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74화 (175/400)

Ep. 174

「‘준성체’->‘성체’ 진화 조건 중 일부가 충족되었습니다.

에이펙스(APEX) 1/30(미달성)」

‘휴.’

나는 바닥에 쓰러진 아이스 호러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에이펙스 하나를 잡는데 성공했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확실히 힘드네.’

게임에서도 에이펙스 사냥은 쉽지 않았다. 애초에 에이펙스로 분류되는 생물들을 보면 갤러곤이니 씨 데몬이니 쟁쟁한 존재들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일 뿐.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사망 페널티는 꽤 큰 편이지만 현실에서의 죽음에 비할 수준은 아니다.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인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녀석들이 없었으면 힘들었겠지.’

이번 싸움에서 날 도와 준 아드하이가 내 옆에 내려앉았다. 녀석의 등에 탄 26호와 하늘의 어머니도 내려서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셋 모두 아이스 호러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

「큰애기야, 안 아파? 큰애기가 많이 다쳤어.」

[즈즈즈 즈즈즈즈즈(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조그마한 크기로 돌아온 26호는 언제나 그렇듯 나를 먼저 걱정했다.

「강적」「사냥」「성공」

「…이걸 우리가 잡을 줄이야.」

아드하이는 시체 위에 올라가 이리저리 폴짝거리며 뛰어다녔다. 하늘의 어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시체를 쳐다보고 있었다.

[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다들 빨리 먹자. 시간이 없어)]

우리가 있는 지하 공동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중이다. 아이스 호러와 내가 깽판을 쳐놨기에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여기가 무너지면 바깥쪽에도 영향을 미치겠지.’

여기가 무너진다면 위쪽의 얼음 평야도 붕괴하면서 거대한 싱크홀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멀쩡한 빙판이 주저앉은 것을 보면 갤러곤들도 수상하게 여길 터.

게다가 내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사냥의 표상 지속 시간은 20분. 놈과 싸우느라 시간 대부분을 소비했기에 5분가량밖에 안 남았다.

내 말을 들은 하늘의 어머니는 금이 생긴 벽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벽을 보니까 오래는 못 버텨.」

[즈즈 즈즈즈 즈즈(너는 심장부터 꺼내)]

「알았어.」

나는 핏물 속에 잠긴 제사장의 황금창을 주워서 그녀에게 던졌다. 가뿐하게 창을 받은 그녀는 내가 만들어 놓은 상처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중간애기야. 내가 도와줄게.」

「…고마워.」

26호와 하늘의 어머니가 놈의 뱃속에 들어간 사이, 나는 아이스 호러의 머리를 먹을 준비를 했다.

‘갑각이 단단해서 그냥은 못 먹어.’

나는 놈의 턱을 벌리고 그 안쪽으로 기어들어 갔다. 날카로운 이빨과 딱딱한 돌기를 지나 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부드러운 살점들이 나를 반겼다.

내 몸을 둘러싼 살점들, 전부 먹어도 되는 부위들이다. 나는 엎드린 채 사방에 깔린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음.’

놈의 갑각이 워낙 단단해서 고기도 질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이빨 중 절반이 부러졌는데도 놈의 살점은 별 저항 없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다만….

‘맵네.’

아이스 호러의 고기는 지금껏 먹어 본 먹이들 중 최고의 매운맛을 자랑했다. 에이모프에게 눈물샘이 있다면 눈물이 살짝 맺힐 정도로 말이다.

‘독 때문에 그런가?’

아이스 호러가 내뱉는 독은 내가 지닌 신경독보다 훨씬 강력하다. 혹시 다른 부위도 이런가 싶어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살점도 맛을 봤다.

‘이쪽은 좀 덜하네.’

보아하니 독샘이 위치한 목구멍과 식도 부근만 이렇고 다른 부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이 자리에 있는 생물 중 독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존재는 없다.

그러니 괜찮을 거로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니 애들한테 주의를 줘야겠다.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고기에 독이 있으니까 조심해)]

「왜 이리 맵나 했는데 역시 독 때문이었나.」

하늘의 어머니는 채취한 아이스 호러의 심장을 먹는 중이었다. 보조기관을 통해 감지된 그녀의 모습은 그리폰 형태였다. 수인 모드로 맛을 보다가 독이 있음을 간파하고 내성이 있는 그리폰으로 변신한 것이리라.

