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12화 (213/400)

Ep. 212

아드하이와 둘이서 잡을 만한 에이펙스라면 무엇이 좋을까.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스카이웨일은 논외다. 놈과 싸우려면 순전히 육체적 능력에만 의존해야 한다. 동족보다 몸집이 한참 작은 아드하이에게는 매우 불리한 상대다.

크리스털윙은 아드하이의 실력을 기르기 적당한 상대지만, 문제가 있다. 놈들을 잡으려면 최소 며칠 이상 걸리는데, 우리에게는 그만큼의 시간이 없다.

따라서 크리스털윙도 제외.

달리 고려해볼 대상으로는 글래셔 핀드가 있지만, 이 역시 모호하다. 글래셔 핀드의 마약성 물질은 갤러곤도 현혹하니까. 화이트 갤러곤은 독 내성이 높으므로 어느 정도 버티겠지만, 후유증을 피하기는 어려울 터. 오드 그라드와의 싸움이 멀지 않았기에, 후유증을 남기는 적과 싸우는 것도 좋지 않다.

그렇다면 아이스 호러는 어떨까?

별로 좋지 않다. 아이스 호러의 경우는 녀석이 두 차례 먹었다. 내가 잡은 것과 함 오르트가 잡은 것, 이렇게 2회. 여러 번 먹었는데 또 새로운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다.

아이스 호러까지 제하면 갤러곤이 남는다. 나쁘지 않은 상대지만, 오드 그라드와 함 오르트 무리 말고는 이 행성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갤러곤도 무리다.

갤러곤까지 포함해 총 5종류의 에이펙스를 제외한 상황.

내 기억에 이들 외에 얼음 행성에 서식하는 에이펙스는 3종류가 있다. 그중 하나인 아케인오르카는 스카이웨일 상위종이니까 빼고, 남은 종류는 둘.

둘 중 하나는 비행 능력이 아예 없다. 공중전에 익숙해져야 할 아드하이의 훈련 대상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자연히 남은 에이펙스는 하나뿐.

지금 나는 아드하이와 함께 놈을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둥지가 위치한 숲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다. 스카이웨일을 잡았던 초대형 산과는 그나마 가깝지만, 거기까지 가려고 해도 시간이 꽤 걸릴 정도다.

오드 그라드 무리에서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조금 멀리 나왔다. 시간을 너무 오래 끌면 위험하니 하루만 돌아보고 귀환할 생각이다.

아드하이의 체력도 계산해야 하기에 짬짬히 산 위에 착륙해 쉬거나 식사를 하거나 했다.

[즈즈(먹어)]

「감사」

나는 아드하이에게 작은 동물 시체를 건냈다. 녀석이 촉수로 피를 쪽쪽 빨아먹는 것을 보며 나도 동물의 시체를 한 입에 삼켰다.

‘이번에 잡을 녀석도 찾기 까다로우니 조급해 하면 안 돼.’

크리스털윙만큼은 아니더라도 찾기 귀찮은 타입이다.

이번에 잡을 놈은 은신형 에이펙스. 아이스 호러처럼 스스로 집을 만들고 숨는 유형에 속한다.

‘집이라기보다는 먹이 창고에 가깝지만.’

놈은 먹이를 잡은 뒤 적당한 장소에 보관, 부패시켜서 먹는 특이한 습성을 지녔다. 오죽하면 별명이 미식가일까.

먹이를 골라 먹는 것처럼 이번에 우리가 사냥할 대상은 머리가 매우 좋다. 갤러곤처럼 높은 사회성, 고도의 회화 체계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이는 놈들이 단독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에이모프와 비슷한 타입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짧은 식사와 휴식을 마친 우리는 다시 탐색을 개시했다.

우리의 날개 아래에는 나무들이 가득한 숲을 떠나 드넓게 펼쳐진 산맥의 능선이 보인다.

