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64화 (165/400)

Ep.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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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유니언의 수도성 작스-01.

빼곡하게 세워진 공장들, 무지막지한 스모그, 끊임없이 내리는 산성비가 특징인 그곳에는 특이한 구조물이 있다.

외벽에 무수히 많은 파이프와 배터리, 크고 작은 기계들이 얽혀 있는 백색과 흑색의 첨탑들. 그것들이 한 곳에 모여서 위압적인 가시의 피라미드를 이루었다.

기이하면서도 경이로운 이 구조물의 이름은 프라임 헤드.

스타유니언의 최고 권력 기구인 기계위원회가 위치하는 곳이다.

그리고 수많은 첨탑들 중 가장 높은 탑, 프라임 헤드의 꼭대기에는 모든 사이보그들의 어버이 대수령의 집무실이 있다.

언제나 정숙과 엄숙함이 지켜지는 공간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굳게 닫힌 집무실 안쪽에서는 다수의 목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적지 않은 손해를 보셨지만 결국 실패하셨군요.」

“그렇다.”

한쪽 눈을 기계로 대체한 백인 남성이 4개의 다이아몬드 비석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기계눈과 더불어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가 인상적인 그가 바로 스타유니언의 대수령, 주바카다.

「현재까지 밝혀진 특전은 몸을 바꾸는 것. 그리고….」

「배를 자기 몸과 일체화하는 능력도 지닌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확인해서 다행이군. 허허. 주바카, 그대가 참 큰일을 해줬어.」

“…아키라. 네놈, 내 얘기를 뭐로 들은 거지?”

빌어먹을 모프박이 때문에 주바카가 본 손해는 막심했다. 네메아 함대는 거의 궤멸해 버렸고, 그를 지원하던 애로우, 레드테일 함대도 상당한 피해를 봤다.

‘그뿐만이 아니지.’

놈의 이간질 때문에 컬트와의 관계가 매우 안 좋아졌다. 함부로 컬트 영토에 침입하고 제국모함까지 박살 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이 일 때문에 컬트 의회에서 스타유니언과의 전쟁 얘기도 종종 나오는 중이었다.

이익이 없는 전쟁은 피해야 했기에 주바카는 컬트 의회에 사절을 보내 사과해야만 했다. 메가콥의 노블캐피탈, 클로에 가르멜다도 컬트 혁신파에 압력을 행사해서 주바카를 지원했다.

덕분에 컬트와 스타유니언 간의 전면전은 발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스타유니언의 최고 존엄의 체면이 크게 손상된 것은 사실. 에이모프 하나 때문에 제대로 엿먹은 주바카는 짜증을 참을 수 없었다.

분노 섞인 그의 말에 아키라는 태연하게 답했다.

「그럼 놈을 그렇게 쉽게 잡을 줄 알았는가? 아직도 녀석을 잘 모르는군. 함대가 전부 궤멸되지 않을 것을 다행으로 알게나.」

“…쯧.”

「아키라 님, 몸을 바꾸는 특전은 아마 뮤리엘로부터 얻은 특전일까요?」

「글쎄. 모르겠군. 그 부분은 주의해 둬야 할 터. 2개에서 3개 사이의 특전을 지녔다고 봐야겠지.」

“이제 와서 놈의 특전을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지? 놈을 찾을 단서는 완전히 사라졌는데.”

「생체샘플이 스타링크에 기록되지 않았나요? 그걸 토대로 추적할 수 있을 텐데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스캐너로는 더 이상 확인이 안 되더군. 분명 98번 함선을 뒤쫓을 때까지는 멀쩡했는데 말이지.”

이전에 스타유니언 인력공급선이 수상한 생물을 발견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주바카는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스타유니언의 고유 정보 처리 시스템인 스타링크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에이모프 샘플을 바이오 스캐너와 동기화, 거기에 추가로 초광속 항해 추적 시스템인 워프파인더까지.

