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00화 (201/400)

Ep. 200

‘이걸로 에이펙스 4마리째.’

애들과 힘을 합친 덕분에 암컷 크리스털윙까지 어렵지 않게 쓰러트렸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다.

‘그때는 혼자서만 움직였으니까.’

만약 나 혼자 크리스털윙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했다면 쉽지 않았을 거다. 그뿐이랴. 놈들을 노리는 다른 플레이어 경쟁자들도 신경 써야 한다.

아마 두 마리를 잡는다고 몇 주 이상 시간을 소요했겠지.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좋았다. 나를 돕는 애들도 있었고, 다른 경쟁자도 없었으니까. 이틀 만에 놈들을 조우한 것도 행운이었다.

‘그리고 26호의 잠재력을 확인한 것도 성과야.’

예상했던 대로 녀석은 ‘투사체 형태로 이루어진 공격’만 조율이 가능했다.

‘심연의 색채’로 강화된 ‘공포의 주시자’, 물체를 녹이는 진균 덩어리를 발사하는 특성인 ‘산성 진균샘’.

이 두 특성은 26호가 어렵지 않게 컨트롤할 수 있었다. 날아가는 구체를 도중에 터뜨려서 확산탄처럼 만든다거나, 날아가는 속도를 조정한다거나 등등.

대신 열선 형태로 발사되는 일반 사이킥 브레스는 조정할 수 없었다. 비슷한 공격 방식인 ‘신의 회초리’도 조종이 불가능하겠지.

‘강화된 사이킥 브레스는 실험해 보지 않았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시체를 남겨야 하기에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 공포의 주시자와 비슷한 형태의 공격 방식이니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26호 외에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은 기대한 것만큼 잘 싸워줬다.

웬디고 변신 능력을 해금한 하늘의 어머니는 웬디고가 지닌 특성 중 일부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얼음의 악령’ 능력이다.

조우한 인간들을 미치게 만든다는 웬디고의 전승처럼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웬디고 또한 타 생물의 정신에 간섭할 수 있다.

얼음의 악령 능력에 당한 생물은 이성을 상실하고 오로지 다른 생물을 잡아먹는 것에만 집착하게 된다. 집중을 요하는 기술이나 소유자가 의식해서 발동시키는 특성 등은 모두 사용할 수 없다.

가령 내가 얼음의 악령에 당한다면 모든 능력 사용이 봉인된 채 유전자 정수만 탐하는 식인괴물이 된다.

‘웬디고는 PK 전용 환수(幻獸)지.’

굉장히 강력한 1인 전용 디버프 능력이지만, 그만큼 제한도 크다. 상대에 따라 지속시간이 널뛰기하는 데다가, 얼음의 악령이 활성화된 상태에서는 술자 또한 다른 기술이나 능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보다 육체적 능력이 떨어진다면 오히려 기술을 건 본인에게 손해가 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적을 강제로 육탄전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 효과 덕분에 암컷 크리스털윙은 제대로 된 반격 한 번 못 해 보고 패배했다.

‘제사장의 황금창과 궁합이 좋겠어.’

오늘은 장비를 다 둥지에 두고 왔지만, 다음 사냥 때는 들고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대단한데. 씨 데몬한테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어.」

「나 대단해? 대단해?」

“사이킥 파워 숙련도가 전보다 42% 상승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고마워!」

크리스털윙 시체를 앞두고 기뻐하는 녀석들. 나는 수컷의 시체를 끌고 그들에게 다가 갔다.

[즈즈즈즈(고생했어)]

“언제 봐도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유전자 분석을 위한 샘플을 요청 드립니다.”

[즈즈(안 돼)]

「암컷 심장과 내장 일부, 내가 먹어도 될까?」

[즈즈즈즈 즈즈즈(해금 조건 때문에?)]

「아니. 이건 그리폰의 신격화 단계를 올리려면 필요해.」

듣고 보니 기억난다. 에이모프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볼프의 신격화에도 단계가 있다. 설정상 신격화 단계가 높아질수록 그들은 볼프들의 신과 가까워진다.

그리폰은 독수리와 사자가 합쳐진 일종의 하이브리드형 생물. 육상 전투에 특화되었긴 하나 짧은 활공 능력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신격화 단계를 올리는데 강력한 비행 생물의 힘이 필요하다.

그녀의 성장은 나의 생존에도 유리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즈(좋아)]

「고마워.」

‘어디 그럼 슬슬 먹어볼까.’

하늘의 어머니가 해체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수컷의 시체부터 먹기로 했다.

놈의 머리는 미터 단위로 세는 것이 빠를 정도로 거대했다. 나는 놈의 머리에 달린 부리와 볏부터 뜯어냈다. 그리고 근섬유와 피부 조직이 붙어 있는 볏부터 입에 집어넣었다.

‘…….’

양 갈래로 벌어지는 턱이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볏을 씹었다. 뼈와 연골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것 같은 특유의 식감이 입 안을 즐겁게 만들었다. 씹을 때마다 흘러나오는 질척한 육즙이 목구멍을 적실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도가니탕 같네.’

