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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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그건 뭡니까!”
“세 머리의 악마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까?”
짧은 시간 동안 정체불명의 적들에 의해 두 명이나 당했다. 세 머리의 악마 하나만을 노리고 준비한 이들이었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놈에 대한 정보, 저장했겠지?’
앨리야의 텔레파시에 단원 하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전수호단은 컬트나 다른 세력의 정규군과 싸우기보다는 그들보다 거대한 괴물, 혹은 볼텍스원 사교도들 같이 사악한 존재들과 주로 싸운다. 인외의 존재들과 싸우다 죽으면 시체나 흔적을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신전수호단에 소속된 단원들은 특수한 사이킥 파워 기술을 익힌다.
‘기억 저장술’이라 하는 기술로, 염사(念寫) 능력과 비슷하게 보거나 느낀 기억을 데이터화시키는 능력이다. 누군가가 급습에 당하더라도 기억 저장술을 배운 동료가 이를 기록해 다른 단원들에게 전달한다면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모두 대기.’
‘저장된 기억을 전달하겠습니다.’
다른 단원들이 경계를 유지하는 사이, 기억 저장술을 배운 단원이 브렌츠가 당했을 때의 이미지를 앨리야에게 보냈다.
텔레파시 링크로 기억 정보를 전송받은 앨리야 앞에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이 동영상처럼 펼쳐졌다.
바닥에 떨어진 새끼 괴물의 시체를 줍는 브렌츠. 그의 두 다리 사이, 안개가 깔린 그곳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보인다.
검은색 종이 위에 흰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보이는 그것은 여성의 얼굴이었다.
다만 그녀가 아는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은 아니다. 동공과 흰자위가 구분 없이 검은색이었고, 입술은 피로 물들인 것처럼 붉은색이었기에.
눈을 제외하고는 분명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앨리야가 받은 느낌은 섬뜩함과 불쾌함뿐이었다.
그나마 머리까지는 인간의 외형이었지만, 목 아래부터는 아니었다. 그것은 거미와 유사한 형태였다. 물론 비유상 그렇다는 말이지 실제로는 몹시도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그녀, 아니 ‘그것’은 공동에 낮게 깔린 안개 아래 얼음바닥 속에 숨어 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잠복한 상태로 대원들이 방심할 때까지 기다린 것이었다.
땅에서 튀어나온 괴물의 새하얀 얼굴이 브렌츠의 귀 뒤편까지 빠르게 올라온다. 아직 놈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는 브렌츠.
그리고 그 괴물이 새빨간 입을 벌린다.
턱이 분리되며 놈의 입이 자기 얼굴의 길이보다 크게 늘어났다. 그 안에는 톱날을 닮은 삼각형 이빨들이 빼곡하게 나 있었다.
흉측한 모양의 입을 벌린 놈이 브렌츠의 목덜미를 깨문다.
피가 솟구치고 그의 목은 아주 쉽게 절단되었다. 놈은 브렌츠의 잘린 목을 붙들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뒤늦게 단원들이 들고 있는 무기를 겨냥하는 모습이 보인다. 기억 저장술을 사용한 자의 시선이 바삐 움직이는 중에 앨리야는 눈치챘다.
빌로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거미 괴물이 브렌츠를 죽여서 시선을 끈 사이, 다른 괴물이 빌로네를 납치한 것이리라.
그 후 거미 괴물은 단원들이 쏟아 내는 공격을 몸으로 막으며 통로의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브렌츠의 잘린 목과 함께 말이다.
그걸로 영상은 종료.
기억 저장술의 정보를 열람한 부작용으로 찾아온 두통을 느끼며 앨리야는 생각했다.
‘방금 습격한 놈들,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두 괴물이 보여 준 모습은 명백한 팀플레이였다. 새끼 괴물들이 신경을 끄는 사이, 인간의 머리를 가진 괴물은 조용히 숨어 있다가 그들이 경계심을 놓는 순간을 노렸다.
또 다른 녀석은 대기하고 있다가 단원들의 시선이 다른 곳에 쏠리는 순간을 노렸다.