대수령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들을 전부 활용한 덕에 에이모프를 추적하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 98번 함선을 찾을 때까지만 해도 거리와 시간이 문제였지, 놈 자체는 금방 발견했다.

문제는 그게 함정이었다는 거지만.

「둥지 관련 특성인 불결한 혼합물 때문일 걸세. 둥지의 성분을 무작위로 변환시켜서 추적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이지.」

“빌어먹을! 그걸 알면 미리 말했어야지!”

「허허허, 성내지 말게나.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지 않았는가? 생체함선화된 배 내부에 둥지와 동일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일세.」

「그렇다면 다른 능력도 사용할 수 있다고 봐야겠군요.」

주바카가 놈을 발견했을 때, 다른 멤버들에게도 그 사실을 전달했다. 당시 아키라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의 말투를 보니 그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 같았다. 자기 추측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주바카를 미끼로 쓴 것이리라.

“까득,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상황이 아닐 텐데. 아키라. 우리는 놈을 놓쳤다. 다음에 놈을 만나면 얼마나 더 위험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98번 함선을 떠난 놈은 귀신이라도 된 듯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중립 성계 내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놈과 관련된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워프파인더로 찾는 것은 어렵나요?」

“98번 함선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곳은 중립 성계다. 배 수십 척이 분 단위로 초광속 항해로 들락날락하는 곳이라 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하긴 놈이 탄 함선의 기종을 모른다면 어렵긴 하겠군.」

현재까지 확인된 정보만을 봤을 때, 에이모프는 배를 오염시킨 뒤, 지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배를 개조할 수도 있는 것 같지만, 초광속 엔진만은 바꿀 수 없는지 워프파인더로도 추적이 가능했다.

문제는 아키라의 말대로 놈이 새로 바꾼 배의 종류를 알 수 없다는 것.

“습격당한 배가 있는지 알아봤지만 놈과 관련된 정보는 없었다.”

「혹시 5위가 거래를 해서 배를 구매한 것은 아닐까요? 특전 효과든 동료를 데리고 다니든 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놈 같은 인격 파탄자가 동료라고? 하, 상상도 안 되는군.”

「허허허허허, 오랜만에 신시아가 재밌는 농담을 하는구나.」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모두 5위와 최소 1회 이상 싸워 본 자들이다. 그의 무서움을 매우 잘 아는 자들이지만, 알고 있는 정보에서 편차가 있다.

예를 들어 신시아는 5위와 싸운 경험이 두 번밖에 없는 반면, 주바카는 제대로 맞붙은 적이 8회 정도 된다. 둘보다 랭킹이 높은 아키라는 그보다 훨씬 많고.

그렇다 보니 신시아는 5위에 대해 상대적으로 아는 바가 적은 편이었다.

「허허, 놈이라면 동료가 있어도 아마 먹이 대용으로 들고 다닐 거다. 아니면 기생충으로 지배하던가.」

“흥. 그 모프박이 놈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지.”

「그렇다면 기생충으로 사이보그를 조종해서 배를 구입할 수도 있겠군요.」

“당연히 그것도 예상하고 확인 중이다. 문제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거지만.”

현재 고성능의 안드로이드들이 중립 성계의 거래 내역을 전부 조사 중이다. 한 달이면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 사이에 놈이 또 배를 갈아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 아키라가 입을 열었다.

「흠. 꼭 놈의 뒤를 쫓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무슨 말이지?”

「놈이 갈 곳을 안다면 미리 준비해 놓으면 되지 않겠나.」

“그걸 모르니까 이러고 있는 거지. 아키라. 쓸데없는 소리를….”

「허허, 성미도 급하지. 들어 보게. 게임에서도 그랬지만 놈은 낭비를 싫어하는 성격이야. 준성체가 됐으면 한시라도 빨리 성체가 되려 하겠지.」

“…그래.”

