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87
“큭!”
나는 등의 팔에 달린 뼈 칼날로 제이슨을 찢어 버리려 했다.
하지만 ‘조율자’ 효과가 발동되면서 내 공격은 수포로 돌아갔다.
놈이 들고 있던 제사장의 황금창이 눈 위에 푹 하고 꽂혔다.
적이 조율자를 쓸 것이라고 이미 예상했다. 보조기관을 감싸는 칼날 뼈들이 부지런히 까딱거렸다.
제이슨이 나타날 방향을 예측해낸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쪽을 향해 돌진했다.
“레버넌트 기관…큭!”
수십m 밖에서 재구성된 제이슨은 소리를 지르다가 빠르게 접근하는 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등에 있던 금빛 형상이 서둘러 팔을 칼로 변형시키려 했다.
‘역시 조율자랑 궁합이 별로군.’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순간이동이 끝난 뒤에는 항상 저 인간을 닮은 형태로 고정되어 있었다. 즉 순간이동을 할 때마다 금빛 형상의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된다고 볼 수 있다.
형상이 모습을 바꿀 때 일정한 딜레이가 생긴다는 약점이 말이다.
금빛 형상이 팔을 칼로 바꾸기 전, 내 전투용 팔이 놈을 할퀴었다.
“끄아아아악!”
내 손톱에 얼굴이 긁힌 놈이 비명을 지른다. 손톱에 의해 절반으로 갈라진 눈에서 핏물이 치솟는다.
등에 서서 굳건히 소환자를 지키던 금빛 형상은 불안전하게 떨리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금빛 형상은 통제자의 시각에 깊이 의존한다. 놈이 시각을 일시적으로 상실했으니 금빛 형상도 사라질 수밖에.
“이 개 같은…!”
놈이 정화를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리플렉션을 활성화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뒤로 빠진 상태. 놈의 공격은 헛되어 공기를 갈랐다.
“쥐새끼 같은 놈! 한 방이면 끝날 놈이…!”
두 눈에서 피를 쏟아내는 그의 이마에 새 눈이 돋아났다.
저 눈의 이름은 ‘서드 아이’. 술자에게 내가 지닌 보조기관과 유사한 효과를 부여하는 기술이다.
보이지 않는 적이나 움직임들을 감지할 수 있는 좋은 탐지 기술이지만, 놈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미지생물의 털가죽: ‘영리한 약자’ 특성으로 제공되는 특전입니다. 털의 흔들림으로부터 생기는 미세한 파장이 사용자에게 탐지 장비, 특성, 기술을 피할 수 있는 은신 효과를 제공합니다.」
애들이 놈을 붙들고 있는 동안, 나는 영리한 약자와 사냥의 표상을 동시에 준비했다.
괴수의 왕 효과가 끝나면서 떨어져 나간 갑각을 엄폐물 삼아 5m 크기의 소형 괴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나의 체형은 전투용 팔 4개가 하반신 쪽으로 내려가면서 체형은 뱀보다는 켄타우로스를 닮았다. 몸의 갑각과 비늘 위에는 강력한 보호 효과를 지닌 털들이 자라났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 내 몸에는 치명적인 무기들이 다수 장착되어 있다. 등 부근에 덮인 털 사이에는 뼈 낫을 달고 있는 팔 2개가 새로 붙어 있고, 턱 아래에는 칼날 뼈로 덮인 보조기관이 대기하는 중이다.
민첩함을 무기로 삼는 영리한 약자, 그리고 전투력을 극도로 향상시키는 사냥의 표상.
이 대결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내가 준비한 마지막 카드들이다.
본래라면 괴수의 왕을 이미 썼으니 영리한 약자 변신은 불가능하다. ‘유기적 진화’는 한 번 쓸 때마다 한 달씩 쿨타임이 걸리니까.
하지만 레버넌트 기관은 이 제한을 무효화한다.
심장에 붙은 작은 기관이 깨어난 동안에는 내가 가진 모든 특성들을 제한 없이 쓸 수 있다.
왜 거대화를 또 선택하지 않고, 작아지는 쪽을 택했는가 하면 이유는 두 가지다.
현재 내게는 남은 에너지가 얼마 없다. 괴수의 왕 같은 것을 써서 거대화를 해봤자 얼마 지속되지 못할 거다.
