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77화 (178/400)

Ep. 177

‘혹시 갤러곤인가?’

침입자로부터 미약한 사이킥 파워가 느껴졌다.

다만 갤러곤이라면 이렇게 조용히 움직일 리 없다. 나는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다시 둥지 위에 엎드렸다.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둥지와 링크된 것을 확인한 나는 감각을 특정 지점에 집중했다. 육신의 감각까지 전부 동원해서 진동의 진원지에 쏟아 부었다.

소리, 냄새, 특수한 에너지의 흐름. 둥지와 각종 특성 덕분에 고도로 강화된 나의 보조기관이 세 가지 요소들을 흡입한다. 보조기관이 보낸 정제된 정보는 에이모프의 두뇌가 빠르게 해석해낸다.

‘작지만 정련된 발자국. 군인. 금속 냄새. 약간 달라. 몇몇 금속을 섞은 특수 합금으로 만든 도구. 그리고 잘 감춰진 사이킥 파워.’

이를 종합했을 때 답은 하나뿐이었다.

‘컬트 정규군, 전사단인가.’

거리가 멀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실력자들로 보였다. 장비와 움직임만 봤을 때 지난번 컬트 성지에서 조우했던 모함전단 소속 전사단보다 뛰어났다.

‘신전수호단, 아니면 계시의 눈 사제단 같은데. 게다가 선두에 선 이 자는….’

통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파괴할 때 사이킥 파워를 뽑아내는 자. 범상치 않은 자였다.

처음에는 사이킥 파워 도구를 활용해서 막힌 통로를 뚫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보니까 아니었다. 그는 평소에는 사이킥 파워를 감추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힘을 짧게 뽑아서 쓰고 있었다.

‘내가 본 자들 중 사이킥 파워에 가장 능통한 존재다.’

지금까지 내가 본 존재들 중 사이킥 파워를 가장 잘 다루는 존재는 둘이다. 하나는 26호고, 다른 하나는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에서 싸웠던 유진의 그림자, 코드 블랙이다.

그런데 저 존재는 혼자만으로도 둘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의 실력자다.

‘저 정도면 거의 블랙 갤러곤급인데.’

나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강자가 포함된 컬트 정예군. 모여서 이동하던 그들은 갈림길에서 3개의 무리로 나눠졌다.

적들이 쪼개졌다고 안심할 수 없었다. 세 무리 모두 둥지가 있는 곳을 향해 오고 있으니까.

‘우리를 찾고 있어.’

그렇지 않고서는 굳이 막혀 있는 얼음 통로를 뚫어가며 이동할 리가 없다.

“왜 그러십니까?”

내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감지했는지, PS-111이 내게 질문했다.

“컬트 침입자가 있어. 방향을 봤을 때 이쪽으로 오는 중이야.”

“제게는 감지되지 않습니다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 블랙 갤러곤의 영역에 자리 잡은 컬트 집단일 겁니다.”

“뭐?”

“해당 컬트 집단은 29일 전 이 행성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그들의 캠프는 갤러곤의 영역 내에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갤러곤에게 영역이란 일종의 사냥터다. 먹이 사냥뿐만 아니라 성체가 해츨링에게 사냥 교육을 행하는 곳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 중요한 곳에 컬트들의 출입을 허용했다는 것은 곧 갤러곤과 저 컬트 집단이 한통속이라는 뜻이 된다.

정체불명의 컬트 강자, 그리고 에이펙스 중에서도 중상위의 지위를 차지하는 블랙 갤러곤. 둘과 동시에 싸우면 현재 내 상태로는 필패다.

“설마 블랙 갤러곤이 이쪽에 컬트들을 보낸 건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아리송한 답변에 내가 되묻자 녀석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른 중간 단말기의 보고 기록에 따르면 현재 갤러곤 무리는 분열된 상태입니다.”

“분열? 잠깐, 혹시 우두머리 승계전인가?”

