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72
내가 이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얻은 유일 특성은 ‘완전한 유기체’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나의 신체 능력, 타입들이 생존에 적합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특성이다.
그리고 완전한 유기체에는 특별한 효과가 있다.
‘사냥의 표상’ 모드.
사냥의 표상이 활성화될 시, 내 육신은 전투에 최적화시켜서 궁극의 생물 병기로 진화한다. 지속 시간 20분에 쿨타임이 24시간이나 되지만, 그러한 단점을 모두 무시할 정도로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르르르」
눈이 없어졌지만 나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뛰어나다.
내가 서 있는 이 공동, 아이스 호러가 묻힌 통로 등, 모든 사물들이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덕분에 내 몸에서 이루어진 변화 과정 또한 빠짐없이 인지하는 중이다.
뼈, 근육, 비늘, 갑각 등 나의 몸 전체가 뒤틀린다. 더 강한 적, 더 많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몸을 최적화시키는 거다.
머리 갑각이 급격하게 자라나면서 내 몸의 하중이 앞으로 살짝 쏠렸다. 강적과 싸울 때 유용하게 쓰이는 여섯 개의 뿔들은 역할에 맞게 한층 더 흉악한 형태로 자라났다.
‘유기적 진화’ 특성이 적용된 후 수각류(獸脚類) 형태의 길쭉한 두상은 더 극단적으로 변화했다. 양 갈래로 갈라지는 아래턱이 발달하여 마치 턱 아래에 금속 보호구를 찬 것 같은 인상이 되었다.
턱의 변화와 함께 턱 아래에 있는 보조기관에 뼈 갑각이 씌워져서 코끼리의 상아처럼 변했다. 굽은 칼날 모양의 이 뼈 갑각은 그 크기와 무게가 상당했지만, 턱이 발달해서 움직이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보조기관 본연의 기능도 그대로야.’
머리 부근에서 변화한 것은 보조기관만이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등에 붙어 있던 5개의 인면수가 머리로 옮겨 왔다는 점이다. 고대의 전사들이 적의 두개골로 몸을 장식하듯, 창백한 얼굴 5개가 뒷머리 갑각에 트로피처럼 붙어 있었다.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목 역시 이를 지탱하기 위해 진화했다. 괴물의 촉수가 커진 목 위에 머리카락처럼 덮였다.
일반 상태에서 목은 갈기처럼 뻗어 있는 괴물의 촉수와 뒷머리 갑각으로 인해 크게 돋보이는 부위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악어나 코모도 도마뱀의 목처럼 굵고 길어졌다.
그리고 목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부분, 인간으로 치면 날갯죽지 부근이 지끈거렸다. 곧이어 사냥의 표상의 심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뼈 칼날 팔 두 개가 갑각의 구멍에서 삐져나왔다.
생체 낫을 끝에 단 이 팔은 내가 지닌 무기들 중 가장 예리하고 치명적인 무기다. 함선 외벽이나 상급 강화복처럼 단단한 물질이라도 쉽게 잘라낼 수 있다.
이외에 다른 부위들도 전투에 유용한 형태로 모습이 변형되었다.
특히 하반신과 꼬리 부분에 있던 뭉툭한 발톱들이 크게 변했다. 팔들처럼 관절이 자라나고 그 끝에 뾰족한 발톱이 달린 형태로. 그 모습은 거미의 다리를 닮았다.
이처럼 새로운 부위가 자라나는 식의 변화가 있었지만, 무게는 전보다 오히려 가벼워졌다. 예전에 사냥의 표상을 썼을 때는 굵고 무거워진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얇으면서 가벼운 느낌이었다.
가벼워졌다고 해서 내구력이나 경도가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조밀하게 얽힌 비늘 덕분에 방어력은 전보다 더 올라갔으리라.
‘게다가 전보다 유연해진 것 같고.’
