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65화 (166/400)

Ep. 165

「오우씨, 이, 이건 너무 추운데?」

「추움」「추움」「추움」

예상했던 대로 아드하이와 하늘의 어머니는 맹렬한 추위에 덜덜 떨기 시작했다. 배라도 부른 상태라면 좀 낫겠지만, 현재는 모두가 굶주린 상태.

‘이 우주선으로는 온도를 유지하기 어렵겠지.’

침식 촉수가 해제된 뒤 우주선은 완전히 망가졌다. 엔진은 물론이고, 선체를 구성하는 금속 벽들도 멀쩡한 것 없이 전부 부식되었다. 이 상태로 폭풍이라도 몰아닥치면 배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리라.

‘서둘러 식량과 은신처를 찾아야 해.’

[즈즈즈 즈즈즈(애들을 부탁해)]

「나만 믿어!」

나는 녀석들 중 제일 멀쩡한 26호에게 녀석들을 부탁하고 우주선 밖으로 나왔다.

눈으로 뒤덮인 얼음의 대지가 나를 반긴다. 전투용 팔을 움직이자 두껍게 쌓인 눈이 쓸려 나가고 그 아래의 얼음이 모습을 드러낸다.

티끗 하나 없이 거울처럼 반질반질한 얼음. 그 표면에 ‘유기적 진화’ 특성을 사용하지 않은 순정 상태의 나의 모습이 비쳐진다.

6개의 우람한 뿔과 악어나 대형 수각류를 연상시키는 길쭉한 두상, 그 아래에 수없이 난 괴물의 촉수가 갈기처럼 흩날리는 모습이 보인다.

바람에 흔들리는 촉수의 아래에는 단단한 갑각과 합성 비늘이 섞여서 감싸고 있는 몸과 6개의 전투용 팔, 2개의 가슴 쪽 작은 팔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얼음에는 비춰지지 않지만 나의 하반신을 대체하는 크고 긴 꼬리는 눈 속에 반쯤 파묻혔다. 그저 꼬리 끝에 있는 집게발과 그 안에 달린 가시침들만이 눈 위에서 고개를 슬쩍 내밀고 있을 뿐.

나는 27m에서 28m 사이에 달하는 거대한 몸체를 이끌고 설원을 질주했다. 내가 지나간 흔적은 끊임없이 내리는 눈과 우박 덕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게 보조기관이 없었다면 금방 미아가 됐겠지.

‘멀리서 보이는 산맥, 저쪽으로 가 볼까? 아니야. 저기는 너무 멀어. 대신….’

나는 달리던 것을 멈추고 발밑을 내려다 봤다.

얼음 행성에 서식하는 생물들 중에 빙판 아래에 사는 종이 있다. 이 두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얼음 아래에도 생명이 존재한다.

‘이 얼음 아래에 빈공간이 있어.’

보조기관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한 나는 꼬리 끝에 달린 집게발을 위로 번쩍 들었다. 그 상태로 전신의 근육에 힘을 준다는 감각으로 집중했다.

그러자 내 몸을 덮고 있는 비늘과 갑각들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전 스타유니언 인력공급선에서 획득한 ‘열 방출’ 특성의 효과였다.

‘원래는 콜드블러드의 체온 조절 특성인데.’

그저 몸을 따듯하게 덥히는 것에 그치는 원본 특성과 달리, 에이모프가 습득하면 지금처럼 체내 에너지를 열로 전환해서 강한 열기를 내뿜을 수 있다.

이 얼음의 두께는 수십 미터가 넘는데다가 어마어마하게 단단하다. 내 신체 능력이라면 맨손으로도 어렵지 않게 파내겠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다.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최대한 빨리 은신처와 먹이를 구해야 하니 지금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 최선이다.

내가 서 있는 빙판이 녹으면서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내 몸에서 갑각의 두께가 가장 두꺼운 집게발과 머리 갑각은 가열한 쇠처럼 시뻘겋게 빛났다.

‘이쯤이면 됐어.’

나는 초고온으로 달아올라 황금색이 된 꼬리의 집게발로 얼음 위를 내리찍었다. 뜨거운 집게가 바닥에 충돌하자 어마어마한 열기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얼음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왠지 삼겹살을 막 불판에 올렸을 때 나는 소리와 닮았다.

‘쩝. 배가 많이 고픈가 보네.’

입맛을 다신 나는 꼬리를 얼음 구멍에서 뺐다. 깊게 뚫린 구멍 안쪽에는 어둠뿐이었다.

나는 전투용 팔과 몸 곳곳에 난 뭉툭한 발톱을 이용해 구멍을 파고 내려갔다. 내 몸에서 발산하는 열, 녹다 만 얼음벽 덕분에 구멍 크기를 키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수백 m 이상을 더 파고 내려가자 갑자기 공간이 확 넓어졌다.

