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18화 (219/400)

Ep. 218

강화된 ‘공포의 주시자’를 피한 오드 그라드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거리를 유지한 채 경계할 뿐.

피하기 전까지만 해도 오만한 기색이 엿보이던 놈이었으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놈은 우리, 아니 나를 극도로 경계하는 중이었다.

내 날개의 움직임, 내 머리의 각도, 바람에 흔들리며 살랑거리는 보조기관, 그리고 보라색과 녹색으로 빛나는 괴물의 촉수까지.

‘이해가 안 돼.’

놈의 시선은 괴물의 촉수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이 촉수가 자기에게 위협적이라는 것을 아는 듯 말이다.

‘블랙 갤러곤에게 첩보 관련 특성은 없어.’

갤러곤은 주변 정보를 취합해 땅 아래나 벽 뒤에 있는 존재를 간파하는 ‘투시’, 상대의 모습을 토대로 장비나 특성 등을 분석하는 ‘통찰’ 같은 특성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벤트로만 등장하는 레드 갤러곤조차도.

갤러곤은 우주에서도 생존 가능한 강인한 신체 능력, 막강한 사이킥 활용 능력, 긴 수명과 동족과 무리 사냥을 하는 사회성까지 지닌 완벽한 생물. 굳이 첩보 관련 특성까지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다.

‘아니, 그건 모르는 일이야.’

아드하이만 해도 일반 갤러곤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는가. 오드 그라드 또한 일반적인 블랙 갤러곤이 아닐 수 있다.

‘통찰을 써 보자.’

사실 헬사이드 호넷을 찾으러 갈 때, 아드하이에게 통찰을 한 번 쓰긴 했다. 특별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놈에게서도 새로운 정보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 나는 놈에게 접근하기 위해 날갯짓을 했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놈에게 가까이 갈 거야. 도와줘)]

「응.」

심연의 색채와 26호의 연계 공격을 비장의 수로 써먹으려 했지만, 이미 걸린 상황. 자기 힘을 숨기기 위해 소극적으로 움직였던 26호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날개로 공기를 세게 때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오드 그라드의 뿔이 보라색으로 빛났다.

내 머리의 한참 위에서 호랑이가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엘스트롬’의 영향으로 초능력 폭풍이 몰아치려는 거다.

보라색 번개들이 내 꽁무니 뒤로 쏟아지고, 지름 100m가 넘는 용오름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공기를 마구 빨아들이는 용오름으로 인해 비행 속도가 확 꺾였다. 그 틈에 초능력 번개가 나를 때리려는 순간, 26호가 나섰다.

「으으으!」

하늘에서 내려치는 벼락이 정지된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사진으로나 볼 수 있는 일이 내 등 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보조기관으로 느껴진다. 수천, 아니 그 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실이 26호 몸에서 튀어나와 번개를 붙잡고 있다. 그리고 박제된 사이킥 파워가 녀석의 의지에 따라 허공에 한 지점으로 모여든다.

「!」

마엘스트롬을 시전한 당사자인 오드 그라드가 뒤늦게 번개의 주도권을 되찾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26호가 빼앗은 사이킥 파워는 이미 보라색 화살이 되어 놈의 목숨을 노리는 중이었으니.

신이 악룡을 죽이기 위해 쏜 화살처럼 사이킥 파워가 먹구름을 가르며 날아갔다. 제어에 실패한 오드 그라드는 날개를 펄럭이며 몸을 피했다. 화살이 방향을 바꿔 놈을 노렸지만, 놈의 변칙적인 움직임을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다.

「큰애기야, 힘들어서 오래 못 하겠어.」

[즈즈즈(괜찮아)]

녀석이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나는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놈에게 따라붙을 수 있었다.

[즈으으으 즈즈즈(아드하이를 도와줘)]

「응.」

마침 작은 몸집의 화이트 갤러곤, 아드하이가 가까운 거리에서 오드 그라드를 맹공격하고 있다. 26호는 사이킥 파워를 조종해서 아드하이의 에너지탄을 보조했다.

「버러지 같은 존재들!」

오드 그라드가 짜증이 섞인 사념파를 흘리며 사이킥 브레스를 쏴재끼기 시작했다. 초고속으로 발사되는 열선을 아드하이가 회피 기동으로 피하는 동안, 나는 통찰을 활성화했다.

「이름: 오드 그라드

종족: 블랙 갤러곤

상태: 강화(용의 힘, ■■■ ■■■)

보유 기술: 초가속, 사이킥 브레스, 용의 심장, 이외 다수…」

‘…과연.’

통찰로 놈을 확인한 나는 사이킥 브레스를 활성화했다. 평소에는 보라색 빛이 흐르는 것과 달리 녹색과 보라색, 그밖에 다양한 색소가 섞인 기이한 빛이 내 몸에 감돌았다.

심연의 색채로 강화된 사이킥 브레스다. 끝없는 허기에 시달리는 파멸의 거품방울이 내 촉수 끝에 맺힌다.