나는 사냥의 표상을 쓰기 전보다 2배 이상 길어진 전투용 팔을 굽혔다 폈다. 근육과 뼈의 움직임에 따라 비늘들이 흐르는 물결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몸 자체가 가볍고 유연해진 것과 별개로 전체적인 길이는 증가했다. 보조기관으로 감지해서 추측하건대 꼬리까지의 길이는 대략 35m에서 40m 사이. 28m에 달하던 몸에서 10m 좀 안 되게 늘어났다고 보면 된다.
‘이래도 저쪽에 비하면 작네.’
상대는 100m는 가볍게 넘기는 초대형 생물. 놈에 비해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크기지만….
‘크기가 다는 아니지.’
점검을 끝낸 나는 4개의 뼈 칼날, 아니 변화한 보조기관을 까딱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 내가 고개를 들자마자 통로에 쌓인 얼음과 돌무더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래에 깔린 존재의 감정을 대변하듯 돌무더기가 점점 격렬하게 떨린다.
잠시 후 돌과 얼음 파편들이 폭발하듯 비산하고 아이스 호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스 호러의 모습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고전 괴수 영화 시리즈 불X사X에 등장하는 괴물 그X보X드의 머리에 지네의 몸통을 합친 것처럼 생겼다.
머리에는 함선도 뜯어버릴 정도로 단단한 턱이 4개 달려 있고, 그 안에는 먹이를 붙잡고 흡입하는 돌기와 이빨들이 빼곡하게 나 있었다. 턱 뒷부분에는 퇴화한 눈과 길고 얇은 더듬이 2개가 있었다.
사슬 채찍을 연상시키는 저 더듬이가 놈이 지닌 탐지 기관이다. 보조기관이 취약한 나와 다르게 놈의 더듬이는 외형에서 보이는 것처럼 상당히 튼튼하다.
머리 아래쪽은 지네와 비슷하게 마디가 나눠져 있고, 각 마디별로 날카로운 발톱은 지닌 다리, 그리고 하얀색의 배갑(背甲)이 붙어 있다. 지네와 다른 점은 배갑이 매우 단단하다는 점이다.
‘특별한 방어 능력이 없어도 어지간한 공격은 다 무시할 정도니까.’
실제로 내가 쏜 사이킥 브레스를 정면에서 맞았음에도 놈의 배갑에는 약간의 흠집이 난 것에 그쳤다.
「스스스스스스」
놈은 불의의 기습을 당했다는 사실에 제대로 화가 났는지 거칠게 쉭쉭 거렸다. 놈의 머리에 있는 더듬이가 먹이를 위협하는 코브라처럼 흔들렸다.
이곳은 초대형 괴수 두 마리가 들어서도 여유로울 정도로 넓은 공동. 놈과 싸우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골랐다.
아이스 호러의 덩치가 커서 좁은 공간에서 싸우면 유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놈은 나보다 땅이나 얼음 속을 쉽게 파고 돌아다닌다. 이곳처럼 탁 트인 공간이 아니라면 손해를 보는 것은 내 쪽이다.
「스스스」
위협적인 소리를 내던 놈이 고개를 나에게 향한다. 4개의 턱이 쩍 벌어지고, 그 안에서 한 줄기의 투명한 독액이 나를 향해 발사되었다.
내가 생물형 적과 싸울 때 자주 사용했던 신경독을 고도로 농축시킨 뒤, 환각제를 섞으면 아이스 호러의 독이 된다. 간단히 말해 피해자를 마비시키거나 환각에 빠지게 만드는 독이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액을 쏘느라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내게 독은 소용없어.’
준성체 특전으로 받은 ‘완전면역체’ 특성 덕분에 나는 독과 질병에 완전히 면역이다. 놈이 쏜 독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나는 독액을 맞으면서 바닥에 깔린 얼음 위를 내달렸다.
「스스스?」
독액이 통하지 않는 적은 처음 보는지 놈이 당혹스러워한다.
‘그럴 수밖에.’
이 주변에 놈의 독이 통하지 않는 생물이라면 블랙 갤러곤을 포함한 몇몇 종뿐일 테니.
