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15화 (216/400)

Ep. 215

「방금」「뭐임?」

[즈즈 즈즈즈즈즈(나도 모르겠는데)]

내 등에 타고 있던 아드하이가 고개를 내밀어 묻는다.

둥지에 다가가자 뭔가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남은 적이 있었나싶어 보지도 않고 날개 팔로 후려쳤다. 덕분에 상대는 온몸이 박살나 죽었다.

시체를 확인해 보니 죽은 대상은 인간이었다.

‘사람이 왜 여기 있지?’

그는 특수 제작한 강화복을 입고 있었다. 전투력보다는 방한 효과와 온도 조절 등 생명 유지 기능에 중점을 둔 장비였다.

복식만 봐서는 전투원이 아니라 연구원이나 탐사대처럼 보였지만, 이것도 의문이다. 홀로 이곳에 왔을 리 없으니 이 자를 데려온 단체 혹은 조직이 있을 거다.

‘이 행성은 항로에도 안 잡히는 곳인데.’

제이슨은 동료 플레이어들로부터 이 행성의 위치를 전달받은 덕분에 찾아올 수 있었다. 컬트 제국의 항로에도 이 행성 위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나 역시 아드하이가 세세하게 가르쳐 준 덕분에 올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쉽게 이곳까지 올 수 없었을 거다.

아는 자가 거의 없는 우주의 변방에 벌써 스타유니언의 스크리머에 이어 정체불명의 인간 집단까지 나왔다.

‘이들도 나를 잡으러 온 것인가?’

제이슨이 말하길, 자기 말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혼자서도 충분히 나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그 혼자만의 생각이고, 동료들이 정확히 어떻게 생각할지는 불명이다. 제이슨이 실패할 것을 대비해 보험을 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재수가 없으면 갤러곤 말고도 새로운 플레이어하고도 싸워야 할 수도 있다.

‘확인해 보자.’

나는 너덜너덜해진 시체를 입에 집어넣었다. 딱히 맛없는 고기를 적당히 씹으면서 ‘인면충 숙주’ 특성을 활성화했다.

시체에 담긴 유전자 정보가 인면충을 관리하는 기관에 전달되었다. 새 정보를 받은 기관은 기존에 저장하고 있던 5개의 유전자 정보 중 하나를 파기했다. 등에 있는 둥지에서도 기존에 있던 놈은 순식간에 녹아서 사라지고, 새 인면충이 탄생했다.

‘나와라.’

내 명령을 받은 인면충이 종양을 닮은 둥지의 막을 찢고 밖으로 나왔다. 방금 먹은 시체와 똑같은 얼굴을 한 벌레는 자기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두리번거렸다.

“■?!”

이어서 자기가 벌레가 됐다는 것을 깨달은 놈이 발광하려고 한다. 나는 인면충을 제어하는 뇌파를 쏴서 놈을 강제로 진정시켰다.

“물어볼 것이 있다. 대답하라.”

내 입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인간 머리를 지닌 파리괴물이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너는 누구고, 어디 소속이지?”

“■■ ■슨…나, 저, 저는 콜린 러셀입니다.”

내가 허가한 덕분에 인간의 말을 쓸 수 있게 된 파리괴물. 내 제어 아래에 있는 녀석은 처음에는 더듬거리다가 점점 안정화되었다.

“저는 시현 유진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시현 유진?”

“예. 그분께서 대업을 이루시기 위해 이곳을 찾으셨습니다.”

녀석이 말한 내용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시현 유진이라고?’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내가 이 세계에 온 이후 처음으로 맞닥뜨린 강적.

‘그녀는 죽었을 텐데?’

나의 주력 특성 중 2개가 그녀를 잡아먹고 얻은 것들이다. ‘의태기관’과 ‘괴물의 촉수’ 말이다.

지금이야 정수수확자의 턱 덕분에 머리만 먹어도 되지만 이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상대로부터 유전자 정수를 얻기 위해서는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전부 먹어 치워야만 했다.

‘그녀는 분명 죽었어. 그렇다면 복제인간이거나 아니면 그녀를 사칭한 존재라는 건데.’

시현 유진과 조우했을 당시, 그녀는 스페이스독 카르텔로 위장하고 있었다. 이름에서 보이다시피 그녀의 진짜 정체는 메가콥의 노블캐피탈 중 하나, 유진 가문의 일원. 그들이 적대 세력인 스타유니언의 핵심 기술인 복제인간 제작 기술을 훔쳤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게다가 복제인간은 부작용도 많아.’

스타유니언의 복제인간은 정신이 불완전하다. 오로지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존재라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오죽하면 게임에서 복제인간은 스타유니언의 주적으로 나올 정도다.

에고가 하늘을 찌르는 노블캐피탈이 과연 그런 불확실한 요소에 투자를 할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녀는 몇 달 전, 내게 죽었다.”

“아닙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대업을 이루겠다고 맹세하신 그날부터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으십니다.”

“대업?”

“유진이라는 이름을 되찾는 것. 가주직을 찬탈한 역적을 벌하는 것. 그것이 시현 유진님의 숙명입니다.”

