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01화 (202/400)

Ep. 201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에서 우주를 여행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러나 우주여행이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시점은 종족마다 다르다.

다른 함선을 털어먹고 사는 우주 해적 스페이스독, 초계함 함장으로 스타트한 메가콥 등은 매우 이른 시점부터 우주여행이 가능하다. 이들은 소유 함선을 이용해서 밀무역을 하거나 용병을 모집하는 플레이가 권장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주에서의 활동에 특화되어 있지만 이런저런 제한으로 인해 늦은 타이밍에 우주로 진출하는 종족들도 있다.

가령 메탈릭 그렘린의 경우는 태생부터 우주여행이 가능하지만 대기권 밖으로 나갈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 아웃스페이서는 시작하자마자 바로 우주로 나갈 수 있지만, 아무런 방어 수단을 갖추고 있지 않아서 큰 의미가 없다.

메탈릭 그렘린, 아웃스페이서 같은 경우는 시작한 행성에서 충분히 기반을 닦은 뒤 우주로 나와야 수월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에이모프는 굳이 분류하자면 후자에 속하는 타입이다. 우주 공간에서 큰 문제 없이 생존 가능하지만, 정작 우주 비행 능력이 없어서 일찍 진출하기가 어렵다. 다른 행성으로 가려면 플레이어나 NPC의 함선에 잠입해서 이동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그렇게 차근차근 성장하다가 우주비행 능력을 얻으면 그때부터는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바뀌게 된다. 작게는 우주선, 크게는 행성 내 대륙 하나에서 움직이던 것에서 우주 전체로 활동 무대가 옮겨 가기 때문이다.

‘우주비행 능력에는 초광속 이동 능력도 따라오니까.’

그렇다고 해서 아무 때나 막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초광속 항해는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렇기에 다른 배에 잠입할 때만큼이나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썼다간 도중에 에너지가 다 떨어져 굶어 죽기 십상이지.’

출발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먹이를 먹어야 하고, 또 이동 중에 보급할 만한 요소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밖에 단점이라고 한다면 전투 중에는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 초광속 이동을 하기 전에 긴 대기시간이 있어서 전투 중에 썼다간 적의 함포에 맞아 죽는다.

‘게임에서는 이런 리스크 때문에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했지만….’

이 세계에서는 다르다. 왜냐하면 내게 또 다른 성간 항해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유일 특성인 ‘악몽의 지평선’. 우주선과 동화되어 일종의 생체 함선으로 만드는 특성이다.

‘하나만 두고 보면 제한점이 많고 까다롭지만 둘 다 있으면 얘기가 다르지.’

악몽의 지평선과 괴수의 강화 날개. 각각 장단점이 극명한 특성들이다.

악몽의 지평선은 활용도가 많이 떨어지지만 에너지를 훨씬 많이 저장할 수 있어서 성계를 넘나드는 초장거리 항해에 적합하다. 대신 7일마다 한 번씩, 그것도 하나의 우주선에 한 번만 장악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괴수의 강화 날개는 행성 간의 이동, 혹은 행성 내에서의 이동에 효과적이다. 악몽의 지평선과 달리 먹이 수급 문제 때문에 성계를 몇 번씩 넘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즉, 두 특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서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

‘행성 위나 성계 내부에서는 날개 팔을 쓰고, 멀리 이동하고 싶을 때는 배를 덮쳐서 악몽의 지평선을 쓰면 좋겠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쓰임새가 있겠지만, 그 부분은 차차 알아보도록 하자.

나는 ‘괴수의 강화 날개’가 적용된 팔을 내려다 봤다.

내가 이 세계에 온 이후 최초로 얻은 특성이 바로 ‘날개’다. 당시에는 풍뎅이 같은 곤충처럼 평소에는 등갑처럼 몸을 감싸다가 필요할 때 펼쳐지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번에 얻은 날개는 그 형태가 많이 다르다. 내가 지닌 6개의 전투용 팔 중 가장 위쪽에 달린 1쌍의 팔들이 날개로 변했기에.

