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82화 (183/400)

Ep. 182

터널에서 메아리가 울리듯, 적의 외침이 들렸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오로지 하나, 맹렬한 분노일 뿐이었다.

‘좋아.’

이걸로 적이 후퇴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적 플레이어는 나를 죽이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갈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모프박이라.’

상대는 하늘의 어머니, 뮤리엘에 이어 세 번째로 조우한 플레이어다. 뮤리엘과 싸울 때랑은 달리 나는 적에 대한 정보를 제한적으로만 취득한 상황.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다.

‘그렇다고 질 생각은 없지만.’

나는 단단하게 얼어붙은 빙판 위를 달리며 가진 카드들을 다시 계산해봤다.

적에게 기습할 용도로 준비한 파상풍 덩굴은 방금 써먹었다.

파상풍 덩굴은 고전 공포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식인식물을 모티브로 한 감염 관련 특성이다. 감염 방식은 기생충을 쓸 때와 비슷하다.

내 전투용 팔 안에는 기생충과 파상풍 덩굴 씨앗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필요할 때 기생충이 팔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것처럼 파상풍 덩굴 씨앗은 손바닥 안쪽에 있는 구멍에서 나온다.

차이점이라 한다면 알아서 상대 몸에 들어가는 기생충과 달리 파상풍 덩굴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내 몸에 있을 때는 씨앗 상태로 존재하므로 내가 상대에게 직접 주입해야 한다.

상대의 몸 안에 들어가 영양분을 섭취한 파상풍 덩굴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빠르면 5분, 늦어도 10분이면 완전히 성장하고, 그 뒤에는 번식을 준비한다.

‘바로 인간폭탄이 되는 거지.’

혈관을 매개로 퍼져나간 파상풍 덩굴은 근처에 새 숙주가 나타나면 스스로 몸을 폭발시킨다. 식물 중 가지를 잘라 땅에 심으면 새로 자라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숙주는 폭발 과정에서 사망한다. 자기 몸 안에서 수류탄이 터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이런 특징 덕분에 나는 기생충과 파상풍 덩굴을 같이 써서 대규모 난전이나 좀 전에 기습할 때 주로 써먹었다.

나와 싸운 경험이 많은 플레이어들도 이런 일을 대비해 기생충에 조종당하는 플레이어는 바로 죽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나를 쫓아오는 컬트 플레이어도 더 이상 속지 않을 거다.

‘도발 겸 유인용으로 잘 써먹었으니 됐어.’

파상풍 덩굴 말고 다른 비장의 수들을 살펴보자면, 얼마 전에 얻은 뼈 야수와 레버넌트 기관이 있다.

두 특성 모두 에이모프의 전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게임에서도 내가 애용하던 특성들이다.

뼈 야수는 내가 얻은 ‘괴수의 왕’과 ‘사냥의 표상’의 효과를 한 세트로 묶은 특성이라 보면 된다.

물론 괴수의 왕이나 사냥의 표상을 썼을 때처럼 파격적으로 강해진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뼈 야수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거대화랑 방어력 강화.’

거대생물 특성과 뼈 도끼 특성을 재료로 삼아 만든 특성이다 보니 두 특성의 효과를 모두 계승했다.

뼈 야수 특성이 활성화되면 내 몸은 거대화 특성을 사용했을 때보다 조금 더 거대해진다. 현재 내 몸 길이가 28m쯤 되는데 여기서 약 3배 정도 커진다고 보면 된다. 몸이 커지는 만큼 힘이 강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여기까지는 일반 거대화랑 비슷하지만 뼈 야수 상태에서는 하나가 더 추가된다.

바로 몸의 표면에 단단한 뼈 장갑이 덧씌워진다는 점이다. 사냥의 표상을 썼을 때 내 몸 여기저기에 갑각이 자라나는 것과 비슷하다. 두꺼운 장갑 위에 가시뼈 같은 것들도 추가되기 때문에 나와 체급이 비슷한 적과 싸울 때 몸을 부딪쳐서 타격을 줄 수 있다.

‘대신 속도 증가 같은 효과는 없지.’

사냥의 표상을 썼을 때 속도가 감소하기는커녕 반대로 올라간 것을 생각해 보면 아쉬운 부분이다.

‘사냥의 표상급으로 좋으면 그것도 문제지만.’

초월 시스템으로 얻은 유일급 특성은 이름 그대로 에이모프의 한계를 초월한 것들이다. ‘겨우’ 융합 특성에 불과한 뼈 야수에게 그만큼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사냥의 표상 수준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강력한 뼈 야수도 비장의 수로 아껴둔 상황. 적 플레이어와 맞붙을 때 써먹을 수 있다. 거기에 지금 나는 ‘유기적 진화’ 특성으로 변신할 수 있는 특수상태 괴수의 왕까지 지니고 있다.