놈이 멈칫한 사이, 나는 속도와 무게를 실어서 머리의 뿔로 놈을 들이받았다. 얼어붙은 지하 공동이 크게 흔들리고, 놈의 거구가 뒤로 밀려났다.
「그르르르」
여태까지 내 뿔에 찔려서 무사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다. 아이스 호러의 방어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수준. 나의 일격에도 불구하고 놈의 갑각에는 뿔에 긁힌 자국만 남았다.
「스스스스」
뒤로 밀려난 놈이 귀기가 서린 소리를 내며 반격을 개시했다. 나보다 몇 배나 더 긴 몸통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나를 휘감으려고 한다.
나는 6개의 전투용 팔로 놈의 몸통을 붙잡았다. 그 상태로 꼬리를 크게 휘둘렀다. 꼬리 끝에 달린 집게가 무거운 철퇴가 되어 복부 부근의 갑각을 후려쳤다.
「스스스!」
아이스 호러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굉음이 뒤섞여서 지하 공동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내 꼬리에 맞은 부위를 보니 금이 거미줄처럼 나 있었다. 표면이 살짝 깨질 정도로 세게 얻어맞았으니 아플 수밖에.
「스스스스스스」
분노에 찬 놈이 턱 4개를 쫙 벌리고 달려든다.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계획이리라. 내 등에 소용돌이 모양의 거죽이 벗겨지고 안에 숨어 있던 침식 촉수가 일제히 튀어나왔다.
부속지를 활짝 편 침식 촉수들이 놈의 턱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시작된 힘겨루기.
「그르르르르」
「스스!」
수십m, 수백m에 달하는 초대형 생물 두 마리가 겨루는 상황이다. 그 여파로 인해 지하 공간을 둘러싼 얼음벽들이 크게 요동쳤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들이 떨어지고, 내가 서 있던 바닥은 푹푹 파이고 갈라졌다.
‘엄청난 힘이야.’
사냥의 표상을 썼음에도 놈의 힘은 실로 무지막지했다. 여섯 개의 침식 촉수는 놈의 턱을 단단히 붙들고 있지만, 오래 버틸 수 없다. 놈이 무게를 실어서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기에.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했다.
나는 침식 촉수에 힘을 살짝 뺐다. 나를 짓누르기 위해 힘을 주고 있던 놈의 몸이 나를 향해 확 쏠렸다.
놈의 거대한 입이 나를 삼키려는 순간.
내 등에 있던 뼈 칼날 팔이 번개처럼 날아가 놈의 입 안에 꽂혔다.
「스스?!」
갑작스러운 통증에 기겁을 하는 아이스 호러. 어지간히 아팠는지 놈이 온몸을 마구 흔들었다. 수백m의 덩치가 난동을 부리니 공동뿐만 아니라 지하 공간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스스스스!」
그리고 놈은 턱을 닫아 나를 붙잡은 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서 나를 던져 버렸다. 나의 몸이 허공을 날아 벽에 세게 부딪쳤다.
‘윽!’
「고통 경감 발동!」
오랜만에 ‘고통 경감’ 특성이 활성화되었지만, 넋 놓고 아파할 시간은 없다. 나는 재빨리 벽에 박혀 있던 몸을 빼고 옆으로 피했다. 피하자마자 놈의 머리가 내 옆의 벽을 들이받았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피한 나는 턱 아래에 있는 4개의 뼈 칼날로 상대의 복부 부근에 위치한 갑각을 할퀴었다.
이 뼈 칼날은 등의 팔에 달린 칼날과 동일한 재질이다. 즉 매우 단단하고 또한 예리하다는 것.
호두 껍데기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갑각에 네 줄기의 상처가 났다.
놈은 내가 공격을 피하고 반격까지 한 것에 짜증이 났는지 몸통을 틀어서 나를 들이받았다. 급히 전투용 팔을 들어서 막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놈의 배갑과 충돌한 내 팔 중 2개가 완전히 박살나고 내 몸은 벽에 다시 처박혔다.
