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04화 (205/400)

Ep. 204

컬트 순양함은 내가 설치한 둥지로부터 제법 떨어진 숲 위에 착지했다. 둥지 주변은 지반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착륙한 뒤 8명의 생존자들을 상황실 밖에 내보냈다. 널려 있는 시체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나는 상황실 안쪽으로 침식 촉수를 집어넣어 시체들을 하나둘씩 흡입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지식관리자가 없네?’

지식관리자는 컬트 함선의 핵심 부관이자 수석기술자다.

사이킥 파워라는 초능력을 사용하는 종족답게 컬트는 컴퓨터에 저장된 기록과 정보를 개인에게 전송할 수 있다. 그래서 컬트에는 메가콥의 데이터 아카이브, 스타유니언의 스타링크 데이터베이스 같은 중앙정보처리기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제국3대 권력기관인 예언자회가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까.

아무튼 함선에 탑승한 지식관리자는 전투, 항로, 함선 구조, 제국과 타 세력의 동향 등등 항해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들을 주로 습득한 자들이다.

다른 세력이 함선 컴퓨터의 성능에 크게 의존한다면, 컬트는 그와 다르게 컴퓨터와 지식관리자가 서로 연계해서 항해에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알기로 순양함에는 지식관리자가 반드시 들어가는데.’

보통 초계함에는 탑승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구축함 이상의 중, 대형 군함에는 탑승한다.

그런데 상황실에 깔린 시체 중에는 지식관리자가 빠져 있었다.

[즈즈즈즈즈 즈즈즈(지식관리자는 어디 있지?)]

「응? 아까 내가 얼음의 악령으로 제압해놨는데. 상황실 안에 있을 거야.」

내가 쏜 파장에 하늘의 어머니가 내 질문에 답했다. 현재 그녀는 전리품으로 가져갈 만한 장비가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함선 내 다른 구역에 있다. 그녀의 답을 듣고 시체들을 다시 뒤져 봤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지식관리자는 외형상으로는 일반 컬트와 똑같지만, 옷에 특별한 배지를 붙인다. 컬트의 눈을 형상화시킨 모양의 배지로,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일루미나티라고 부른다.

‘시체가 뒤섞여서 그런가? 못 찾겠네.’

시체들 하나하나 옷을 뒤적이고 있는데, 컴퓨터 주변을 맴돌고 있던 PS-111이 내게 물었다.

“무엇을 찾으십니까?”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눈 모양의 배지를 달고 있는 시체)]

“그 시체는 ‘에이모프’가 오기 전, 제가 먹었습니다.”

[즈즈 즈즈즈즈 즈즈(네가 먹었다고? 언제?)]

“‘중간애기’가 컴퓨터로 작업하던 중입니다. 중요한 대상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PS-111은 몸을 숙이며 사과했다.

‘평소에는 안 그러던 녀석이 왜?’

항상 에너지 보급 타령을 하는 녀석이긴 하지만, 먹이에 먼저 손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녀석이 특별한 개체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기계의 통제를 받는다. 실수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언제나 그렇듯 기계음이 섞인 단조로운 여성의 목소리였지만,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흠.’

나는 녀석을 주시했다. 반은 기계로 이루어진 존재인 PS-111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도 그렇고, 무표정한 얼굴도 느낌이 달랐다.

새하얀 얼굴 표면 내에 스며든 느낌을 굳이 표현하자면….

‘감정인가?’

이전에도 녀석은 26호에게 혼날 때 시무룩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기계가 특정 상황에 맞춰 표현하는 인공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지금은 훨씬 인간적으로 보였다.

‘인간적인 기계라.’

녀석은 신형 스크리머 모델인데다가 지휘관급 개체다 보니 비교적 높은 자율성을 지녔다. 그렇기에 이 변화가 녀석이 설계된 것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존재로 변화해가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이런 점은 26호랑 비슷하네.’

녀석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그때 나는 녀석을 지켜보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은 결과적으로 내게 큰 도움이 됐다.

‘좀 더 두고 보자.’

나를 속일 생각이라면 지금처럼 어색하게 속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많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내게 위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고 봐야겠지.

잠시 고민한 나는 PS-111의 ‘실수’는 넘어가기로 했다.

[즈즈즈즈즈 즈즈즈즈(다음부터는 주의해 줘)]

“감사합니다.”

지식관리자는 그걸로 일단락 짓고, 다시 침식 촉수로 시체들을 집어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들을 전부 정리한 나는 PS-111과 함께 순양함 밖으로 나왔다.