‘아이스 호러를 먹은 덕분에 에너지는 넉넉해.’

수백m 크기의 짐승이 내 뱃속에 들어간 상황이라 뼈 야수를 유지할 에너지는 충분하다.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 괴수의 왕은 상황을 봐서 사용하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레버넌트 기관.’

레버넌트 기관은 이름에서도 연상할 수 있듯이 부활과 관련된 특성이다.

‘진짜 부활시켜 주는 것은 아니지만.’

‘가사상태’을 재료로 삼아 만든 이 융합 특성은 다른 특성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

내가 지닌 특성들 대부분은 패시브처럼 상시 발동형이거나, 아니면 내가 활성화했을 때 특별한 효과를 준다.

반면, 레버넌트 기관은 조건부로만 작동한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내 심장에는 아주 작은 분비 기관이 붙어 있다.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이 기관이 알아서 활성화되어 내 심장에 특별한 호르몬을 분비한다.

신체 내부의 활동을 능동적으로 조율 가능한 에이모프라고 해도 레버넌트 기관은 통제할 수 없었다. 게임과 동일하게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작동하는 특성이리라.

그뿐만이 아니다. 레버넌트 기관은 내가 얼마나 강력한지, 또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에 따라 그 효과가 갈린다.

만약 이 조건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한다? 기껏 발동시켜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게다가 쿨타임도 엄청 길지.’

이런 어려운 조건 때문에 게임에서는 이 특성을 제대로 써먹은 자가 거의 없다. 기껏해야 나와 4위의 아웃스페이서 랭커 정도가 이 특성으로 재미를 본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지금 나를 봤을 때 이것만큼 조커 카드는 없어.’

레버넌트 기관은 ‘제대로 발동’되기만 한다면 전황을 바로 역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다. 잘만 쓴다면 컬트 플레이어와 싸울 때 아주 제대로 엿을 먹일 수 있을 거다.

‘어디 그러면 신의 회초리부터 준비를….’

마지막으로 가진 수를 점검하는 중인데 내 앞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의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영상 속도를 배로 늘려서 돌리는 것처럼 수많은 이미지가 내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파르르 떨렸다.

「알 수 없는 위험이 뒤따라오고 있다.」

「■■■■■■이 나의 ■■를 ■■ ■■■.」

‘포식자 감각!’

통로를 달리던 나는 급히 몸을 바닥에 붙였다. 불길한 에너지 덩어리가 내 등과 뒷머리갑각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에너지탄이 통로 벽과 부딪치자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맞은 자리가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Fucking Cunt! 어딜 도망치려고!”

뒤에서 들리는 성난 목소리. 컬트 플레이어였다. 이어서 불길한 에너지탄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쯧!’

플레이어를 보호하는 컬트들이 나에게 데몰리셔를 쏜 것이다.

데몰리셔의 탄환들은 정확히 내 보조기관을 노리고 있었다. 거기가 내 약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듯이 말이다.

나는 머리를 옆으로 트는 동시에 재빨리 전투용 팔로 보조기관 부분을 가렸다. 에너지탄 대부분은 빗나갔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고 몇 발이 팔에 꽂혔다.

「고통 경감 발동!」

팔목 부근에 있던 합성비늘과 갑각은 데몰리셔가 발사한 물질에 닿자마자 불판 위에 올려놓은 얼음처럼 녹아내렸다.

‘…이래서 기습을 한 거였는데.’

덩치가 있다 보니 작은 에너지탄들을 피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에 저쪽에서 데몰리셔를 쏘기 전 기습하는 방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나는 상체만 들어서 고개를 뒤로 향한 상태로 입을 벌렸다. 그리고 내 뒤편에 서 있는 컬트들을 향해 산성진균을 발사했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던 녹색 액체는 공중에 고정된 것처럼 그대로 멈췄다.

통로에 가득 깔린 어둠 속에서 희미한 보라색 빛이 보인다. 적 플레이어가 사이킥 파워를 써서 액체를 붙잡은 것이다.

‘쯧.’

“모프박이, 너 때문에 앨리야가 죽었잖아.”

나는 대꾸하지 않고 꼬리에 힘을 줘서 통로 위의 천장을 후려쳤다. 무너지는 천장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달렸다.

통로에 깔린 얼음과 바위 때문에 데몰리셔를 쏘기 여의치 않자 적들은 나를 향해 사이킥 기술들을 쏴 갈겼다. 그래비티 컨트롤이나 속박 등이 내 등 뒤로 쏟아졌지만 내가 한 발 더 빨랐다.

