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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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하이는 순백의 여왕, 함 오르트 앞에 섰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린 채 동굴 밑바닥에 흐르는 따뜻한 열기를 즐기고 있었다. 아드하이에 대해서는 일말의 위협조차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태평한 모습에 아드하이는 살짝 짜증이 났다.
「함 오르트」「권한다」「이곳」「따뜻하다」「누워라」
「괜찮음」「불필요」
「함 오르트」「말」「반복」「싫어한다」
암컷 동족이 쏜 사념파에는 약간의 불쾌감이 섞여 있었다. 아드하이는 하는 수 없이 바닥에 엎드렸다.
그녀의 말대로 바닥은 매우 따뜻했다. 동굴 밖에서 맞았던 겨울바람의 추위를 한순간에 잊어버릴 정도였다.
함 오르트는 얌전히 따르는 아드하이를 보고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
「나」「말」「따름」「설명」「요청」
「먼저 질문한다」「유성의 딸」「아비」「아는가?」
「위대한 오드 그라드」「검은색 동족」
「그렇다」「함 오르트」「오드 그라드의 세 번째 반려」「유성의 딸」「함 오르트의 자손」
앞에서 열을 쬐고 있는 순백의 암컷 함 오르트, 그리고 위대한 흑룡 오드 그라드는 그녀의 부모였다.
아드하이가 태어난 날, 새하얀 유성우가 발생한 덕분에 함 오르트는 그녀에게 ‘빛나는 별의 딸’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 아드하이는 어미가 자기를 보며 기쁨에 젖은 모습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이제 와서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얘기였다. 그녀의 부모는 어린 아드하이가 돌연변이라는 이유로 추방했으니까.
이미 지나간 얘기를 도대체 왜 꺼내는 거냐고 물으려던 순간, 아드하이는 깜짝 놀랐다.
함 오르트로부터 강렬한 분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드 그라드」「우리」「속였다」「수십」「수백」
「?」
아드하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나 그녀의 동족들에게는 속인다는 개념이 희박하다. 그들은 사념으로 대화하는 존재들. 지금 함 오르트의 경우처럼 사념에 감정이 그대로 녹아든다. 다른 생물이라면 모를까, 사이킥 파워에 민감한 동족을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오드 그라드」「특별한 돌」「지니고 있다」「감정」「유출」「막는다」
「돌?」
「특별한 돌」「소유자」「감정」「숨긴다」「함 오르트」「오드 그라드」「마음」「읽을 수 없다」
함 오르트의 말에 아드하이는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큰어른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동안, 그녀는 못생긴 생물들이 기묘한 금속 덩어리를 들고 다니는 것을 봐 왔다. 그 덩어리들 중 일부는 아주 강력한 힘을 품고 있었다.
못생긴 생물들은 금속 덩어리로 여러 가지 신기한 일을 해냈다. 어떨 때는 그녀와 큰어른을 괴롭히는 데 쓰고, 어떨 때는 동족들이 쓰는 비슷한 힘을 사용하기도 했다.
어쩌면 오드 그라드도 그런 기묘한 금속 덩어리를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자기 마음을 숨기도록 만들어 주는 덩어리를 말이다.
「궁금함」「거짓말」「무엇?」
「오드 그라드」「늙었다」「새 후계자」「새 검은색 동족」「나와야 정상」
「동의」
「하지만」「오드 그라드의 무리」「후계자」「검은색 동족」「나오지 않는다」
검은색 동족이 없다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드하이의 기억에도 검은 동족은 오드 그라드를 제외하고 보이지 않았으니까.
돌이켜 보면 이상하긴 했다. 함 오르트의 무리에도 백색의 동족이 다수 존재한다. 그보다 훨씬 오래 유지된 오드 그라드의 무리라면 흑색의 동족이 있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별의 흐름」「변화」「수십」「검은색 동족」「나오지 않았다」
아드하이의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함 오르트가 말한 사실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만 해도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먹이를 먹고 물색에서 풀색으로 탈피하지 않았는가. 성장을 위한 조건이 전부 갖춰져 있는 둥지에서 검은색 동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드 그라드」「후계자」「원하지 않는다」「성장할 가능성 있는 동족」「버린다」
「?」
「함 오르트」「봤다」「오드 그라드」「동족」「몰래」「없애는 것」
「!」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아드하이는 이해할 수 있었다.
