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09
나는 날개 팔을 세차게 휘둘러 단번에 고도를 높였다. 나와 함 오르트의 싸움으로 인해 갈라진 먹구름들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왔다.
눈과 비, 그리고 간간이 번개가 치는 그곳에 고고하게 떠 있는 별이 보인다.
나는 빠르게 날아 아드하이 옆에 다가 갔다.
「큰어른」
[즈즈즈 즈즈즈(어떻게 된 거야?)]
「동족」「쫓김」
[즈즈(동족?)]
「나」「백색의 동족」「만남」「함 오르트」「무리」
녀석의 말대로 갤러곤들은 이쪽으로 날아오며 싸우고 있었다. 쫓기는 쪽의 화이트 갤러곤은 피투성이인 반면, 놈을 쫓는 10마리의 그린 갤러곤은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였다.
갤러곤 중 특출한 편인 함 오르트라면 모를까 일반 화이트 갤러곤이 10마리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터. 그냥 내버려 두면 놈은 그린 갤러곤들에게 사냥당해 죽을 것이다.
「큰어른」「백색의 동족」「할 얘기」「있음」
[즈즈즈즈(할 얘기라고?)]
「중요함」「신뢰」「부탁」
동족을 살리려는 것인가 싶어 녀석을 쳐다봤지만,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당장 그린 갤러곤을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사냥의 표상은 아까 아드하이와 대화하기 전에 끝났다. 포식 효과가 안 뜰 가능성이 높지만, 진화 조건 중 에이펙스 수를 채울 수 있으니 나쁠 것은 없다.
‘수가 좀 많긴 한데….’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10마리 외에 따라오는 갤러곤은 보이지 않았다.
[즈즈 즈즈즈즈 즈즈(일단 정리하고 볼까)]
「동의」
「파닥파닥 혼내주자!」
나는 날개를 크게 펼친 뒤, 놈들이 있는 방향으로 활공했다. 곁에서 날고 있던 아드하이는 자기 어미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나를 치고 날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린 갤러곤 무리에 접근한 녀석이 빠르게 움직이며 사이킥 브레스를 쏘기 시작했다.
‘대단한데?’
설정상 갤러곤이 사이킥 브레스를 쏘려면 일련의 충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 보니 브레스를 쏘기 전 몸을 멈춘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 함 오르트처럼 뛰어난 실력을 지닌 갤러곤도 브레스를 쏠 때는 잠깐 움찔거렸다.
그러나 아드하이에게는 그런 단점이 전혀 없었다. 녀석은 초가속을 사용한 상태로 사이킥 브레스를 짧게 끊어 쏘는 형식으로 포격을 가하는 중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공격 방식에 적들은 당황해하고 있었다. 초가속 능력을 이용해 아드하이에게 달라붙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아드하이가 훨씬 빨랐다.
아드하이가 주목을 끄는 동안, 피투성이 화이트 갤러곤도 적들에게 반격을 가했다.
‘생각보다 잘 싸우지만….’
이제 막 성장한 갤러곤과 심한 부상을 당한 화이트 갤러곤으로는 10마리나 되는 적을 이길 수 없다.
그린 갤러곤들이 수적 우위를 이용해 아드하이를 포위하면 녀석도 장점을 써먹기 어려워진다. 마침 놈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녀석을 감싸듯 위치를 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아드하이나 함 오르트만큼은 아니더라도 나 역시 꽤 빠르게 날 수 있다. 나는 구름 속에 숨어 조용히 갤러곤들에게 접근했다.
그린 갤러곤들은 온통 눈앞에 있는 적에만 신경을 쏟고 있었다. 나는 그 중 한 마리가 내 근처로 날아올 때를 노려 앞으로 튀어 나갔다.
「?!」
검은 구름에서 갑자기 자기보다 서너 배 이상 큰 존재가 나타나자 그린 갤러곤이 깜짝 놀란다. 내 등에 있는 침식 촉수가 순식간에 놈의 몸을 휘감았다.
「위…」
놈이 경고의 사념파를 뿜어내려고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나는 길게 뻗은 주둥이를 활짝 벌려서 놈의 목을 물어뜯었다.
나는 목뼈가 부러진 채 축 늘어진 갤러곤의 시체를 들고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
위대한 오드 그라드의 무리에 속한 풀빛의 수컷, 라그마드는 기분이 좋았다.
그는 물빛에서 풀빛 비늘로 성장할 때까지 한 번도 짝짓기의 기회를 얻은 적이 없었다. 위대한 오드 그라드가 자기 외의 수컷이 반려를 얻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했기 때문이었다.
