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183화 (184/400)

Ep.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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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이 속한 플레이어 그룹은 자기들을 제외한 나머지 존재들을 NPC로 보는 그룹이었다.

게임 클리어를 목표로 삼는 그룹과 비슷한 성향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이 세계에서 떠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현실 세계와 달리 이곳에서 그들은 왕이요, 신화적 존재 그 자체였다.

제이슨은 현실에서도 나름 건실하게 살던 인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서의 삶보다 만족스러워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말고 다른 이들도 상황은 얼추 비슷했다.

그런 점에서는 스페이스 서바이벌 세계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것을 택한 플레이어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제이슨 그룹이 원하는 것은 동화가 아니라 지배였지만.

그리고 제이슨은 그룹 내에서도 유독 좋은 스타팅을 끊었다. 운이 좋게도 컬트 사회의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사슴뿔 컬트가 된 덕분에 그는 아주 순조롭게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컬트와 뛰어난 시너지를 자랑하는 특전까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떠받들고, 본인의 힘 또한 컬트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당연히 자의식이 필요 이상으로 강해질 수밖에.

이곳이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라는 것을 안 이후, 그는 그야말로 만화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살았다.

게임에서 유니크 캐릭터를 모으는 것처럼 쓸모 있는 NPC들은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앞길을 가로막는 것들은 전부 없애버렸다.

간혹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울트라 컨트롤’ 같은 정신 지배 기술을 걸었다. 그 탓에 제국 내에 그가 데리고 있는 ‘애인’만 20명이 넘었다. 애인 취급도 못 받는 노예는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고.

그에게 이 세계는 게임 속 놀이터. 그룹 동료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장난감들에 불과했다. 장난감이 질리면 클로에나 주바카한테 넘겨서 그들의 실험 재료로 만들었다.

동족조차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노예로 보는 폭군. 그것이 제이슨의 본질이었다.

사실 이러한 삶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그가 실은 매우 고독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아무튼 오랜 시간 동안 결핍이 없이 살아서일까. 제이슨은 최근 자기에게 닥쳐오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몹시도 마음에 안 들었다.

하물며 이 사태를 조장한 놈은 그가 가장 혐오하는 모프박이였다.

17번째 애인은 자기 손으로 죽여 버렸고, 그가 아끼면서 키웠던 신전수호단원들도 생매장되게 생겼다.

그가 부지런히 무너지는 천장을 막고 있는 사이, 놈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검은색 일변도인 놈의 몸에 회색의 뼈와 갑각이 돋아나고, 몸 자체가 빠른 속도로 커지는 중이다.

저 특성의 이름은 ‘뼈 야수.’ 게임에서 모프박이가 즐겨 쓰던 전투 특성 중 하나다.

놈과 여러 차례 싸워 봤기에 저 특성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는 잘 알고 있다.

‘안 되겠다.’

이 이상 모프박이에게 끌려 다니다간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는 자기가 보유한 ‘세 번째 특전’을 쓰기로 결심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컬트 사회에서 볼텍스원 사교단 정화작전이라 알려진 사건이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플레이어들 간의 전쟁이었다.

제이슨과 클로에, 신시아는 서로 힘을 합쳐 콜드블러드 랭커를 사냥하는데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제이슨은 새 특전을 얻었다.

‘좀 이른 시점이긴 하지만….’

제이슨은 리플렉션으로 떨어지는 바위와 얼음들을 막으며 세 번째 특전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금색의 반투명한 그림자 같은 것이 나타났다.

금빛 형상의 머리에는 사슴뿔 같은 것이 마구 돋아나 화려한 왕관을 쓴 것처럼 보였다. 팔 부근에는 금색의 에너지 입자가 연신 휘날려서 마치 옷자락처럼 보였다. 그 아래 하반신은 따로 없었고, 대신 제이슨의 척추와 연결되어 있었다.

온통 황금색으로 빛나는 형상의 머리에는 보라색 외눈이 박혀 있었다. 그 외눈이 조종당하는 신전수호단원들을 바라보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컬트들의 몸이 황금색 입자로 변하더니 금빛 형상과 융합된 것이다.

11명의 컬트들을 전부 흡수한 금빛 형상은 좀 전에 비해 색이 훨씬 뚜렷해졌다. 제이슨이 팔을 위로 들자 금빛 형상도 똑같이 팔을 위로 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빛과 함께 그들의 몸이 위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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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그건?’