거품 형태의 브레스가 놈을 집어삼키기 위해 날아갔다. 아드하이를 공격하려던 놈은 거품을 보자마자 재빨리 물러났다.

‘이번에도 또 알아차렸어.’

놈이 물러난 덕분에 잠깐 시간을 번 나는 방금 획득한 정보를 떠올렸다.

‘놈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놈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분명 강화 상태에 ‘용의 힘’ 말고 다른 특성 효과가 있었다.

블랙 갤러곤 이상의 갤러곤들은 모두 ‘용의 심장’이라는 고유 기술을 보유한다. 일반 플레이어가 용의 심장을 보유했을 때는 용인화(龍人化), 갤러곤의 경우는 용의 힘이라는 강화 효과를 받는다.

문제는 용의 힘 다음에 있는 강화 효과다. 일반적인 블랙 갤러곤이라면 용의 힘 하나만 있어야 하는데 놈은 두 가지 강화 효과를 받고 있다.

저 추가된 강화 효과가 미지의 능력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안타까운 점은 통찰로 놈이 보유한 능력 전부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거다. 통찰은 상대의 장비나 기술, 특성을 전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접근해서 통찰을 쓰면 좋겠으나, 쉽지 않아 보인다. 연달아 내 공격을 피한 놈은 나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니 더 이상 내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거다.

‘그나마 놈이 소극적으로 나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오드 그라드가 나의 특성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으나, 그 탓에 움직임이 제한된 상태다. 놈이 적극적으로 나왔다면 싸움이 훨씬 힘들어졌겠지.

‘전략을 바꿔야 해.’

나는 아드하이에게 짧게 파장을 쐈다. 내 파장을 들은 녀석은 당황해하며 머뭇거렸지만, 내가 다시 강하게 파장을 쏘자 결국 수긍했다.

「큰어른」「몸」「조심」

그 말만 남기고 녀석은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오드 그라드는 아드하이가 떠나든 말든 나만 주시하고 있었다. 놈은 아드하이가 자기를 공격해 봐야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만 잡으면 쉽게 끝난다고 생각하겠지.’

놈한테는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물론 놈이 그렇게 판단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나도 이렇게 행동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놈과의 전투가 재개되었다. 26호 때문인지 놈은 마엘스트롬의 영역에서 번개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정해놨다.

대신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용오름의 수를 늘려서 내 이동을 방해했다. 거리를 유지한 채 나를 요격해서 서서히 말려죽이겠다는 의도겠지.

예상대로 놈은 나와의 거리를 최대한 벌린 상태로 브레스를 쏴댔다.

함 오르트의 열선도 해소시킨 적이 있는 26호였지만, 오드 그라드의 브레스는 컨트롤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브레스의 궤도를 살짝 틀어서 빗나가게 만드는 식으로 보조하는 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돼.’

사실 내게는 한 가지 ‘비장의 수’가 있었다.

오드 그라드가 내 예상보다 훨씬 강하지 않았다면, 혹은 내가 아는 블랙 갤러곤만큼 멍청했다면 이 수를 사용했을 거다.

전에 스카이웨일을 잡고 얻은 특성이 있다. 기존에 내가 지니고 있던 육체 관련 특성 ‘합성비늘’과 합쳐진 육체 계열 융합 특성.

「모방비늘: 합성비늘의 효과를 계승, 강화합니다. 에너지 계열 공격을 지속해서 받을 시, 해당 에너지의 특성을 모방해서 육체에 반영합니다.

*추신: 자연에서 오리지널리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생존하느냐 입니다.」

‘모방비늘’은 금속을 먹고 몸에 그 효과를 반영시키는 ‘금속 흡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성이다. 설명대로 모방비늘은 적의 에너지 공격을 모방해서 신체에 해당 에너지 공격에 대한 내성 효과를 제공한다.

가령 플라즈마 런처로 나를 계속 공격하면 모방비늘 효과가 활성화 되어 플라즈마 계열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크게 올라간다. 플라즈마 무기로는 비늘 조각 하나 부술 수 없을 정도로.

에이모프의 생존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주는 좋은 특성이지만, 단점도 있다.

한 가지 종류의 에너지에 대한 내성 효과를 얻은 채, 바로 다른 에너지 계열의 내성 효과를 얻을 수 없다. 플라즈마에 대해 면역인데 여기서 사이킥 파워까지 면역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이킥 파워에 대한 내성을 얻으려면 기존의 면역 체계가 소실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컬트 플레이어들은 여러 종류의 무기를 번갈아 쓰곤 했지.’

물론 현재 내 상황에서는 이는 큰 단점이 아니다. 갤러곤은 사이킥 파워 공격을 주로 하니까.

문제는 모방비늘의 내성 효과를 얻으려면 적의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오드 그라드처럼 내 몸이 견디지 못하는 공격을 쏟아 내는 적과 싸울 때는 효과를 얻기 어렵다. 모방비늘이 작동하기 전에 내가 죽어 버리니까.