듣고 보니 짐작 가는 부분이 있다. 제이슨이 말해 준 플레이어들 중 한 명이 유진 가문의 가주였다.

‘아키라 유진이라고 했나?’

일본식 이름만 고집하는 데다가, 제이슨 표현에 따르면 중2병 걸린 늙은이처럼 행동하는 플레이어.

두 가지 특징을 가진 랭커는 한 명밖에 없다. 놈이 내가 아는 그 ‘메가콥 랭커’가 맞는다면, 가문을 장악할 때 필시 피바람이 불었을 거다.

‘실력은 좋지만 성격이 아주 엿 같으니까.’

커뮤니티에서도 소시오패스라는 소리를 듣던 랭커였으니 이곳에서는 한층 더 하리라.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겠어.’

내게 잡아먹히기 전, 시현 유진은 아키라 유진에게 숙청당한 세력의 대표였을 가능성이 높다. 러셀 가문은 잔당들이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해 쓰는 거짓 가문명이고.

그런 그녀가 나와 싸우다가 죽었으니, 숙청 세력 입장에서는 꽤 난감했을 거다.

‘그래서 대역을 세웠구나.’

놈이 말하는 시현 유진은 아마도 죽은 우두머리의 대역. 그녀를 사칭하는 존재가 부하들을 이끌고 이곳에 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왜 여기에 왔는지 물었다.

“시현 유진님께서 말씀하시길, 이곳에 중요한 유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유물? 어떤 유물이지?”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저 유물이 검은색 산 어딘가에 있으니 찾아야 한다고만 들었습니다.”

이후에 몇 가지를 더 물어 봤지만 더 이상 영양가가 있는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스크리머에 대해 물어봐도 놈은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괜찮아.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어.’

다행스럽게도 플레이어들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역으로 시현 유진, 아니 그녀의 대역이 이끄는 세력은 플레이어를 증오하는 세력에 가까우니까.

‘오드 그라드를 잡은 다음 찾아봐야겠다.’

놈이 말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하나 있다. 이 척박한 행성을 탐사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무기, 장비,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각종 물자들.

당연한 얘기지만 이를 보급하려면 함선이 필요하다. 그것도 꽤 규모가 있는 함선.

‘아마 행성 밖 근처에 있겠지?’

함선을 치면 시현 유진 세력이 뭘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다 알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인면충을 다시 둥지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등 위에서 지루해하고 있던 아드하이가 반색을 했다.

「끝남?」

[즈즈즈 즈즈즈즈(미안해. 지루했지?)]

「괜찮음」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안에 있는 것들만 챙기고 가자)]

의외의 장소에서 흥미로운 정보를 얻었다.

이후 나는 아드하이와 함께 헬사이드 호넷의 먹이창고를 털었다. 콜린 러셀이 남긴 흔적 덕분에 미로를 헤매지 않고 바로 먹이창고로 갈 수 있었다.

창고에 그 말고도 새로운 정보원은 없을까 확인했지만, 생존한 생물은 하나도 없었다. 밀폐된 공간에는 부패, 발효된 액체로 가득 찬 고치들만 가득했다.

「이거」「맛」「좋음」

고치에 촉수를 꼽아서 맛을 본 녀석은 곧바로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아드하이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나도 처음 봤다.

‘그렇게 맛있나?’

천장에 매달린 수십 개의 고치 중 하나를 따서 쭉 마셔봤다. 내 눈도 내 통제를 벗어나 녀석과 똑같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었다.

‘엄청 맛있는데?’

맛은 모히또랑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훨씬 톡톡 쏘는 맛이 있었다. 향기도 아주 일품이어서 목과 몸 전체에 청량함이 확 하고 퍼지는 느낌이었다. 어찌나 맛이 좋은지 전투로 인해 생긴 부상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즈즈 즈즈즈즈(몇 개 가져갈까)]

「동의」「동의」「동의!」

나는 고치를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겼다. 전투용 팔과 침식 촉수를 전부 동원하니 15개 정도 들 수 있었다. 나머지는 아드하이와 내 뱃속에 들어갔다.

그렇게 헬사이드 호넷의 창고까지 깔끔히 턴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즈즈 즈즈즈즈(그럼 돌아가자)]

나와 아드하이는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리가 둥지에 도착할 때쯤이면 오드 그라드 무리에서도 뭔가 움직임을 보일 터.

‘둥지에서 상처를 빨리 회복시키고.’

사냥을 나선 화이트 갤러곤을 노린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놈들을 사냥할 것인가 인데….’

구름을 가르며 날아가던 도중에도 나는 오드 그라드 무리와 어떻게 싸울지 계속 고민했다.

-

수십, 수백 개 이상의 가지가 잔뜩 자란 나무들이 가득한 그 숲은 아주 오래된 곳이었다. 나무들 중 가장 어린 개체의 수명만 해도 족히 수백 년에 달하는 그곳에 한 짐승이 몸을 바짝 낮추고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호롱불을 닮은 호박색 눈동자를 빛내는 그 짐승은 날짐승의 머리에 4개의 다리와 가느다란 꼬리를 지녔다. 머리에는 뾰족한 뿔 2개가 솟아 있었다.