몸이 변하는 와중에 내 보조기관이 이상 현상을 잡아냈다.

그것은 이 세계에 온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에너지 종류였다. 사이킥 파워와 닮긴 했지만 훨씬 농축된 것 같은 느낌.

적 플레이어는 그 힘을 이용해 무너지는 공동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그는 천장을 뚫고 위로 날아가 버렸고, 나만 지하에 홀로 남았다.

‘다른 컬트들의 움직임이 안 느껴지네.’

플레이어가 떠나기 전, 불가사의한 에너지가 주변에 있던 사이킥 파워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컬트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어떻게 됐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이라고?’

그런 생물이 없는 것은 아니나 컬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수단을 사용한 것이 분명했다.

‘내가 모르는 장비는 보이지 않던데.’

플레이어가 입은 장비는 퀘스트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용살자 세트였다. 그것 말고 다른 장비는 감지되지 않았다.

‘자세한 건 나가서 직접 봐야겠어.’

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함부로 싸우는 것은 위험하다. 하물며 상대가 강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플레이어는 양아치 같은 언동과 별개로 사이킥 파워 기술은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플레이어만이 받는 특전도 매우 강력한 것 같았고.

‘…그래도 이번 싸움은 피할 수 없어.’

나를 쫓아 이 외진 행성까지 온 자다. 도망친다고 해도 어떻게든 쫓아오겠지.

‘그러니 여기서 처리하자.’

변신을 끝마친 나는 이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커진 팔로 쌓여 있는 얼음덩어리를 뚫기 시작했다.

뼈 야수를 활성화하기 전까지는 한없이 커 보이던 얼음덩어리들이 지금은 아이가 손으로 움켜쥔 눈뭉치 같았다. 내 몸을 덮을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던 아이스 호러의 뼈도 지금은 그 정도로 압도적인 느낌을 주지 못했다.

당연하다. 내 몸의 길이는 거의 100m에 육박했으니까. 크기만 길어진 것이 아니다. 몸을 덮은 갑각의 두께, 조밀하게 덮친 합성비늘의 크기 또한 거대화됐다.

거기에 더해 내 몸의 위에는 뼈와 동일한 재질의 갑각이 이중으로 덮여 있었다. 회색의 외골격 형태의 갑각이 나의 검은색 갑각 위를 덮어 보호하는 중이었다.

회색 외골격 위에는 낫을 닮은 뼈 가시들이 빼곡히 박혀 있어서 내가 봐도 제법 위협적이었다.

지금 내 외모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기존의 에이모프가 동물의 뼈로 된 외골격 갑주를 뒤집어쓴 형태라 봐도 무방하다.

‘거기서 덩치까지 커졌으니.’

그야말로 거대 괴수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외모였다. 게임에서도 수없이 많이 본 뼈 야수였지만 내가 직접 몸으로 느끼는 이 기분은 확실히 새로웠다.

‘좀 더 살펴보고 싶지만.’

이 앞에 강적과의 싸움이 있다.

나는 얼음과 바위를 부수며 위로 올라갔다. 몸 곳곳에 돋아난 둔탁한 뼈 가시들이 곡괭이 내지 삽 역할을 한 덕에 쉽게 얼음들을 파낼 수 있었다.

나는 내려올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얼음 평야 위까지 올라왔다.

밖에 나와 보니 하늘 위에 회색 구름이 잔뜩 끼었다. 내가 발을 디딘 눈밭은 더 이상 얼음 평야라 부르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중간이 푹 꺼진 탓에 굴곡이 심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굴곡이 가득한 눈과 얼음 더미. 그리고 어두운 하늘 아래에 놈이 있었다.

기이한 모습의 황금색 형상을 등에 매단 플레이어. 그가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저건가.’

내 이목을 끄는 것은 플레이어 본인보다 그의 등에 달린 저 기이한 존재다.

황금색 입자로 구성된 그것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에이모프 특유의 발달된 감각 덕에 저것이 에너지가 극한의 집약되면서 하나의 실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금색 형상은 몸 자체는 플레이어와 비슷한 형태였지만, 관자놀이부터 솟아난 사슴뿔이 뒤엉켜서 월계관을 쓴 모습처럼 보였다.

얼굴에는 그저 보라색으로 선명하게 빛나는 외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팔 부근에는 입자가 아지랑이처럼 흔들려서 긴 비단을 걸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환 관련 기술 같은데.’

