있었구나!’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에서 그녀는 놈의 기운을 느꼈다. 당시에는 폭탄을 운반 중이어서 놈과 직접 마주하지는 못했다.
그 후 도시가 붕괴했지만, 그녀는 괴물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높은 지능을 지닌 놈이니 어떻게든 도시를 빠져나가 저 우주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라고.
사실 나름 근거가 있는 판단이었다.
도시 붕괴 이후, 우주에서 표류하던 라일라의 의료선을 구해 준 시현은 그녀로부터 괴물에 대한 사항을 자세히 들었다.
도시에서 있었던 일과 놈을 연구해서 신형 헐크 뮤턴트를 개발하려고 했던 라일라의 야심까지 전부.
시현은 라일라를 흘낏 쳐다 봤다.
‘당장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노블캐피탈인 라일라가 시현의 말을 따르는 이유는 바로 복수와 야심 때문이었다.
자기를 파멸시킨 괴물에 대한 복수, 놈의 시체를 이용해 본인이 티앤씨의 가주가 되는 것.
두 가지 목표 덕분에 그녀는 반은 시체인 상태에서도 살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나와 비슷할지도 모르겠어.’
잠깐 그런 생각을 한 시현은 데이터가 기록된 날짜를 확인했다. 기록일은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0일 전이었다.
시간이 꽤 지났으니 이 드론을 발사한 함선을 찾으러 가 봐야 발견하기 어렵다.
‘지금은 이 정보부터 연구한다.’
놈과 언제 다시 조우할지 모른다. 그전까지 놈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할 필요가 있다.
‘그 무기만 얻는다면…!’
지금 그들이 찾으러 향하는 고대 유물. 그것까지 손에 넣는다면 아무리 머리가 좋은 괴물이라도 사냥할 수 있으리라.
시현의 눈에서 조용히 불꽃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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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번 함선, 발견했습니다!”
네메아 함대의 함대사령관 대리 사나다에프는 잔뜩 긴장한 채 큰 목소리로 외쳤다.
평소에 후줄근한 옷을 입고 기함을 조종하던 그는 지금 검은색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붉은색 휘장이 붙어 있었다.
가운데에 위치한 주먹과 그를 둘러싼 12개의 별이 그려진 이 휘장은 스타유니언의 심볼이다.
“탐색 완료! 내부에 함장 생존 확인!”
전투에 나갈 때도 안 입던 군복에 휘장까지 달고 있는 이유는 그를 지켜보는 두 존재들 때문이다.
「질문. 사나다에프. 다른 사이보그는 존재하는가.」
“이, 크흠! 이외에 9명 생존 확인!”
그에게 질문한 자는 스타유니언의 12명밖에 없는 최고위원이자 사나다에프의 직속상관, 초고성능 안드로이드 네메아 파이브였다.
사나다에프에게 네메아 파이브는 어려운 상관이긴 하지만, 그를 진정 긴장하게 만드는 존재는 저 안드로이드가 아니다.
「네메아 파이브 보고함. 위원장 각하. 작전 개시하시겠습니까?」
「개시하도록.」
기계위원회의 위원장이자 스타유니언의 대수령, 주바카가 수도 작스-01에서 사나다에프를 지켜보는 중이다.
스타유니언의 신화적인 존재이자 최고 존엄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사나다에프는 기절할 지경이었다.
“명령 확인! 도킹 작업 개시! 전투 부대는 진입 대기!”
「명령. 준비하라. 다른 함선들이여.」
「애로우 함대 대리! 함선 명령 확인! 목표 조준 완료!」
「레드테일 함대 대리! 함선 명령 확인! 목표 조준 완료!」
그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명령을 내렸다. 다른 함선의 함장들도 사나다에프와 비슷한 심정인지 통신기에 대고 악을 쓰며 회답했다.
지금 그들은 10일 전 연락이 끊긴 98번 함선을 대상으로 수색 임무를 수행 중이다.
AD-100 성계에 도착 후 초광속 엔진을 수리하기로 했던 98번 함선은 통신이 차단된 이후 돌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망가졌다고 보고한 초광속 엔진을 이용해 다른 성계로 연달아 초광속 항해를 한 사실도 관측되었다.
본래라면 네메아 함대의 총사령관 네메아 파이브 선에서 끝날 문제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대수령 주바카가 98번 함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탓에 무려 3개의 정예 함대가 98번 함선의 뒤를 쫓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10일 만에 중립 지역에 위치한 성계에서 98번 함선을 발견했다. 수많은 무역선이 오가는 성계 한가운데에 98번 함선이 덩그러니 떠 있었다.
생체함선에 의해 감염된 것으로 알려진 98번 함선은 기존 X2급 구축함의 외형과 똑같았지만 색깔만 달랐다. 함선을 둘러싼 우주 공간과 흡사하게 새까맣게 물들은 모습은 누가 봐도 심각한 오염 상태에 처한 것처럼 보였다.
