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17화 (218/400)

Ep. 217

검은 존재가 구름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낸다. 먼 거리임에도 간과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몸보다 배 이상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놈은 숲 위에 내려앉았다.

놈과 가까워지자 보조기관이 짜릿하게 울린다. 블랙 갤러곤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강대한 사이킥 파워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내가 싸워온 에이펙스 중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존재.

검은 용 오드 그라드가 내 앞에 있다.

「큰애기야, 조심해.」

위에 올라탄 26호가 내게 경고한다. 녀석의 파장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블랙 갤러곤이 어느 정도 강한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게임에서는 수십 번 이상 잡은 생물이니까.

다만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놈이 왜 이곳에 있느냐는 점이다.

‘어떻게 알고 왔지?’

하늘의 어머니가 놈의 둥지를 감시하는 동안, 둥지에 출입한 생물은 못 봤다고 했다. 그린 갤러곤 추적대도 돌아오지 않았으니 놈이 나의 존재를 알 가능성은 희박하다.

‘설마 순양함 기록에 남은 그린 갤러곤이 알린 건가?’

내가 순양함과 싸우는 것을 보고 오드 그라드에게 보고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 있다. 날개가 부러진 화이트 갤러곤이 분명 ‘덫’이라고 말했다.

즉 내 계획, ‘화이트 갤러곤이 사냥에 나갔을 때를 노린다’는 계획을 놈이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나의 예상을 깨고 놈이 나타나는 바람에 적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지금의 나는 최상의 상태가 아니다. 몸에 생긴 상처는 거의 회복되었지만 특성 부분이 문제다. ‘사냥의 표상’, ‘유기적 진화’를 통한 거대화 능력, ‘레버넌트 기관’ 모두 봉인된 상태니까.

그리고 내 동료들도 뿔뿔이 흩어져 있다. 이 자리에 있는 26호, 아드하이, 넬 게르마만 데리고 놈과 싸워야 한다.

최상의 상태로 싸워도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적인데, 부족한 상태로 싸워야 하니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정하자.’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은 눈앞의 강적으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일이다.

나는 침착하게 놈을 주시했다. 땅에 내려앉은 놈은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나를 노려봤다.

놈 또한 나처럼 탐색전에 나선 것이다.

‘…머리는 제법 좋은 것 같고.’

외형만 봤을 때 놈의 크기는 이곳에서 본 어느 갤러곤보다도 거대했다. 내가 사냥의 표상을 써서 커졌을 때랑 비슷할 정도다.

몸은 뱀을 연상시키는 길쭉한 형태였으나, 그렇다고 날씬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목과 가슴, 허리, 꼬리까지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았고, 그 위는 흑요석을 연상시키는 비늘로 덮여 있었다.

머리에는 염소나 양의 뿔처럼 구부러진 뿔이 6개 있었고, 입가에는 긴 촉수다발이 수염처럼 흘러내렸다.

여기까지 봤을 때는 동양의 용과 같이 고귀한 풍모를 지녔다 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놈의 눈 때문이다.

함 오르트, 아드하이, 넬 게르마, 모두 자수정을 닮은 아름다운 보라색 눈을 지녔다. 놈 또한 보라색의 보석안(寶石眼)을 지녔지만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오드 그라드의 눈에서는 포악함과 교활함만이 느껴졌다. 눈에서 기품과 약간의 장난기가 엿보이는 아드하이와는 천지 차이였다.

‘잔혹한 성격의 적이라.’

일반 생물보다는 플레이어에 가까운 적으로 상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이가 많다고 들었는데 과연 어떨지.’

게임에서는 노화 상태가 NPC에 반영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갤러곤의 경우도 동일한 색을 지닌 개체들 간에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는 현실. 함 오르트만 해도 같은 화이트 갤러곤인 아드하이나 넬 게르마보다 강하다. 흑룡 오드 그라드에게 노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미지수지만, 딱히 힘이 약해진 것 같지는 않다.

‘함 오르트를 제압했을 텐데도 몸에 부상 하나 없어.’

검은색 비늘 위에 남은 흉터들이 보이긴 했으나 이는 함 오르트가 만든 흔적이 아니다. 다시 말해 놈은 부상 하나 입지 않고 함 오르트를 제압한 것이다.

‘음?’

놈을 살펴보던 중,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놈의 앞발에 보석이 달린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저런 장비는 본 적이 없는데?’

게임에서는 등장하지 않은 물건이다. 보석이 정제된 형태인 것을 보면 전문가의 가공을 거친 것이 분명했다.

