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16
“오셨습니까?”
둥지로 돌아오니 PS-111이 우리를 맞이했다. 하늘의 어머니와 26호는 보이지 않았다.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별일 없었어? 적을 만나거나 그런 거)]
“생물명 ‘갤러곤’ 개체는 조우하지 않았습니다. 메인 컨트롤러는 컬트족 순양함에 있습니다.”
[즈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 즈즈즈(다행이네. 하늘의 어머니는 아직 안 왔고?)]
“‘중간애기’는 정찰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보아하니 PS-111은 둥지를, 26호는 순양함에서 갤러곤들을 지키는 중인가 보다. 하늘의 어머니는 오드 그라드 무리를 감시하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들고 있던 고치 몇 개를 둥지에 내려놨다.
“그건 뭡니까?”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헬사이드 호넷이 만든 고치. 하나 먹어볼래?)]
“흥미로워 보이는 유기 화합물로 판단됩니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안에 액체가 있으니까 들이마시면 돼)]
“확인했습니다.”
PS-111은 길쭉하게 뻗은 다리들을 움직여 고치에 다가 갔다.
녀석은 능숙하게 칼날이 달린 다리를 이용해 고치를 살짝 찢었다. 그리고 갈고리 손톱이 달린 손을 활짝 피더니 밖으로 흘러내리는 액체에 가져다 댔다.
스타유니언에서 만든 에너지 흡수 장치, ‘블러드 리버’를 먹은 녀석은 가끔 저런 식으로 양분을 섭취했다. 저러고도 맛을 느낄 수 있나 싶지만, 녀석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해당 유기 화합물을 대량으로 구할 수 있습니까?”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내가 들고 온 것이 전부야)]
“추후 유기 화합물의 추가 확보를 건의합니다.”
처음 고치의 액체를 마셨을 때 상처가 낫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기분 탓이 아니었다. 녀석의 분석대로 영양분이 풍부해서 그런 것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생물을 통째로 녹인 뒤 발효시킨 거니까.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순양함에도 갖다 줘야겠네)]
「어린 동족」「먹이?」
[즈(그래)]
녀석들이 순양함에 틀어박힌 지 하루하고도 한나절이 지났다. 이 주변에도 그린 갤러곤 추격대가 나타날 수 있기에 순양함의 갤러곤들은 사냥을 나서지 않는 상태였다.
순양함에 컬트 승무원들의 전투식량이 대량으로 남아 있지만, 갤러곤이 먹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니 지금까지 계속 굶고 있을 터.
‘굶어 죽으면 큰 손해야.’
블루 갤러곤들을 데려온 것은 아드하이와 함 오르트의 잔당들을 회유하기 위한 것. 아직 목숨을 구해준 값도 받지 않았는데,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내 의도를 모르는 아드하이는 내가 녀석들을 챙겨 주려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어린 동족」「배고픔」「해소」「어른」「일」「나」「어른」「동족」「먹이」「전달」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그래. 이거랑 이것만 들어 줘)]
「문제」「없음」
PS-111을 두고 둥지에 나선 뒤에도 녀석은 계속 재잘거렸다. 며칠 전에도 그랬지만, 어린 해츨링들에게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것 같았다. 자기를 버린 동족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말이다.
‘아픈 기억을 없애고 싶어서 그러는 걸지도.’
나는 아드하이의 수다에 어울려주며 함께 숲을 가로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들 사이로 아이보리색 순양함이 보였다. 순양함 안에서 기생충들이 심어진 컬트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큰애기 안녕!」
그리고 26호도 나를 감지하고 배 안에서 파장을 보냈다. 그러고 잠시 후, 녀석이 개방된 격납고에서 폴짝 튀어나왔다.
‘응?’
내게 다가온 녀석은 파란색 비늘을 지닌 갤러곤 5마리를 껴안고 있었다. 몸길이 2m를 넘기는 블루 갤러곤들은 10m 크기의 분홍색 해파리에 푹 파묻힌 상태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어미의 품에 안긴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즈즈(그건?)]
「파닥파닥 애기들 배고프다고 해서 먹이 줬어!」
[즈즈(먹이?)]
녀석 말대로 블루 갤러곤들의 촉수들이 26호의 몸 위에 깔린 사이킥 파워에 꽂혀 있었다.
‘사이킥 파워를 먹이고 있는 건가?’