마침내 얼음 아래에 있는 지하 공간에 도착했다. 나는 얼음 천장에 매달린 채 아래쪽을 확인했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보조기관 덕분에 이곳의 구조가 훤히 느껴졌다. 지하 공간의 온도는 위쪽에 비하면 온도가 높았고, 공동의 바닥에 흙과 얼음이 있었다.

‘살아 있는 생물도 있어.’

어둠 저편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손가락 안쪽에 붙은 흡반을 활용해 천장에 거꾸로 붙어서 움직였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생물들의 무리가 있다. 놈은 독특한 음파를 쏘면서 주변을 경계하는 중이다.

‘케이브고일이야.’

케이브고일은 지하 공동이나 아주 깊은 동굴 내에 사는 생물이다. 외형은 박쥐와 유인원을 합친 뒤 크기를 3m 정도 확대시킨 것처럼 생겼다.

시각이 완전히 퇴화했기 때문에 놈들은 박쥐들처럼 특별한 초음파를 쏴서 사물을 식별한다. 아마 지금쯤이면 내가 이 공동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거다.

‘엄청 경계하네.’

30m에 육박하는 대형 괴물이 얼음 천장 위에서 기어 다니고 있으니 무서울만하겠지. 아마 내가 조금만 더 접근하면 죄다 도망쳐 버릴 거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그들을 잡을 방법이 있다.

내 등에 잠들어 있는 다섯 개의 얼굴들, 인면수 특성 말이다.

나는 인면수를 적들의 정보를 습득하고 기만하는데 주로 사용하지만, 이 특성의 효과는 전투에도 유용하다. 강력한 음파를 쏴서 적을 마비시킬 수 있으니까.

‘청각이 발달한 적일수록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지.’

귀가 없는 친구들이라면 전혀 통하지 않겠지만, 이 빛 한 점 없는 컴컴한 공간에 그런 생물은 아마 없을 터. 나는 인면수들을 전부 깨웠다.

내 의지에 속박된 다섯 개의 얼굴들이 일제히 눈을 부릅뜬다. 창백하게 질린 그들의 얼굴에 검은색 핏줄들이 돋아난다.

이윽고 그들이 입을 크게 벌리자 소용돌이 모양의 제2의 입이 밖으로 삐져나왔다. 안에 이빨 모양 돌기들이 돋은 그 입으로부터 강력한 음파가 발사되었다.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이다 보니 평소보다 음파 공격이 강하게 작용했다. 음파를 쏜 나의 비늘들이 파르르 떨릴 정도이니 그 효과는 어마어마하다고 해도 좋으리라.

내 생각대로 아래에 있던 케이브고일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케엑! 케에에엑!”

“켁!”

“케에엑!”

음파를 감지하기 위한 기관이 죄다 터진 것인지 짙은 피 냄새가 난다.

사람으로 치면 눈과 귀를 동시에 잃어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케이브고일 무리가 공황에 빠져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적들이 혼란에 빠진 것을 확인한 나는 바닥을 향해 뛰어내렸다. 30m에 가까운 내 몸이 허공을 날아서 놈들 위로 떨어졌다.

“꽥?!”

“끽!”

여섯 마리의 케이브고일이 내 몸에 깔려 즉사했다. 내게 깔리지 않은 케이브고일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내가 땅에 떨어진 충격 때문에 안 것이겠지.

내 등에 올라탄 케이브고일 한 마리가 양손으로 나의 배갑(背甲)을 내리쳤다.

케이브고일은 맨손으로 중급 강화복을 찢어발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다.

‘그래서 헐크 뮤턴트 재료로도 많이 쓰지.’

다른 생물이라면 맞자마자 전신이 으깨질만한 공격. 하지만 나의 갑각에는 약간의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케, 케엑?”

피나 살점을 예상했겠지만 손끝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이상하니 놈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하반신과 꼬리를 등 위로 꺾었다. 꼬리 끝의 집게가 놈을 붙잡았다.

“켁!”

그 상태로 힘을 주자 놈의 몸은 맥없이 두 동강 나버렸다. 뜨끈한 놈의 피와 내장이 내 등 위로 쏟아졌다.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10마리의 케이브고일들이 몇 분도 안 돼서 전부 죽음을 맞이했다.

혈향이 지하 공간에 퍼져나갔지만, 모습을 드러내는 생물은 없었다.

이 장소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나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뜨거운 피, 싱싱한 생고기의 냄새가 서늘한 공기를 타고 내 보조기관을 간질였다. 굶주린 상태에서 맛있는 고기 냄새를 느끼니 나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였다.

‘하나만 먹고 갈까?’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먹고 가도 상관없지 않을까.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나는 벽을 타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긴 얼음의 길을 지나 위로 올라오니 아까와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과 우박,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살을 잘라낼 정도로 날카로운 강풍.