‘주의해 두자.’

내가 놈의 몸에서 특이점을 발견한 것처럼, 놈 또한 나의 특별한 점을 발견했다. 놈은 내 등 위에 있는 26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블랙 갤러곤이든, 씨 데몬이든 모두 강력한 사이킥 생물. 서로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느끼는 듯했다.

이윽고 놈은 26호보다 자기가 우월하다고 판단했는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비늘 위에 물처럼 흐르던 사이킥 파워가 머리를 향해 빠르게 모여 들었다.

‘온다.’

첫 공격은 사이킥 브레스였다. 고속으로 힘을 충전한 놈이 검은색에 가까운 어두운 보라색 열선을 발사했다.

나는 날개를 펼쳐서 몸을 위로 띄웠다. 열선이 내 하반신 아래의 갑각을 살짝 스쳤다. 스친 부분은 흔적도 남지 않고 증발했다.

‘…반사는 무리야.’

초능력 반사 장갑이 발동하기 전에 갑각이 사라지니 의미가 없다. 공중에 날아올라 공격을 피한 나는 놈을 향해 날아가려 했다.

그때 놈이 사이킥 브레스를 쏘면서 고개를 위로 들었다.

‘쯧.’

사이킥 파워가 남아도는지 놈은 중간에 끊지 않고 계속 토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열선이 내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나는 날개로 공기를 세차게 때려 비행 속도를 올렸다.

내가 시선을 끄는 동안, 아드하이와 넬 게르마가 오드 그라드를 공격하려 했다. 넬 게르마가 에너지를 먼저 토해냈지만, 이를 막아서는 존재가 있었다.

날개가 부러진 화이트 갤러곤이 브레스를 쏴서 넬 게르마의 공격을 상쇄한 것이다.

「반역자」

「넬 게르마」「함 오르트」「섬김」

「반역자」「죽음」

「동족」「처리함」「검은색 동족」「지원」

「나」「이해」

넬 게르마가 화이트 갤러곤을 마크하는 사이 아드하이가 나를 지원하러 왔다. 녀석은 우회기동을 펼쳐 오드 그라드의 뒤쪽으로 돌아간 뒤 사이킥 브레스를 쐈다. 이제는 녀석의 고유 기술이 된 보라색 에너지탄의 세례가 오드 그라드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이에 오드 그라드는 브레스를 잠시 끊고 날개를 들어 머리를 가렸다. 아드하이의 에너지탄이 놈의 날개에 맞고 폭발했다.

그러나 놈의 날개는 바깥쪽이 살짝 그을린 것 말고 멀쩡했다.

「단단함!」

「오드 그라드」「말하노라」「건방진 것」「꺼져라」

차갑게 사념파를 흘린 오드 그라드가 재차 사이킥 브레스를 쐈다. 놈의 입에서 좀 전에 내게 날린 것보다 훨씬 빠르게 열선이 튀어 나왔다.

‘속임수!’

나를 공격할 때는 일부러 느리게 쏜 것이었다.

「!」

[즈즈즈(위험해!)]

그야말로 아슬아슬했다. 아드하이가 몸이 작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느렸으면 열선에 맞아 몸이 두 쪽이 났을 거다.

녀석은 간발의 차로 날아서 열선을 피했지만, 꼬리 끝이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꼬리 끝이 타버린 고통에 멈칫한 녀석.

오드 그라드가 브레스를 틀어 아드하이를 지지기 직전, 나는 아드하이가 시간을 끄는 동안 모아 뒀던 에너지를 쏟아 냈다.

괴물의 촉수가 만들어 낸 화이트 갤러곤의 힘이 놈의 머리를 향해 나아간다. 놈은 날개로 막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인지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열선을 뿜어냈다.

놈이 토해낸 검은색에 가까운 열선, 그리고 내가 만든 선명한 보라색의 열선이 서로 힘겨루기를 한다. 그 충격 때문에 놈과 나 사이에 있던 지반이 갈라지고 나무들이 조각 나 허공에 흩어졌다.

‘…강해!’

블랙 갤러곤이라서 난적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놈과 나 사이의 출력 자체는 비슷했지만 에너지의 축적치가 차원이 달랐다. 이 정도면 에이모프 성체에 가까웠다.