‘계획이 틀어지지 않았다면 제대로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원래는 화이트 갤러곤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모방비늘의 내성 효과를 얻어둘 생각이었다. 놈들이 쏘는 사이킥 브레스는 충분히 견딜 수 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준비했어야 했어.’

아드하이와 26호가 있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도 모방비늘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는데 내가 안이했다. 놈이 이렇게 빠르게 들이닥칠지 몰랐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후회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나는 날개 팔로 몸을 휘감으며 몸을 회전시켰다. 날아오는 열선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내 날개 표면을 스쳤다.

‘역시 안 되겠어.’

놈의 브레스를 맞아서 모방비늘을 발동시킬까 생각도 해봤지만 안 될 것 같다. 저 검보라색 열선은 몸으로 막아도 될 수준이 아니다.

‘놈의 능력이 뭔지도 모르는데 모험을 할 수는 없어.’

모방비늘을 쓰든, 어떻게 하든 놈의 능력부터 먼저 알아야지 효과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정보를 읽는 능력은 아닐 거야.’

다시 생각해 보면 플레이어도 모르는 심연의 색채 효과를 놈이 알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위기를 미리 감지하는 능력.

내가 지닌 ‘포식자 감각’처럼 놈 또한 주변 환경을 분석해서 예지에 가까운 기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쪽이 가능성이 높긴 해.’

놈은 어떠한 보고도 받지 않고선 내 계획을 미리 읽고 움직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놈은 12마리의 화이트 갤러곤 중 정확히 내가 노리는 놈을 도우러 왔다. 미래를 알았기에 할 수 있는 행동들이었다.

그러나 의문도 있다. 내가 알기로 그 정도로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은 없다. 포식자 감각만 해도 당장 내게 닥친 죽음의 위기만 보여주니까.

놈이 미래를 완벽히 읽을 수 있다면 내가 이길 방법은 전혀 없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 나를 죽였을 거다. 가령 내가 이 행성에 막 도착했을 때라든가, 제이슨과의 싸움 이후 약해졌을 때라든가 등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놈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를 보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한계점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를 알아야 놈을 공략할 수 있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그리고 내 실험을 도와줄 존재들이 이곳으로 올라오고 있다.

「검은색 동족」「지원」

백색의 비늘을 지닌 크고 작은 갤러곤 두 마리가 내 뒤에 따라붙었다. 아드하이와 넬 게르마였다.

놈은 내가 아드하이가 도망치는 동안 미끼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녀석은 도망치는 척 물러났다가, 우회해서 넬 게르마를 도우러 갔다. 덕분에 둘은 날개가 부러진 화이트 갤러곤을 빠르게 처리하고 이쪽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우리의 모습을 오드 그라드가 차가운 눈으로 노려봤다.

「넬 게르마」「제르 가루다를 죽였는가」

「맞음」

「오드 그라드의 반려」「무엇이 부족해서 배반했는가」

「함 오르트」「말함」「오드 그라드」「거짓말쟁이」「폭군」「약한 동족」「버림」「죽임」「동의」「불가」

넬 게르마의 반박에 오드 그라드는 침묵했다.

짧은 정적 끝에 놈이 사념파를 흘렸다.

「안타깝노라」「반성하지 않는 반역자」「죽음 뿐」

「넬 게르마」「죽지 않음」「죽는 것」「거짓말쟁이」「오드 그라드」

「위대한 오드 그라드」「죽지 않는다」

그렇게 말한 놈이 넬 게르마에게서 시선을 돌리더니 나를 쳐다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계심이 가득했던 놈의 눈에는 전혀 다른 감정이 들어 있었다.

‘비웃음?’

「위대한 오드 그라드는 물러나지 않는다」「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여유롭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놈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머리에 벼락이 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깨달은 것과 동시에 아드하이와 넬 게르마도 급히 내게 사념파를 보냈다.

「큰어른」「저쪽」「동족」「느껴짐!」

「백색 동족」「접근 중」

아직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놈의 무리가 이쪽으로 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마엘스트롬! 그걸로 동료들을 불렀구나!’

이 행성에서 국지적인 기상 이변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내 앞에 있는 흑룡 오드 그라드만 빼고는.

놈이 내 공격을 경계한 것은 사실이지만, 놈도 숨겨둔 계획이 있었던 거다.

「위대한 오드 그라드」「강적」「위험」「전부 이겼노라」

놈이 의기양양하게 사념파를 보낸다. 말과는 다르게 동족이 오기 전까지 도망 다니며 시간을 벌겠다는 속셈이 역력했다.

‘웃기지 마.’

강적이고 위험이고 전부 이겼다는 그 말, 내게도 해당된다.

나 역시 지금까지 온갖 강적과 위험을 헤쳐 나왔으니까.

‘너만 동료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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