‘큭!’
기교 하나 없이 단순한 움직임이지만, 나 이상으로 속도가 빠른 데다가 힘까지 좋으니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팔을 부러트린 놈은 벽에 박힌 머리를 빼고 다시 달려들었다.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나는 놈의 눈을 향해 입을 벌렸다. 내 목 안쪽 식도 부근에 위치한 산성 진균샘이 악랄한 산성 액체를 위로 쏘아냈다.
녹색 액체를 맞은 놈이 공격을 잠시 멈췄다. 놈이 주저하는 동안 나는 서둘러 몸을 빼서 놈과 거리를 벌렸다.
「스스스스스스」
짜증스럽다는 듯 고개를 터는 놈. 다이아몬드를 가볍게 능가할 정도의 경도를 자랑하는 갑각이라 그런지, 산성 진균 또한 전혀 침투하지 못하고 있었다.
녹색 액체를 털어낸 놈은 나를 보며 그르렁거렸다. 나한테서 계속 새로운 능력들이 튀어나오니까 슬슬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리라.
놈이 경계하는 동안, 나는 ‘지금까지 노렸던’ 놈의 부위를 살펴봤다. 집게로 후려치고, 턱 아래의 칼날로 벤 복부 갑각은 잔뜩 금이 가 있었다.
‘준비는 끝났어.’
남은 일은 하나.
기다리는 것.
「스스스」
「그르르르르」
더듬이를 나한테 고정한 채 바짝 경계하던 놈이 다시 움직였다. 놈이 철로 위를 질주하는 열차처럼 빙판 위를 미끄러지며 내게 돌진했다.
놈과 충돌하기 직전, 나는 꼬리 끝과 하반신에 있는 다리들에 힘을 바짝 줬다. 내 몸이 용수철처럼 천장을 향해 튀어 오르고, 내 집게발의 표면이 놈의 턱이 서로 스쳤다.
아이스 호러의 돌진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나는 그대로 놈의 등 위를 덮쳤다. 그리고 남은 전투용 팔과 침식 촉수를 이용해 로데오를 하는 카우보이처럼 놈의 배갑을 단단히 붙잡았다.
「스스스스스!」
등에 나를 태운 놈이 마음에 안 드는지 온몸을 비틀어댔다. 하지만 나는 이미 놈의 몸에 바짝 붙어 있는 상태. 놈의 의도대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놈이 날뛰는 동안 나는 턱 아래의 칼날과 등의 팔을 마구 휘둘렀다. 쉭쉭 하는 바람 소리가 날 때마다 놈의 배갑에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갔다.
「스아아아아아!」
마침내 못 참겠다는 듯 놈이 크게 포효하고 몸을 번쩍 들었다. 내가 위로 뛰어오른 것과 동일하게 놈도 하반신과 다리에 힘을 줘서 몸을 띄운 것이다.
놈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이 거대한 지하 공간의 천장까지 솟구쳤다. 천장까지 도약한 놈의 등이 천장과 충돌하면서 그 사이에 끼어 있던 나는 압착기에 몸을 들이민 것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륵!」
‘크헉!’
전신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통증에 나도 모르게 힘이 풀렸다. 뒷머리 갑각은 지금 충격으로 인해 뒷부분이 부서졌고, 등 갑각과 흉부의 갑각 또한 크게 금이 갔다.
‘한 번 더 맞으면 위험해!’
놈이 천장에 들이받고 바닥에 착지한 사이 나는 놈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놈은 어딜 도망가느냐는 듯 턱을 활짝 피고 나의 꼬리를 깨물었다.
물자마자 놈의 턱 안쪽과 입 안쪽에 돋아있는 돌기와 이빨들이 나의 몸을 붙잡았다. 이대로 나를 삼킬 셈이겠지.
나는 놈의 턱을 때리는 대신 집게발 안쪽에 있는 가시털 발사 꼬리를 활성화했다. 집게가 살짝 벌어지고 안쪽에 있는 가시들이 놈의 목구멍으로 쏟아졌다.