현재 우리 중 독에 내성이 없는 존재는 없다. 나와 26호가 내성이 가장 높지만, 나머지 둘은 위험 부위가 아니라면 아이스 호러의 고기를 먹어도 될 정도니까.

다만, 매운맛은 어떻게 안 되는지 26호와 아드하이의 파장과 사념파가 마구 쏟아졌다.

「맵다! 아프다! 아픈데 맛있어!」

「짜릿함」「새로움」

26호는 아프다면서 계속 먹는 것 같았고, 아드하이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는 것이 즐거운 듯 보였다.

‘다들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네.’

매운 것을 먹는 26호의 모습이라니, 솔직히 보고 싶었지만 아직 내게는 할 일이 남아 있다.

사냥의 표상이 끝나기 전, 머리를 전부 먹어야 한다.

‘이번에는 뭐가 나오려나.’

길이만 수백m에 달하는 놈이다 보니 머리 크기도 20m를 훌쩍 넘어갔다. 나는 맹렬한 속도로 내 몸의 절반에 달하는 고기들을 먹어 치웠다.

그렇게 목부터 시작해서 뇌가 있는 곳까지 먹으며 올라가는 중인데 하늘의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다 먹으면 잠깐 나와봐.」

[즈즈즈(왜 그래?)]

「놈의 내장에서 스크리머를 발견했어.」

[즈(뭐?)]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순간 흠칫했다.

「걱정하지 마. 이미 정지한 스크리머의 잔해만 남았으니까.」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살짝 안심했지만, 아직 완전히 긴장을 풀 정도는 아니었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놈들이 주변에 있는 것 같아?)]

「그건 아닐 거야. 부식된 상태를 보니까 상당한 시간이 흘렀어. 거의 3주쯤.」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3주 동안 배 안에 있었다고?)]

「남은 금속 골격을 보니까 아까 우리가 본 놈하고 비슷한 것 같아.」

얘기를 들어 보니 개조된 신형 스크리머들은 이 지하에도 들어온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이스 호러를 만나서 모두 전멸한 것이고.

‘지상의 숲에서 봤던 녀석은 이곳에서 도망쳤던 놈일까?’

생각해 보면 만났을 당시에도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는 윈터워커와 싸우느라 그런 줄 알았는데 어쩌면  이 놈한테 쫓겨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궁금하긴 하지만….’

일단 지금은 먹는 것이 먼저다. 나는 그녀에게 알겠다고 답하고 포식 활동을 재개했다.

속도를 올려서 정신없이 먹은 끝에 정확히 10초 남기고 놈의 머리를 전부 해치울 수 있었다.

그리고.

「포식 효과 발동! ‘거대생물’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아이스 호러’의 생물 특성 중 ‘거대생물’을 탈취.」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뼈 도끼’와 융합 가능.」

「‘거대생물’과 ‘뼈 도끼’ 특성이 융합. ‘뼈 야수’ 특성으로 진화!」

「뼈 야수: 기존 거대생물 특성을 계승, 강화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주 강력한 ‘뼈 야수’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변신 지속 시간은 60분입니다.

*주의: ‘사냥의 표상’과 함께 사용할 수 없습니다.

*추신: 외골격은 특정 생물종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새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말과 함께 모든 에이모프 플레이어들에게 사랑받던 유명한 특성, ‘뼈 야수’가 내 손에 들어왔다.

-

아쉬레 부족 제이슨.

그는 많은 별명을 가진 컬트였다.

제국의 존경받는 ‘제사장’이자 전통을 수호하는 ‘섭리파의 수장’, 아웃스페이서의 공격으로부터 수도성을 지킨 ‘구국의 영웅’.

랭킹 10위에 빛나는 그에게 어울리는 칭호였다.

하나 최근 그의 동족들은 그 칭호 앞에 한 글자를 덧붙여서 불렀다.

그 글자는 바로 ‘전(前)’.

얼마 전에 있었던 실책으로 그는 선망의 대상에서 제국의 안위를 뒤흔든 악인으로 추락했다.