즉, 신전수호단이 상대하는 괴물들의 지능이 상당히 높다는 것. 거기에 뛰어난 신체 능력은 덤이다.
“지금 공격으로 놈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입니다.”
“이건….”
단원이 들고 온 것은 생물의 살점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기괴했다. 생긴 것은 금속 파편 같은데 검은색 살점이 붉은색 금속과 융화된 것처럼 눌어붙어 있었다.
‘금속과 유기체의 결합.’
이러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세력은 그리 많지 않다.
‘스타유니언.’
이곳에 오기 전, 그녀는 세 머리의 악마가 스타유니언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다.
세 머리의 악마는 스타유니언에서 만든 신형 생물 병기인데 실험 중 통제에서 벗어나 컬트 제국의 영역에 숨어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얼마 전 제국과 스타유니언 간의 무력 분쟁도 세 머리의 악마로 인한 것이라고.
‘아니, 그건 지나친 비약이다.’
앨리야는 고개를 흔들어서 머릿속 망상을 떨쳐 냈다.
‘놈의 정체는 붙잡은 뒤에 생각하자.’
그녀는 기억 저장술로 만든 정보를 단원들에게 공유한 뒤, 제이슨에게 텔레파시로 보고했다.
「…놈 때문에 브렌츠랑 빌로네가 죽었다고?」
‘브렌츠는 전사했고, 빌로네는 놈에게 붙잡혀 이동 중입니다. 지금이라도 추적해서….’
「아니. 추적은 금지. 어차피 빌로네는 죽은 목숨이야. 괜히 뒤따라갔다가 전멸할 수도 있어.」
‘네?’
「놈이 하나가 아니라는 정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소득이야. 그러니 이쪽으로 돌아와.」
빌로네는 아직 소울링크로 연결된 상태였다. 다른 단원들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를 그냥 버릴 수 없었다.
‘저희 동료입니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갈 수는 없습니다.’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앨리야.」
‘도대체 놈이 뭔데 그러는 겁니까? 제사장 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왜 말씀해주시지 않는 겁니까.’
「…….」
앨리야의 격렬한 텔레파시에 제이슨은 침묵했다. 고민하는 연인의 마음 상태가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후우, 얘기해 봐야 전의만 꺾일 거로 생각했는데 뭐 좋아. 대신 이걸 들은 뒤에는 바로 물러나도록.」
이어서 그가 보낸 텔레파시를 확인한 앨리야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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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기야, 친구가 왔어.」
“수고했어. 몸은 어때?”
“키릭, 기존 모델에 비해 훨씬 유기적인 움직임 가능, 키릭, 하지만 내구성이 낮습니다.”
“그 부분은 금속을 섭취해서 보완해야 할 것 같은데.”
“블러드 리버, 키릭, 추가로 주신다면 가능합니다.”
“안 돼.”
나는 PS-111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미 하나를 소모했기 때문에 남은 것은 7개. 블러드 리버가 양산이 가능한 유일급 장비라 해도,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타유니언의 핵심 행성을 공략하기 전까지 더 구하기 어렵다고 봐야겠지.
‘이 행성에는 강적들이 많으니까 아껴야 해.’
여기 온지 이틀째인데 벌써 에이펙스 한 마리, 블랙 갤러곤급 실력을 지닌 컬트와 조우한 상황이다. 비장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메인 컨트롤러에게 ‘에이모프’ 설득을 요청….”
「큰애기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돼.」
26호에게 대신 부탁하려는 시도 또한 좌절되었다. PS-111은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그래도 유용한 동료가 생긴 것은 이득이라 봐야 하나.’
나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녀석을 바라봤다.
PS-111의 모습은 처음 조우했을 때와 많이 달라졌다.
새하얀 피부를 지닌 인간 여성의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목 아래부터 완전히 다르다.
블러드 리버를 연상시키는 붉은색의 튜브와 기계 장치들, 이빨요정을 먹으면서 얻은 검은색 살점. 금속과 유기물이 뒤섞여서 새로운 육신을 빚어냈다.