도가니뼈의 국물이 잘 스며든 연골, 그걸 새콤한 간장에 찍어먹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그보다 맛과 풍미가 좀 더 진하다고 하면 정확한 비유일 것 같다.

강렬한 매운맛이 인상적이었던 아이스 호러와 다른 방식으로 토속적인 느낌이 확 들었다.

볏을 순식간에 해치운 나는 부리도 씹어 봤다. 앞서 먹은 음식이 맛이 강해서 그런 것일까. 부리에서는 딱히 특별한 맛이 나지 않았다.

‘식감은 시원한 느낌이라 좋지만.’

놈의 부리는 잘 익은 오이를 씹는 것처럼 아삭아삭한 식감이었다. 나는 부리를 씹으며 놈의 머리를 통째로 뜯어냈다. 부리를 전부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기자마자 바로 혀가 덜렁거리는 놈의 머리를 먹기 시작했다.

‘음, 좋다.’

볏과 부리의 식감을 봤을 때 매우 질길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건 수육 느낌이야.’

육향과 풍미가 강한 볏과 다르게 머리 전반은 담백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이 강했다. 둘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먹었으면 훨씬 괜찮을 것 같다.

‘대신 혀가 포인트네.’

전에 듣기로 돼지나 소도 혓바닥 맛이 독특하다고 한다. 나는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크리스털윙의 혓바닥 맛도 제법 개성적이었다. 적당히 쫄깃하면서 기름진 맛이 확 도는 것이 실로 술을 부르는 맛이었다.

그렇게 머리까지 전부 먹어 치운 나는 포식 효과가 뜨기를 기다렸다.

‘응?’

기다려도 반투명 텍스트박스는 반응이 없었다. 효과가 떴는데 내가 못 본 것인가 싶어서 텍스트박스를 열었지만 전부 그대로였다.

‘설마?’

혹시 덜 먹어서 그런가 싶어 크리스털윙의 긴 목까지 전부 먹어 치웠지만 기대한 텍스트박스는 뜨지 않았다.

‘미친!’

글래셔 핀드 이후 또다시 낮은 확률로 포식 효과가 뜨지 않은 것이다. 남은 부분까지 전부 먹어볼까 생각했지만, 그건 사냥의 표상이 끝난 뒤 부작용을 해소할 때 써야 한다.

‘…실화냐.’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행운의 여신이 중요한 순간에 또다시 나를 배신했다. 맛 좋은 식사 덕분에 행복했던 기분이 금세 나락으로 떨어졌다.

나는 암컷의 시체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남은 기회는 한 번밖에 없어.’

내가 가장 노리고 있던 특성은 ‘우주비행’ 특성. 그 다음으로는 전파를 다루는 은폐 및 탐지 능력, 혹은 초재생 능력이다. 전자, 우주비행 특성을 얻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그렇다고 후자의 능력이라고 크게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밖에 놈이 지닌 특성 중에 꽝도 있다는 거다. 예를 들면 ‘강인한 생명력’, ‘시야 강화’라든가.

‘…이건 생각도 안 했는데.’

놈들과 싸울 때도 순조로웠는데 예상 밖의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그때 하늘의 어머니가 피범벅이 된 무언가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방금 뭘 발견했…응? 왜 그래?」

[즈즈즈즈 즈즈즈(이번에도 실패야)]

「뭐?」

그녀는 내가 특성을 얻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체를 다 먹어봐야 하는 거 아냐?」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그것과는 상관없을 거야)]

「그래도 한 번 실패했으니까 두 번째는 포식 효과가 뜰 거야.」

그 말을 들으니 도박사의 오류가 생각났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녀도 나를 위로하려고 한 말일 테니까.

‘쩝. 이미 안 뜬 것은 어쩔 수 없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여기서 좌절하고 있어 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 실패할 것을 대비해 그 뒤를 준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겠지.

‘이번에도 못 얻으면 다른 능력부터 준비하자.’

샤크베어의 ‘강화 내분비샘’ 쪽을 먼저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나는 암컷 크리스털윙의 머리를 뜯어냈다. 부리를 분리해 먹거나 하지 않고 통째로 씹어 먹었다.

수컷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맛이 좋았지만, 그보다는 긴장되는 부분이 더 컸다. 단단한 부리가 으깨지고, 뇌를 감싸는 두개골도 강인한 턱에 의해 부서졌다. 그 내용물들이 빠르게 목구멍을 통과해 위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제발!’

이제 남은 부분은 놈의 목과 연결된 부분. 나는 씹지 않고 그대로 삼켰다.

그렇게 놈의 머리를 전부 소화시킨 순간.

「포식 효과 발동! ‘우주비행’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크리스털윙’의 생물 특성 중 ‘우주비행’을 탈취.」

「‘우주비행’을 적용하시겠습니까?」

「그르르르!」

‘좋았어!’

눈앞에 텍스트박스가 뜨자마자 나는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양팔을 든 채 으르렁거리자 옆에 있던 26호가 깜짝 놀랐다.

「큰애기야 왜 그래? 어디 아파?」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좋아서 저러는 거야.」

「그렇게 맛있어?」

「지금은 뭘 먹어도 맛있다고 느낄 걸?」

하늘의 어머니가 쏜 사념에 웃음기가 스며들어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만드냐. 승낙!’