늙은 우두머리가 자기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어린 새싹들을 짓밟았다는 것. 단순히 추방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버려진 동족을 찾아 죽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함 오르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드 그라드」「안다」「유성의 딸」「가능성」
「가능성?」
「함 오르트」「조사했다」「동족의 전설」「늙은 동족」「말했다」「구원자」「필요하다고」
함 오르트가 앞발을 뻗어 아드하이를 가리켰다.
「유성의 딸」「자질」「갖고 있다」「진짜 구원자」「될 수 있다」
그 말은 아드하이가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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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에이펙스 생물들이 그렇지만, 크리스털윙 또한 에이펙스 생물답게 고유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척박한 환경, 그리고 자기보다 강한 경쟁자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특한 진화를 거친 것이다.
대표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감지 기관이다.
먼저 놈의 눈.
크리스털윙은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는 생물답게 시력이 매우 뛰어나다. 어느 정도냐면 10km 이상 떨어져 있는 작은 생물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사막에 서식하는 테러데블처럼 ‘투시’ 능력 같은 것은 없지만 심플하게 뛰어난 시각을 지녔다고 봐도 좋으리라.
그러나 놈의 진가는 뛰어난 시력 따위가 아니다.
‘놈은 날아다니는 레이더나 다름없어.’
크리스털윙은 호흡할 때마다 몸에서 고유의 전자기파를 발산한다. 레이더의 원리처럼 주변으로 뻗어 나간 전파가 반사되어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다른 생물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일반 생물과 동떨어진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놈들이 분비하는 체액 덕분이다.
크리스털윙은 몸이 다 성장하기 전까지 본능적으로 자기 체액을 몸 곳곳에 바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체액이 굳고 쌓이면 독특한 금속 물질로 변화하는데, 여기서 전파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전파는 먹이 사냥에도 유용하게 쓰이지만, 반대로 자신을 보호하는데도 쓰인다. 전파가 반영구적인 스텔스 효과를 일으켜서 다른 레이더 장비의 관측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스털윙의 체액이 비싼 거지만.’
아무튼 놈의 생태학적 특징을 고려한다면 나무나 바위 밑에 숨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땅속 깊이 숨지 않는 이상 놈의 탐지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원래 정석은 전파 장애나 하이재킹을 들고 공략하는 거지만….’
‘전파 장애’와 ‘하이재킹’은 전자장비를 조종하는 파장을 생성하는 특성. 크리스털윙은 생물이지만 전파를 사용하다 보니 이 특성들에 취약하다. 놈의 전파 능력을 무효, 또는 교란시킨 뒤 급습하는 것이 주 전술이다.
현재 내게는 둘 다 없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미지생물의 털가죽.’
‘영리한 약자’ 특전으로 제공되는 이 특성은 각종 탐지 장비, 특성, 기술들을 무효화시킨다. 이 특성이 있다면 놈의 탐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숨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놈들을 어떻게 기습할지에 대한 부분이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애들을 불러 모았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놈들이 왔을 때 유인할 미끼가 필요해)]
「그러네. 놈들은 예민하고 겁이 많으니까.」
[즈즈즈즈즈즈(그래서 말인데)]
나는 26호를 바라봤다.
[즈즈 즈즈 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몸에 있는 힘, 안 보이게 조정할 수 있지?)]
「응. 할 수 있어.」
내 요청을 들은 26호가 몸에 흐르는 사이킥 파워를 움직였다. 주변 공기를 왜곡하던 에너지가 전부 녀석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분홍색 몸통 위에 얕게 흐르던 보라색 빛까지 전부 사라졌다.
‘좋아.’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는 공포의 바다괴수가 아니었다.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인기 애완동물 버블아메바였다.
