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81화 (182/400)

Ep. 181

나는 의태기관으로 변한 나의 모습을 본 적 없다.

의태기관은 외피에 있는 수많은 틈새로부터 타 생물의 감각을 교란시키는 페로몬을 내뿜는 기관이다. 페로몬의 생산자인 나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의태기관을 활성화한 나의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모른다.

다른 이들의 반응을 봤을 때, 의태기관은 미묘한 불쾌감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뭔가 사람이 아닌 존재가 사람 흉내를 내는 모습이라고 할까.

처음이면 모를까 몇 번씩 계속 의태기관을 사용하다 보면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상함을 느낀다. 상대가 의심하기 시작하면 의태기관의 효과는 크게 떨어진다.

플레이어 흉내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레드미스트가 지금은 한물 간 이야깃거리가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걸.’

나는 의태기관의 단점, 특성 특유의 어색함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발성 연습을 하고, 변화할 대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훈련을 거친 결과,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대상이라도 꽤 그럴싸하게 연기할 수 있게 되었다.

가령 지금처럼.

“다들 왜 그래? 나 좀 도와달라니까?”

신전수호단 무리가 거리를 벌린 채 나를 보고 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은 조심스럽게 무기를 손에 쥐었다.

갤러곤의 발톱검을 든 자들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고, 데몰리셔를 든 자들은 뒤에서 나의 머리를 겨냥했다.

“왜 그러는데?”

“…….”

내 목소리가 통로에 울릴 때마다 단원들의 눈빛이 흔들린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동료가 맞는 것 같지만 컬트 특유의 예민한 감각이 거부하는 것이리라.

그들 앞에 있는 존재는 ‘컬트 셀로네’가 아니라고.

“어떻게 합니까?”

내 머리를 겨냥하고 있던 컬트 한 명이 묻자, 그 옆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던 여성 컬트가 입을 열었다.

“…먼저 제압한 다음 확인하겠다.”

일행 중 유일하게 머리에 야크 뿔이 난 것을 보니 저 컬트가 이 무리의 리더이리라. 그녀 또한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처음 봤을 때는 혼란스러워했지만, 지금은 냉정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리더의 명령을 받은 컬트들이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데몰리셔를 든 컬트 3명은 내 머리, 혹은 그 윗부분을 겨냥하고 있었다.

‘흠. 흥미로운걸.’

내 머리 위를 겨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셀로네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것. 아마 내가 환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레드미스트, 씨 데몬처럼 높은 수준의 환각을 보여주는 생물들은 감각마저 속일 수 있다. 물리적인 타격을 받지 않아도 환각에 속아서 죽는 거다.

다만 의태기관이 보여주는 환각은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저들은 환각으로 추정되는 나의 능력이 감각 통제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대응한 것이다. 나를 보고 두려워하던 와중에도 어떻게 대처할지 텔레파시로 논의를 한 것일 터.

‘나쁘지 않은 대응이지만….’

불행히도 최선의 대응은 아니다.

의태기관의 효과는 페로몬으로 타 지성체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 내 몸을 물리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 몸에 있는 부위들, 이를테면 침식 촉수 같은 것은 어떻게 될까?

정답은 간단하다.

‘안 보이지.’

내 등에서 뻗어 나온 침식 촉수들은 이미 데몰리셔를 든 컬트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그들은 자기 머리 위에 뭐가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

갤러곤의 발톱검을 든 컬트들이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가까워진다. 그들이 챔피언 실드를 활성화시킨 손을 내게 뻗는다. 적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사이킥 파워 기술 ‘속박’을 내게 시전하려는 거다.

이 자리에 있든 모든 컬트가 내게 집중하는 그때.

침식 촉수가 후방에 있는 컬트들을 덮쳤다.

“헉?!”

“적습…욱!”

촉수마다 달린 6개의 부속지가 활짝 펴지며 컬트들의 상체를 붙잡았다. 그와 함께 부속지 안쪽에 있는 입이 그들의 머리를 집어삼켰다.