「큰애기랑 친구가 나왔어.」

「뭐 이리 오래 걸려?」

[즈즈 즈즈즈 즈즈즈(잠깐 할 일이 있어서)]

나와 보니 하늘의 어머니와 26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의 어머니는 데몰리셔에 끈을 연결해서 오른쪽 어깨에 멨고, 왼쪽 손목에 챔피언 실드를 찼다. 신전수호단원과 비슷한 구색이었지만 용린복(龍鱗服)은 착용하지 않았다.

볼프는 특별한 재질의 장비 말고 일반 방어구는 착용할 수 없다. 다름 아니라 볼프의 변신 능력 때문이다. 변신하면 몸이 2배 이상 커지는데다가 체형도 바뀌니 평범한 옷은 순식간에 망가질 것이다.

옆에 있는 26호는 촉수로 전리품을 가득 실은 배낭을 들고 있었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그럼 둥지로 돌아가자)]

「퍼덕퍼덕하는거야?」

[즈(응)]

「하아….」

한결같이 비행을 좋아하는 26호였다. 내가 엎드려서 몸을 낮추자 녀석이 통통 튀며 내 등에 올라탔다. 이름과 다르게 비행을 즐기지 않는 하늘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쉰 뒤 26호의 뒤를 따랐다.

PS-111까지 태운 나는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둥지에서 잠깐 쉬고, 새 먹이를 잡으러 갈까.’

나의 존재가 알려진 이상, 갤러곤과의 싸움이 멀지 않았다. 어느 무리든 상관없이 나를 배제하려 들 테니.

아드하이를 추방했던 검은 갤러곤 무리는 새 경쟁자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만난 적이 있는 함 오르트는 약속한 것이 있으니 바로 덤비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내가 아드하이를 노린다고 생각해서 더 경계할지도 모른다.

‘원래는 더 많이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 없지.’

갤러곤 무리는 플레이어만큼이나 까다로운 적이다. 에이펙스의 특성을 10개 이상 얻고 공략하려고 했지만 계획을 바꿔야겠다.

‘샤크베어랑 놈까지만 먼저 정리하자.’

태어난 이후 평생 지상에 내려오지 않는 생물.

우주의 고래라 불리는 고고한 존재.

스카이웨일 말이다.

-

「붉은 숲의 주인」「죽었다고?」

믿기지 않는 소식에 순백의 여왕이 되묻자 백색의 갤러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살아 있던 왕이 왜 갑자기 죽는다는 말인가? 함 오르트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드 그라드」「살해했나?」

「넬 게르마」「부정함」「왕」「이미」「사망」

혹시나 해서 물어 봤지만 역시 아니었다.

「시체」「가져옴」

백색의 암컷 넬 게르마가 내민 것은 붉은 숲의 주인이 남긴 날개 파편뿐이었다. 그걸 본 함 오르트는 한숨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런 작은 조각은 큰 의미가 없다. 그 말은 즉, 이 행성 어딘가에 있을 다른 붉은 왕을 찾아야 한다는 것.

「함 오르트」「명한다」「새 붉은 숲의 주인」「수색하라」

「넬 게르마」「반대함」「동족」「피로함」「휴식」「필요」

어린 것이 우두머리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하물며 넬 게르마는 가장 순종적인 동족 중 하나였다. 그런 그녀가 반론을 내놓는다는 것은 상황이 어지간히 좋지 않다는 뜻.

게다가 함 오르트는 오드 그라드가 동족을 혹사시키는 것이 싫어서 반기를 들었다. 여기서 그녀가 강제로 명령을 내린다면 오드 그라드와 똑같은 존재가 될 뿐이다.

「함 오르트」「수정한다」「넬 게르마」「동족」「편히 쉬도록」

「감사함」

넬 게르마를 돌려보낸 함 오르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현재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다. 당장은 저 잔혹한 흑룡이 변덕을 부려서 내버려 두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오드 그라드가 나서면 많은 동족들이 죽게 될 거다. 그녀가 목숨을 바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그 전에 최대한 빨리, 유성의 딸을 구세주로 만들어야 한다. 함 오르트는 날개 파편을 들고 둥지에 들어갔다.

넓은 동굴에서는 한 마리의 작은 동족이 누워 있었다.

풀빛의 비늘, 물빛의 어린 것들보다 작은 크기, 통통한 꼬리가 인상적인 동족. 그녀가 바로 유성의 딸 아드하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날개에 바닥에 흩어진 돌만큼 작은 하얀 반점이 생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붉은 숲 주인」「죽음?」

「그렇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아드하이였다.

최근 그녀는 사이킥 파워를 세밀하게 다루는 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이제는 동굴만이 아니라 동굴 밖에 위치한 숲까지 그녀의 감지 영역에 들어갔다.