「스스스!」
나와 마찬가지로 신경독을 무기로 사용하는 놈에게 독 공격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누구든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걸리면 기분이 불쾌하기 마련이다.
아이스 호러는 진저리를 치며 나를 뱉었다. 짧은 시간 동안 놈의 몸 안에 들어갔다가 나온 내 꼬리 끝부분은 심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확실히 강해.’
누가 에이펙스 생물이 아니랄까 봐 엄청난 전투력을 자랑하는 놈이다. 그나마 놈이 에이펙스 중 약한 부류에 속해서 이 정도지, 블랙 갤러곤이나 씨 데몬이었으면 내 몸에 이미 치명적인 부상 2, 3개 정도 생겼을 거다.
「스아아!」
짧게 포효한 놈이 다리를 빠르게 놀리며 내게 접근한다. 나도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수컷들이 우열을 가리기 위해 뿔싸움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투기장 위에서 아이스 호러의 턱과 내 머리 갑각이 격돌했다.
엄청난 압박감이 내 머리에 밀어닥쳤다. 지금껏 거의 손상된 적 없던 머리 갑각이 부서지고, 여섯 개의 뿔 중 3개가 꺾였다.
‘여기서 넘어지면 끝장이야.’
나는 어떻게든 밀려나지 않기 위해 하반신에 있는 다리들과 꼬리에 힘을 바짝 줬다.
그렇게 막강한 두 힘이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버티던 결과, 바닥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 타이밍에 맞춰 나는 머리를 아래로 바짝 낮췄다. 나와 힘겨루기를 하던 놈은 내가 머리를 피하는 바람에 힘이 머리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놈의 턱이 순식간에 내 뒷머리 갑각을 부수고 내 등 갑각 위를 쓸고 지나갔다. 그 충격으로 등의 팔 2개가 몽땅 부러지고 말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통증이 내 뇌리에 바로 꽂혔다. 뒤통수가 갈려 나간 것 같은 고통에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고통 경감 특성 덕분에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었다.
‘지금!’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꺾었다. 그러자 내 턱 아래에 있던 뼈 칼날이 위쪽을 향해 바로 섰다.
뼈 칼날이 노리는 목표, 그것은 내 위로 빠르게 지나가는 놈의 복부였다. 나의 뼈 칼날 중 오른쪽에 위치한 2개의 칼날이 앞으로 튀어 나가던 놈의 복부를 크게 벴다.
「스스스!」
‘깨졌…윽!’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나는 무너진 바닥 위에 나뒹굴었다. 분노한 놈이 내게 꼬리를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이런!’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놈의 입은 지척까지 와 있었다.
네 갈래로 갈라진 거대한 턱이 꽃처럼 펼쳐진 것이 보인다. 저 턱이 닫히는 순간, 나의 머리와 상반신은 그대로 끝장날 거다.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려는데, 놈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내가 피하기에는 충분한 상황.
내가 상반신을 빼자마자 놈의 턱이 바로 닫혔다. 나는 반쯤 무너진 통로 저편에 익숙한 존재의 움직임들이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왔구나!’
그리고 통로를 채우고 있던 암석과 얼음 파편들이 둥둥 떠올랐다. 그것들은 대포알이 되어 아이스 호러의 배갑과 꼬리 위에 쏟아졌다.
「스스스스스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놈이 고개를 홱 돌렸다.
어둠에 잠긴 통로 너머에서 세 생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잘 버텼어.」
‘제사장의 황금창’을 손에 쥐고 있는 그리폰 수인.
「큰어른」「큼」「뱀」「매우」「거대」
나와 아이스 호러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하는 그린 갤러곤.
「이 못된 녀석! 큰애기를 괴롭히는 애는 가만 안 둬! 많이많이 혼내줄 거야!」
그리고 수많은 촉수와 지느러미를 위협적으로 흔드는 10m 크기의 씨 데몬.
기나긴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지원군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