비행 중에도 내 보조기관은 산 중턱 부근에 고정되어 있었다. 놈은 산 중턱에 주로 은신처를 만들기 때문에 저 부분을 잘 살펴봐야 한다.

머리가 좋은 만큼 자기 둥지를 잘 숨기지만, 한 가지 인상적인 특징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드하이에게 미리 얘기해 뒀다.

「큰어른」「질문」

산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데 아드하이가 나를 불렀다.

「큰어른」「지식」「많음」「동족」「나」「모르는 것」「전부」「앎」「신기함」

[즈즈즈(그런가?)]

「함 오르트」「오드 그라드」「둘」「모두」「모름」「큰어른」「유일」

녀석은 내가 수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게 신기한 듯했다. 내 입장에서는 별의 움직임을 일일이 다 기억하는 녀석이 더 대단해 보이지만 말이다.

「큰어른」「모든」「먹이」「다」「앎?」

[즈즈 즈즈즈 즈즈즈(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나는 스페이스 서바이벌에 등장하는 생물 정보 중 약 80%를 외우고 있다. 특성이 곧 힘이 되는 에이모프의 특징상 생물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고 있을수록 이득이기 때문이다.

‘나만큼 많이 아는 플레이어는 별로 없었지.’

아마 4위 아웃스페이서 랭커와 1위 사이보그 랭커가 나랑 비슷하거나 나보다 많이 아는 수준일 거다.

다만 이곳은 현실이므로 게임과 달라진 부분이 꽤 많다. 버블아메바에서 씨 데몬이 된 26호, 돌연변이 갤러곤 아드하이. 모두 게임에서는 볼 수 없던 존재다.

녀석들 말고도 이 행성에서 처음 조우한 아이스 호러만 해도 그렇다. 놈은 게임에서 정해진 크기보다 훨씬 덩치가 컸다. 화이트 갤러곤 함 오르트 또한 동족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아직까지는 내 지식이 충분히 효용성이 있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지는 알 수 없다. 결국, 내 지식과 현실 간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죽지 않도록 힘을 기르는 것.’

[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나도 모르는 게 많아. 아직 약하고)]

「큰어른」「몸」「검은색 동족」「유사」「힘」「강함」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너도 성장하면 나보다 세질 거야)]

「진실?」

사실이다. 일반적인 블랙 갤러곤만 해도 스펙상 나보다 우위에 있다. 아드하이가 혹시라도 레드 갤러곤이 된다면 나의 동료들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가 될 거다.

‘물론 작은 몸 때문에 원본만큼은 강하지는 않겠지만.’

내 말을 들은 아드하이가 기쁜지 날면서 꼬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성장」「완료」「뒤」「소원」「있음」

[즈 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그래.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 줄게)]

「약속」

나도 진화와 별개로 계속 유전자 정수를 모아야 하는 입장이다. 녀석이 원하는 먹이가 있다면 함께 잡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계속 산들을 돌아다니던 중, 내 눈에 놈의 흔적이 보였다.

[즈즈즈(찾았어)]

「어디?」

[즈즈(저기)]

나와 아드하이는 눈이 많이 쌓인 어느 산 중턱에 착지했다. 바위는 그리 많지 않고, 나무나 식물이 우거진 산이었다.

‘놈들은 나무나 식물들을 옮겨서 둥지 입구에 심지.’

아마 일반 동물이거나 놈의 습성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갈 것이다.

「저곳」「둥지?」

[즈(응)]

나는 아드하이를 데리고 나무와 덩굴, 이끼와 각종 식물들이 무성히 깔린 곳으로 다가갔다.

이곳이 놈의 둥지이자 먹이창고라고 확신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바닥에서 자라고 있는 덩굴을 뜯어냈다.

‘이 식물종은 근처에서 자라지 않아.’

비행 능력을 갖춘 놈은 항상 먼 지역까지 나가서 먹이를 구해 온다. 그때마다 먹이가 있는 구역의 식물들의 씨앗이나 뿌리들을 챙겨 와서 은신처 입구에 심는다.