본래 내가 지닌 전투용 팔들은 전부 길이와 형태가 동일하다. 특별한 변신 모드를 사용할 때만 바뀔 뿐.

그러나 지금 날개가 달린 팔은 다른 팔들에 비해 그 길이가 훨씬 길고 크다. 거의 2배에서 3배 사이라고 할까. 상체를 전혀 숙이지 않은 채 날개 팔을 쭉 펴도 손가락 끝이 땅에 닿을 정도로 길다.

팔의 갑각들에는 얇은 막으로 덮인 작은 구멍들이 일렬로 나 있는데, 이것들은 초광속 항해를 할 때나 우주에서 비행할 때 필요한 추진 물질을 분사하는 구멍들이다.

그리고 4개의 손가락 중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아주 길고 튼튼한 형태가 됐다. 변화한 손가락들 사이와 팔 전체에 걸쳐 넓적한 피막이 자라났다. 박쥐의 날개와 비슷한 형태라 보면 된다.

피막 밖에는 비늘이 덮여서 꺼끌꺼끌하고 투박한 느낌이지만, 안쪽 면에는 작은 솜털들이 자라나서 촉감이 아주 부드럽다.

날개의 외부 면은 그럭저럭 단단한 편이고, 에너지형 무기에 대한 저항력을 지닌다. 방어력이 함선에 장착된 플라즈마 캐논을 최소 한 번 막을 수 있는 수준이라 급할 때 방어용으로 써먹을 수 있다.

‘자주 맞으면 찢어지니까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말이야.’

피막의 크기는 거의 내 몸 길이만큼이나 거대하지만, 지금은 접은 상태라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피막이 접힌 날개 팔을 굽히면 흘러내리는 피막 덕분에 아주 거대한 망토를 두르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망토를 두른 에이모프라.’

이 상태로 성체로 진화하면 꽤 멋진 모습이 된다. 고전 일본 괴수영화에 등장하는 세 머리의 용과 비슷한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성체.’

자유롭게 우주를 돌아다닐 수 있는 능력을 얻었으니 이전보다 빠르게 진화 조건을 채울 수 있게 됐다. 뛰어난 이동 수단을 얻었으니 이제 행성 전체가 내 사냥터다.

아직 성체가 되기까지 한참 남았지만, 전보다 더 빠르게 조건을 채울 수 있으리라.

「그렇게 마음에 들어?」

내가 날개를 보며 흐뭇해하는데, 하늘의 어머니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사냥의 표상 효과가 끝난 후 혹시 내가 공격할 수도 있기에 다들은 잠깐 물러난 상태였다. 그녀 뒤로 26호와 PS-111도 따라왔다.

[즈즈즈즈 즈즈(신경 쓰게 했네)]

「뭘. 이미 다 알고 있던 건데.」

「큰애기야, 이제 배불러?」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나만 많이 먹어서 미안해)]

「애기는 원래 금방 배고프니까 괜찮아!」

표상의 부작용이 끝나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앞에 남은 먹이는 암컷 크리스털윙의 몸통 절반뿐이었다. 수컷의 시체는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내 뱃속에 들어갔다.

“강화 형태의 에너지 소모량의 예비 시뮬레이션 시행 결과, 아직 충분한 에너지량을 보급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이성이 돌아왔으니 이제는 괜찮아)]

“‘에이모프’는 유전자 개조로 단점을 제거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타 유기물의 섭취를 통해 해당 단점을 제거할 것을 추천 드립니다.”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다. 원하는 비행 능력도 얻었으니 이 다음은 샤크베어를 잡아서 새 특성을 얻어야겠다.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다 먹으면 새 먹이 찾으러 가자)]

「좋아!」

“좋습니다.”