침식 촉수의 입 안에는 예리한 이빨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그들이 용린복(龍鱗服)이라는 튼튼한 강화복을 입고 있다고 해도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면도날의 감옥을 이겨낼 수는 없다.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상체가 으스러져 죽었다.

“이건…젠장! 놈이 몸을 숨기고 있으니 대비하라!”

데몰리셔를 든 단원들을 공격하자마자 적 리더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내게 접근하던 컬트들은 흠칫 놀라며 방패를 급히 쳐들었다.

아쉽게도 꼬리로 일격에 적을 쓸어 버리려는 계획은 무산되었다. 내가 바닥을 쓸면서 공격한 꼬리에 적들이 맞긴 했지만 방패로 막은 터라 피해가 크지 않았다.

‘제법이야.’

추측하건대 저 리더가 여기 온 신전수호단원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신전수호단 중 최소 5위권 안에 드는 실력자가 아닐까?

‘오히려 잘 됐어.’

컬트 플레이어와 합류했으면 위험할 뻔했다. 나는 의태기관을 유지한 상태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

목표는 데몰리셔를 회수하려고 움직이는 컬트 전사 둘. 그들은 내가 달려오는 것을 보자마자 서둘러 뒤로 몸을 뺐다.

육중한 나의 몸이 작살총을 닮은 데몰리셔 하나를 짓밟고 지나갔다. 아슬아슬하게 데몰리셔 두 정을 회수하는데 성공한 컬트들은 몸을 굴러서 나의 공격을 피해냈다.

적이 아니라 아군이었으면 칭찬해도 좋을 만큼 대담한 움직임이다. 내 전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텐데도 내 크기를 어림짐작해 피해냈으니.

몸을 반쯤 일으킨 컬트 두 명은 즉시 데몰리셔로 나를 조준했다. 일련의 동작이 물 흐르는 듯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경험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상대가 나라는 것.

내 허리 부근에 위치한 이빨요정 둥지가 터지면서 검은색 식인벼룩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그들의 입이 향하는 곳은 바로 데몰리셔를 조준하는 컬트들의 얼굴. 이빨요정들은 인간의 치아를 닮은 이빨을 딱딱거리며 컬트들에게 달려 붙었다.

“끄, 끄아악!”

“저리 꺼…크억!”

손바닥만 한 식인벼룩들로 인해 시야가 가려진 컬트들이 멈칫한 사이, 나는 그들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데몰리셔를 든 컬트와 이빨요정들을 일격에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의도가 막혔다. 적의 리더, 야크 뿔의 컬트가 뛰어와 손에 든 챔피언 실드로 내 꼬리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음?’

보통이라면 그녀가 튕겨 나가야 했겠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내 꼬리의 방향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꼬리 끝의 집게발은 목표 대신 애먼 곳을 때렸다.

얼음 통로의 벽이 나의 공격에 의해 크게 진동했다. 컬트 리더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도끼로 내 꼬리를 내려찍었다.

‘이런.’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모두 전열을 정비해라!”

꼬리에서 밀려오는 통증에 나는 즉시 꼬리를 회수했다. 그녀의 도끼가 찍힌 부분을 보니 단단한 갑각이 손상된 상태였다.

‘쯧.’

컬트 리더의 손에 들린 저 검은색 도끼, 나도 아는 무기다. 컬트가 퀘스트 10단계를 클리어하면 받을 수 있는 보상 중 하나다.

‘용살자 퀘스트였나?’

저 도끼의 이름은 ‘단죄’. 설정상 블랙 갤러곤의 뿔로 제련한 도끼로 용살자 세트의 파츠 중 하나다. 아마 이곳에 온 플레이어가 저 여자에게 줬겠지.

‘성가신데.’

단죄의 효과는 심플하다. 착용자의 신체 능력을 갤러곤급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

문제는 그 강화 효과가 결코 우습게 볼 수준이 아니라는 거다. 좀 전에 챔피온 실드로 내 꼬리를 쳐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시간을 끌면 안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

컬트 플레이어가 언제 마음을 바꾸고 여기로 튀어올지 모른다. 저 여자가 단죄를 들고 있는 걸 보면 상대는 용살자 세트를 착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말은 즉, 이런 성가신 자까지 신경 쓰며 싸우기 어렵다는 뜻이다.