즉, 자연적으로 자라지 않는 식물들이 보인다면, 그곳이 놈의 은신처다.

덩굴에 자란 열매를 따서 삼킨 나는 아드하이에게도 하나 던져줬다. 열매를 먹기 시작한 녀석에게 말했다.

[즈즈즈 즈즈 즈즈즈(여기서 잠깐 기다려)]

「나」「함께」「들어감」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아니. 내가 유인한 다음 밖에서 싸울 거야)]

이번에 상대할 적은 매우 변칙적인 스타일의 전술을 선호한다. 숨어 있다가 기습을 하거나, 적을 기만해서 역공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주제에 공격력이 매우 높아서 자칫 잘못하면 아드하이의 몸이 절단날 수도 있다.

‘그럴 바에는 내가 직접 들어가서 끄집어내는 것이 낫지.’

나는 덩굴과 나무들을 잡아 뜯었다. 날개 팔과 전투용 팔로 장애물들을 치우니 큼지막한 동굴이 나타났다.

안에서 희미한 피 냄새와 시체 썩는 냄새가 났다.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확신했다.

‘놈은 안에 있어.’

내가 찾는 놈은 먹이를 다 먹기 전까지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나는 몸을 엎드린 상태로 입구에 들어갔다. 바깥쪽은 좁지만, 안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였다. 통로만 넓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개미굴처럼 수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길을 따라 안으로 더 들어갈 필요는 없다. 내가 할 일은 어디까지나 놈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니까.

‘놈은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나는 적당히 넓은 통로에서 멈춰섰다.

마침 몇 분 전에 사냥의 표상 쿨타임이 끝난 상황. 나는 몸속에 잠재된 생체무기를 꺼내들었다.

머리 갑각의 형태가 변하면서, 시각이 사라지고 다른 감각이 훨씬 민감해졌다. 몸 구조가 뒤틀리며 인면수가 머리 갑각으로 옮겨갔고, 등에서는 뼈 낫 팔이 튀어나왔다. 날개에서는 붉은색 핏줄 모양의 무늬가 새겨졌다. 외형의 변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길이도 전보다 더 커졌다.

변이를 완료한 내 몸이 통로에 꽉 찼다. 몸을 조금만 일으켜도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

모든 것이 정확히 내가 원하는 바였다. 나는 머리 갑각으로 통로의 벽과 천장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빨리 나와라.’

이곳이 무너진다고 해서 놈이 죽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녀석이 애지중지하는 먹이가 전부 쓰레기가 될 뿐.

“스아아아아악! 샤아아악!”

내 의도대로 안쪽에서 분노에 찬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종이 책을 빠르게 펼칠 때와 비슷한 소리가 좁은 통로에 울려 퍼졌다. 놈이 달려오는 소리였다.

놈을 유인하는데 성공한 나는 그대로 뒷걸음질했다.

꿉꿉한 냄새만큼이나 어두컴컴한 동굴 너머에서 놈이 점점 가까워진다. 놈의 발자국에서 강한 원한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 꼬리 끝 집게발 부분이 둥지 밖으로 나갔을 때쯤.

사마귀의 앞다리와 비슷하게 생긴 놈의 팔이 허공을 갈랐다. 엄청난 절삭력을 지닌 놈의 앞발이 내 뿔 중 하나를 잘랐다.

놈이 가까워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재빨리 고개를 뒤로 뺀 덕에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뿔 하나를 잃은 나는 급히 둥지 밖으로 빠져나왔다.

「큰어른」「뿔」「어디 감?」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놈이 나올 거야. 준비해)]

촉수를 빨대처럼 활용해 열매를 먹고 있던 아드하이가 내 경고를 듣자 바짝 긴장했다. 내가 빠져나온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놈이 튀어나왔다.