그리고 거대화를 하면 아무래도 적의 공격을 피하기가 어렵다. 지금도 내 목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나와 털가죽을 적시는 중이다. 이 이상 피해를 입는 것은 좋지 않다.
‘대신 단기간에 끝낸다.’
내 몸을 덮고 있는 이 덥수룩한 털가죽이 있는 이상 놈이 나를 감지할 방법은 없다.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전에는 말이다.
영리한 약자로 변신하면서 켄타우로스와 비슷한 신체 구조가 된 나는 4개의 다리로 눈 위를 내달렸다.
소리로 내 위치를 파악한 놈은 페인 스피어와 같은 사이킥 파워 기술을 내게 난사했다. 나는 놈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다시 접근했다.
놈은 시각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내 공격을 읽어내고 바로 리플렉션을 시전했다. 무형의 에너지장으로 인해 내 팔이 공중에서 멈추자 놈이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웃기는.’
아직 시각이 회복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만약 놈이 직접 나를 보고 있는 상태라면 절대 저렇게 웃지 못했을 거다.
왜냐하면 내 머리 갑각에 달린 인면수 5개가 피눈물을 흘리며 놈을 노려보고 있었기에.
「-----!」「-----!」「-----!」「-----!」「-----!」
“?!”
나의 지배를 받는 인면수들이 일제히 합창한다. 악마의 선율이 놈의 반고리관을 찢어발기며, 움직임을 무력화시킨다.
놈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는 사이, 내 턱에 달린 뼈 칼날이 빠르게 움직였다.
인면수의 마비는 상대가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다른 영향을 준다. 제이슨의 마비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풀렸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코앞까지 닥쳐 온 칼날을 놈은 간신히 목을 틀어서 피해냈다. 내 칼날은 놈의 목을 자르는 대신, 쇄골에 깊숙이 박혔다.
“끄아아악!”
목만큼은 아니더라도 쇄골 또한 급소 중 하나. 그 부위가 산산조각이 났으니 엄청 아플 거다.
나는 마무리하기 위해 뼈 칼날을 비틀었지만, 칼 끝에서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고통을 참을 수 없었던 놈이 조율자를 써서 빠져나간 것이다.
‘이번이 네 번째.’
조율자의 남은 횟수는 이제 한 번. 수십m 밖에서 다시 나타난 제이슨의 몸은 말끔했다.
저쪽은 아무런 상처도 없고, 이쪽은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지만 기세는 완전히 반대였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분노가 아니었다.
두려움.
그는 나를 무서워하고 있다.
“…칫.”
놈은 나를 공격하는 대신 금빛 형상을 몸에 감쌌다. 그 모습은 이동하거나 공격할 때 썼던 빛줄기의 모습과 비슷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푸른빛?’
금색과 파랑색이 뒤섞인 상태로 놈이 하늘로 날아오르려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바위와 얼음으로 이루어진 드릴이 날아와 놈을 때렸다.
「못 가!」
“이 개 같은 씨 데몬 새끼가…!”
몸의 3분의 1 가량 쪼개진 26호였다. 아이스 호러 갑각을 부술 때 썼던 데몬 크러시 기술로 제이슨을 공격한 것이었다.
이번 공격은 제법 피해가 컸는지 제이슨을 감싸던 황금빛이 일렁거렸다. 빛줄기 형태의 형상이 다시 인간형으로 돌아오고 양팔을 전부 방패로 변화시켰다.
그 와중에도 놈의 몸에는 푸른색 입자들은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었다. 아까는 발과 손끝에서 시작된 것이 지금은 팔, 다리를 뒤덮은 상태였다.
‘저 모습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은데.’
뭐가 됐든 놈이 비장의 수를 준비하는 중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리플렉션이나 다른 기술은 전혀 쓰지 않고 금빛 형상으로 방어에 전념하고 있었으니까.
‘놈의 방어를 뚫을 만한 게…아.’
나는 온몸이 박살 난 상태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PS-111에게 뛰어갔다.
“괜찮아?”
“피해 상태 매우 심각. 손상률 92%입니다.”
