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66화 (167/400)

Ep. 166

본래 갤러곤은 날갯짓을 자주 하지 않는다. 새나 익룡처럼 땅에서 날아오를 때나 날개를 펄럭이고, 일정 궤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활강을 한다.

거기서 그린 갤러곤 이상으로 성장하면 사이킥 파워로 몸을 띄우는 방식으로 비행이 가능해진다.

아드하이의 경우는 몸에 비해 날개가 잘 발달된 편이라 날개를 자주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사이킥 파워를 이용한 비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녀석도 초가속 능력으로 물리법칙을 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날거나 우주 비행도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머리 위에서 들리는 날갯짓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를 찾는 건가?’

놈은 현재 저공비행을 유지하며 이 주변을 뱅뱅 도는 중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이 말이다.

‘싸워야 하나?’

나의 인지 범위 내에 존재하는 적은 화이트 갤러곤 밖에 없다. 준성체에 초월 시스템으로 얻은 유일 특성까지 있는 나라면 화이트 갤러곤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아니야.’

이곳은 갤러곤의 영지다. 수많은 갤러곤들이 무리를 짓고 사는 행성. 그런 곳에서 화이트 갤러곤 하나를 꺾는다고 모든 게 끝날 리 없다.

갤러곤은 매우 호전적인 생물이다. 아드하이가 특이한 것이지, 본래 갤러곤은 신화 속 드래곤이 그렇듯 탐욕스러우며 전투광이다.

무리 전체를 말살하거나, 아니면 무리의 우두머리를 꺾기 전에는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

저 화이트 갤러곤하고 싸우게 되면, 십중팔구 다른 동족들이 도우러 온다. 만에 하나 지원군 중에 블랙 갤러곤이라도 끼어 있으면 내가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일격에 화이트 갤러곤을 죽인다면 모를까.’

갤러곤은 눈도 좋지만, 사이킥 파워에는 누구보다도 민감하다. 신의 채찍이나 사이킥 브레스를 쓰려고 에너지를 모은다면 놈이 바로 알아차리겠지.

그 두 가지 특성을 제외하고 내게는 놈을 단번에 처리할 수단이 없다.

따라서 철저히 준비한 뒤, 놈들과 싸워야 한다.

나는 숨을 죽인 상태로 꼼짝 않고 기다렸다.

내 주변을 맴돌던 날갯짓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이윽고 가까운 눈밭 위에서부터 나지막한 진동이 울렸다.

화이트 갤러곤의 평균 길이는 20m. 몸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날개가 한 쌍 달려 있기에 멀리서 본다면 나보다도 훨씬 크다고 느낄 거다.

그 거대한 짐승이 착지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몸 전체에 흐르는 사이킥 파워가 놈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 덕분이었다.

땅에 내려앉은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지?’

내 몸은 눈 아래에 잠겨 있기에 놈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보조기관 덕분에 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었다.

놈은 머리를 숙여서 수염처럼 길게 늘어진 촉수다발로 눈 위를 더듬고 있었다.

‘이런.’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놈도 눈 속에 내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거다. 그 전에 이쪽에서 먼저 덮치는 것이 훨씬 나을 터.

‘아니야. 좀 더 신중히 판단해야 해.’

저 화이트 갤러곤과 싸우면 다른 갤러곤들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해진다. 놈들은 동료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바로 수색을 개시할 거다. 뛰어난 인지 능력과 기억력을 지닌 놈들이니 나를 금방 찾아내겠지.

고민하는 사이에도 놈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놈과 떨어진 거리는 불과 10m도 되지 않았다. 내 몸이 눈에 깊이 파묻혀 있어서 놈이 모를 뿐이지, 나를 발로 밟는다면 바로 알아차릴 거다.

‘젠장!’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다.

놈에게 걸리기 전 기습해서 죽인 뒤, 이곳을 떠난다. 지하 공간을 통해 이동한다면 그나마 시간을 벌 수 있겠지.

그렇게 마음먹은 나는 놈이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놈의 발이 눈 위에 막 닿으려는 순간, 놈이 그대로 멈춰 섰다.

‘왜 저러지?’

발을 내디디려는 자세 그대로 꼼짝 않고 가만히 있는 놈. 나는 긴장을 유지한 상태로 놈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어라?’

놈의 촉수가 일정한 리듬에 맞춰 흔들린다. 처음에는 바람 때문에 촉수다발이 흔들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아드하이랑 비슷한 걸 보니 대화 중인가?’