모든 것이 그대로인 세상 속에서 나는 보조기관에 의존해 우주선이 있는 방향을 찾았다.

칼날과도 같은 바람 속에 한 줄기의 금속 냄새가 섞여 있다. 나는 우주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냄새를 따라 달렸다.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뭉툭하게 튀어나온 눈 더미가 보였다.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는데도 벌써 눈이 우주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인 것이었다.

가까이 가니까 우주선 안에서 26호의 파장이 흘러나왔다.

「큰애기야?」

[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응. 먹을 것과 안전한 장소를 찾았어)]

「우와! 진짜 빠르다! 신기해!」

[즈 즈즈즈(날 따라와)]

잠시 후 눈 더미 안쪽르부터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눈 더미가 폭발하듯 흩어졌다. 하얀 눈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덩치를 10m까지 키운 26호였다.

「으으, 제발 멀지 않다고 말해 줘.」

「추움」「배고픔」「추움!」「배고픔!」

자세히 보니 녀석은 하늘의 어머니와 아드하이를 꼭 껴안고 있었다. 둘은 슬라임처럼 말랑한 26호의 몸에 푹 파묻힌 상태로 고개만 빼놓고 덜덜 떠는 중이었다.

내 경험상 26호는 주변 온도와 상관없이 체온이 항상 일정했다. 그래서 머리 위나 어깨에 올려놓고 있으면 적당히 시원한 느낌을 줬다.

‘지금같이 추운 곳에서는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려나?’

보아하니 여기서 더 시간을 끌다가는 둘 다 탈이 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하에 파둔 구멍으로 녀석들을 안내했다.

그렇게 나와 26호가 눈바람을 헤치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아드하이가 경고의 사념파를 쐈다.

「큰어른!」「작은어른!」「위험!」

[즈으으으(아드하이?)]

「나」「동족」「감지」「하늘」「비행」「추적」

「어? 저쪽에서 작은애기랑 비슷한 느낌이 나. 신기해.」

덜덜 떨며 사념파를 뿌리는 아드하이. 이어서 26호도 아드하이와 비슷한 말을 꺼냈다.

동족이라고?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바라봤다. 사정 없이 쏟아지는 눈과 우박 너머에는 짙은 회색 구름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급히 하늘의 어머니를 불렀다.

하늘의 어머니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위로 향했다.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이다가 산맥 부근에 닿더니 급격히 확장되었다.

「화이트 갤러곤이야! 이쪽 방향으로 날아오고 있어!」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서두르자. 모두 내 위에 타)]

떨고 있는 아드하이를 보니 결코 좋은 의도로 이쪽에 오는 것 같지 않다. 나는 애들을 껴안고 있는 26호를 내 몸 위에 태웠다.

26호가 촉수들로 내 몸을 단단히 붙잡은 것을 확인한 나는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즈즈즈(꽉 잡아)]

「우와아아아!」

3쌍의 전투용 팔과 몸 여기저기에 있는 뭉툭한 발톱을 총동원하니 내 몸이 대포에서 발사된 포탄처럼 앞으로 쏘여졌다.

나는 달리면서 하늘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즈즈 즈즈즈 즈즈(놈은 어디까지 왔지?)]

「저 속도라면 5분? 아니 3분 이내로 우리 위를 지나칠 거야.」

화이트 갤러곤이라면 높이 나는 와중에도 우리를 볼 수 있다. 아직 거리가 멀어서 우리가 이곳에 있는지 모르는 것 같지만, 이 근방을 비행하다 보면 금방 우리의 위치를 발견할 거다.

‘흔적은 눈 덕분에 금방 사라지겠지만.’

구덩이는 그렇지 않다. 입구가 워낙 커서 눈이 위를 덮으려면 한참 걸릴 거다.

‘내가 막아야 해.’

순식간에 지하로 연결되는 구멍에 도착한 나는 먼저 26호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밑에 내려가면 먼저 배부터 채워)]

「큰애기는 안 내려와?」

[즈 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난 할 일이 있어. 금방 내려갈게)]

26호를 안심시킨 나는 구덩이의 입구를 내 몸으로 덮었다. 그리고 침식 촉수를 뻗어서 주변에 쌓인 눈들을 끌어다가 내 몸 위에 뿌렸다.

내 몸 위에 눈이 한가득 쌓이고 나서야 침식 촉수를 회수했다.

모든 것을 마무리한 뒤 숨을 죽이고 있는데, 하늘 위에서 이질적인 바람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고 희미하게 들렸지만 그것은 분명 날갯짓 소리였다.

그 소리가 천천히 들렸다가 안 들렸다가 하고 있었다.

‘놈이 왔어.’

우주의 용이라 불리는 위대한 짐승이 내 주변을 맴도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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