사이킥 기술 중 일부가 꼬리 끝에 맞긴 했지만 내 꼬리에는 스웜프킹의 집게가 달려 있다. 초능력 공격에 대한 방어력은 내 몸에서 제일이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렇다 쳐도 연계가 보통이 아닌데.’

얼음 평야의 지하 공간에 들어온 컬트들은 세 무리로 나눠져서 나를 노렸다.

나는 이들 중 플레이어를 지키는 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두 무리와 직접 싸워 봤다. 파상풍 덩굴에 죽은 컬트 리더를 제외하고 나머지 중에서는 딱히 인상적인 자들은 없었다.

그러나 적 플레이어와 함께 나를 공격하는 저들의 움직임은 확연히 달랐다. 머리가 하나로 연결이라도 된 듯 연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버프 기술 같지는 않은데.’

상황을 보니 떠오르는 기술이 하나 있긴 하다.

최고급 사이킥 파워 기술 중 ‘울트라 컨트롤’이라는 기술이 있다. 특정 대상의 정신을 지배해서 완전히 통제하는 군중제어기다.

기생충과 비슷한 효과지만 좀 더 세밀하게 조종할 수 있고,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시간제한도 없고.’

지속적으로 기생충을 갈아줘야 하는 에이모프와 다르게 울트라 컨트롤은 일단 걸리기만 하면 사용자와 피해자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는 풀리지 않는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사이킥에 대한 대비를 한 적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한 번에 1인만 조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아닐 가능성이 높긴 한데….’

아니면 놈이 지닌 고유의 특전 효과일 수도 있다. 다른 컬트들에게 광범위한 버프를 주는 특성일지도.

달리는데 뒤에서 굉음이 들렸다.

컬트 플레이어가 무너진 통로를 뚫은 소리다. 이어서 컬트 다수가 움직이면서 만드는 발소리가 통로를 진동시킨다.

그러나 상관없다. 내가 목표로 하던 곳에 다 왔으니까.

나는 반쯤 무너져서 좁아진 통로를 부수고 넓은 공동 안으로 들어왔다.

앞에 수백m에 달하는 크기의 백색 해골이 보인다. 아까 전 컬트들을 유인해서 싸웠던 장소, 아이스 호러의 무덤이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뒷머리 갑각부터 시작해 목까지 덮고 있던 긴 괴물의 촉수들이 움직이며 내 머리 앞을 향했다. 나의 꼬리 끝부터 시작된 보라색의 에너지 줄기들이 합성비늘을 타고 머리 쪽으로 모여 들었다.

내 주둥이 끝에 머리보다도 큰 지름 6m짜리 대형 구체가 만들어졌다. 내부부터 표면까지 보라색 불길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그 구체가 적들이 뛰어오는 통로를 향해 날아갔다.

완벽한 원형을 유지하던 구체가 지평선과 같은 한 줄기의 열선이 되었다. 두께가 얇아졌지만 그렇다고 파괴력이 줄어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함선조차 버티지 못하는 막강한 힘, 사이킥 브레스가 지하 공동의 통로를 찢어발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바라던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다.

얼음 통로를 박살내면서 날아가던 보라색의 창이 허공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열선은 원래 그래야 한다는 듯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인위적인 힘으로 조작된 사이킥 브레스의 목표는 컬트가 아니라 나였다.

‘이런!’

나는 급히 꼬리를 몸 앞으로 뺀 뒤 집게발을 위로 쳐들었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던 사이킥 브레스가 내 집게발과 충돌했다.

「고통 경감 발동!」

‘큭!’

엄청난 충격량 때문에 하마터면 꼬리뼈가 부러질 뻔했다. 나는 전투용 팔들로 집게발을 붙잡아 방패처럼 사용해 사이킥 브레스를 막아 냈다.

집게발에도 적용된 초능력 반사 장갑의 효과 탓에 또다시 반사되기 시작한 사이킥 브레스. 연달아 반사되는 바람에 보라색의 에너지들은 목표를 잃고 근처 여기저기에 날아가서 박혔다.

넓은 지하 공동이 큰 충격을 받고 다시 흔들렸다. 천장과 벽의 균열이 방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고드름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얼음 파편들이 위에서 쏟아지는 가운데, 적 플레이어와 컬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찮게 하기는.”

검은색에 전신 갑주를 착용한 사슴뿔의 남성 컬트가 짜증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의 허리춤에는 은색의 작은 막대기를 차고 있었고, 등에는 여성 컬트 리더가 들고 있던 도끼, ‘단죄’를 맨 상태였다.