주기적으로 가느다란 촉수가 빨대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니 사이킥 파워를 흡입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26호도 죽은 씨 데몬의 사이킥 파워를 흡수해서 급격히 성장했다. 같은 사이킥 생물인 갤러곤에게 힘을 전달해주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그러고 보니 비늘 색깔이 달라진 것 같은데….’
다시 보니 녀석에게 안겨 있는 블루 갤러곤들의 색깔이 묘했다. 전반적으로 파랑색을 띠고 있지만 녹색의 줄무늬 같은 것이 있었다.
[즈즈즈즈 즈즈즈(원래부터 저랬나?)]
「모름」
아드하이도 이상한지 해츨링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26호 뒤에서 함 오르트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이트 갤러곤 넬 게르마, 녀석이 데려온 그린 갤러곤 3마리였다.
나는 그들에게 가져온 고치들을 내밀었다. 그제야 내 팔과 침식 촉수들이 들고 있던 고치를 확인한 26호가 물었다.
「그게 뭐야?」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먹을 것. 다들 먹으라고 가져 왔어)]
「이상하게 생겼어.」
「외형」「웃김」「하지만」「꿀맛」
아드하이의 말에 호기심이 동했는지 녀석이 촉수를 꺼내 고치를 휘감았다. 그리고 블루 갤러곤을 감싸고 있는 몸 말고 다른 부위를 보자기처럼 펴더니 고치를 통째로 꿀꺽 삼켰다.
반투명한 분홍색 몸 안에서 고치가 녹아내리며 안에 있던 액체가 흘러나왔다. 액체를 흡수한 녀석의 몸이 미러볼처럼 반짝거리며 빛났다.
「맛있다!」
녀석이 먹기 시작하자 다른 갤러곤들도 고치에 관심을 보였다. 녀석들 모두 고치를 맛본 순간,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었다.
「감사」「은혜」「잊지 않음」
고치를 약간 맛보고 해츨링들에게 넘긴 넬 게르마가 내게 인사했다. 옆에 있던 그린 갤러곤들도 눈치를 보더니 내게 감사의 사념파를 보냈다.
‘딱히 감사받을 일을 한 것은 아닌데.’
공짜로 준 것은 결코 아니다. 나중에 준만큼 다 돌려받을 생각이니.
갤러곤들에게 먹이를 가져다 준 나는 부상을 회복하기 위해 둥지에 돌아왔다. 그리고 밤이 될 때쯤 하늘의 어머니가 둥지로 귀환했다.
그녀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2개 들고 왔다.
하나는 오드 그라드 무리가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 화이트 갤러곤 12마리가 일제히 둥지를 나섰다고 한다.
내 계획은 둥지를 치기 전, 사냥에 나선 화이트 갤러곤들을 각개 격파하는 것이었다. 아드하이가 성장하려면 화이트 갤러곤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화이트 갤러곤의 유전자 정수가 필요하고.’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였으나 두 번째 정보가 문제였다.
[즈즈즈즈 즈즈즈즈(함 오르트가 살아 있다고?)]
「응. 다른 갤러곤들이 녀석을 옮기는 것을 봤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의 어머니 말에 따르면 아드하이를 낳은 어미는 아직 살아 있었다. 사실 살아있다기보다는 숨만 붙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함 오르트의 생존 소식을 듣자 넬 게르마를 비롯해 그린 갤러곤 3마리도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자기 우두머리였으니 어떻게든 구출하고 싶은 것 같았다.
‘흠.’
상황이 복잡해졌다.
일단 나는 순양함에 숨은 갤러곤들의 우두머리가 아니다. 그들의 무리와 싸워서 꺾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보호하고 먹이를 가져다줬지만, 그것만으로는 전(前) 우두머리로부터 등을 돌리도록 만들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저들도 나를 따르겠지만….’
당장에는 불가능하니 의미 없는 가정이다.
그렇다고 함 오르트를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문제다. 놈은 아드하이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갤러곤이다. 놈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직 많다.
“각개 격파 이후 둥지를 칠 때 구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글쎄. 부상이 심각해 보여서 그때까지 버틸지 모르겠어.」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순백의 여왕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방치되어 있었으니까. 화이트 갤러곤은 튼튼한 생물이니 하루나 이틀 정도는 버티겠지만 그 이상은 어찌될지 모른다.
‘어떻게 할까.’
사실 이는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다.
둥지에는 다수의 적이 남아 있다. 그들을 뚫고 함 오르트를 구출한다는 것은 사실상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절대적으로 열세에 위치한 우리가 선택할 전략은 아니다.