「이러면 돼?」
[즈즈 즈즈즈(아주 잘했어)]
「응!」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날개 달린 놈들이 오면 유인해 줘)]
「나만 믿어. 큰애기야.」
기특한 녀석.
녀석을 미끼로 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우리 중 나를 제외하고 가장 자기 힘을 잘 숨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26호다. 사이킥 파워를 다루는 능력만은 나를 능가하는 녀석이니 약한 척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힘을 숨긴 녀석을 보면 영락없이 버블아메바. 무해한 분홍색 풍선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경계심 많은 크리스털윙도 속겠지.’
두 번째는 녀석의 몸 색깔이다. 하얀색으로 뒤덮인 설원의 봉우리 위에 있는 선명한 분홍색 생물. 전자기장 말고 시각도 뛰어난 크리스털윙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나는 녀석을 들어 둥지 근처에 내려놓았다. 녀석이 촉수를 뽑아 자기만 믿으라며 흔들었다.
나는 26호에게 잘 부탁한다는 의미를 담아 손등으로 살며시 쓰다듬어줬다. 간지럽다는 듯 몸을 떠는 녀석을 뒤로하고, 하늘의 어머니와 PS-111과 함께 둥지에서 물러났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저쪽 바위 뒤에 구덩이를 팔까 하는데 어때?)]
「그보다 기습할 거면 저기 나무가 몰려 있는 곳이 좋을 것 같아.」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나쁘지 않네. 그쪽으로 하자)]
“도와드리겠습니다.”
나와 PS-111은 봉우리 주변 나무가 깔린 곳의 땅을 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이 2m 정도에 너비 3m 정도의 큰 구덩이가 완성되었다.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먼저 들어가서 대기해)]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입니까? 알겠습니다.”
녀석은 뮤턴트 스크리머다 보니 몸의 절반이 기계다. 몸에서 미세한 전자기를 내뿜기 때문에 크리스털윙이 보면 즉시 알아차릴 거다.
그래서 일부러 녀석을 제일 밑에 숨길 생각이다. 녀석이 구덩이 바닥에 누운 것을 확인한 나는 하늘의 어머니를 불렀다.
[즈즈즈즈(준비됐어?)]
「어.」
그녀는 그리폰이 아니라 수인 형태로 모습을 바꾼 상태였다. 웬디고의 힘을 받아들여서 그런지 이전과 모습이 약간 달랐다.
백색의 독수리 머리, 몸 곳곳을 덮은 황금색 털, 탄탄한 몸매라는 점은 동일했지만, 몇 가지 새 요소가 가미되어 있었다.
머리에는 작은 크기의 뿔 2개가 자라났고, 몸 전체에 검은색 뼈 모양 문신이 생겼다. 그리고 우락부락한 근육도 빠져서 여성적인 곡선이 확 살아났다.
이전의 모습이 강인한 여전사라면 지금은 원시부족의 주술사 이미지에 가깝다고 해도 좋으리라.
그녀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구덩이 속에 누워 있는 PS-111 위에 엎드렸다. 수인 형태로 변한 그녀의 키는 그리폰일 때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수월하게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됐어.’
나는 몸을 눕혀 그들 위를 덮듯이 숙였다. 내 몸의 길이는 꼬리까지 합쳐 5m. 구덩이 입구를 완전히 덮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하면 저쪽의 탐지를 피할 수 있겠지.’
솔직히 완벽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렇기에 저쪽의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26호를 미끼로 둔 거다.
이걸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일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크리스털윙을 위해 우리는 계속 기다렸다.
[즈즈즈즈 즈즈(배고프지 않아?)]
「난 괜찮아!」
“저는 에너지 공급이 필요합니다. ‘에이모프’ 몸에서 생성되는 작은 기생물을 요청합니다.”
「아까도 먹었는데 또?」
“지속해서 발생하는 하중을 견디기 위해 에너지 보급이 필요합니다.”
「…뒈질래? 나 안 무겁거든?」
서로 잡담을 나누거나.
「두 마리의 크리스털윙 중 하나는 내가 마크할 수 있을 것 같아.」
[즈즈즈즈 즈즈즈(웬디고의 힘으로?)]