놈은 다른 갤러곤이 부르는 바람에 탐색을 멈춘 것 같다. 괴물의 촉수를 활용해서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엿듣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자기들만 쓰는 회선이 있나 보네.’

잠시 그러고 있던 놈이 날개를 활짝 피고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놈이 떠났지만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갤러곤은 영리한 생물이다. 떠나는 척하면서 기습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30분가량 기다리고 나서야 나는 주변이 안전하다고 확신했다.

‘휴.’

몸을 일으켜 눈을 털어낸 나는 구멍 옆 빙판을 손톱으로 긁었다. 구멍을 덮을 정도의 크기면 되고 두께는 상관없다. 그렇게 알맞은 사이즈로 얼음덩어리를 잘라 낸 다음, 아래로 내려갈 때 구멍 위에 덮어 놨다.

‘이렇게 하면 안 걸릴 거야.’

날아다니는 놈들이 눈을 일일이 파헤치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뒷마무리까지 확실히 끝낸 뒤에 얼음 통로 아래로 기어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오니 세 존재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가장 큰 몸집의 존재, 26호가 나를 반기며 파장을 쐈다.

「큰애기야, 왜 이리 오래 걸렸어?」

[즈즈 즈즈 즈즈즈(남은 일이 많아서)]

「밥 남겼어. 배고플 테니까 빨리 먹어.」

[즈즈(고마워)]

녀석이 촉수로 케이브고일의 고기를 집어서 내게 건넸다. 10마리 중 남은 고기는 넷이었다. 아마 많이 움직이느라 에너지 소모가 큰 나를 배려한 것이겠지.

나는 감사히 받아 고기를 입에 물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차게 식은 케이브고일의 고기도 나름 맛이 괜찮았다.

‘식은 간장 치킨 맛에 고기는 좀 더 질긴 느낌이야.’

식감은 돼지 껍데기에 가까운데 맛은 간장 치킨이라. 기묘한 느낌이긴 하지만 나쁜 조합은 아니었기에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케이브고일의 하반신을 통째로 입 속에 넣고 오도독 씹는 중인데, 하늘의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화이트 갤러곤은?」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중간에 다른 녀석이 부른 덕분에 떠났어)]

「다행이네. 아직 준비가 안 됐으니까 지금 싸우면 힘들 거야.」

진지하게 중얼거리는 하늘의 어머니. 그녀도 갤러곤하고 싸워 본 경험이 있기에 놈들을 어떻게 공략할지 잘 알고 있었다.

「무리의 특징이나 문화는 아드하이한테 물어보면 될 거고. 문제는 우두머리이네.」

[즈(그래)]

그녀가 날카로운 눈매를 번뜩이며 말했다.

그 모습은 평소와 똑같다. 26호에게 안겨서 머리만 슬쩍 내밀고 있는 모습만 아니라면 말이다.

이곳은 지하 공간이라 온도가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은 편이다. 그래도 가혹한 환경인 것은 매한가지. 특별한 진화를 거친 생물이 아니라면 적응하기 쉽지 않을 거다.

‘아드하이의 무리도 지열이 올라오는 곳을 독점하고 있다고 했어.’

화이트 갤러곤만 되도 두꺼운 가죽 덕분에 추위를 타지 않지만, 해츨링인 블루 갤러곤이나 미성숙한 개체인 그린 갤러곤은 그렇지 않다. 비늘과 가죽이 덜 발달한 상태기에 조금만 추워도 몸이 쉽게 상한다.

당장 아드하이를 봐도 그렇다. 녀석은 매고 있던 백팩을 바닥에 던져놓고, 26호에게 폭 안겨 있었다. 긴장이 풀린 것인지 녀석은 잠에 빠진 상태였다. 물론 추위는 어쩔 수 없는지 가끔 몸을 파르르 떨었지만.

아드하이가 말하길, 갤러곤의 둥지는 지열이 올라오는 어떤 얼음 계곡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했다. 녀석의 말만 들어서는 가혹한 이 행성에서 몇 안 되는 살만한 곳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둥지에서 떨어진 곳에 내렸는데 이런 문제가 생기네.’

당장 갤러곤을 공략하기 전에 추위부터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

「둥지의 위치는 이쪽하고 거리가 제법 되니까….」

[즈즈즈 즈즈(추운가 보군)]

「응? 어, 뭐 좀 그렇지.」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머리만 빼놓고 말하는 게 병아리 같아)]

「병아리?!」

내 표현이 모욕적이라 느낀 것인지 하늘의 어머니의 털이 쭈뼛 섰다.