“맞습니다. 서열 2위의 화이트 갤러곤이 블랙 갤러곤에게 도전한 상황입니다.”

“화이트 갤러곤이 도전했다고? 그건 이상한데. 블랙 갤러곤으로 성장하지 않은 이상 절대로 못 이길 텐데.”

화이트 갤러곤과 블랙 갤러곤 간의 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블랙 갤러곤은 화이트 갤러곤 5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어도 단번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니까. 다른 갤러곤도 둘의 격차를 알기에 화이트 갤러곤이 블랙 갤러곤으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결코 따르지 않는다.

“원래라면 그렇습니다만, 화이트 갤러곤은 다수의 갤러곤 무리를 이끌고 도전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일단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넘어가고. 승계전과 컬트 집단이 무슨 관계가 있지?”

“서열 2위의 무리는 컬트 집단을 적대시합니다. 도전자를 지지하는 갤러곤이 컬트를 공격한 것도 관측되었습니다.”

“흠.”

녀석의 말을 들으니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긴 하나 침입자들과 블랙 갤러곤이 모호한 관계에 있다.

“블랙 갤러곤이 컬트를 돕지 않았군. 모종의 이유로 같이 있을 뿐, 생각보다 끈끈한 관계는 아니야.”

“맞습니다. 컬트 집단들 또한 블랙 갤러곤을 돕는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확신할 수는 없다. 이곳이 노출된 이상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둥지와의 링크를 해제한 나는 자고 있던 애들을 모두 깨웠다. 나는 피곤해 보이는 그들에게 자초지종 설명했다.

「컬트 전사단이라고? 그들이 왜 여기를?」

[즈즈즈 즈즈즈(이유는 모른다)]

「…블랙 갤러곤급 강자가 끼어 있으면 상대하기 쉽지 않아.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

사정을 들은 하늘의 어머니는 둥지를 빠져나가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녀의 말대로 내게 경각심을 준 컬트는 제사장 이상의 강자고, 곁에 따라 붙은 뛰어난 컬트 전사들도 수십 명이나 된다. 그러니 후퇴한 뒤 상황을 보고 싸우자는 뜻이리라.

「동족」「냄새」「비슷함」「위험」「매우」「위험」

점점 가까워지는 사이킥 파워를 감지한 아드하이도 하늘의 어머니 의견에 동의했다. 4개의 뿔이 달린 고개를 까딱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PS-111. 컬트 집단의 실력에 대한 정보는 없어?」

“다른 중간 단말기가 처리한 일이라 제게는 정보가 부족합니다. 부족한 정보를 토대로 말씀드리면, 컬트 제국 제사장을 상회하는 사이킥 파워 사용자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도주를 권고합니다.”

머리만 둥둥 떠 있는 PS-111 또한 도주하는 길을 택했다.

「가족을 못살게 구는 나쁜 애들은 모두 혼내줘야 해!」

유일하게 26호만은 도주가 아닌 맞서 싸우자는 의견을 냈다.

가족을 지킨다는 책임감이 매우 강한 녀석이다. 자기 목숨을 바쳐서라도 여기 있는 이들을 지키려고 하겠지.

각자 의견을 내놓은 녀석들이 나를 쳐다 봤다. 내가 내린 결정을 따르겠다는 무언의 뜻이리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도주하자는 의견이 많긴 해도, 섣불리 선택할 수 없다.

저들은 먼 거리에서, 그것도 지하에 있는 우리의 위치를 단번에 파악하고 추적 중이다. 이 점을 봤을 때 적들은 모종의 추적 수단을 지니고 있다.

‘다른 장소로 도망친다고 해도 소용없어.’

추적 수단을 제거하거나 저쪽의 발을 묶기 전에는 도망쳐도 안전하지 않다. 만에 하나 저쪽이 우리를 몰아넣을 계획이라면? 그때는 적의 함정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꼴이 된다.

‘그것 말고도 문제는 또 있지.’