바라고 바라던 그 특성을 보며 나는 특성 적용을 수락했다.

「‘우주비행’ 특성이 적용되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활공 피막’과 융합 가능.」

「‘우주비행’과 ‘활공 피막’ 특성이 융합. ‘괴수의 강화 날개’ 특성으로 진화!」

「괴수의 강화 날개: ‘우주비행’ 특성을 계승, 강화합니다.

*추신: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먹이들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우주선의 화물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합금판을 거닐었다.

컬트의 성스러운 행성에서 깊은 바다 아래에서 지느러미로 헤엄쳤다.

육지, 바다, 그리고 하늘.

이 얼어붙은 별 위에서 나는 새 힘을 얻었다.

암흑으로 가득한 저 무한한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힘을.

-

“크윽…다들 괜찮은가?”

“괘, 괜찮습니다!”

“함장님! 괜찮으십니까?”

“제, 젠장! 관리자는 보고하라!”

“함포에 대규모 피해 발생! 함미 부분 외벽에도 피해 발생! 다행히 엔진 부분은 피해 경미!”

“사상자는?”

“…함재기 조종사 중 5명, 함포병 7명 실종입니다.”

엔진 손상이 적다고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던 컬트 함장은 바로 인상을 구겼다.

‘이 저주받을 행성 같으니라고!’

그들이 섬기는 젊은 제사장 제이슨이 실종된 지 벌써 5일째. 게다가 방금 전의 습격까지. 복잡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함장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얼마 전 대실패를 겪었지만 그래도 촉망받는 인재가 근신 중에, 그것도 항로에도 등록되지 않는 수상한 행성까지 와서 실종되었다니. 그야말로 제국에 유례가 없는 대사건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계속 제사장의 연락을 대기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그들에게 캠프 설치를 허락해준 존재가 축객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노회한 블랙 갤러곤은 며칠이 지나도 제이슨이 돌아오지 않자 바로 그들을 쫓아냈다. 자기는 할 일이 생겼으니 하찮은 것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면서 말이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함장은 개인적으로 블랙 갤러곤에게 감사했다. 날이 바뀔 때마다 갤러곤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변했다.

만약 하루라도 그곳에 더 있었다간 굶주린 갤러곤들에게 전원이 피를 빨리고 말았으리라.

그렇게 둥지를 떠난 것까지는 좋았으나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둥지 밖에 둔 함선을 타서 떠나려고 하는 그들을 어떤 생물이 습격한 것이다.

“…이거 하나만 대답해주시죠. 가란 미노들이 우리를 내버려 둘 것 같습니까?”

“겁 많은 놈들의 습성을 생각해 보면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저희를 노리지 않을 겁니다.”

놈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게 사라진 12명의 선원이라는 사실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왜 하필 가란 미노가 우리를….’

가란 미노, 빛나는 날개라는 뜻을 지닌 거대 익룡은 매우 희귀한 생물이다. 괴물만 전문으로 사냥하는 신전수호단, 혹은 컬트 밀수꾼이 아니고서는 평생 만나기도 쉽지 않다.

이름만 들은 생물 두 마리가 막 이륙한 함선을 들이받았을 때, 함장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함선 외벽이 뚫리고, 선원들이 희생당한 뒤였다.

배에 남아 있던 신전수호단원 12명이 활약한 덕분에 겨우 가란 미노들을 쫓아낼 수 있었다.

“함장님, 외람되오나 저희는 한시라도 빨리 의회에 소식을 전달해야 합니다.”

“나도 압니다.”

선원 보호를 맡은 신전수호단원의 독촉에 함장은 짜증이 났지만 어떻게든 침착하게 답했다. 저 단원이 아니었다면 이 배에 있는 자들은 모두 난폭한 익룡들의 한 끼 식사가 됐을 테니까.

“엔진 수리까지 얼마나 걸리겠나?”

“작업해 봐야 알겠지만,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엔진부터 빨리 수리하게. 외벽 부근은 구역 폐쇄해서 분리시킬 테니 중요 물자는 다른 구역으로 옮기도록.”

“알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엔진이 손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행성은 항로에도 기록되지 않은 외진 장소. 혹여 조난을 당한다면 구조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애초에 구조대가 오기 전에 다 죽겠지!’

갤러곤에 가란 미노에 온갖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이 행성에서는 하루라도 살아남기 어렵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후도 끔찍하기 짝이 없어 강화복이 없으면 몇 분도 버틸 수 없을 정도다.

“저희가 외부 감시를 맡겠습니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수리를 부탁드립니다.”

“…부탁합니다.”

신전수호단원들은 전원이 용린복(龍鱗服)이라 하는 특별한 강화복을 입는다. 저 아이보리색 강화복 덕분에 그들은 저 살벌한 추위에서도 견딜 수 있다.

함장이나 평범한 컬트 승무원들이 나가면 십중팔구 얼어 죽는다고 봐야겠지.

‘섭리시여!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주소서!’

함장은 상황실 위를 바삐 뛰어다니는 승무원들을 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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