늙은 흑룡은 여전히 그 힘이 강대해서 순백의 어른들조차도 몸을 사린다. 풀빛 비늘을 지닌 그는 전혀 상대가 안 된다.
결국 포기하고 얌전히 지내고 있던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오드 그라드의 세 번째 반려이자 무리 서열 2위의 함 오르트가 반기를 든 것이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힘을 지닌 순백의 여왕은 라그마드도 동경하던 암컷이었다. 그녀는 오드 그라드의 지배를 거부하고 새 무리를 만들었다.
당시 라그마드도 무리를 나갈까 고민했지만 오드 그라드의 진노가 두려웠기에 감히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함 오르트를 따라 나간 동족들은 흑룡의 분노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대부분이 죽고, 순백의 우두머리는 죽을 때까지 알만 낳는 처지가 됐다.
살아남은 함 오르트의 무리들까지 죽인다면 라그마드는 그가 바라던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가 동경하던 순백의 여왕과의 짝짓기 기회를 말이다. 그의 꿈이 현실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중간에 조그마한 훼방꾼이 나타나 귀찮게 굴었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비정상적으로 작은 순백의 동족은 매우 빠르고 강했지만, 그 뿐이다. 풀빛 비늘을 지닌 그들의 수가 훨씬 많다.
시간이 좀 걸린다 뿐이지,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 건 오드 그라드의 무리다.
그렇게 생각하며 라그마드는 목표를 쳐다 봤다. 2마리의 동족이 백색 동족과 맞붙고 있었다.
잘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려던 찰나, 라그마드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원래 백색 동족과 싸우기로 한 동료는 총 3마리였기 때문이다.
「라그마드!」「목표」「포위」「지원!」
작은 방해꾼을 잡기 위해 동족이 그를 불렀다. 동족들을 바라 본 라그마드는 이쪽도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도 한 마리가 부족하다.
「의문」「동족」「부족함」
「이해」「불가」
「동족」「열」「지금」「여덟」
「?」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동족이 공중에서 멈춰 섰다. 때마침 어두운 하늘에서 번개가 쳤다.
번개의 줄기가 구름을 타고 하늘 전체로 퍼져나간다.
그 짧은 순간, 라그마드는 봤다.
어둑하기만 하는 구름 안에 있는 거대한 그림자를.
번개가 지나가자마자 그림자의 주인이 튀어나왔다. 수많은 머리가 동족 하나를 붙잡았다. 그 동족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검은 구름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동족 하나를 집어삼킨 구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람에 따라 흘러가 버렸다. 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라그마드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
오드 그라드의 분노를 가까이서 봤을 때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 그의 비늘을 따라 역류했다.
전신으로 느끼는 섬뜩함, 그것은 압도적인 공포였다.
「적!」「적!」「새로운 적!」「발견!」
그 점을 깨달았을 때 라그마드는 자기도 모르게 찢어지듯 비명을 질렀다. 그가 쏜 사념에는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라그마드의 공황을 감지한 동족들이 재빨리 경계 태세를 갖췄다. 순백의 작은 방해꾼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들이 노리던 목표도 또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놈도 구름 속에 있는 「무언가」가 전부 잡아먹었을지도 모른다.
그 두렵고 탐욕스러운 존재가 이제는 그들을 노린다.
그 순간, 보라색 섬광이 구름에서 튀어나왔다. 순백의 방해꾼이 쏜 숨결이었다. 풀빛의 동족 중 하나가 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위험!」「경계!」
「위…?」
그때 짙은 암흑이 피하려던 동족을 덮쳤다. 뒤에서 습격을 받은 동족은 반항 한 번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밤하늘만큼이나 검은 어둠, 아니 어둠처럼 보이는 날개를 펄럭이며 「무언가」가 다시 먹구름 속에 숨어버렸다.
「검은색 동족!」「위험!」
「오드 그라드」「필요!」
「불가능!」
「진정」「모두」「접근」「필요」
라그마드는 공황에 빠진 동족들을 불러 모았다. 한 곳에 모인다면 저 숨은 「무언가」도 그들을 함부로 노릴 수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는데, 또다시 번개가 쳤다.
좀 전의 백색 섬광처럼 빛나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선명한 황금색 번개였다.
「?」
번개의 색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기이하게도 잘게 갈라져야 할 번개가 흩어지는 대신 한데 뭉쳐서 특정 방향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바로 서로 거리를 바짝 좁히고 있는 라그마드 무리를 향해서 말이다.
빛만큼이나 빠른 번개의 뱀이 그의 동족들을 갈기갈기 찢었다.
피와 살점 파편이 몰아치는 가운데, 그는 번개 너머에 있는 존재를 봤다.