아드하이랑 하늘의 어머니는 추위에 약하다. 지상으로 나갔다가 눈폭풍이 다시 들이닥치면 둘의 전투력은 극감할 것이 틀림없다.

‘반대로 여기서 싸우는 건?’

지하에서 놈들과 맞서 싸우는 것도 장단점이 있다.

장점이라면 내가 둥지를 깐 상태이기에 둥지 관련 특성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전에 뮤리엘과 싸울 때처럼 둥지의 지원을 받으며 싸울 수 있다.

또한 다른 녀석들도 이곳 주변의 지리는 익숙하기에 전투에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짙은 어둠은 덤이고.

‘다만 단점도 있어.’

일단 지하 공간에서는 내가 가진 카드 중 ‘뼈 야수’와 ‘괴수의 왕’ 변신 능력을 쓰기 어렵다. 아이스 호러랑 싸웠던 곳처럼 아주 넓은 공동이 아니라면 내 움직임이 상당히 제한될 테니까.

‘그리고 놈과의 격전으로 인해 얼음 천장이 불안한 상태야.’

여기서 더 충격을 받는다면 이 위의 얼어붙은 평야가 아예 무너질지도 모른다. 변신 상태의 나라면 두께 수백m의 얼음 천장이 무너진다고 해도 견딜 수 있겠지만, 다른 녀석들은 아니다.

‘아니, 잠깐.’

문득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맹렬히 머리를 굴려서 빠르게 계획을 짠 나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즈즈즈즈 즈즈(이곳에서 잡자)]

「괜찮겠어?」

하늘의 어머니가 쏜 사념파에는 짙은 걱정이 묻어 있었다. 그녀도 뒤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테니 걱정될만 하겠지.

나는 모두와 한 차례 시선을 마주 본 뒤, 방금 세운 계획을 빠르게 설명했다.

「와! 큰애기랑 오랜만에 먹이 사냥! 재밌겠다!」

「인정」「흥미진진」

「…마귀 같은 그 성격, 변하지 않네.」

“흥미로운 계획입니다만, 위험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성공 확률을 높일 방법이 필요합니다.”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그에 대해 할 말이 있어. 따라와)]

나는 손가락으로 PS-111을 집어 들었다. 이어서 무기가 든 백팩까지 챙긴 뒤 둥지 밖으로 나왔다.

“아까 블러드 리버 포식을 원한다고 했지?”

“맞습니다. 3개면 전투 기능을 복구 및 강화할 수 있습니다.”

나는 백팩에서 비활성화 상태인 블러드 리버 1개를 꺼냈다.

“너를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려워. 그리고 이 블러드 리버는 내게도 필요한 물건이야.”

“하지만 1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블러드 리버의 특성이 반영된 신체를 구성하려면 대량의 유기물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 자원, 생물로도 충당할 수 있지 않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대답 대신 이빨요정 둥지를 활성화했다. 내 허리 부근과 배갑(背甲) 사이에 있는 구멍들로부터 작은 식인벼룩들이 꾸물대며 밖으로 기어 나왔다.

“신체 변형에 필요한 자원은 내가 공급하도록 하지.”

“매우 효율적인 에너지 공급책이라 판단됩니다.”

감탄했다는 PS-111.

나는 녀석에게 블러드 리버를 건넸다.

녀석은 턱이 빠진 사람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입에서 튀어나온 얇은 튜브들이 블러드 리버를 휘감은 뒤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키릭, 블러드 리버, 흡수 완료, 키릭, 신체 구조 재구성을 위한 유기물, 키릭, 흡수, 개시, 키릭.”

블러드 리버와 이빨요정들을 포식한 PS-111의 몸이 뒤틀린다.

이전보다 훨씬 기괴한 모습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

냉기로 가득 찬 얼어붙은 구조물 내에 일련의 무리가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극도로 낮은 온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비늘로 덮인 형태의 바디슈트만 입은 상태였다. 척박한 환경에서 경무장만 갖춘 이유는 그들이 고도의 실력을 지닌 사이킥 파워 사용자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사이킥 파워에 민감한 자가 있다면 그들의 몸 전체에 옅은 보라색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아이보리색 바디슈트, 관자놀이로부터 솟은 여러 종류의 뿔.