「놈이 가장 빠르게 진화 조건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에이펙스라 불리는 특수 생물을 잡아야 하는 것. 그렇다면 에이펙스가 다수 서식하는 곳을 노릴 터.」

「혹시 용의 둥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신시아의 질문에 아키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비석으로부터 여러 갈래의 항로가 표시된 우주 지도가 나타났다.

「놈이 이동한 방향과 항로를 추정, 계산한 가상의 항로들일세. 이걸 보면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다가 중간에 중립 성계에 들릴 때 확 틀었지.」

「그 말씀은?」

「쫓기지 않았다면 이쪽으로 계속 나아갔을 거란 말이지.」

“젠장! 본론부터 말해라.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이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그 끝에 용의 둥지가 있다.」

“뭐?”

우주 지도 외곽 부근에 붉은색 표시가 떠올랐다.

「유진 가문이 갤러곤 유전자를 수급하는 곳이자 나의 ‘늙은 부하’가 있는 곳이지.」

“지도에도 안 나오는 곳인데 놈이 어떻게 알고 가지?”

「그건 나도 모르겠군. 하지만 녀석이라면 필시 이 행성을 노릴 걸세.」

주바카는 붉은색 표시를 노려봤다. 기록된 행성이 아니기에 그 장소에는 아무런 정보도 뜨지 않았다.

“놈이 이곳으로 향한다라….”

「늙은 부하에게 연락해 두지. 준성체인 에이모프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일 터이니.」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렇게 확신하지?”

「후후, 나이 든 블랙 갤러곤이라 하면 해답이 되겠는가?」

“!”

그 말을 들은 주바카는 깜짝 놀랐다.

블랙 갤러곤은 갤러곤의 성장 단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단계에 위치한다. 그 위로 레드 갤러곤이 있지만, 그놈들은 극히 희귀한 존재이기에 일반적으로는 보기 힘들다.

다시 말해 블랙 갤러곤이야말로 야생의 갤러곤들 중 가장 강대한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랙 갤러곤이라면 에이모프 성체도 목숨을 걸어야 할 상대다.’

모프박이가 아무리 강력한 특전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준성체인 이상 블랙 갤러곤과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블랙 갤러곤 자체가 강력한 것도 있지만, 둥지에 있는 무리들까지 함께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키라 님, 해당 장소의 좌표를 제이슨 님께 알려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분께서 어떻게든 이 사태를 만회하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허허허, 그러면 놈의 죽음이 더 확실해지겠군. 그러시게나.」

거기에 컬트 플레이어 제이슨의 참전까지.

제이슨의 랭킹은 10위. 아키라나 주바카보다 랭킹이 낮지만, 랭커답게 상당한 실력자다.

블랙 갤러곤의 무리와 10위의 랭커까지. 모프박이의 운명은 사실상 결정된 것이 다름없었다.

그 후 몇 가지를 더 조율하는 것을 끝으로 회의는 종료되었다. 비석들이 비활성화된 것을 확인한 주바카는 활성화된 상태의 통신기를 들었다.

“지금까지의 얘기, 다 들었겠지?”

「…저 빌어먹을 영감탱이. 남 이용해 먹는 것은 여전하네.」

아키라의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클로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비석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처럼 주바카의 도움을 받아 회의 내용을 엿들었다.

“클로에. 부탁이 있다.”

「응?」

“피라 일레븐의 스크리머 부대를 보낼까 한다.”

「뭐?」

“명분은 작전 수행 능력을 검토하기 위한 임상 실험인 것으로 하지.”

「잠깐만! 주바카 오빠! 걔네 아직 프로토타입이잖아. 불완전한 상태라 어떤 오류가 발생할지 몰라.」

“어차피 네 ‘계획’을 완성하려면 에이모프 유전자도 필요하지 않나? 나쁘지 않은 조건일 텐데?”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게다가 저 행성이 갤러곤 유전자를 모으는 곳이라면 더 좋지. 갤러곤들이 ‘에이모프와 싸우던 중 부득이하게 죽는다'면 아키라한테도 한 방 먹일 수 있을 테니.”