녀석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머리를 지닌 거미에 가까웠다. 몸의 좌우에 각각 4쌍의 다리가 달렸고, 몸통에는 블러드 리버에 있던 에너지 흡수 장치들이 검은색 피부 사이에 틈틈이 보였다.
다만 녀석을 보고 거미를 떠올릴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8개의 다리는 제각각 길이가 달랐고, 모양도 거미의 다리보다는 사람의 팔과 다리를 기형적으로 늘린 것에 가까웠다.
길게 뻗은 다리 끝에는 각각 다른 모양의 발이 달려 있었다. 형태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갈고리를 닮은 5개의 손가락이 달린 형태고, 다른 하나는 도검을 연상시킬 정도로 긴 낫 모양의 발톱이 달린 형태였다. 어느 쪽이든 상대의 몸을 찢어발기는데 효과적으로 보였다.
8개의 다리 모두 길이가 제각각이라서 행동에 제한이 있을 것 같았지만 녀석은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무슨 SF영화나 공포게임에 등장하는 크리쳐 같네.’
괴물을 좋아하는 내 기준에서 녀석의 외형은 충분히 합격점을 줄만 했다. 적어도 실력 없는 특수분장팀이 만든 것처럼 보이는 스크리머나 헐크 뮤턴트에 비하면 훨씬 좋아 보였다.
‘컬트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만.’
십중팔구 땅속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PS-111을 보고 기겁했겠지. 녀석의 몸에 난 상처들을 보면 컬트들이 그 짧은 순간에도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스 호러의 잔해를 포식하면 방어력이 좀 올라가지 않을까?”
“키릭, 그럴 가능성은 72%입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나는 녀석이 건넨 컬트의 머리를 받았다.
“머리는 왜 필요한 겁니까?”
“다 써먹을 때가 있으니까.”
나는 염소 뿔이 돋아 있는 머리를 입에 넣고 씹었다. 컬트 특유의 향긋한 과일 맛이 입 속에 가득 찼다. 오렌지 베이스에 레몬향을 첨가한 맛이었다.
피부, 얼굴 근육, 뿔과 두개골, 그리고 뇌가 잘게 으깨져서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와 함께 컬트의 유전자 성분이 빠르게 흡수된다.
이윽고 내 뒷머리 갑각에 있던 인면수 하나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 얼굴이 다시 자라났다.
새로 자라난 얼굴은 내가 먹은 컬트의 얼굴과 똑같이 생겼다. 얼굴색만 다른 인면수와 마찬가지로 아주 창백하다는 점을 빼고.
새 인면수가 된 그가 눈을 떴다. 그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바로 이해하고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무슨…?!”
“조용히.”
“!”
머리에 자라난 5개의 인면수는 전부 내 의지에 속박되어 있다. 내가 조용히 하라고 하면 입을 다물어야 하고, 내가 말하라 하면 말해야 한다.
‘어차피 좀 있으면 네가 떠들고 싶은 만큼 떠들 수 있어.’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데려왔으니까.
나는 근처에 숨어 있는 아드하이에게 파장을 보냈다.
[즈즈(적들은?)]
「오는 중」「수」「열둘」
[즈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어른만큼 강한 힘을 지닌 적은 없어?)]
「적」「힘」「작은어른」「비교」「낮음」
블랙 갤러곤급 강자가 속한 무리는 다른 무리가 습격당하자 바로 이동을 멈췄다. 놈은 상황의 추이를 본 뒤 다시 움직이려는지 후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PS-111과 하늘의 어머니에게 습격 받은 무리 또한 움직임이 달라졌다. 내 둥지를 향해 가던 그들은 방향을 바꿔서 후방의 무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 중이었다.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무리는 하나,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는 자들뿐이다.
‘아직까지는 계획대로야.’
지금쯤이면 하늘의 어머니가 포로를 데리고 둥지에 도착했을 거다. PS-111이 컬트 하나의 목을 따는 동안, 그녀가 방심한 컬트를 납치한다는 계획이었으니까.