사실 거기까지는 참아줄 수 있었다. 몸은 컬트지만 정신은 인간인 그다. 인간인 이상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는 법.

하지만 그를 진정 미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몰락에 크게 기여한 존재 그 자체였다.

랭킹 5위 모프박이.

현실이든, 이 세계에서든 제이슨이 가장 증오하는 존재였다.

제이슨과 모프박이 간의 악연은 제법 길었다. 현실에서도 놈 때문에 캐릭터를 몇 번이나 새로 키웠는지 모를 정도로.

이 세계에 와서 에이모프의 씨를 말리는데 그가 열성적으로 활동했던 이유는 모프박이한테 당한 것이 많아서 그렇다. 그 행위가 퀘스트 달성에 지장이 된다는 것을 알고도 말이다.

그런데도 놈은 살아남았다. 아니, 단순히 살아남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아주 제대로 엿을 먹였다.

제국모함과 모함전단이 궤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그는 깨달았다.

모프박이의 목을 박제해서 침실에 걸어놓지 않는 이상, 그가 편히 잠들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는 동료들과 달리 직접 나서기로 했다.

후반 퀘스트 클리어로 얻을 수 있는 유일급 장비들, 그를 따르는 충성스러운 부하들, 그리고 전용 군함까지. 성체 에이모프라도 어려움 없이 잡을 수 있을 만큼 철저히 준비했다.

그뿐 아니다. 아키라 유진이 지원한 준보스급 생물, 블랙 갤러곤까지 있다. 이쯤 되면 일부러 봐주지 않는 이상, 놈에게 패하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냉혹한 얼음의 별에 처음 발을 디딜 때까지만 해도 그는 드디어 모프박이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아키라 유진이 소개해준 블랙 갤러곤, ‘위대한 오드 그라드’와 조우한 뒤 산산조각이 났다.

“빌어먹을! 도대체 언제쯤 직접 나설 거지? 놈은 일반 갤러곤 따위가 이길 상대가 아니란 말이다!”

갤러곤을 재료로 삼아 만든 용의 갑주를 걸친 제이슨은 드넓은 동굴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 홀로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었다. 그의 앞에는 아주 거대한 존재가 누워 있었다.

각종 반짝이는 광물을 깔고 엎드려 있는 검은색의 갤러곤. 그가 바로 이 행성에 서식하는 용들의 제왕, 위대한 오드 그라드였다.

「오드 그라드」「말하였노라」「중요한 대업」「있느니」

오드 그라드는 어린 갤러곤들이 잡아 온 먹이를 먹으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 태평하고도 게을러 보이는 모습에 제이슨은 열불이 치솟았지만 간신히 억눌렀다.

‘멍청한 도마뱀 새끼가! 그깟 화이트 갤러곤 따위, 직접 나서면 바로 제압할 수 있으면서!’

제이슨이 도착했을 때, 오드 그라드의 무리는 분열된 상태였다.

갤러곤들은 나이가 들어 성체, 즉 블랙 갤러곤이 되면 무리의 수장에게 도전할 권리가 생긴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오드 그라드 무리에서 그가 유일한 블랙 갤러곤이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서열 2위였던 화이트 갤러곤 암컷이 그의 자리를 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본래 블랙 갤러곤이 된 다음 도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이런 일이 터진 것은 오드 그라드가 우두머리가 된 이후 새 블랙 갤러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놈이 나서기만 하면 전부 정리되는데 뭘 꾸물거리는 거지?”

「오드 그라드」「말하노라」「반역자들」「모이는 것」「기다린다」

현재 무리 중 왜 성체 갤러곤이 나오지 않는지 의문을 갖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은 유일한 블랙 갤러곤인 오드 그라드가 뭔가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해 반발하는 중이었다.

오드 그라드는 제이슨에게 말한 것처럼 이 기회에 자기의 치세에 반발하는 갤러곤들을 일소할 계획이었다. 동굴에 칩거하는 척하는 것도 적들을 방심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건 갤러곤들의 사정.

5위의 에이모프 랭커라고 하는 초유의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아는 제이슨이 보기에는 한심한 정치질에 불과했다.

‘에이모프가 다 크면 너희들은 다 끝장이란 말이다! 이 등신같은 스킨크 새끼!’

