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69화 (170/400)

Ep.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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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에서 탈출한 날.

에이모프가 고치에 들어간 후, 26호와 아드하이는 각자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6호는 에이모프가 알려 준 대화법을 열심히 연습 중이었다. 손가락이라고 하는 부속지를 이용해 의사를 전달하는 법은 그녀에게 매우 낯선 대화법이었다.

그녀의 동족들은 몸의 색체를 이용해서 대화한다. 애초에 부속지라고 할 만한 촉수를 지닌 것도 동족 중에 26호가 유일하다.

최근에는 이 촉수를 점점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녀는 미숙한 편이었다.

하지만 26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에이모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진취적인 여자였다.

과거 냄새 나는 용기 속에 갇혀 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사고영역은 확장된 상태. 에이모프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녀는 그 이상의 것을 원했다.

전보다 진화한 그녀는 미래라는 것을 꿈꾸기 시작했다. 큰애기와 함께 동족들을 이끌어간다는 미래 말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큰애기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26호가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라면 아드하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드하이는 날개를 베고 비스듬히 누워서 비늘을 다듬는 중이었다. 녀석은 에이모프가 가르친 대화법을 순식간에 깨우쳤다.

26호만큼이나 머리가 좋은데다가 신체 조건도 유리한 녀석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워낙 빨리 끝내는 바람에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 녀석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비늘 다듬기를 하는 중이었다.

「작은어른」「나」「궁금」

「…….」

「작은어른」「작은어른」「작은어른」「작은어른」「작은어른」「작은어른」「작은어른」「작은어른」

자꾸 사념파를 보내는 아드하이.

일반 인간이었으면 아드하이의 연속 사념파 공격에 정신이 혼미해졌겠지만 26호는 씨 데몬이기에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물론 공부하는데 귀찮게 구는 녀석 때문에 짜증이 나는 건 피할 수 없지만.

「뭔데?」

「어른」「몸」「성장」「빠름」「빠름」「빠름」

「응. 큰애기는 가끔 저렇게 빨리 커.」

「신기함」「나」「어른」「성장」「부러움」

그렇게 말하며 아드하이는 자신의 몸통을 내려다 봤다.

녀석이 바라는 하얀색 비늘 대신 아름다운 녹색 비늘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잡티 하나 없이 매끄럽고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녀석의 녹색 비늘은 마치 에메랄드 보석과도 같았다. 아마 지성체들이 아드하이의 비늘을 봤다면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흘렸으리라.

그러나 26호에게 몸 색깔은 대화의 수단일 뿐,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았다.

「나」「원함」「비늘」「하얀색」

「하얀색이 되면 좋은 거야?」

「좋음!」「하얀색」「강함」「멋짐」「매력」「넘침」

아드하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날개와 허리를 쫙 폈다. 동시에 꼬리를 위쪽 방향으로 말아서 달팽이 등껍질 모양을 만들었다.

이 자세는 갤러곤들 사이에서 자기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제스쳐였지만, 이 자리에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얀색」「성장」「장점」「하나」「더」「있음」

「뭔데?」

「나」「어른」「알」「가능」

「…….」

신나게 말하는 아드하이와 다르게 26호는 그 말을 듣자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작은애기는 안 된다고 말해도 포기하지 않을까 하고.

「알은 큰 다음에 낳아야 해.」

「이해」「나」「성장」「필요」「하얀색」「멋짐」「어른」「나」「매료」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지만.

26호는 가장 매혹적인 자세가 무엇일지 고민하는 아드하이를 보던 중, 문득 의문이 들었다.

과연 아드하이는 아기를 낳는 방법을 아는가 하는 의문.

「작은애기야.」

「?」

「아기를 만든다면 어떻게 만드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아드하이는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마치 자기는 알지만 작은어른은 모른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그 태도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26호는 참았다.

큰애기는 그녀가 봐도 동족과 많이 다르게 생긴 존재. 만약 큰애기의 ‘아기 만들기’ 방법이 26호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면 추후 동족을 이끌 때 지장이 생길 수 있으니까.