스페이스 서바이벌에서 ‘소환 기술’은 단어와 달리 실제로는 고차원적 존재의 빙의나 강림에 가깝다. 볼텍스원 사교단 루트를 탄 콜드블러드, 또는 이단자 컬트는 볼텍스원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다.

‘저 정도로 실체화할 수준이라면 대가가 엄청날 텐데.’

소환은 극단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기술이기에 쉽게 사용하기 어렵다. 상대 플레이어는 나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지만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저 존재를 불러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장비 효과인가. 아니면….’

특별한 능력으로 인한 것인가.

어느 쪽이든 간에 범상치 않아 보인다.

‘…나름 비장의 수가 있었다는 건가.’

내가 신의 회초리를 썼을 때도 그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아마 자신 있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일반적으로 사용자와 일체화된 소환물이면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못해.’

아마 컬트의 전투를 보조하는데 특화된 타입이거나 원거리 전투에 특화된 소환물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둘 다일수도 있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금빛 형상이 이질적이어서 그쪽에 관심이 집중되긴 했지만, 놈이 들고 있는 용살자 세트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구다.

가령 놈의 몸을 보호하는 저 검은색 갑주. 블랙 갤러곤의 비늘과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라 방어력이 상당하다.

비록 아이스 호러의 갑각보다 한 단계 낮은 급으로 평가받지만, 애초에 방어력이 극단적으로 높은 놈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지금 내게는 저 갑옷을 일격에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사냥의 표상이나 뼈 야수, 괴수의 왕을 써서 강화된 신체라면 모를까.

또한 용살자 세트에는 갑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노려보던 플레이어가 허리춤에 찬 은색 막대기를 뽑았다. 금빛 형상도 놈과 똑같이 허리 부근에서 뭔가를 뽑는 흉내를 냈다.

그 상태로 그가 막대기를 붙잡고 엄지손가락으로 꾹 누르자 막대기 끝에서 검은색의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활활 타오르던 검은 불길은 점차 사그라지더니 가느다란 검신 형태로 정제되었다.

저 토치를 닮은 무기는 용살자 세트의 무기 파츠인 ‘정화(淨化)’.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유명했던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에 등장하는 우주 무기를 모티브로 한 장비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놈의 뒤에 있는 금빛 형상의 팔이 변하더니 정화와 비슷한 무구 형태로 변화했다.

무기를 뽑은 놈은 바로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금빛 형상 또한 플레이어와 똑같이 움직였다. 그러자 형상이 든 칼이 쭉 늘어나며 나를 베기 위해 날아들었다.

‘칫!’

나는 급히 몸을 틀어서 공격을 피해냈다. 금색 입자 형태로 날아오는 검기는 내 위쪽 전투용 팔의 상완 부근을 스치고 지나갔다.

뼈 야수 상태가 되면서 이중으로 덮인 갑각이 아주 깔끔하게 잘렸다. 검기는 나를 베고도 그치지 않고 뒤쪽으로 한참 날아갔다.

첫 공격을 피한 나는 놈을 향해 돌진했다.

내가 전투용 팔로 땅을 짓밟을 때마다 바닥에 쌓인 눈과 얼음 조각들이 위로 날아올랐다. 100m 크기의 거구가 움직이면서 만들어 낸 눈과 얼음의 쓰나미가 나와 함께 플레이어를 덮쳤다.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지?’

리플렉션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이킥 파워 기술인가.

하지만 컬트 플레이어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행동을 취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금빛 형상이 말이다.

‘윽?!’

뒷머리에 있는 괴물의 촉수로부터 일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은 나는 즉시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그러자 채찍 형태의 금빛 팔이 내 머리 위를 베고 지나갔다.

앞으로 엎어지듯 고개를 숙인 나는 그 자세 그대로 놈이 서 있던 자리를 향해 산성 진균을 토해냈다.

눈과 얼음 사이에 섞여서 날아가던 녹색 진균은 찬란하게 빛을 내뿜는 황금 방패에 가로막혔다.

흩어지는 눈보라 너머에 금빛 형상이 칼과 방패를 든 채 플레이어를 보호하는 것이 보였다. 소환물의 보호를 받는 컬트 플레이어는 입꼬리를 올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과연.’

아무래도 놈과의 싸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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