보자마자 알았다. 저자가 나를 노리고 찾아온 컬트 플레이어라는 것을.

플레이어 앞에는 11명의 컬트들이 다른 무리들과 동일한 무장을 갖추고 서 있었다. 전부 아이보리색 바디슈트를 입고 챔피온 실드를 찼다. 그중 6명은 갤러곤의 발톱검을 들고, 5명은 데몰리셔를 들었다.

그 점만 봐서는 다른 신전수호단 무리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을 보자마자 어딘가 이상하다는 점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들의 눈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흐리멍덩했고, 호흡하는 타이밍도 11명이 조금도 차이가 없이 동일했다.

게다가 보조기관으로 사이킥 파워를 감지할 수 있는 나에게는 보였다.

11명의 컬트들 정수리에는 보라색 줄기들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 그 보라색 줄기는 전부 플레이어와 목 뒤와 연결되어 있었다.

“씨발 모프박이 새끼야, 너 때문에 앨리야를 죽였잖아. 씹, 내가 걔 공략하는데 얼마나 힘들었는데….”

잘생긴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린 플레이어가 욕지기를 내뱉었다. 컬트 사회에서 황족으로 취급받은 사슴뿔 컬트가 양아치처럼 말했는데, 앞의 컬트들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적의 특전이 뭔지 말이다.

‘사이킥 파워 기술의 효과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

방금 내 사이킥 브레스를 반사한 것, 지금 컬트 정수리에 달린 보라색 줄기들. 둘 다 어떤 능력에서 파생됐는지 알 것 같다.

‘리플렉션과 울트라 컨트롤이 분명해.’

반사 능력은 아마도 리플렉션. 원래는 물리 공격만 반사하는 기술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초능력 계열 공격도 반사할 수 있게 된 것이리라.

울트라 컨트롤도 본래 한 번에 1명만 조종이 가능한 특성인데, 놈은 11명을 동시에 조종하고 있다.

그 점을 봤을 때 적의 특전은 아마도 사이킥 파워 기술의 효과를 크게 강화시키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가 이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쪽이 에너지 계열 공격도 반사할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내 계획을 실행하기 훨씬 수월해진다.

나는 다음 카드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나 때문이라니. 이해할 수 없군.”

“이해할 수 없다고? 네가 파상풍 덩굴을 심어서 애가 완전 씹창났잖아!”

“치료할 수 있는데 죽인 것은 너다.”

“네가 또 무슨 수작을 벌일 줄 알고? 또 주변에 둥지나 함정 같은 거 깔아놨겠지. 아니면 그 볼프 노예가 있거나.”

“무슨 뜻이지?”

“내가 모를 줄 아냐? 그리폰 볼프, 네가 먹었지? 하씨, 뭐 됐어. 일단 너부터 조진 다음 생각해 봐야지.”

놈의 말이 끝나자마자 놈 앞에 있던 컬트들이 무기를 들었다. 내 보조기관을 노리는 중인 데몰리셔는 당장이라도 에너지를 발사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 또한 준비를 마쳤다. 나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서 상반신을 바닥과 가깝도록 바짝 낮췄다. 자세를 바꾼 나의 등에는 인면수들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면수들은 사냥의 표상으로 변신하지 않았을 때는 등에 위치한다. 신체 구조상 작은 크기의 적을 공격하려면 지금처럼 엎드릴 수밖에 없다.

‘발사.’

「-----!」「-----!」「-----!」「-----!」「-----!」

인면수들이 입을 찢어져라 벌렸다. 컬트 머리 형태의 작은 괴물들이 내뱉은 음파가 데몰리셔를 든 컬트들을 향해 쏘아졌다.

“쯧.”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혀를 차는 플레이어.

조종당하던 컬트들이 서둘러 몸을 피했지만, 전부 피하지는 못했다. 데몰리셔를 든 컬트 3명이 마비 공격에 당해 실끓긴 인형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음파는 반사를 못하네.’

나는 그 사실을 머리 한 켠에 저장해 뒀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몸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내 꼬리의 끝이 음파를 피한 컬트들을 향했다. 꼬리 끝에 달린 집게를 벌리자마자 안쪽에 빼곡하게 박혀 있는 가시침들이 컬트들을 향해 발사되었다.

“발악은.”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챔피온 실드를 든 컬트들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데몰리셔 사수들에게 접근한 그들은 실드로 가시침을 막아 냈다.

이어서 다른 컬트들이 내게 그래비티 컨트롤을 걸었다. 내가 서 있는 공간 주변의 중력이 크게 변하면서 공동 전체에 부담을 줬다.