놈의 앞다리가 또다시 나를 베려고 날아들었지만, 나 역시 준비하고 있었다. 넓은 공간을 활용해 몸을 옆으로 크게 틀어서 놈의 공격을 피한 나는 그 반동을 활용해 꼬리를 휘둘렀다.

꼬리에 달린 집게가 유성추처럼 날아들어 놈의 몸을 후려쳤다. 강한 폭음과 함께 놈이 동굴 앞에 쌓인 눈 위에 놔뒹굴었다.

‘약했어.’

제대로 맞은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집게를 때릴 때 놈이 앞다리를 접어서 피해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놈의 이름은 ‘헬사이드 호넷’. 이름에서 드러나듯 곤충에 가까운 외형을 지닌 에이펙스다.

‘물론 저런 곤충은 세상에 없지만.’

헬사이드 호넷은 사마귀와 말벌, 말파리의 특징이 뒤섞인 외모를 지니고 있다. 다만 일반 곤충의 다리가 6개인 반면 녀석의 다리는 총 8개다. 상체에 사마귀의 앞다리 비슷한 2개의 팔, 그리고 하체에는 6개의 다리가 달렸다.

신체 구조를 보면 상반신을 위로 세운 것, 그리고 접이식 낫처럼 생긴 앞다리를 보면 사마귀와 비슷하다.

구조는 그렇지만 날씬한 느낌의 사마귀와 다르게 놈의 상체는 벌크업한 것처럼 발달되어 있다. 놈의 두터운 갑각 안에는 곤충이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근육이 꽉 차 있다.

‘놈의 속도와 힘은 그 근육에서 나오지.’

단단한 상반신 위에 달린 머리는 말벌과 비슷하게 생겼다. 말벌의 턱에 물리면 매우 아픈 것처럼, 놈의 턱도 위협적인 무기다.

등에는 몸 전체를 다 덮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날개가 달려 있었다. 사마귀를 연상시키는 상반신과 달리 하반신은 말파리의 몸이 통째로 붙어 있는 것처럼 생겼는데, 꽁무니 부근에 길쭉한 생체 관 같은 것이 달렸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저 꼬리에 맞지 않게 조심해)]

「알겠음」

내가 괜히 말파리와 비유한 것이 아니다. 놈의 꼬리에 공격당하면 기생충에 감염된다.

나나 아웃스페이서의 기생충처럼 다른 대상을 조종하거나, 글래셔 핀드의 마약 물질처럼 미치게 만들거나 하지 않지만, 대신 상처에서 수백, 수천 마리의 구더기가 튀어나온다. 내가 전에 신전수호단원을 엿 먹일 때 썼던 ‘파상풍 덩굴’과 비슷한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덩굴보다도 더 끔찍해.’

성인 남성 손가락만한 구더기 수백 마리가 상처 부위와 몸 안을 헤집는다고 생각해 보라. 시각적으로도 충격적이지만, 무엇보다도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나라면 모를까 아드하이면 감염 즉시 전투 불능에 빠질 거다.

그나마 위안이라고 한다면 놈의 신체구조상 꼬리로 아드하이를 감염시키기 어렵다는 부분일까.

‘놈은 몸이 크니까.’

우리 앞에 있는 헬사이드 호넷은 높이 10m, 몸길이 15m 정도. 아드하이를 감염시키려면 몸이 꽤 유연해야만 할 거다.

어두운 국방색 바탕에 짙은 갈색 줄무늬가 있는 헬사이드 호넷은 혐오스러운 겹눈으로 우리를 노려봤다.

“샤아아아, 스아아아.”

놈의 시선이 우리의 날개에 향한다. 우리가 어느 정도의 기동성을 지녔는지 확인한 것이리라.

이윽고 놈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그와 동시와 나와 아드하이도 날개를 폈다.

‘시작이네.’

셋 모두 함께 어두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나, 그리고 에이펙스 두 마리가 포함된 공중전이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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