나는 어느새 전열을 가다듬은 컬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전사 중 하나가 데몰리셔를 들고 나에게 쐈다. 데몰리셔 특유의 남색 에너지탄이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온다.

재빨리 고개를 틀었지만 뒷머리 갑각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물질을 분해하는 무기답게 탄에 닿은 부위가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나는 공격을 무시하고 그대로 데몰리셔를 든 컬트를 깔아뭉개기 위해 앞으로 돌진했다. 컬트는 내가 맞아도 멈추지 않자 당황해하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어딜.’

나는 침식 촉수를 날려 그를 후려쳤다.

“컥!”

내 촉수들의 둘레는 웬만한 통나무만큼이나 굵다. 아무리 저쪽이 탄탄한 방어구를 갖췄다고 해도 모든 충격을 다 흡수할 수는 없는 법. 촉수에 맞은 컬트는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른 촉수가 날아가는데 다른 컬트가 끼어들었다. 컬트 전사가 높게 뛰어올라 갤러곤의 발톱으로 만든 백색 도검으로 내 촉수를 벴다. 갈고리로 유리 창문을 긁을 때 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촉수 위에서 작은 불꽃이 튀겼다.

내 몸에는 갑각을 제외한 모든 부위에 합성비늘이 깔려 있기에 높은 방어력을 자랑한다. 침식 촉수 표면에 있는 작은 비늘들이 충격을 흡수한 덕에 작은 흠집만 났다.

그렇다고 해서 아프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촉수를 베고 착지한 컬트 검사를 전투용 팔로 잡아챘다.

“이, 이거 놔!”

그가 칼을 든 팔에 힘을 주기 전, 나는 손에 힘을 꽉 줬다. 그러자 고층 아파트 위에서 물풍선을 던졌을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났다. 4개의 긴 손가락 사이에서 따뜻한 즙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아무렇게나 손을 털고, 좀 전에 바닥에 쓰러졌던 컬트를 향해 머리를 내리찍었다.

“어, 어어!”

그는 어떻게든 기어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하반신은 데몰리셔와 함께 내 머리에 깔려 완전히 으깨졌다.

“빌어먹을!”

다른 컬트들은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욕지기를 내뱉었지만 섣불리 달려들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은 근접전 대신 컬트만이 쓸 수 있는 전략, 사이킥 파워 공격이란 카드를 꺼냈다.

염소 뿔을 가진 컬트 2명이 일제히 양손을 활짝 펼친 채 나를 겨냥했다. 그러자 내 몸이 물먹은 솜마냥 무거워졌다.

‘그래비티 컨트롤인가?’

중력을 조작하는 사이킥 파워 기술로 제법 범용성이 높은 제어 기술에 속한다. 26호가 즐겨 쓰는 ‘속박’과 비슷한 위치라 보면 될까.

내가 서 있던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내 상반신이 나도 모르게 아래쪽으로 쏠렸다. 염소 뿔의 컬트들이 나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사이, 산양 뿔의 컬트 전사 1명과 리더가 나를 향해 사이킥 파워 공격을 날렸다.

전사가 날린 것은 초능력 채찍인 사이킥 윕, 리더가 쏜 공격은 보라색 창을 닮은 페인 스피어였다.

페인 스피어는 높은 관통력을 자랑하는 사이킥 파워 기술이고, 사이킥 윕은 사용자의 실력에 따라 그 위력이 천차만별이다.

둘 다 전에 우주도시에서 유진 가문의 그림자, 코드 블랙과 싸울 때 겪었던 기술들이다. 내 목숨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던 그 기술들이 다시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하지만….’

보라색 채찍이 내 전투용 팔을 후려치고, 길쭉한 창이 내 머리 갑각을 꿰뚫는다. 팔을 감싸는 합성비늘이 벗겨지고, 머리에 구멍이 뚫린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많이 다르지.’

이전에 스웜프킹을 잡아먹고 얻은 특성인 ‘초능력 반사 장갑’.