얼어붙은 지하 통로를 걷는 자들의 정체는 컬트 제국의 신전수호단이었다.

컬트 제국 내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고 입증된 전사들만이 신전수호단에 들어갈 수 있다. 그들의 역할은 요인을 보필하거나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존재를 토벌하는 것. 제국에서 신전수호단 이상의 무력을 지닌 집단은 예언자회 부속기관인 ‘계시의 눈’ 사제단 밖에 없다.

그만큼 대단한 실력자들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앨리아 님, 혹시 제이슨 님이 저희를 불신하는 걸까요?”

“임무 중 잡담은 금물이다.”

야크 뿔이 달린 리더, 앨리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지적하자 단원은 입을 다물었다. 임무 중에 취할 태도는 아니었지만 앨리아는 굳이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이 상황에 적지 않은 불만을 품고 있었기에.

‘세 머리의 악마가 위험한 존재라는 것은 알지만….’

갤러곤의 안내를 받아 이곳 지하에 내려온 이후 제이슨은 그녀가 여태껏 본 적 없을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제이슨의 전속 경호원이자 연인이었던 그녀조차도 제이슨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

그 모습이 신전수호단에게는 결코 좋게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들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신전수호단은 제국에 해를 끼치는 괴물을 사냥하는 집단이다. 잡은 괴물만 수백, 수천 마리가 넘는 만큼 괴물 사냥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물론 적이 제국모함과 모함전단을 궤멸시킨 강적 중의 강적. 아마 신전수호단이 맞선 상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위험한 존재일 터.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컬트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싸울 준비가 된 자들이었다.

‘그 사실을 제이슨이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연인은 신전수호단에게 이해하기 힘든 요청까지 했다.

‘싸우다가 질 것 같으면 자살하라고?’

그는 신전수호단이 놈에게 이길 것이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그는 추가로 아예 구체적인 자살 방법까지 지시했다. 그가 말하길, 놈과 싸워서 죽게 된다면 머리만큼은 절대로 남기면 안 된다고 했다.

혹시 죽을 것 같으면 스스로 사이킥 파워를 뇌에 집중시켜서 터뜨리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도대체 왜?’

컬트 사회에서 자살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개 금기로 취급된다. 개인이 사사로운 이유로 목숨을 끊는 것은 위대한 ‘섭리’의 이행에 반발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텔레파시로 따로 물어 봤지만, 그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도 모를 테니 그냥 자살하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제국에서 가장 명예로운 자라 할 수 있는 제사장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니 드높은 신전수호단들도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갈림길로 인해 각각 12명 씩 세 무리로 나눠졌음에도 단원들의 불만은 쉽게 사르라들지 않았다. 앨리야가 짧게 경고했지만, 단원들의 눈에는 여전히 제이슨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적대심이 남아 있었다.

“엘리야 님! 전방에서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그때 정찰을 담당하던 단원이 크게 외쳤다. 이에 앨리아를 포함해 12명의 수호단원들이 무기를 빼 들었다.

“…….”

말없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는 그들이었지만, 텔레파시 링크로 연결된 정신세계에서는 끊임없는 대화가 한창이었다.

‘잭스탈, 네시안은 천장 부분을 맡아. 적이 위에서 덮칠지 몰라.’

‘스타브란, 빌로네는 전방, 나와 브렌츠가 후방을 맡을게.’

‘테른, 뭔가가 텔레파시 링크를 방해하고 있어. 점검해 봐.’

‘알았어.’

본래 전사단원이라면 텔레파시 링크를 사용할 수 있지만, 사이킥 파워를 증폭시키는 용도로 제작된 헬멧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신전수호단은 특별한 도구 없이도 서로 회화를 나눌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전투 중 허점을 찔리지 않기 위해서다.