나는 열선을 쏘는 것에 집중하면서도 아드하이 쪽을 살폈다. 녀석은 꼬리가 타들어 간 고통을 간신히 참고 공중으로 몸을 피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브레스를 중단했다. 열선 간의 대결이 끊기면서 놈의 사이킥 브레스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나는 위로 날아오르는 대신, 몸을 바짝 낮췄다. 예상대로 놈은 내가 위로 날 것이라 판단하고 위로 열선을 틀었다.

놈에게 헛발을 유도한 나는 몸을 낮춘 자세 그대로 입을 크게 벌렸다. 아래턱이 양 갈래로 갈라지고 그 안쪽에서 녹색의 진균 덩어리가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산성 진균이 날아오자 놈이 양 날개를 활짝 피더니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작은 태풍이 발생한 것처럼 날아가던 진균이 공중에서 흩어졌다.

‘영리한 놈.’

노회한 놈답게 자기 몸을 잘 쓸 줄 안다. 물론 나도 놈이 산성 진균에 맞고 자지러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진균으로 시간을 번 나는 꼬리로 땅을 세게 박차 위로 뛰어올랐다. 놈이 뒤늦게 다시 열선을 쏘려고 했다.

산산이 흩어진 진균 덩어리가 다시 뭉쳐 놈에게 날아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뭐지?」

오드 그라드는 보이지 않는 실이 달린 것처럼 움직이는 진균을 향해 사이킥 브레스를 짧게 끊어서 쐈다.

놈의 신경이 다른 데 쏠린 동안 나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날개를 몇 번 흔들어 고도를 높인 내게 아드하이가 날아왔다.

[즈즈즈(괜찮아?)]

「아픔」「하지만」「참음」

잠깐의 공방이었지만, 놈이 만만치 않은 적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놈은 내가 이 세계에서 마주한 존재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센스가 좋았다.

그뿐일까. 블랙 갤러곤답게 전투 능력도 수준급이다. 힘 대결로 가면 내가 패배한다.

‘변칙적인 공격으로 승부를 봐야 해.’

나는 블랙 갤러곤이 어떤 특성과 기술을 지녔는지 알지만, 저쪽은 아니다. 놈은 에이모프도, 나에 대해서도 모른다. 내가 어떤 힘을 지녔는지,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도.

[즈즈즈 즈즈즈(네 도움이 필요해)]

「응! 나만 믿어!」

내 등에 올라탄 26호가 촉수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때 아래에서 사이킥 브레스가 날아왔다. 피하고 나서 보니 오드 그라드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하찮은 것들」「놓치지 않노라」

브레스를 뿜어내는 놈의 뿔이 보라색 빛으로 물든다. 사이킥 파워의 빛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즈즈 즈즈즈(위를 조심해)]

「위?」

놈의 뿔이 보라색으로 빛나자 구름의 흐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하늘에서 대규모 용오름들이 거꾸로 내려왔다. 용오름은 우박과 눈 말고도 보라색 번개를 동반했다.

블랙 갤러곤이 되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사이킥 파워 기술, ‘마엘스트롬’이다. 소용돌이라는 뜻답게 강력한 초능력 폭풍을 불러일으키는 기술이다.

[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쉬지 않고 움직여야 번개를 피할 수 있어)]

「확인」

아드하이에게 주의를 준 나는 다시 움직였다. 내가 움직이자마자 보라색 번개가 내가 있던 자리 위로 떨어졌다.

마엘스트롬의 영향권 아래에 있을 때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사이킥 브레스보다 살짝 약한 급의 번개가 시전자의 적을 노리기 때문이다.

국지적인 기상 이변을 일으킨 오드 그라드는 날개를 펄럭이며 우리 뒤를 쫓아왔다. 놈이 쏜 사이킥 브레스가 내 날개 끝을 스쳤다.

나는 놈으로부터 피하는 척하면서 서서히 속도를 낮췄다. 그만큼 맞을 확률이 높아지긴 했으나 내게는 26호가 있다.

녀석은 오드 그라드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만 사이킥 브레스의 각도를 조정하고 있었다. 그 결과 나는 간발의 차로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아니면 갑각을 태울 정도의 경상만 입었다.

「버러지 같은 놈!」

오드 그라드는 이리저리 잘 피해 다니는 내가 마음에 안 드는지 짜증이 섞인 사념파를 내뱉었다.

‘지금이야.’

놈이 감정적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놈의 공격을 피하면서 사이킥 브레스를 준비했다. 그러다가 에너지가 거의 다 모였을 때쯤, 날개 한쪽을 접어 방향을 확 틀었다. 앞쪽으로 날아가던 내 몸이 반동으로 인해 옆으로 확 뒤집혔다.