짐승은 두꺼운 앞발로 땅에 자란 버섯처럼 생긴 식물을 땄다. 그리고 부리로 그 식물을 집어 잘근잘근 씹었다.

간단히 허기를 달래는 와중에도 짐승의 시선은 어느 한 군데에 고정되어 있었다.

짐승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숲의 밖. 그곳에는 깎아지는 바위 절벽과 여러 개의 동굴들이 있었다. 이 행성에 있는 절벽 대부분이 얼음 지반이 갈라져 생긴 크레바스에 가까운 형태였지만 그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위 절벽 아래에서는 차가운 냉기 대신, 뜨끈한 열기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만약 이 자리에 사이킥 파워를 감지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저 절벽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에너지의 소용돌이를 감지했을 거다.

짐승이 바라보고 있는 저 바위 절벽이 바로 갤러곤들의 서식처, 용의 둥지다.

“…….”

식물을 먹어 치운 짐승, 하늘의 어머니는 다시 꼼짝도 하지 않고 감시에 집중했다. 요 이틀간 그녀는 잠깐의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갤러곤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 혼자라면 모를까, 지금 그녀의 후방에는 동료들이 있다.

‘동료라.’

씨 데몬, 갤러곤, 스크리머, 그리고.

‘에이모프.’

현실의 자신, 최서아에게 자기가 5위 랭커 모프박이랑 같이 움직인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필시 개소리하지 말라고 화를 내리라.

모프박이는 잘 모르겠지만, 원래 그녀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미워하는 쪽에 가까웠다. 만약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를 만났다면 어떻게든 죽이려고 들었을 거다.

‘그 녀석 때문에 클랜이 쪼개졌으니까.’

그때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게임 속 세계에서의 인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인지 말이다.

그녀의 클랜, 세비지 클랜의 인원은 특유의 컨셉으로 인해 인원이 원래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모프박이와의 전투 이후 클랜에 남은 자는 그녀가 유일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진저리치며 게임을 접거나 다른 클랜으로 떠나버렸다.

덕분에 그녀 또한 반강제적으로 현실 세계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최서아는 여러 이유로 현실 도피 중이었기에 모프박이를 극도로 증오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

놈 때문에 게임을 반쯤 접고 현실로 쫓겨났는데, 이제는 서로 사선을 헤쳐 나온 전우가 되다니. 더 기가 막힌 것은 모프박이와의 관계가 세비지 클랜의 동료들보다 훨씬 친밀한 관계가 됐다는 부분이다.

얼마 전 그의 앞에서 마음을 털어놓은 이후,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그는 아마 모르겠지만.

‘눈치가 없어 보이던데.’

그렇지 않다면 26호나 아드하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다. 게임에서도 그랬지만 녀석은 인간 관계가 참으로 협소해 보였다.

‘아니 그건 모르는 일인가?’

하늘의 어머니나 모프박이나 서로가 현실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모른다. 친밀한 관계가 됐음에도 그것만큼은 누구도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긴 당연한가.’

지금의 그녀는 강인한 육체, 날렵한 몸, 그리고 멋진 갈기를 지녔지만 현실의 자신은 그렇지 않다. 하늘의 어머니가 아닌 ‘최서아’는 그저 그런, 아니 오히려 평균 이하의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누구에게도 최서아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모프박이도 비슷하지 않을까.

‘걔 성격을 보면 분명 친구가 없을…음?’

속으로 모프박이를 씹고 있던 그녀는 둥지에서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잡생각을 중단했다.

그녀는 눈에 힘을 줘서 집중했다. 절벽에 있는 동굴 하나에서 갤러곤 몇 마리가 나오고 있었다.

‘저건?’

녹색 비늘을 지닌 갤러곤 2마리가 갤러곤 하나를 들고 다른 동굴로 옮기고 있었다. 동족에게 들려 있는 갤러곤은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팔과 다리 중 멀쩡한 부위가 하나도 없었다.

‘함 오르트?’

엉망이 된 갤러곤이었지만 그 모습은 그녀도 기억하고 있었다.

뿔이 부러지고 날개가 뜯어진 빈사 상태의 화이트 갤러곤은 아드하이의 어미, 함 오르트가 틀림없었다. 옆에 있던 그린 갤러곤들은 함 오르트를 거칠게 끌며 다른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된 거지? 죽은 것이 아니었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을 봐서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다른 갤러곤들이 험하게 다루는 것을 보면 뒤늦게 배신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포로로 잡힌 건가?’

중요한 정보니까 기억해 둬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때.

다른 동굴에서 화이트 갤러곤 12마리가 튀어나왔다. 놈들은 날개를 펴서 절벽 위로 날아올라 하늘 위로 사라졌다.

‘시작됐어!’

놈들이 사냥을 떠난 모습을 본 그녀는 한동안 얌전히 대기했다. 더 이상 움직임이 보이지 않은 뒤에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숲 위에 떠 있는 검은 하늘이 요동친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절벽 아래 깊숙한 동굴에서 짙은 어둠이 뛰쳐나왔다. 소리 없이 솟구친 그림자는 순식간에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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