크리스털윙의 고기를 먹는데 열중하던 26호와 PS-111이 힘차게 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보여 줄 게 있어.」

하늘의 어머니는 대답 대신 내게 작은 금속 파편을 보여줬다. 그녀가 보여 준 물건은 반쯤 녹아내린 아이보리색 금속, 문실버였다.

[즈즈 즈즈 즈즈즈(문실버? 이걸 어디서?)]

「암컷 내장에서 소화되고 있던 걸 찾은 거야.」

내가 특성을 얻기 위해 수컷의 머리를 먹는 동안, 그녀는 암컷을 살펴보고 있었다. 신격화 단계를 높이기 위해서 심장과 장기를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문실버 조각은 작업 중에 발견한 것이리라.

‘그런데 왜 크리스털윙이 문실버를?’

나는 문실버 파편을 자세히 훑어 봤다.

[즈즈즈즈 즈즈즈(광물 상태가 아니군)]

「응. 정제된 문실버 합금이야.」

그 말을 들으니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녀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실버는 컬트들이 주로 사용하는 광물. 사이킥 파워 효과를 증폭시켜 주는 효과가 있어서 문실버 합금은 무기, 강화복 뿐만 아니라 함선에도 많이 사용된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

‘제이슨.’

그와 부하들이 타고 온 우주선의 흔적이 틀림없다. 일단 금속의 녹은 정도를 보니 소화된 지 시간이 제법 지난 것으로 보였다.

‘최소 하루 이상 된 것 같은데.’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이거 말고 다른 것은?)]

「다른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어.」

수컷의 시체가 남아 있었으면 더 살펴봤겠지만, 아쉽게도 내가 다 먹어 버렸다.

‘우주선이라.’

인면수가 된 제이슨을 심문할 때 그가 부하를 여러 명 데려왔다는 사실은 이미 들었다. 그리고 그 부하들이 블랙 갤러곤의 둥지에 캠프를 차렸다는 사실도.

본래라면 불가능했겠지만, 블랙 갤러곤이 그의 동료 플레이어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덕분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자기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떠날 거라 했어.’

그런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부하들이 행성을 떠나려다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크리스털윙이 블랙 갤러곤의 영역까지 들어가서 컬트들을 공격할 리 없으니까.

‘아니면 전혀 다른 세력인가?’

어쩌면 컬트로 구성된 해적들이 이곳에 발을 디딘 것일지도 모른다. 뮤리엘의 카르텔처럼 말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지.’

필요하다면 직접 알아보면 되는 법.

생각을 정리한 나는 애들을 쳐다 봤다. 26호와 PS-111도 이미 짧은 식사를 끝마친 상태였다.

[즈즈즈즈(잘 먹었어?)]

「응.」

“만족스럽습니다만, 에너지가 더 필요합니다.”

[즈 즈즈즈(그래? 잘됐네)]

밥도 먹고, 날개 팔도 얻었겠다.

날아다니며 사냥하기 딱 적당한 시점이다.

-

“모든 수리를 마쳤습니다.”

“휴, 다행이군.”

함선이 수리되는 동안, 마음을 졸이고 있던 함장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이 끔찍한 행성에는 온갖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득실거렸다.

‘미친, 하루도 안 지났는데 습격만 6회라니!’

컬트 순양함이 불시착한 지점은 아주 거대한 산의 중턱 부근이었다. 갤러곤들의 둥지와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갤러곤의 둥지에서 떨어졌다는 말은 즉, 다른 야생 동물이 많이 산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습격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자주 공격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괴물 사냥의 전문가, 신전수호단원들이 없었다면 이 배의 승무원들은 진작 야수들의 식사거리가 됐을 거다.

‘그래도 가란 마노들이 안 돌아와서 다행이야.’

가란 마노는 특수한 외피를 지녀서 탐지 장비에 걸리지 않는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거나, 특별한 사이킥 파워 기술을 쓰지 않는 이상 놈들의 습격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애초에 가란 마노의 빌어먹을 특성 때문에 그들이 행성을 떠나려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으니.