‘여기서 놈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대응이 갈려.’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잘했어. 신호 줄 때까지 대기해)]
「이해」
아드하이와의 대화를 끝낸 나는 곁에 있는 26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녀석은 몸 안에 축적해 뒀던 막대한 사이킥 파워를 마음껏 방출하는 중이었다.
씨 데몬이 뿌리는 막대한 사이킥 파워는 다른 사이킥 생물들에게 영향을 준다. 텔레파시나 소울링크처럼 사이킥 파워가 세밀하게 조정되어야 하는 능력들의 사용에는 제한이 걸린다.
지하에 들어온 이후, 세 개로 나눠진 무리 중 하나가 이쪽으로 오는 중이다. 자기들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물론 함정이지만.’
지금 여기로 오는 무리들은 작전에 변경이 생겼는지 모르고 있다. 26호가 뿌리는 사이킥 파워 때문에 텔레파시 사용이 원활하지 않은 탓이다.
‘이곳에 온 무리가 전멸한다면 놈도 움직일 거야.’
놈이 취할 행동은 두 가지다. 하늘의 어머니가 붙잡은 포로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사이킥 파워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직접 제거하러 오거나.’
그리고 놈이 무엇을 택하든 결과는 동일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 아이스 호러의 단단한 갑각과 뼈가 남아있는 이 장소에서 놈과 전투를 벌일 생각이다.
[즈즈 즈즈즈즈(그럼 준비하자)]
「응.」
“키릭, 알겠습니다.”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만약 저쪽에서 돌발적으로 움직이면 계획대로 해)]
“확인.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26호와 PS-111과 함께 엎어져 있는 아이스 호러의 뼈대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게 멋모르고 덤벼든 침입자들.
그들에게 남은 미래는 두 가지 뿐이다.
죽어서 유전자 정수가 되거나, 혹은 나의 노예가 되거나.
‘어느 쪽이 됐든.’
그들의 정수는 나의 것이 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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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가? 짐승의 뼈처럼 보이는데.”
세 번째 신전수호단 일행을 이끄는 크리시안은 거대 생물의 뼈를 보며 작게 감탄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반쯤 무너진 지하 공동이었다. 반경만 수백m가 넘을 정도로 넓은 공간임에도 괴물의 뼈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뽐냈다.
“사이킥 파워는 뼈 안쪽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셀레네. 제이슨 님과 앨리야 님께 계속 텔레파시를 쏴보도록.”
“알겠습니다.”
현재 이 자리에 있는 컬트들은 텔레파시와 소울링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뼈 안에서부터 나오는 막대한 사이킥 파워 때문이었다.
강력한 사이킥 파워 사용자인 제이슨과 앨리야가 직접 그들에게 텔레파시를 쏘지 않는 이상,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이 불가사의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원인을 제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슨 생물인데 이 정도 사이킥 파워를 내뿜는 거지?”
“아케인오르카의 시체 아닐까?”
“우주를 날아다니는 놈이 얼음 아래에서 죽었다고?”
“화석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단원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사이, 크리시안은 뼈와 갑각들을 살폈다.
어둠 속에서 발광하는 보석으로 만든 라이트가 뼈를 비추었다. 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빛나는 뼈들에는 살점 하나 없이 매끈하기만 했다.
‘이상해. 이 정도 크기의 생물이 죽었다면 주변 생태가 바뀌었을 텐데.’
놈의 고기를 먹으려 접근하는 육식동물들, 시체가 부패하면서 생기는 대규모 가스와 세균들. 그 어느 것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거대 생물의 뼈는 누군가가 살만 싹 발라먹은 것처럼 깔끔하기만 했다.
‘게다가 이 흔적들. 격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크리시안은 부러진 뼈대를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세 머리의 악마에게 패배해서 잡아먹혔다고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놈은 이 거대 생물의 몇 배 이상으로 큰데도 불구하고 이 공동과 이어지는 통로에는 놈이 들어왔다가 나간 흔적이 없었다.
‘다른 단원들과 연락이 안 되니…쯧.’
답답한 마음에 혀를 차고 있는데 뼈와 갑각 안쪽에 들어간 단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리시안 님, 이쪽으로 와보십시오!”
“뭔가?”