「응. 성체라서 오래 붙잡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암컷보다 수컷이 내성이 강하니 암컷을 노리면 될 거야)]
어떻게 싸울 지에 대해 논하거나.
“‘에이모프’란 생물의 특징은 제 모델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아마 너를 만든 자들이 나를 모티브 했을지도 모르지)]
“저의 개발자들과 만나신 적이 있습니까?”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글쎄, 만났다고 해야 할까)]
“개발자들께서 ‘에이모프’를 본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즈즈 즈즈 즈즈즈즈(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동안 얘기하지 못했던 사안에 대해 말하거나 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중 육체 능력이 떨어지는 생물은 없다. 장기간 동안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서 생명의 위기에 처하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루함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첫날 동안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지만, 이틀째 되는 날부터는 다들 조용해졌다.
PS-111은 에너지 보존을 이유로 휴면 상태에 들어갔고, 하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잠에 빠졌다. 미끼 역할을 하는 26호는 둥지에 있는 보석 알갱이들을 끄집어내서 노는 중이었다.
잠도 못 자고 미끼 역할을 해야 하는 녀석이 지루할 것 같아서 공기놀이를 가르쳐 줬다. 처음에는 어색한 것처럼 보였지만 익숙해진 뒤로부터는 완전히 몰입했다. 지금도 촉수 하나로 보석 수십 개를 허공에 던졌다가 받는 행위를 쉬지 않고 할 정도였으니.
‘공기놀이를 하는 씨 데몬이라.’
게임에서는 사람을 갖고 공기놀이를 하던 녀석이었는데.
‘뭐 좋아하니 다행이네.’
혼자서도 잘 놀고 있는 26호에게 신경을 끈 나는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언제 크리스털윙이 돌아올지 모르기에 어제부터 계속 감시하는 중이다. 턱 아래의 보조기관은 이틀 내내 쉬지 않고 봉우리 위의 검은 하늘에서 생기는 변화들을 잡아내고 있다.
‘옛날 생각나네.’
게임 속에서도 크리스털윙을 잡기 위해 장기간 대기한 적이 있다. 지금처럼 둥지 주변에 자리를 잡고 놈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곤 했다.
물론 지금보다는 덜 심심했다. 크리스털윙이 만든 체액 결정은 매우 고가라서 노리는 경쟁자가 많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크리스털윙을 살려 두고 체액을 뽑아내는 것이 훨씬 이득. 목숨 자체를 노리는 나와는 완전히 입장이 다르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이 싸웠지.’
솔직히 내게는 어떻게 되든 이득이었다. 플레이어들과 많이 싸울수록 내 입에 들어오는 유전자 정수의 수도 늘어나니까.
‘…반대로 이상한 놈들도 많았지.’
나한테 진 메가콥 랭커는 자기가 가질 수 없는 것은 남도 못 갖는다는 생각으로 함선을 끌고 와서 궤도 폭격까지 가했다. 폭격에 맞아 죽은 바람에 유일 특성을 날려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옛날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정해진 시간도 끝이 다가왔다.
‘이제 한 시간 남았네.’
나는 컴컴한 하늘을 올려다 봤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얀 눈 알갱이와 검은 구름 말고는 없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할까.’
에이펙스 사냥 겸 우주비행 특성을 노리기 위해 일부러 크리스털윙을 잡으러 온 거지만, 날개 자체만 얻을 거라면 다른 길도 있다. 얼음 행성에 날개 달린 생물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까.
‘내려가서 날개를 먼저 얻은 뒤 크리스털윙을 찾….’
슬슬 애들을 깨울까 생각하고 있는데, 내 보조기관에 무언가가 잡혔다.
봉우리 위에 부는 강풍과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털들을 간질였다. 마치 누군가가 옆에서 입김을 분 것처럼 미약한 흐름이었지만 놓치지 않았다.
함선 엔진실이나 중앙컴퓨터에 가까워질 때 느꼈던 감각과 비슷한 그것.
기계는커녕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이 백색의 봉우리 위에서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것.
그건 분명 전자기파였다.
‘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존재, 크리스털윙이 둥지로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