울트라 컨트롤로 컬트들의 리미터도 다 해제한 것인지 그 출력이 어마어마했다. 몸을 낮추고 있던 나는 그대로 땅에 머리를 박을 수밖에 없었다.

“현실에서도 좆같이 굴더니 여기서도 그러네. 너는 절대 곱게 못 뒈질 줄 알아라.”

그래비티 컨트롤을 시전하는 부하들이 눈, 코, 입 모두에서 피를 쏟아내는데도 플레이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 이긴 것처럼 구는 그를 보고 나는 힘겹게 한마디 했다.

“부, 하를 아, 끼는 줄 알았더니?”

“이 빌어먹을 모프박이 새끼야, 너를 잡는데 이 정도면 싼 편이거든?”

“그, 래?”

“그래도 앨리야 걔는 괜찮은 애였는데.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짜증을 낸 그가 손짓하자 데몰리셔를 든 컬트가 내 머리에 에너지탄을 쐈다. 모든 것을 분해하는 에너지탄에 맞은 괴물의 촉수 일부가 그대로 잘려나갔다.

「고통 경감 발동!」

「그으으으!」

“아프냐? 좆만한 새끼가 나대기는.”

상상 이상의 통증에 나도 모르게 비명이 입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플레이어가 이죽거렸다.

“너 내가 지금까지 손본 애들 최고 기록이 1년이거든? 너는 얼마나 더 버틸까 한 번 보자고.”

플레이어는 나를 잡아서 고문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놈이 아직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놈을 겁내거나 상대할 방법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놈이 방심한 사이, 그 특성의 준비가 끝났다.

“그, 말, 잊지, 말도록.”

“뭐?”

나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살짝 위로 들었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렸다. 가시침을 발사한 순간부터 준비했던 뇌신의 힘이 가슴팍에서부터 끓어올랐다. 목줄을 맨 야수처럼 가슴팍에서 잠자고 있던 막대한 에너지가 신호를 받고 질주했다. 어두운 지하 공동을 찬란하게 빛내는 황금색 빛줄기, 신의 회초리가 내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씹?!”

그 모습을 본 플레이어가 깜짝 놀라며 양팔을 펼쳤다. 사이킥 브레스를 막았을 때처럼 리플렉션을 펼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내가 쏜 신의 회초리는 놈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한참 위쪽에 있는 벽을 향해 날아갔다. 제국모함도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 얼음 천장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그 외 남은 에너지들은 밤하늘에 번개가 퍼져나가듯 공동의 얼음벽과 천장을 타고 쭉 퍼져나갔다.

신의 회초리를 맞은 탓인지 지하 공동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요동쳤다.

“하, 하하. 하하하하! 미친 새끼! 저걸 빗나가네!”

뇌신의 힘을 토해내자 몸에서 힘이 쭉 빠진다. 고개를 떨어뜨린 나의 모습을 보고 플레이어가 광소했다.

‘빗나갔다고?’

글쎄, 과연 그럴까.

“어차피 네놈의 번개 공격 정도는 막을 수 있…응?”

나를 비웃던 플레이어가 입을 다문다. 그도 안 것이다.

공동 안에서 일어나는 진동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말이다.

‘애초에 너를 노린 게 아니야.’

내가 굳이 이곳에서 싸운 이유가 뭔지 그는 모를 거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왔을 때 내 뒤에 있는 아이스 호러의 시체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했다.

아이스 호러와 싸우면서 이 장소는 상당히 위태로운 상태였다. 우리 머리 위에는 수백m 이상의 두께를 자랑하는 드넓은 얼음 평야가 있다.

그동안 이 지하 세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균형을 뒤흔들 정도로 큰 충격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스 호러와 싸우기 시작한 뒤로 그 아슬아슬한 균형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지탱하는 아틀라스 같던 얼음벽들은 죄다 엉망이 됐고, 머리 위 얼음 천장은 균열이 난 부분이 그렇지 않은 부분보다 클 정도였다.

그런 상태에서 신의 회초리를 썼으니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일단 여기서 네놈의 부하부터 정리하고 가지.”

“이 씨발 새끼가?!”

당황한 플레이어가 욕설을 내뱉으며 리플렉션을 써댔지만 어마어마한 두께의 얼음덩어리 세례를 막는데는 역부족이었다.

그가 어떻게는 막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며 나는 다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금이 기회야.’

에이모프를 거대 괴수로 만드는 뼈 야수. 그 특성이 활성화되었다.

무너지는 공동 속에서 내 몸이 급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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