「흐으음, 그건 좀 끌리네?」

“새로 업데이트된 헐크 뮤턴트를 보내다오. 바로 스크리머로 만들어서 보내도록 하지.”

주바카는 지금껏 살면서 자기를 공격한 자를 내버려 둔 적이 없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그랬고, 이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도 그랬다.

그는 자기를 제대로 엿먹인 모프박이와 동료에게 견제나 하는 아키라를 용서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모두 되갚아주마.’

클로에와 대화를 나누는 주바카의 기계눈이 위협적으로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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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즈즈즈(저곳이야?)]

「파랑」「별」「고리」「확인」「둥지」「맞음」

우주선 밖에서 들려오는 아드하이의 사념파를 이해한 나는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긴 시간이었어.’

좁은 배를 타고 한 달하고도 10일 동안 쉬지 않고 이동한 덕분에 마침내 용의 둥지가 있는 행성이 도착했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하늘빛 행성이 우리 앞에 있다.

해당 행성에는 토성처럼 고리가 있었다. 행성의 중력에 붙잡힌 암석 조각들이 행성 주변을 공전하며 고리를 형성한 것이었다.

아름답게 빛나는 하늘색 행성, 주변을 떠도는 창백한 고리를 보니 마치 잘 꾸며진 아쿠아 마린 장식을 보는 느낌이었다.

‘좀 더 구경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나나 애들이나 모두 배가 고픈 상태다.

충분하다고 생각한 식량은 이틀 전에 다 떨어졌다. 이미 다른 함선이나 생물을 못 본지 한참 됐기에 새로 먹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 그 상황에서 나는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드하이가 조금이라도 실수했다면 큰일 날 뻔했어.’

녀석이 좌표 계산을 잘못했다면 우리는 이 외진 곳에서 떠돌다가 굶주려 죽었을지도 몰랐다.

‘에이모프가 아사라니.’

게임에서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죽음을 현실에서 겪을 뻔했다.

‘일단 내려가서 배부터 채우자.’

나는 이름 없는 푸른 행성 내로 돌입할 준비를 했다. 밖에 있던 아드하이를 배 안으로 들여보낸 뒤, 이동 속도를 올렸다.

행성과의 거리가 줄어들자 고리의 모습이 보다 자세히 보인다.

평범한 돌이나 얼음 조각부터 정체불명의 금속 덩어리,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모를 우주선의 파편 조각들까지. 수많은 것들이 어우러져 함께 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멀쩡한 피부를 가진 생물이라면 저 고리에 들어서자마자 갈기갈기 찢겨나갔겠지만, 나는 일반 생물이 아니다.

금속 조직과 생체 조직이 혼합된 배가 외벽 위로 쏟아지는 파편들을 가볍게 받아 냈다. 큰 어려움 없이 고리를 통과한 나는 행성 대기권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파란 바다와 갈색의 대지, 하얀 구름 등 제법 색체가 다양한 편인 지구와 달리 이 행성은 색이 한결같다.

하늘색과 백색. 그것이 이 행성의 전부였다.

‘얼음 행성이라.’

게임에서도 갤러곤이 서식하는 지역은 내 앞에 있는 행성처럼 극단적이었다. 화산활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불지옥이거나 영하 수백 도를 밑도는 얼음지옥이거나. 극한의 환경 조건도 갤러곤을 상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나는 상관없는데 애들이 괜찮을지 모르겠네.’

아드하이 말로는 용의 둥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온도는 매우 낮다고 했다. 원래라면 자기도 동족들에게 버려진지 얼마 안 지나 얼어 죽었어야 했다고.

심해에 서식하던 26호를 제외하고 나머지 둘에게는 꽤나 힘든 여정이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내 몸은 빠르게 대기권을 통과하고 있었다.

자욱한 구름을 헤치고 나서 내 눈에 들어온 것.

그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의 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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