서로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이동하던 그들은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는 공동에 들어섰다. 네 갈래의 길이 뚫려 있다는 점 말고는 특별한 부분이 없어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하지?’

‘전파 장애 때문에 지하 공동의 형태가 파악이 안 돼.’

‘적이 근처에 있나 보군. 모두 주의하라.’

그들은 무기를 든 채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나아갔다. 그렇게 공동을 가로질러 네 갈래의 길과 가까워졌을 때 앨리야는 이상함을 느꼈다.

‘응?’

지금까지와는 뭔가 질적으로 다르다는 느낌. 주변을 둘러봤지만, 어둠으로 인해 검게 변한 얼음과 바위 뿐 다른 특별한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베테랑 전사인 앨리야는 자신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답을 도출해냈다.

‘냄새!’

이 공동에서는 지금까지 걸어온 얼음 통로와 다른 냄새가 났다. 즉, 공기 중에 성분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섞여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알아챈 앨리야가 다급히 텔레파시를 쐈다.

‘모두 용린복(龍鱗服)을 활성…!’

앨리야가 막 명령하려는 순간, 그들이 서 있는 땅 주변에서 수십 개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땅속에서 컬트 얼굴만한 크기의 괴생명체들이 일제히 튀어 올랐다.

“적습이다!”

“모두 대응하라!”

날아드는 작은 괴물들을 향해 단원들이 즉시 반격했다. 창과 장검이 공기와 함께 괴물을 벴고, 화살과 총탄이 괴물의 머리를 꿰뚫었다. 하늘에 떨어지는 번개만큼이나 빠른 그들의 대응에 수십 마리의 괴물들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이놈들은 뭐지?’

‘제이슨님께서 말하시길, 세 머리의 악마가 낳은 새끼라더군.’

그 말을 들은 수호단원 한 명이 괴물 시체를 집어 들었다. 괴물은 검은색 갑각을 두른 풍뎅이 비슷하게 생겼는데, 얼굴 부근에 인간의 치아처럼 생긴 것들이 빼곡히 돋아나 있었다.

그 징그럽기 짝이 없는 모습에 수호단원은 혀를 찼다.

“빌어먹을 정도로 끔찍한 외형….”

짧게 욕지기를 내뱉으려던 그는 말을 멈췄다. 소울링크로 공유되는 시야를 통해 자기 뒤에 있는 무언가를 봤기 때문이다.

그의 어깨 옆.

“키긱.”

짙은 어둠만 있어야 할 그곳에 눈처럼 새하얀 얼굴이 있었다.

‘조심해!’

“응?”

인간 여성의 얼굴을 닮은 ‘그것’이 입을 뱀처럼 크게 벌렸다. 새빨간 입 속에는 수백, 수천 개가 넘는 이빨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곧이어 귓가에서 들리는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그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브렌츠가 당했다!”

“반격 개시!”

인간 여성의 머리에 거대한 벌레의 몸통을 지닌 괴물은 브렌츠의 머리를 물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다리를 놀리며 기괴한 움직임으로 벽을 타고 네 갈래의 통로 중 하나로 사라졌다.

“키긱, 키긱, 키긱, 키긱, 키긱, 키긱, 키긱.”

어두컴컴한 통로 너머에서는 놈의 비웃는 소리만이 섬뜩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젠장! 놈을 쫒겠다! 모두 진영을 정비하라!”

“저, 앨리야 님? 빌로네가 보이지 않습니다.”

“뭐?”

그 말을 들은 앨리야가 급히 소울링크를 점검했다.

단원의 말 대로였다.

남은 11명의 소울링크 중 하나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브렌츠가 공격당하는 사이, 전방을 지키고 있던 빌로네가 납치당한 것이다.

‘설마?’

그들이 노리는 목표인 세 머리의 악마.

그 악마에게 동료가 있다.

이 얼어붙은 미로에는 지금,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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