「나」「동족」「대화」「들음」

「응.」

「수컷」「위」「암컷」「아래」「포옹」「알」「생김」

「응?」

「암컷」「알」「낳음」

그러나 아드하이가 해주는 설명은 26호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터무니없었다.

「껴안으면 아기가 생겨?」

「정확함」

「그러면 나는 아기가 있어야 하는데 왜 없어?」

「?」

「나는 큰애기랑 계속 붙어서 잤잖아.」

아드하이도 함께 잤지만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26호의 지적이 제법 날카로웠는지 아드하이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동족」「대화」「사실」「동족」「알」「낳음」「나」「확인」

「그러면 뭔가 다른 게 더 있는 걸까?」

「작은어른」「추측」「나」「동의」「불가」

「작은애기도 모르잖아.」

결국 아드하이는 답을 내지 못했다.

26호는 큰애기가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쉽게 아기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녀의 추측이 옳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대로 끝나면 진다고 생각했는지 아드하이가 다시 26호를 불렀다.

「작은어른」「아기」「낳는 법」「앎?」

「나? 나는 잘 몰라.」

「작은어른」「모름」「모름」「모름」

날개를 살랑살랑 흔드는 아드하이.

두 종족은 의사소통 방식이 완전히 다르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해왔기에 서로의 제스쳐가 얼추 무슨 의미를 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작은애기가 상대를 놀릴 때 취하는 제스쳐였다. 26호는 순간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지만 참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먼저 손이 나가는 암컷이 지는 법.

그녀는 폭력 대신 허세를 부리기로 했다.

「나 사실 잘 알아.」

「진짜?」

「진짜. 엄청 잘 알아.」

「설명」「부탁」

26호는 몸 안에 숨겨져 있는 뇌를 쥐어짜서 이전에 봤던 동족들의 아기 만들기를 떠올렸다.

「먼저 몸을 부풀려서 크게 만들어.」

「몸」「크게?」

사실 26호도 아기 만들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동족들을 이끄는 무리의 가장이긴 했지만, 그녀는 누군가와 아기 만들기를 한 적이 없다.

동족들을 지켜야 할 대상이라고만 여겼지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이어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응. 그리고 서로 꼭 껴안고 비벼.」

「포옹」「비빔?」

아드하이는 자기가 말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눈치였다. 눈치 하나는 26호보다도 뛰어난 녀석이니 그녀가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뭔가 더 말할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26호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가느다란 촉수로 친구의 촉수를 만져.」

「촉수?」

「응. 촉수로 만지면 좋아.」

실제로 그녀는 큰애기가 미쳐 날뛸 때 가느다란 촉수로 진정시킨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큰애기의 마음과 연결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경이로우면서도 뭔가 속을 간질이는 묘한 감각. 왠지 해서는 안 되는 장난을 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26호는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심드렁한 태도로 그녀의 말을 듣던 아드하이는 나름 그럴싸하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동족」「촉수」「애정」「표시」

「그렇지?」

「동족」「밤」「비행」「도중」「촉수」「포옹」

아드하이는 동족들이 남몰래 촉수로 애정 행각을 하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행위가 매우 기분 좋아 보인다는 것도.

다만 그것은 아드하이가 바라는 답이 아니었다.

아드하이가 원하는 것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였다. 아무리 기분 좋은 행위라고 해도 알이 없으면 소용없다.

「촉수」「포옹」「동족」「알」「실패」

「그래?」

「촉수」「긺」「많음」「멋짐」「인정」「알」「관계」「없음」

아드하이의 말대로 촉수가 길고 많은 것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아기를 만드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결국 얘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26호와 아드하이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설전을 이어나갔지만, 결국 나오는 답은 없었다.

「아기 만들기를 아는 친구가 필요해.」

「인정」

씨 데몬과 갤러곤 사이의 심도 있는 토의 끝에 내려진 결론은 간단했다.

바로 제3자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획득한다는 것.

지금까지 에이모프와 함께 다니면서 배운 사냥의 법칙을 적용시킨 결과였다.

미지의 적과 상대하려면 정보부터 수집하라.

졸지에 아기 만들기와 관련해서 미지의 존재가 되어 버린 에이모프.

큰애기이자 큰어른인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치 안에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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