“도킹 완료! 돌입하겠습니다!”
「명령. 허가한다.」
98번 함선 옆에는 사나다에프가 탄 기함이 붙어 있었다. 휘하의 함선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죄로 사나다에프의 함선이 직접 98번 내부를 수색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함대들은 거리를 벌린 상태로 98번 함선을 조준하는 중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발생하면 그들의 함포가 바로 사격할 것이다.
“신호 모두 상황실에서 감지됩니다. 생체 신호는 전원 양호. 특별한 변동사항은 없습니다.」
「샅샅이 뒤지도록. 뭐가 나올지 모르니.」
“대, 대수…크흠, 알겠습니다! 각하!”
98번에 승선한 안드로이드와 워커들의 촬영 기록들이 실시간으로 각 함선과 대수령에게 전송되었다. 사나다에프 또한 목에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부하들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배 내부에는 유독한 화학물이 포함된 기체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퍼져 있었다. 부하들이 카메라를 조정하자 배 곳곳에 맥동하는 생체조직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주바카가 중얼거렸다.
「…네메아 파이브. 전부 빠짐없이 저장해라.」
「네메아 파이브 응답함. 저장 중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위원장 각하.」
둘의 말이 들리지 않는 현장의 부하들은 빠르게 선내를 수색했다. 곧이어 그들은 상황실에 도착했다.
“저, 저건?!”
부하가 촬영한 상황실 내부의 풍경을 본 사나다에프는 기겁했다.
딱딱하고 투박한 디자인의 함선 상황실은 그곳에 없었다. 혈관처럼 보이는 촉수,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가 터지는 포자, 유독성 안개를 내뿜는 역겨운 생체 파이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곳은 상황실이라기보다는 둥지였다. 끔찍하고 역겨운 생물의 둥지.
그 부정한 존재의 보금자리에는 그들이 찾던 98번 함선의 함장 케인즈큐와 8명의 사이보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단단하게 굳은 촉수에 꽁꽁 묶인 채 벽과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하, 함장 케인즈큐와 8명의 선원들! 전원 발견했습니다! 현재까지 사상자 없음!”
「명령. 확인하라.」
워커 하나가 벽에 붙은 케인즈큐를 때어놓기 위해 다가 갔다. 그런데 워커가 가까이 오자 케인즈큐가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어, 어어? 갑자기 이게 왜…?”
「무슨 일이지?」
“그, 98번 함장의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얼굴까지 촉수로 휘감겨 있던 그가 어떻게든 입을 벌려 크게 외쳤다.
「당장 여기서 모두 나가! 이 배에는…커헉!」
그는 말하던 중에 피를 크게 토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동시에 사나다에프가 보고 있던 케인즈큐의 생체 신호도 검은빛으로 전환되었다.
“98번 함장 사망했습니다!”
「사망? 갑자기 왜…잠깐. 설마?」
케인즈큐의 죽음을 본 주바카가 뭔가 떠올랐는지 다급히 외쳤다.
「전원 후퇴! 98번으로부터 떨어….」
주바카가 말을 다 끝내기 전, 98번 함선의 엔진실에서 거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이 엔진실에 설치된 폭탄 때문이라는 것을 사나다에프는 결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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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큰애기야, 왜 그래?」
내가 갑자기 고개를 움직이자 머리 위에 있던 26호가 내게 물었다.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아무것도 아니야. 걱정하지 마)]
「응.」
[즈즈즈즈 즈즈즈즈(좁으니까 불편하지?)]
「아니! 큰애기랑 중간애기랑 작은애기랑 다 함께 붙어 있으니까 너무 좋아!」
[즈즈즈즈(다행이네)]
26호의 말대로 거대한 나의 몸에는 아드하이와 하늘의 어머니가 바짝 붙어 있었다.
‘확실히 좁긴 좁네.’
스타유니언의 추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늘로부터 3일 전, 나는 스타유니언의 98번 함선을 버리고 새 배로 갈아탔다.
그 이유는 함선을 침식한 뒤 컴퓨터 기록을 뒤지다가 함장 케인즈큐가 구조 드론을 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놈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 바람에 일이 귀찮아졌어.’
스타유니언의 추적을 피하려면 ‘악몽의 지평선’ 쿨타임이 끝나자마자 배를 갈아 타야만 했다.
이 넓은 우주 공간 한복판에서 배를 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변경했다. 무역선들이 많이 다니는 성계로 가서 새 배를 구하는 것으로 말이다.
‘덕분에 본래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리게 됐어.’
사실상 일주일을 낭비한 꼴이라 케인즈큐를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대신 어떻게 하면 그에게 벌을 잘 줬다고 소문이 날까 생각한 케인즈큐에게 어울리는 형벌을 떠올렸다.