하늘 옥좌 위에 앉아 있는 「무언가」는 검은 죽음의 왕이었다. 왕이 가진 수많은 머리들은 라그마드의 동족들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왕이 보낸 백색의 사자가 그에게 보라색 불길을 토해냈다.
-
‘예상보다 수월했어.’
10마리라서 살짝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경험이 적은 어린 개체라서 그런지 놈들은 금세 겁을 먹었다. 만약 적들 중에 지휘를 담당할 화이트 갤러곤이 섞였으면 이렇게 금방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아마 한 마리에서 두 마리 정도는 도망쳐서 동료를 불러왔겠지.’
그 다음부터는 끝없는 지옥의 차륜전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갤러곤들이 끊임없이 달려들 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렇게 그린 갤러곤 무리를 정리한 우리는 땅으로 다시 내려왔다.
「새로운 갤러곤인가.」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시체 파편들이 숲 위에 떨어졌어)]
「수거해 오란 말이지? 알았어.」
“저도 돕겠습니다. 중간애기.”
「…명칭 바꿔 주면 안 될까.」
“권한 부족, 조건 불충족으로 불가합니다.”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이 숲에 간 사이, 화이트 갤러곤이 내게 다가왔다.
「넬 게르마」「검은색 동족」「감사」
자기를 넬 게르마라 소개한 암컷 화이트 갤러곤은 내게 감사를 표했다.
‘함 오르트의 부하인가.’
나는 부상당한 갤러곤을 훑어 봤다. 전신이 상처투성이인 놈은 매우 약해진 상태. 내가 바로 공격하면 금방 죽겠지.
‘일단 아드하이에 대해 물어본 다음 처리할까.’
질문하기 위해 괴물의 촉수를 움직이려는데 넬 게르마가 먼저 사념파를 쐈다.
「유성의 딸」「함 오르트」「전언」「있음」
「전언?」「나?」
「오드 그라드」「무리」「습격」「동족」「대부분」「죽음」
「!」
「어린 동족」「얼마」「안 남음」「나머지」「죽음」
넬 게르마의 말에 나와 아드하이가 깜짝 놀랐다. 자수정을 닮은 눈을 크게 뜬 녀석이 곧이어 날개를 파르르 떤다. 어린 동족들이 무참히 죽었다는 말에 분노한 것이다.
「오드 그라드」「나쁨!」「어린 동족」「불쌍함!」
다만 나의 경우는 약간 느끼는 감정이 달랐다.
‘놈이 선수를 치다니.’
아무래도 함 오르트가 아드하이를 데리고 무리를 떠난 사이 블랙 갤러곤이 놈들의 둥지를 친 것 같다.
이쪽은 우두머리가 없는데 저쪽은 우두머리, 그것도 화이트 따위보다 더 강력한 블랙 갤러곤이 왔으니 그다음 벌어질 일은 뻔했다. 필시 대학살이 있었을 거다.
함 오르트가 나와 싸우던 도중에 급히 돌아간 이유도 그것 때문이리라. 늦게라도 동족들에게 합류해서 블랙 갤러곤과 싸우려는 의도였겠지.
‘상황을 봐서는 실패한 것 같지만.’
아무튼 놈이 둥지를 공격해 갤러곤들을 학살했다면 나에게도 큰 손해다.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전자 정수가 줄어들 테니까.
‘아니. 유전자 정수는 그렇다 쳐도 진화 조건이 문제야.’
성체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에이펙스를 죽여야만 한다. 다른 생물이 먼저 살해하고 시체만 남긴 것을 먹는다고 해서 나의 진화 조건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나는 넬 게르마에게 물었다.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함 오르트는 어떻게 됐지?)]
「나」「떠날 때」「오드 그라드」「함 오르트」「싸움」
십중팔구 함 오르트는 죽었을 거다. 놈이 일반 화이트 갤러곤보다 강하다고 해도 색깔의 차이를 넘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보다」「중요한 것」「유성의 딸」
「?」
「함 오르트」「말함」「구원자」「조건」
「하늘의 왕」「이미」「먹음」
「다음」「조건」「백색의 동족」「먹는 것」
「동족」「먹는 것?」
「함 오르트」「자살」「유성의 딸」「성장」「희생」「원함」
「신뢰」「불가!」「불가!」
넬 게르마의 말을 들은 아드하이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함 오르트」「나」「버림!」「희생」「거짓말!」
과거에 자기를 버렸던 어미가 이제는 자기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녀석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피붙이라고 해도 한때 자기를 버렸던 상대를 그리 쉽게 믿을 수 없겠지.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녀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안 좋지.’
이 혹독한 얼음 행성에서 사냥 능력도 없는 채 둥지를 떠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아드하이를 버린 무리는 명백히 녀석의 죽음을 바랬던 것이다.