그 상태로 괴물의 촉수가 다시 용의 힘을 토해냈다.

놈은 내가 거리를 좁힐 때부터 이럴 것이라 예상했는지 차분히 내 브레스에 대항했다.

또다시 시작된 힘겨루기. 놈은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입에 달린 촉수에서는 무한한 힘이 쏟아져 나왔고, 자수정을 닮은 눈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아드하이가 특별한 것이지, 일반 갤러곤은 사이킥 브레스를 쏠 때 움직일 수 없다. 나 또한 사이킥 브레스의 각도는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도 속도가 떨어진다.

적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터. 마엘스트롬 영역 한가운데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내가 어리석게 느껴지겠지.

놈의 생각대로 내 머리 위에 보라색 번개가 떨어졌다. 번개가 막 나와 26호를 지지려는 순간, 멀리서 새로운 에너지탄이 날아왔다. 에너지탄에 맞은 번개가 내 머리 위에서 폭발한다.

「고통 경감 발동!」

초능력 번개가 갑각을 뚫고 속까지 헤집었지만 견딜 수 있는 고통이다. 마엘스트롬으로 떨어지는 번개는 시전자가 직접 쏘는 브레스보다는 화력이 달린다. 게다가 아드하이가 중간에 터뜨렸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한층 더 반감된 상황.

초능력 에너지에 타격을 받은 내 머리에서 초능력 반사 장갑이 활성화됐다. 번개를 구성하던 에너지들은 목표를 잃고 폭죽처럼 사방으로 비산했다.

「감히」「귀찮은 짓」

사이킥 파워에 민감한 갤러곤들에게 눈앞의 폭발은 전투기에서 쏜 플레어를 보는 것과 비슷할 거다.

놈의 시야를 교란하는데 성공한 나는 ‘심연의 색채’를 발동시키는 것과 동시에 날개를 전부 접었다. 내 몸이 확 아래로 쏠리고, 놈의 열선은 내 머리 갑각 위로 날아갔다.

덕분에 뿔 2개가 또다시 부러졌지만 상관없다. 놈의 공격을 피한 나는 다시 날개를 펴서 놈의 아래쪽으로 날아들었다.

「잔재주를!」

놈의 뿔이 다시 번뜩였다. 내 위, 즉 놈 위로 떨어지는 번개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진짜 공격은 따로 있지.’

이것 또한 눈속임. 놈이 번개를 조종하기 위해 잠깐 멈칫했을 때, 나는 준비해놨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녹색과 보라색, 그리고 온갖 혼란스러운 색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거품이 뿜어져 나온다. 수많은 거품들, 아니 심연의 색채가 입혀진 공포의 주시자가 놈에게 날아든다.

놈이 거품을 공격하는 순간, 놈은 끝난다. 저 거품들, 강화된 공포의 주시자가 터지면 26호가 조종해서 놈에게 날릴 예정이니까.

수많은 거품들 중 하나라도 닿으면 놈은 바로 무력화된다.

그리고 놈은 정확히 내 예상대로 움직였다. 마엘스트롬을 조율하던 놈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거품을 향해 돌아간다. 입가에 주렁주렁 달린 촉수다발이 보라색으로 물든다.

사이킥 브레스가 발사되기까지 1초도 남지 않은 상황. 갑자기 놈의 눈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순식간에 놈의 촉수가 원래 색깔로 돌아오고, 놈은 날개를 강하게 흔들었다. 지금껏 여유로워 보이던 태도는 어디 가고 놈은 극도로 위험한 물질을 본 것처럼 물러났다.

26호가 거품을 조종해서 놈에게 붙이려고 했지만 놈은 이미 한참 멀리 물러난 상태.

강화된 공포의 주시자로 놈을 무력화시키는 계획은 실패했다.

「네놈!」

멀리서 강한 사념파를 날리는 오드 그라드. 얼핏 느끼기에는 분노에 찬 것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는 다른 감정들도 섞여 있었다.

그것은 분명 경계심과 두려움이었다.

‘어떻게?’

놈은 당연하다는 듯이 거품에 브레스를 쏘려고 했다. 실제로 에너지까지 모았고. 하지만 막 발사하기 직전 놈은 공격을 중단하고 물러났다.

마치 내 공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움직인 것처럼.

‘…공포의 주시자를 경계했다고?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오드 그라드가 어떻게 심연의 색채를 알고 피했는지는 불명이나 이걸로 명확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블랙 갤러곤과의 싸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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