단원들의 목소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크리시안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하얀 뼈대 사이에 검보라색 벽이 있었다.
벽에는 기하학적 문양이 빼곡하게 새겨 있고, 표면은 일정하지 않고 매우 울퉁불퉁했다. 벽 앞 땅 위에는 다른 뼈들과 달리 벽과 똑같은 검보라색의 가시가 튀어나와 있었다. 벽이라기보다는 어떤 대형 생물의 갑각이라 하는 것이 어울렸다.
거기에 창백하게 질린 얼굴 5개가 박혀 있었다.
“으으으, 사, 살려줘!”
“꺄아아아아아악!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아파! 너무 아파! 누가 좀 도와줘!”
“으허헝헝허어엉….”
“우리를 꺼내줘!”
놀랍게도 전부 컬트의 얼굴들이었다. 어떻게 벽에 박혀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5명 전원은 살아 있었다. 그들은 눈물과 콧물을 쏟아 내며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중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크리시안이지만 얼굴만 박혀 있는 벽은 처음 봤다. 그 모습은 차마 꿈에서 보기 두려울 만한 광경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사, 사이킥 파워는 이 벽 뒤쪽에서 흘러나오는 중입니다.”
“젠장! 당장 벽을 부숴…어? 잠깐, 저 자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크리시안은 5개의 얼굴 중 하나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자네, 혹시 브렌츠?”
“헉? 크, 크리시안! 나야, 나! 브렌츠!”
워낙 창백해서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벽에 박힌 그는 여기에 함께 들어온 신전수호단원 브렌츠였다.
“자네는 앨리야와 같이 가지 않았나? 도대체 왜 여기에…?”
“나도 몰라! 빌어먹을…. 정신을 잃은 뒤 깨어나 보니 여기였어!”
“지금 바로 꺼내주겠네!”
크리시안은 얼굴들이 있는 벽에 다가 갔다.
그때 뼈대 밖에 있던 연락 담당, 셀레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리시안 님! 앨리야 님께서 보낸 텔레파시를 지금 수신했습니다! 브렌츠와 빌로네가 전사했다고 합니다!”
“응?”
그 말을 들은 크리시안과 단원들이 서로를 마주봤다.
브렌츠는 지금 그들 앞에 있다. 검보라색 벽에 머리만 나와 있을 뿐이지만.
“저, 저 소리는 무시해! 앨리야 님이 실수한 거야! 난 아직 살아 있어! 난 살아 있다고!”
이곳에 온 신전수호단원 중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자는 앨리야다. 그녀는 신전수호단 전체에서 세 번째로 실력이 뛰어난 자다.
그런 대단한 자가 과연 동료가 진짜 죽었는지 아닌지도 파악하지 못할까?
크리시안과 단원들은 조금씩 벽에서 멀어졌다. 그 모습을 본 브렌츠가 악다구니를 썼다.
“빌어먹을 컬트 쥐새끼들아! 네놈들은 무사할 것 같아?!”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저주하는 그의 모습은 악귀 그 자체였다.
크리시안은 확신했다. 저건 브렌츠가 아니라, 브렌츠의 모습을 한 무언가라고.
“모두 조심….”
“크, 크리시안 님!”
놀란 단원의 목소리를 들은 크리시안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 봤다.
그와 마찬가지로 온갖 전장을 헤쳐 나온 단원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매우 놀라운 것, 혹은 무서운 것을 봤다는 듯이.
이어서 크리시안은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어?”
땅에 박혀 고정되어 있어야 할 가시가 그의 배에 박혀 있었다. 검보라색의 굵은 가시 위로 그의 피와 내장 조각들이 흘러내렸다.
그는 땅을 밟고 있는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흔들리는 그의 시선이 전방에 있는 벽에 향했다.
벽에 박혀 있는 얼굴들이 보인다.
그들은 입꼬리를 한껏 위로 끌어당긴 채 웃고 있었다.
“히히, 걸렸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그가 본 얼굴은 브렌츠가 아니다. 그의 앞에 있는 것도 벽이 아니다.
크리시안을 뿔로 찌른 ‘그것’이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