「사실」「함 오르트」「제물」「불가」「대신」「넬 게르마」「제물」
「신뢰」「불가!」
「시간」「없음」「오드 그라드」「남은 어린 동족」「찾을 것」
녀석이 고개를 홱홱 젓자 넬 게르마가 필사적으로 그녀를 설득했다.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26호가 내게 다가왔다. 녀석이 촉수를 한 가닥 뽑아서 나를 콕콕 찔렀다.
「큰애기야.」
[즈즈즈(왜 그래?)]
「큰 파닥파닥. 작은애기 엄마야?」
[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응. 예전 일이라 지금은 아니지만)]
「한번 엄마는 계속 엄마야.」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26호와 그런 무가치한 주제를 갖고 대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데 녀석이 파장을 이어 나갔다.
「파닥파닥 도망칠 때 말했어.」
[즈(응?)]
「작은애기 잘 부탁한다고.」
말도 안 되는 얘기라서 무시하려고 했는데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함 오르트가 나를 속이고 물러날 때, 놈은 짧은 파장을 내게 보냈었다. 당시 나는 아드하이가 위험한 줄 알고 정신이 없었던 터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작은애기만큼은 살면 좋겠다고 했어.」
[즈즈(그건)]
「큰 파닥파닥이 엄마라서 그런 걸까?」
26호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돼.’
왜 함 오르트가 중요하다는 딸을 그렇게 쉽게 넘겼는지 말이다.
동족들과 대화했을 때 놈은 둥지가 공격당하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거다. 게다가 이미 나한테 스카이웨일은 뺏겨서 아드하이의 성장은 물 건너간 상황. 그래서 놈은 내게 딸을 맡기고 둥지를 지키러 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야. 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서 보험을 들었어.’
놈은 내가 얼마나 강한지는 알지만, 흑룡보다는 약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둥지에서 싸우던 중 화이트 갤러곤에게 말해 아드하이한테 보냈다.
‘아드하이가 원해서 먹든 내가 넬 게르마를 죽여서 녀석에게 먹이든 똑같아.’
뭐가 됐든 아드하이가 강해진다면 흑룡한테서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놈은 마지막으로 도박을 한 것이리라.
‘하. 영악하긴.’
내가 이 세계에서 만난 적들 중 놈만큼 똑똑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메가콥의 노블캐피탈, 스타유니언의 안드로이드, 그리고 플레이어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모성인가….’
갤러곤한테 인간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이 상황을 설명하는데 이보다 적절한 개념이 없다. 딸의 평안과 행복을 바라는 어미의 마음.
아니면 함 오르트는 과거에 자기가 버렸던 딸에게 속죄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26호의 파장을 이해한 것인지 아드하이도 기세가 확 죽었다. 녀석의 머리에서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마구 새어 나왔다.
‘쯧.’
함 오르트가 무슨 의도로 이런 짓을 한 것인지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놈은 죽었고, 우리에게는 블랙 갤러곤이라는 강적이 남아 있다.
가슴 한 구석을 찌르는 상념을 억지로 정리한 나는 넬 게르마를 불렀다.
[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오드 그라드가 그렇게 강한가?)]
「오드 그라드」「신비한 힘」「있다」
[즈즈즈즈(신비한 힘?)]
「오드 그라드」「상대」「마음」「읽는다」「덕분에」「부상」「당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 블랙 갤러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날아다니는 천재지변 같은 생물이지만 마음을 읽는다거나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는 피부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다.
‘아니야. 혹시 몰라. 내가 모르는 힘이 있을 수도 있어.’
가뜩이나 강력한 놈이 미지의 힘까지 지녔다면 결코 쉬운 적이라 할 수 없다. 놈도 문제지만, 놈의 무리도 고려해야 한다. 분명 나와 싸울 때 부하들을 동원할 테니까.
‘그렇다면 이쪽도 지원군이 필요해.’
당장 싸우기에는 나의 힘이 부족하다. 그러니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
[즈즈즈 즈즈 즈즈(물어볼 것이 있다)]
「검은색 동족」「질문」「답한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백색의 동족을 먹는 것. 그것 말고 조건은 없나?)]
「아마」「그럴 것」
고개를 끄덕이는 넬 게르마.
‘잘됐네.’
지금 내게는 더 많고, 더 강한 아군이 필요하다.
넬 게르마를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보다 저쪽과 싸울 때 활용하는 것이 이득이다. 어차피 아드하이가 성장하려면 아무 화이트 갤러곤이나 먹어도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다른 놈을 구하면 되지.’
오드 그라드의 무리에 있는 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