하나 그렇다고 대놓고 함 오르트를 버리겠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
그렇게 하면 넬 게르마나 그린 갤러곤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들은 내 의견을 따르겠다고 했으니, 대놓고 내게 저항하지는 않을 거다.
‘최선을 다해 싸워줘도 힘든 마당에 그런 애매한 태도는 곤란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고민하는데 아드하이가 내게 다가왔다.
「큰어른」「함 오르트」「걱정」「불필요」
[즈즈(응?)]
「나」「확인」「함 오르트」「강함」「동족」「비교」「불가」「고통」「극복」「가능」「나」「믿음」「생존」「가능」
함 오르트는 강하니까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아드하이.
「유성의 딸」「맞음」
「동의」
함 오르트의 딸이자 갤러곤의 구세주로 여겨지던 아드하이의 말에 다른 갤러곤들도 동의를 표했다.
[즈즈즈즈(괜찮겠어?)]
나의 함축적인 질문을 이해한 아드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음」
[즈(그래)]
녀석이 무슨 의도로 저렇게 행동한 것인지 안다. 똑똑한 녀석이니 내가 곤란해 하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겠지. 그래서 자기가 나서서 갤러곤들을 대신 설득한 것이다.
다만 행동과는 별개로 녀석의 눈에는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자기 어미에 대한 애증의 증거일 터.
‘녀석의 마음이 풀리기 전까지 놈은 살아 있어야야 해.’
함 오르트의 처우를 결정하는 것은 흑룡 오드 그라드가 아니라, 놈의 버려진 자식 아드하이다.
어쨌든 아드하이 덕분에 어떻게 움직일지 정해졌다. 사냥에 나선 화이트 갤러곤을 먼저 정리하고 최대한 빨리 함 오르트를 구출하는 것.
「넬 게르마」「사냥터」「알고 있음」
[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좋아. 그럼 그쪽부터 먼저 가 보자)]
화이트 갤러곤 사냥에는 아드하이, 나, 26호, 넬 게르마, 이렇게 넷이서 가기로 했다. 하늘의 어머니는 여전히 감시역, PS-111은 순양함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컬트의 함대 체계는 복잡하지만 승무원들이 있으니 가동하는데 문제없습니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혹시 모르니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우리는 바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떠나기 전, 나는 하늘의 어머니를 따로 불렀다. 기껏 돌아왔는데 다시 떠나보내는 것이 살짝 걸렸기 때문이다.
「미안하긴. 날면서 싸우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나.」
[즈즈즈즈 즈즈즈즈(그렇다면 다행이고)]
「모프박이한테 벌써 몇 번째 사과를 듣는지 모르겠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정말 괜찮은 것 같군)]
「아, 혹시라도 갤러곤의 심장을 구할 수 있으면 남겨줘.」
[즈즈즈 즈즈즈(그럴게. 조심해)]
그녀는 대답 대신 한쪽 눈을 깜빡이며 윙크를 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를 떠나보낸 뒤, 나는 26호를 등에 태우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나를 기다리던 아드하이와 넬 게르마가 나를 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냥터」「이쪽」
우리는 넬 게르마의 안내를 받아 빠르게 움직였다. 각개 격파 작전에서는 시간이 생명이기에 우리는 최대한 서둘렀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이동했다. 먹구름이 가득한 밤하늘을 가르며 날던 중, 선두에 선 넬 게르마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근처」「사냥터」
「나」「동족」「힘」「하나」「감지」
[즈즈즈 즈즈즈(얼마나 가까워?)]
「힘」「희미함」「거리」「상당함」
아드하이의 말에 우리는 속도를 줄였다.
‘적이 하나라니. 운이 좋네.’
보통 두세 마리가 함께 움직인다고 하던데 의외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두 갤러곤에게 계속 감시를 부탁했다.
구름 속에 숨어 이동하다 보니 내게도 땅과 가까운 곳에서 사이킥 파워가 느껴졌다. 저쪽도 우리의 사이킥 파워를 감지했는지 움직임이 급격히 빨라졌다.
‘눈치챘어.’
[즈즈 즈즈 즈즈(지금 바로 치자)]
「동의」
[즈즈즈(꽉 잡아)]
「응!」
26호에게 경고한 나는 날개 각도를 조절해 급강하했다. 넬 게르마와 아드하이 또한 조금도 뒤처지지 않고 내 곁에 붙어 따라왔다.