제이슨이 속으로 오드 그라드를 욕하고 있는데, 동굴 밖에서 한 마리의 갤러곤이 날아 들어왔다.

하얀색 비늘을 지닌 갤러곤은 날개를 접고 오드 그라드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나」「위대한 오드 그라드」「말씀하신 것」「보고」

“저게 무슨 말이지?”

「오드 그라드」「말하노라」「미천한 존재」「원하는 것」「어린 자」「발견했노라고」

“뭐? 그게 사실인가?”

자기를 미천한 존재라 불렀지만 제이슨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지금은 에이모프를 잡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오드 그라드」「대업」「준비 중」「대신」「미천한 존재」「어린 자」「따라가라」

“…끝까지 안 나서겠다 이거지?”

그 말을 끝으로 오드 그라드는 앞발을 들어 휘저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나가라는 뜻이었다.

마치 왕이 시종들에게 손짓하는 모습 같아서 제이슨은 이를 악물었다. 겨우 아키라 유진의 애완동물 주제에 저렇게 거만하게 나오는 것이 몹시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제이슨의 힘이라면 오드 그라드를 죽일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여기 있는 갤러곤들 전부와 싸워야 할 판이다. 그들과 싸우게 되면 제이슨 일행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모프박이한테 각개격파당하겠지!’

게임에서도 놈의 분탕질 때문에 클랜 연합이 박살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임 속에서 있었던 일을 현실에서 재현시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동굴을 나왔다.

어차피 반역자들이 축출되면 저 재수 없는 블랙 갤러곤도 그를 도울 수밖에 없다. 아키라가 명령한 것이니 그 또한 제이슨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오드 그라드의 도움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기에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정말 모프박이가 이 행성에 함께 있다면 지금 그들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니까.

“야, 방금 저 도마뱀 새끼한테 말한 장소. 우리한테 안내해.”

「이해」

그러니 지금은 혼자서라도 먼저 행동해야 한다.

제이슨은 화이트 갤러곤과 함께 부하들이 있는 캠프로 향했다.

-

둥지에 누워 회복에 전념하고 있던 나는 눈을 떴다.

‘요즘 잠이 잘 안 오네.’

지난번처럼 악몽이라든가 해결되지 않는 고민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아까 낮에 아이스 호러를 포식한 뒤 받은 메시지 때문이다.

초월 2단계를 해금한 뒤 ‘특성 강화’라고 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해금되었다. 당시에는 해금되어도 활성화가 안 돼서 잊고 있었는데, 그것이 오늘 활성화되었다.

‘설마 그런 시스템이었을 줄은…응?’

특성 강화 시스템을 살펴보려는데 내 보조기관에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둥지에 우리 말고 다른 생물은 없다. 나는 재빨리 둥지와 링크해서 움직인 대상이 뭔지 확인했다.

‘26호?’

낮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 탓에 일찍 자겠다고 한 녀석이다.

일찍 자는 바람에 생활 패턴이 꼬여서 그러나 싶었는데, 녀석의 행동이 이상했다.

26호는 둥지 밖을 나와 통로 너머로 사라졌다.

‘뭐지?’

평소에 녀석이 단독 행동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급한 전투 상황이 아니라면 내게 뭘 할지, 뭘 하고 싶은지 전부 말해 준다.

그러던 녀석이 밤중에 몰래 밖으로 나간다니, 명백히 수상한 행동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조심스럽게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녀석은 뭐에 그리 정신이 팔렸는지 내가 뒤에 따라붙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둥지로부터 꽤 떨어진 곳까지 이동한 녀석이 돌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몸 안에서 뭔가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거 먹어.」

“PS-111. 신규 등록된 메인 컨트롤러의 헌신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26호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서둘러 26호에게 접근했다.

「어? 큰애기야?」

[즈즈 즈즈(그거 뭐야?)]

「어, 이건, 그게.」

26호가 보기 드물게 우물쭈물했지만, 나는 그 사실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녀석 앞에 있는 작은 물체. 그것은 내가 얼마 전에 봤던 것과 매우 흡사했다.

“PS-111. 알 수 없는 생물 감지.”

인간 여성의 얼굴에 기계 부품과 튜브가 부착된 그것.

그것은 머리만 남은 신형 스크리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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