그 효과는 초능력 계열의 공격을 당했을 때, 입은 피해의 30%를 반사하는 것이다.

나를 후려치고 찌른 채찍과 창이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컬트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뭣?!”

“이런!”

리더는 급히 챔피온 실드를 들었고, 산양 뿔의 전사는 몸을 옆으로 굴렀다. 그 선택이 둘의 운명을 좌우했다.

“큭!”

관통력이 높은 페인 스피어답게 챔피온 실드를 뚫었지만, 리더의 왼팔에 경상을 입히는 데 그쳤다.

하지만 산양 뿔의 전사는 아니었다. 반사된 사이킥 윕이 몸을 숙인 그의 상체를 사정 없이 후려쳤다.

“끄어어어어억!”

왼쪽 어깻죽지부터 흉부까지 갈라진 그가 고통에 찬 괴성을 질렀다. 그 처참한 모습을 본 염소 뿔의 컬트들의 눈이 흔들렸다.

그 틈을 이용해 나는 그래비티 컨트롤을 시전 중인 컬트 하나에게 ‘공포의 주시자’를 걸었다.

내 머리 갑각에 있는 눈 모양의 문양들이 불길하게 빛났다.

심해의 공포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인 공포의 주시자는 상대 하나에게 무서운 환상을 보여주는 특성이다. 지금처럼 적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에 쓰면 효과가 매우 좋다.

공포의 주시자에 걸린 컬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으, 으아악! 아악! 서, 선배님!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어, 어어! 이봐! 정신 차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내 몸을 짓누르는 무게가 한층 가벼워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주둥이 끝을 남은 염소뿔 컬트를 향했다. 염소뿔 컬트는 나를 보고 이를 악물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는 아래턱을 활짝 벌렸다. 목 안쪽으로부터 빠르게 치솟은 녹색 덩어리가 밖으로 발사되었다.

끔찍한 산성 진균을 한껏 담은 덩어리가 향한 곳은 염소뿔 컬트의 손바닥이었다. 중력이 조작되는 영역 내에 있어서 멀리까지 날아갈 수 없었지만 상관없다. 그의 몸 어디든 닿기만 하면 그만이었기에.

그리고 적의 오른손에 진균이 닿았다.

“이게 무스…끄, 끄아아아아아악!”

진균이 침식을 개시하자 그의 손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아이보리색 용린복이 어떻게든 수복하려고 했지만 없어진 손을 복구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오른손을 잃었는데도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자는 일반 생물 중에는 이상 없으리라.

마침내 그래비티 컨트롤에서 자유로워진 나는 마지막 남은 리더를 쳐다 봤다.

“쿨럭, 커억, 커어어….”

“히이이익! 선배님! 제발 때리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히이익!”

“으으, 으으으, 으….”

“…….”

그녀의 눈이 공황에 빠진 동료들을 빠르게 스쳤다. 단죄를 쥔 그녀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컬트 리더는 여기서 뼈를 묻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도망치지 않는다고?’

그녀의 심장 박동은 여전히 격렬했지만, 좀 전에 비하면 약간 안정된 상태였다. 나를 노려보는 눈빛에서도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잠깐, 혹시?’

그 모습을 본 나는 그녀가 왜 이러는지 깨달았다.

‘플레이어가 텔레파시를 보냈구나!’

자기가 갈 테니까 시간을 끌어달라고 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좀 전 컬트들의 전술이 바뀌었을 때가 플레이어가 오겠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보조기관으로 이 주변을 확인했다. 아직 특별히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은 감지되지 않았다.

‘…움직여야겠어.’

여기는 놈과 싸우기 적당하지 않다. 나는 몸을 돌려서 후퇴했다.

내 예상이 맞는 듯 컬트 리더는 나를 뒤쫓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부상자들을 수습했다.

‘어차피 저 리더는 끝이야.’

나한테는 아직 숨겨둔 함정이 하나 더 있다. 특성 자체는 한참 전에 얻었지만 쓸 기회가 없었던 그 특성들.

그것이 ‘터지면’ 저 여자는 죽는다.