칠흑처럼 검은 숲 위에 하얀 점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 보인다.
우리로부터 벗어나려는 화이트 갤러곤이었다.
나는 녀석이 도망치는 방향을 예측해 그쪽으로 일반 사이킥 브레스를 쐈다. 뒷머리와 목, 턱 아래에 걸친 촉수에 모인 보라색 힘이 한 줄기의 열선이 되었다.
폭음과 함께 화이트 갤러곤 앞에 있던 나무와 대지가 갈라졌다. 간발의 차로 내가 쏜 사이킥 브레스를 피한 놈은 바로 초가속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나 혼자만 있지 않다. 내 옆에 있던 넬 게르마가 사이킥 브레스를 두 차례 토해냈다.
적은 곡예비행으로 하늘에서 떨어진 보라색 벼락 중 하나는 무사히 피했다. 남은 하나가 놈의 날개를 찢으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도망치던 놈이 고개를 돌려 반격용으로 사이킥 브레스를 쐈기 때문이다.
눈을 닮은 순백의 용 두 마리가 쏜 보라색의 열선이 공중에서 충돌한다.
멀리서 치는 번개 소리인지, 아니면 그들의 힘이 격돌해서인지 엄청난 굉음이 주변 일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놈은 자기보다 넬 게르마가 강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사이킥 브레스만 상쇄시키고 다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동안 놈에게 접근한 아드하이가 특유의 에너지탄형 사이킥 브레스를 연발로 쏴 갈겼다.
기관총에서 발사된 총탄처럼 아드하이의 사이킥 브레스가 빠르게 놈에게 날아든다. 이번에는 놈도 제대로 피해내지 못했다. 사이킥 브레스 중 세 발이 놈의 날개 한 쪽을 찢고 지나갔다.
놈은 더 이상 날지 못하고 숲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됐어.’
놈의 추락을 확인한 나는 아드하이, 넬 게르마와 함께 숲에 착지했다. 부서진 나무들 사이에 백색의 갤러곤이 쓰러져 있었다.
‘크기가 작아.’
그린 갤러곤이나 아드하이보다는 크지만, 넬 게르마에 비하면 확연히 작은 크기였다. 화이트 갤러곤이 된 지 얼마 안 됐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아드하이를 성장시키는 것과는 상관없겠지?’
녀석에게 먹여보면 모든 것이 확실해지리라.
나는 오드 그라드 무리의 갤러곤에게 다가갔다. 놈은 그저 나를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우리를 무서워하는 것일까. 날개만 부러졌을 뿐 다른 부위는 비교적 멀쩡했다. 호전적인 갤러곤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이미 달려들고도 남았다.
‘소심한 개체인가?’
그때 나를 노려보던 놈이 사념파를 흘렸다.
「너」「검은색 동족?」
[즈(응?)]
「덫」「걸림」
‘덫?’
녀석의 사념파를 인지한 순간, 전신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무거워지고 에이모프 특유의 초월적인 감 전체가 비상벨을 울리는 이 기분.
포식자 감각이 전해주는 미래와는 다른 강렬한 이 감각은 전에 딱 한 번 느껴봤다.
‘제국모함이 코스믹 볼트를 쐈을 때.’
행성 위를 불태우는 절대적인 힘과 마주했을 때 느꼈던 그 위기감과 비슷했다.
그 말은 즉, 절대적인 힘을 지닌 존재가 내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
내가 느낀 위기감은 나 혼자만 인지한 것이 아니었다.
「검은색 동족?」「큰어른!」「위험!」
「우두머리」「가까이」「있음!」「위험!」「위험!」「위험!」
돌아보니 아드하이와 넬 게르마가 공황에 빠져 몸을 바들바들 떤다.
게다가 등에 타고 있는 26호도 말없이 사이킥 파워를 마구 풀어냈다. 몸에서 지느러미와 촉수도 전부 생성하고, ‘심해의 공포’ 특성도 활성화했다.
‘26호?’
내 등 위라서 몸 크기만 그대로일 뿐, 완벽히 무장한 녀석. 26호가 이 정도로 경계하는 것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오드 그라드!」「위대한 오드 그라드!」「왔음!」
넬 게르마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사념파를 쏜 순간.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너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두 개의 날개를 지닌 거대한 흑룡의 그림자가.
‘오드 그라드!’
갤러곤 둥지의 왕이자 이 행성의 지배자.
아드하이의 아버지이자 검은 폭군, 오드 그라드가 이곳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