놈들이 다시 습격할까 봐 신전수호단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지만,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섭리가 우리를 돕는군. 그럼 모두 이륙 준비!”

“넵!”

함장의 명령에 승무원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동을 멈췄던 엔진이 용트림을 하고, 바깥의 냉기에 차갑게 식었던 선체에 열기가 돌았다.

상황실의 컬트들은 사이킥 파워를 운용해 이제 막 깨어난 순양함과 동기화했다. 추락할 당시 저장된 정보들이 동기화된 컬트들의 머릿속으로 속속히 전달되었다. 그 중 중요한 정보들은 상황실 한가운데에 에너지로 구성된 반투명한 이미지로 출력되었다.

“엔진 활성화 70%. 100%까지 계속 상승 중.”

“에너지 잔량 67%. 양호함.”

“손상 구역 폐쇄 작업 완료.”

“이륙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행성 밖에 나가면 바로 도약할 수 있도록 엔진을 준비하라.”

“옙!”

“감시자들은 갤러곤이나 기타 위협이 발생하면 바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배가 서서히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보리색에 길쭉한 마름모꼴의 순양함은 처음 부양할 때 살짝 흔들렸지만, 곧 문제없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제발 아무런 위협도 만나지 않….’

“생체 신호가 빠르게 접근 중! 갤러곤입니다!”

“젠장!”

함선 외부 감시를 맡은 컬트가 급히 보고했다. 동시에 메가콥이나 스타유니언에서 만들어 낸 홀로그램보다 훨씬 정교한 형태의 전술 지도가 상황실 위에 출력되었다.

전술 지도 가운데 위치한 마름모를 향해 세모 모양의 표식이 접근 중이었다.

“갤러곤 색은 확인 가능한가?”

“크기를 봤을 때 녹색으로 추정. 현 궤도상으로 이동하면 5분 후 목표와 충돌 예상됩니다.”

“…쯧, 회피 기동으로 전환하되 최대한 현 속도를 유지하라. 반격하지 않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벗어난다.”

“알겠습니다.”

전속력으로 날아오는 속도를 봤을 때, 저쪽에서 우호적인 의도를 갖고 접근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순양함을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나타난 적에 승무원들이 모두 긴장하는 그 때.

감시와 탐색을 담당한 승무원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기, 긴급 보고! 또 다른 정체불명의 목표가 접근 중!”

“뭐?”

“크기로 봤을 때 최, 최소 백색 이상! 속도가 엄청납니다! 충돌까지 앞으로 1분 남았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비보에 상황실에 있던 자들이 모두 당황했다. 간신히 침착함을 유지한 함장이 다급히 명령했다.

“초광속 엔진 가동 준비! 감시자는 외부 카메라에 찍힌 영상 이미지를 공유하라!”

“엔진 가동까지 시간을 맞출 수 없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어떻게든 맞춰!”

분위기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사이, 외부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이 상황실 한복판에 출력되었다.

‘이, 이건?’

카메라에 찍힌 그것을 본 함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어두운 하늘에 뜬 검은 유성과도 같았다. 섭리가 가로되, 제국에 크나큰 재해가 닥칠 때마다 나타나는 흉조.

검은색 악마가 거대한 날개를 휘저으며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 저게 뭐지?”

모두가 그 두려운 존재를 보고 얼어붙어 있는 사이, 누군가의 얼빠진 목소리가 상황실에 울렸다. 그 말은 들은 함장의 시선이 상황실 전면부에 달린 강화유리에 쏠렸다.

검은색 구름만 가득했던 그곳. 눈과 우박 폭풍이 몰아치는 그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번개가 칠 때마다 번뜩이는 검은 그림자.

카메라에 찍힌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가리를 활짝 펼친 채 그들에게 들이닥쳤다.

“모, 모두 충돌에 대…!”

함장이 목청이 찢어져라 외치는 순간, 순양함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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