기생충을 활용한 부비트랩 작전을.
사이보그들에게 명령해서 폭탄을 제조시킨 나는 그들의 몸에 센서를 심었다. 그들의 심장이 멎으면 폭탄이 자동으로 폭발하도록 말이다.
그 후 배를 버린 날에 사이보그 9명을 전부 상황실에 묶어둔 뒤 엔진실에 폭탄을 설치해 놨다.
‘만약 스타유니언에서 날 찾으면….’
기생당한 사이보그들은 어떻게든 도망치라고 외칠 거다. 하나 그 행동은 나의 뜻에 반하는 행동. 강화된 기생충이 그들을 바로 응징할 터.
‘그러다가 사이보그가 죽으면? 그때는 쾅.’
감염 강화 타입 덕분에 내가 교체하지 않아도 기생충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은 대략 5일에서 6일 사이다. 기생충 교체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혹시라도 그들이 굶어 죽을까 봐 공생물 포자까지 붙여 놨다.
그렇게 모든 작업을 완료한 뒤에야 안심하고 98번을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내 몸 안에서 기생충이 다시 생성되는 것이 느껴졌다. 9마리의 기생충이 동시에 죽었다는 것은 바로 폭탄이 터졌다는 것.
내 계획이 성공한 것이리라.
‘생각한 것보다 늦게 찾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좋은 배를 구해서 탈 걸.’
지금 내가 침식한 배는 어느 세력도 점거하지 않은 중립 성계에서 구입한 화물선이다.
볼프로 변신한 하늘의 어머니가 나가서 구입해 온 배다. 자금은 함선에 실린 드론과 안드로이드를 팔아서 마련했다.
돌아다니는 배를 적당히 붙잡아 침식시켜도 되는데 그러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저쪽에서는 나를 생체함선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런 내가 배를 구입해서 옮겨 다닐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겠지.’
만약 나의 추적에 플레이어가 개입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플레이어라면 나를 더 못 찾을 거다.
‘나를 에이모프라고 알 테니까.’
에이모프는 대화, 협상이 불가능한 종족. 그들은 내가 친구를 셋이나 데리고 다닌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리라.
‘계획대로 잘 풀리긴 했지만, 배가 좀 아쉽네.’
당시에는 언제 추격대가 올지 몰라서 배를 급하게 구했다. 그 탓에 우리가 탄 배는 60m를 간신히 넘을 정도로 작은 크기였다.
‘내 몸 크기가 25m를 훌쩍 넘는데 60m면….’
게다가 이동하면서 먹을 식량도 필요했기에 사이보그의 전투식량, 중립 성계에서 구한 에너지 드링크도 꽉꽉 채워 넣은 상태.
그렇게 하니 남은 공간이 거의 없어서 지금처럼 넷이서 찰싹 붙어서 갈 수밖에 없었다.
‘26호가 몸을 줄일 수 있어서 다행인가.’
몸 크기를 50cm 정도로 줄인 녀석은 내 머리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큰어른」「나」「배고픔」
[즈즈즈 즈즈즈(잠시만 기다려)]
이 배의 갤러곤 항해사인 아드하이는 내 꼬리 위에서 몸을 말고 엎드려 있었다. 나는 침식 촉수를 생성해서 에너지 드링크들을 한 움큼 쥔 뒤 녀석에게 건넸다.
「감사」
간단히 인사한 녀석은 촉수를 에너지 드링크에 꽂고 쭉쭉 빨아들였다. 칼로리바나 사이보그 전투식량과 달리 에너지 드링크는 애플사이다 맛이 나서 제법 먹을 만했다.
「배를 좀 더 큰 것을 구해야 했어.」
마지막으로 하늘의 어머니. 볼프 형태로 돌아온 그녀는 내 옆구리 쪽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녀는 내 갑각 위에 달린 발톱과 가시가 불편한지 몸을 계속 뒤척였다.
‘좀 도와줘야겠네.’
나는 배의 구조를 살짝 바꿔서 그녀가 편히 누울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만들어줬다.
[즈즈(어때?)]
「고맙긴 한데 이러면 네가 불편하지 않아?」
[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난 배와 동화된 상태라 그다지 불편함을 안 느껴)]
「그건 좀 부럽네.」
[즈즈즈즈즈 즈즈 즈즈즈(불편하겠지만 한 달 반만 참아 줘)]
내 말에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걸로 우리의 대화는 끊겼다.
다시 초광속 항해에 전념하려고 하는데 그녀가 작게 말했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
[즈(그래)]
감사의 뜻을 표한 그녀는 스스로 멋쩍다고 느낀 것인지 곧 눈을 감아버렸다. 잠시 후 그녀에게서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든 하늘의 어머니를 두고 초광속 항해를 계속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