어미의 입장에서 딸이 성장하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겠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아드하이는 틈만 생기면 그녀로부터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큰어른」「사냥」「확실함」

「함 오르트」「부정한다」「붉은 숲의 주인」「약하지 않다」「못생긴 동족」「사냥」「불가능하다」

「큰어른」「모습」「바꿈」「진짜」「모습」「훨씬」「멋짐」「강함」「강함!」

지난번 뱀의 왕 시체를 어렵게 가져다줬을 때부터 줄곧 저 소리였다. 함 오르트는 아드하이가 말하는 ‘큰어른’이 누구인지 안다.

아드하이를 발견했을 당시, 같이 있던 못생긴 동족.

그녀가 기억하길 ‘큰어른’은 동족이 정말 맞는지 불확실할 정도로 기괴하게 생긴 존재였다. 동족과 비슷한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다른 생물로 착각했을 정도다.

물론 머리에 난 우람한 뿔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뿐이었다. 덩치도 작고 힘도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나약한 존재와 같이 다니던 유성의 딸이 같이 다니다니. 지금까지 생존한 것이 기적이었다.

「동족」「모습」「바꿀 수 없다」「유성의 딸」「착각이다」

「아님」「함 오르트」「틀림」「모름」「전혀」「모름」

얄밉게 말하는 아드하이를 보니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았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녀는 아드하이 앞에 날개 파편을 던졌다.

앞발로 날개 파편을 쥐고 촉수로 깨작깨작 먹기 시작한 그녀에게 함 오르트가 통보했다.

「먹어라」「먹은 후」「갈 곳」「있다」

「갈 곳?」

당장 붉은 숲의 주인을 먹는 것은 불가능. 그러니 뒤에 해야 할 일을 앞당겨서 처리해야 한다.

「하늘의 왕」「사냥한다」

「하늘의 왕?」

「함 오르트」「유성의 딸」「함께 간다」

하늘의 왕을 먹는다면 유성의 딸은 단번에 그녀와 비슷한 단계에 오를 것이다. 그러니 함 오르트는 도박을 하기로 했다.

그녀의 딸이 정말로 구세주라면.

그녀는 목표를 이룰 것이라고.

-

지열로 인해 펄펄 끓는 동굴.

바닥에는 온갖 귀한 광물과 보석들이 바닥에 깔렸고, 벽과 천장에는 향긋한 향기를 내뿜는 과일 열매들이 가득했다.

자연 속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사치스러운 그 동굴 가운데에는 흑색의 주인이 누워 있었다.

그 존재는 긴 몸체를 둥글게 만 채 잠들어 있었지만, 그런데도 상당한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다.

머리에는 구부러진 뿔이 6개나 자라 있었고, 날개는 비를 내리는 먹구름처럼 거대했다. 다리와 몸에는 탄탄한 근육으로 꽉 차 있었고, 발톱은 폭풍 속의 번개처럼 예리했다.

그가 바로 검은 왕, 위대한 오드 그라드였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열로 몸을 지지며 잠에 빠져 있었다. 하나 오늘은 평소와 약간 달랐다. 잠이 든 것이 분명함에도 그의 꼬리가 불편한 듯 떨렸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거대한 몸체가 움직이자 동굴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방금 그건?」

오드 그라드의 눈이 불안감에 흔들리다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자던 중에 악몽을 꾼 것이었다.

꿈에서 그는 봤다.

동족이 그에게 달려들어 목을 치는 것을.

비행 중 목이 잘려서 떨어지는 것까지 생생하게 봤음에도 이상하게 목을 자른 존재만은 흐릿했다.

덩치가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 하나도 명확하지 않았다. 하나 분명한 것은 상대의 몸이 검은색이었다는 것뿐.

「…미래인가」

오드 그라드에게는 매우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다.

그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지금처럼 예지몽을 꾸거나, 환상을 보는 형태로 말이다.

미래 예지 능력을 자각한 뒤, 그는 항상 불길한 미래를 피해 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이렇게 오래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아무튼 현시점에서 검은색 비늘로 탈피할 만한 존재는 하나밖에 없다.

그에게 반기를 들고 나간 백색의 암컷.

오드 그라드는 동족들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모종의 수를 쓰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그 괘씸한 암컷이 그가 모르는 곳에서 탈피 조건을 발견한 것이 틀림없었다.

예지몽이 보여주는 미래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것들. 그간의 전례를 돌이켜 보면 꿈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았다. 그러니 백색의 암컷은 아직 탈피 도중일 가능성이 크다.

오드 그라드는 밖에 있는 반려를 불렀다. 백색의 반려가 들어오자 그가 명령했다.

「오드 그라드」「명하노라」「동족들」「전부 준비하라」「반역자들」「소거한다」

기다림은 끝났다.

그간 방치해 뒀던 반역자들을 처형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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