그녀가 호박색 눈을 부릅뜨고 나를 째려봤지만, 분홍색 풍선을 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끌어안고 있는 상태로 그래 봤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큰애기야, 병아리가 뭐야?」

[즈즈즈즈 즈즈즈(아기새라는 뜻이야)]

「새는 뭔지 모르지만 아기는 뭔지 알아! 쬐끄만한 애들이 아기야!」

[즈즈(맞아)]

「중간애기가 아기라서 그런 거구나. 내 말이 맞지?」

[즈즈즈즈(똑똑하네)]

나와 26호의 대화를 들은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곧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리폰이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만큼 추울 줄은 몰랐어.」

[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나 혼자 갤러곤 무리와 싸우는 것은 어려워. 네가 날 도와줘야 해)]

「…그렇지.」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방법이 있다는 것은 네가 가장 알 텐데)]

내 말에 하늘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에 방문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특전이라는 게임에서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를 부여받았다. 뮤리엘이 사이보그이면서 다른 종족으로 변신할 수 있던 것처럼 하늘의 어머니도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는 특전을 지니고 있다.

‘다른 신화적 생물로 변신할 수 있다고 했나?’

본래 볼프는 신격화 이후에는 변신이 가능한 동물이 한 종류로 고정된다. 그 상태로 특성을 배우고 신격화 단계를 쌓아가는 것이 볼프의 기본적인 플레이 방식이다.

하지만 하늘의 어머니는 받은 특전으로 인해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녀에게는 특정 조건을 만족한다면 다른 동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조건을 채울 때마다 새로운 능력을 해금시키는 것을 보면 나랑 비슷하네.’

특성을 재료로 사용해 유일 특성을 새로 얻는 나처럼, 그녀도 텍스트박스에서 요구하는 대상을 사냥하고 먹을 때마다 변신할 수 있는 동물이 새로 열린다.

또한 변신하지 않아도 해당 동물이 지닌 특성과 패시브 효과의 일부를 그리폰의 몸에 적용할 수 있다.

현재 그녀가 변신할 수 있는 신화적 생물은 그리폰 말고 하나가 더 있다. 그녀의 강력한 육탄전 능력은 해당 동물로부터 받은 힘이다.

‘나랑 만나기 전, 뮤리엘하고 싸울 때 썼다고 했으니까.’

무슨 동물로 변신하는지는 그녀에게 이미 들었다. 강력한 변신 모드지만 짧은 지속시간에 비해 쿨타임이 긴 것이 큰 단점이라고.

‘그 환수(幻獸)라면 그럴 만하지.’

아무튼 이 기회에 그녀에게 새 동물을 해금시켜야할 것 같다. 추위라는 악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동물로 변신할 수 있도록 말이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추위 면역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동물이 뭐지?)]

「웬디고야. 해금 보상으로 동상(凍傷) 공격과 추위 면역 특성을 얻을 수 있어.」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좋아. 여기서 해금하자. 내가 도와줄게)]

「그래도 괜찮겠어?」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당장 내게 필요한 것은 동료야)]

하늘의 어머니와 계약한 이유가 승천을 위한 보험이라고 해도 성체까지 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그녀를 정말 제물로 쓸 거면 지금보다 신격화 단계가 높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의 생존율을 높여야 할 것이고.

간단히 말해 그녀가 강해지는 것이 곧 내게는 이득이라는 뜻이다.

「너도 많이 변했네.」

[즈즈즈(그런가?)]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눈빛만 봤을 때 부정적인 의도로 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갤러곤을 공략하기 전의 목표는 두 가지인 것 같네.’

먼저 용 사냥에 필요한 특성과 정보를 모으는 것이 급선무다.

적을 유인해서 기습할 만한 지형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곳의 생태계를 파악해야 한다. 게임에서 온 적이 없는 행성이다 보니 나한테는 정보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오기 전에 아드하이한테 들었지만, 내가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리라.

‘두 번째는 하늘의 어머니의 변신 능력을 해금시키는 것.’

나는 볼프로 플레이한 경험은 없지만 볼프와 싸워 본 적은 많다. 웬디고 변신에 필요한 재료가 뭔지는 알고 있다.

게임과 똑같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선례를 봐서는 웬디고로 변신하기 위한 조건은 게임과 거의 동일할 거로 생각한다.

‘계획 세우기는 이 정도로 하고….’

나는 어두컴컴한 주변을 한 차례 둘러봤다.

밖에 나가기 전, 이 지하 공간부터 리모델링해야겠다.

에이모프의 둥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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