그 말대로 녀석의 몸은 넝마나 다름없었다. 다리는 전부 잘렸고, 얼굴 부분도 가죽이 벗겨져 근육이 다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미안하지만 부탁할게.”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립니다. 메인 컨트롤러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녀석의 꼬리 부분을 쳐다 봤다.
“쏠 수 있겠어?”
“에너지 보급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그 말에 나는 바로 팔을 내밀어 녀석의 입에 갖다 댔다. 내 뜻을 단번에 읽은 녀석은 망설임 없이 내 팔을 깨물었다.
일순간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 상태가 악화되자 목에 있는 상처에서 다시 피가 쏟아졌다.
아마 게임이었다면 지금 내 체력은 5% 정도밖에 안 남았을 거다.
그래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잘못 판단하면 다 죽어.’
아니, 죽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제이슨에게 포로로 잡혔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적대적 생명체를 향해 데몰리셔를 사용하기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했습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단 한 가지 목표를 노력하고 있다.
바로 함께 살아남는 것.
에너지를 보충한 PS-111이 꼬리로 간신히 제이슨을 향해 조준했다. 방패로 방어 중인 그의 몸을 보니 이미 상반신까지 푸른빛에 물들어 있었다.
나는 PS-111을 내버려 둔 채 놈을 향해 달렸다.
놈과의 거리는 불과 50m 이내. 4개의 다리가 눈을 박차는 와중에 내 보조기관에 다른 움직임이 잡혔다.
무언가가 저 높은 하늘 위에서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일직선으로 내리꽂는 번개 같은 존재의 정체는 바로 아드하이였다. 날개가 부러진 통증에도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제이슨은 아드하이가 날아오는 것을 감지하고 방패의 각도를 조절하려고 했다.
놈의 신경이 다른 곳에 쏠린 그때.
PS-111의 꼬리에서 데몰리셔의 분해 에너지탄이 발사되었다. 남색 에너지 덩어리는 아무런 방해 없이 날아가 금빛 방패를 파괴했다.
푸른색 빛이 어깨까지 올라간 상태의 제이슨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지금 공격에 제법 놀란 것 같았지만, 크게 동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옅은 미소까지 맺혀 있었다.
그걸 보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없이 이미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개소리.’
내가 끝났다고 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부서진 방패가 회복되기 전, 아드하이가 금빛 형상의 방패와 충돌했다. 가속도 때문인지 제이슨과 금빛 형상이 크게 흔들렸다.
「너」「했던 짓」「돌려줌」
지금의 충격으로 아드하이의 날개와 앞다리가 완전히 부러졌지만, 놀랍게도 녀석의 공격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녀석의 등에는 하늘의 어머니가 올라탄 상태였다.
부리가 부러진 그녀가 양손으로 쥔 제사장의 황금창을 힘차게 내질렀다. 틈새로 들어오는 창을 보고 제이슨이 두 눈을 부릅떴다.
목 위만 남은 그가 급히 고개를 꺾었다. 창이 그의 관자놀이에 돋아난 사슴뿔 한쪽을 깨부수고 이마와 귀에 상처를 냈다.
그의 눈에 안도감이 깃든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실책이었다.
26호, PS-111, 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에 신경을 쓰느라 그는 제일 중요한 적을 잊고 있었다.
그의 지척에 도달한 내 등의 팔이 움직인다.
재생되는 금색 입자들 사이에 남은 작은 틈으로 팔 끝에 달린 뼈 낫이 파고든다. 에이모프의 신체 중 가장 예리한 무기가 목표를 정확히 도려 낸다.
뼈 낫 끝의 감각에 원하는 결과를 잘라 냈다고 느낀 순간.
내 앞에 있던 금빛 형상이 제이슨의 몸과 함께 사라졌다. 놈이 사라진 직후, 보조기관이 한 가지 작은 소리를 잡아냈다.
그것은 무언가가 눈 위에 떨어졌을 때 나는 소리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사람 머리쯤 되는 것이 떨어졌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주웠다.
‘성공이네.’
손 위를 적시는 따뜻한 액체, 거기서 나는 익숙하고도 향긋한 냄새.
그것은 제이슨의 머리였다.
이런 식의 최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옅은 미소를 띤 표정 그대로였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방심했기에 죽은 것이다.
‘멍청하긴.’
나는 어리석은 적이 남긴 전리품을 망설임 없이 입 안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