나는 리더에 대해 신경을 끄고 어두운 통로 위를 달렸다.

-

‘…젠장!’

놈의 기색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자 앨리야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태까지 강한 괴물과 싸우면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전수호단이 나설 때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토벌하기 어려운 괴물이 나타났을 때뿐이니까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오늘만큼 무서운 적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연인, 제이슨의 말은 사실이었다. 놈은 악마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무서운 괴물이었다.

그녀가 봤을 때, ‘세 머리의 악마’의 진정한 힘은 뛰어난 계략이었다. 놈은 베테랑 단원인 그녀보다 몇 수 앞을 읽으며 싸웠다.

지금도 그렇다. 놈은 그녀를 죽일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고 물러나는 것을 택했다. 그녀의 연인이 이 자리에 온다는 사실을 미리 읽은 것이리라.

‘놈은 제국에 위해가 되는 존재다.’

그녀는 부상자들을 수습한 뒤,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빌로네에게 다가 갔다.

앨리야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목 아래가 마비된 빌로네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이슨은 조종당한다고 말했지만….’

빌로네는 앨리야, 아니 제국의 안보를 위해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 그녀는 ‘세 머리의 악마’의 곁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자. 그녀의 머리에서 필요한 정보를 꺼내기 전까지는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앨리야의 시선에 담긴 애증을 느낀 것인지 빌로네가 입을 열었다.

“애, 앨리야 님, 죄, 죄송합니다….”

“제국의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살리는 것이다. 사과할 필요가 없다.”

앨리야는 차갑게 말했지만, 빌로네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죄, 죄송…죄송, 죄송합, 우, 우욱!”

“응?”

빌로네는 연신 헛구역질을 하더니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이봐? 무슨 일….”

그녀가 빌로네에게 몸을 가까이 한 순간,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고개를 든 빌로네의 모습은 더 이상 앨리야가 알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눈, 코, 입, 귀,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새빨간 덩굴이 자란 빌로네. 그 모습을 본 순간, 앨리야의 머릿속에 텔레파시가 날아왔다.

‘Fuck! 파상풍 덩굴이잖아! 앨리야! 떨어져!’

‘네?’

연인이 내뱉은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 빌로네였던 것의 머리가 폭발했다. 붉은색 덩굴 조각들이 작은 파편이 되어 앨리야에게 튀었다.

“이게 어떻게 된…?”

앨리야는 상체에 튄 덩굴 조각과 알 수 없는 붉은 액체들을 닦아냈다. 그녀는 황망한 얼굴로 목 없는 시체를 내려다 봤다.

목 위가 깔끔히 날아간 단면에는 붉은색 덩굴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혐오감을 느낄 새도 없이 앨리야는 왼쪽 어깨가 간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왜…큭?”

좀 전 괴물과 싸울 때 생긴 상처가 회복되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간지러움은 잠깐이었고, 곧 어깨 뿐만 아니라 상반신 전체에서 극심한 통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크, 크윽?! 꺄아아아아악!”

마치 가죽 안쪽의 혈관 속에서 수많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녀는 손톱을 세워서 상반신을 쥐어뜯듯 긁어댔다.

“끄아아아아아악!”

용린복의 보호 효과 때문에 긁어도 소용이 없자 그녀는 강화복을 벗고 긁기 시작했다. 새햐앟고 연약한 살결이 금방 피범벅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피가 흐르는 상처 안쪽에서 얇은 덩굴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그제야 그녀는 빌로네가 왜 그렇게 됐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자기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앨리야!”

정신이 혼미해지는 중에 그녀의 연인 목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연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그것은 사랑으로 인한 본능 때문일까, 아니면 몸 속을 기어 다니는 존재들의 명령 때문일까.

뭐가 됐든 그녀가 알 길은 없었다.

“Fuck….”

또다시 들리는 알 수 없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엘리야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고통 말고 다른 감각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모프박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이 니미씹차아아아앙 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 너 때문에 나의 앨리야가 죽었잖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랑하던 남자 친구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컬트라고 해도 목이 없으면 죽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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