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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19화 (220/400)

Ep. 219

오드 그라드는 나를 비웃자마자 곧바로 물러났다. 의기양양한 태도와 다르게 놈은 동족이 오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조금의 리스크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거지.’

이기기 위해서는 추한 꼴도 마다하지 않는 놈이다. 그 어떤 시련도 극복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닌 듯했다.

보조기관으로 느껴지는 갤러곤 수가 점점 늘어난다. 둥지에 있던 놈들 대부분이 뛰쳐나온 것이 틀림없다. 이 상태로 내가 승리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작전을 바꿔야 해.’

솔직히 말해 이 자리에서 오드 그라드를 사살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놈은 내 ‘포식자 감각’보다 뛰어난 위기 감지 기술을 지녔다. 싸우면서 정보를 얻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절대적 열세에 처했기에 그 방법도 어렵다.

그러니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물러나서 재정비를 해야 해.’

다만 놈이 원하는 대로 무력하게 도망칠 생각은 없다.

‘이 자리에서 놈이 가진 무기를 최대한 박살 낸다.’

가령 지금 날아오는 놈의 부하들. 저 갤러곤들을 줄여놔야 오드 그라드를 다시 칠 때 훨씬 수월해질 테니.

‘그러려면 나도 동료가 필요해.’

놈의 예지 능력을 피해 무사히 적들 줄이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포식자 감각을 보면, 주변의 여러 요소들을 수집, 계산해서 ‘발생할 확률이 높은 미래’를 그려 낸다. 놈의 위기 감지 능력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는 모른다. 만약 비슷하다고 가정한다면 놈에게 불리한 변수가 많을수록 내게 유리하다.

여기서 그 불리한 변수는 결국 내가 지닌 능력, 그리고 동료들이다.

‘못해도 PS-111이라도 불러야겠어.’

녀석은 순양함을 조종할 수 있으니 이 자리를 벗어나게 해주는데 큰 도움이 될 거다.

남은 것은 어떻게 이곳에 부를 것이냐는 점인데….

‘딱 좋은 것이 있어.’

놈이 ‘마엘스트롬’으로 동료를 부른 것처럼 내게도 기상 이변을 일으킬 힘이 있다. 대기를 뒤틀고 하늘을 부수는 뇌신의 힘이.

‘PS-111이라면 내 신호를 알아차리겠지.’

녀석은 순양함에 상주하고 있다. 오드 그라드의 마엘스트롬 때문에 하늘이 이상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거다. 여기서 내가 ‘신의 회초리’를 사용한다면 녀석도 내 위기를 알고 바로 움직이리라.

나는 고개를 들어 오드 그라드가 후퇴하는 방향, 즉 놈의 무리가 오는 방향을 향했다.

내 의지에 따라 몸 전체에 퍼져 있는 힘들이 끓어오른다. 그에 따라 검은색 갑각과 비늘이 금색으로 물든다. 꼬리 끝의 집게, 손가락 끄트머리, 활짝 펴진 날개의 끝에서부터 시작된 금색의 물결이 흉부로 흘러들어온다.

수많은 용오름들이 휘몰아치는 천공 위에서 내 몸이 찬란히 빛난다.

오드 그라드가 내 일격을 피할 것이라는 사실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녀석을 지원하러 오는 갤러곤들은 아니다.

나는 놈들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주기 위해 다른 때보다 더 에너지를 끌어모았다.

이렇게 에너지를 많이 모은 적은 제국모함하고 싸울 때 이후 처음이었다. 화력은 그때에 비하면 대략 10분의 1정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약한 것은 전혀 아니다. 이 공격을 맞고도 살아남을 적은 이 행성에는 스카이웨일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나는 입을 벌렸다. 윗턱이 올라가고, 아래턱은 양 갈래로 활짝 펴졌다. 뱀이 먹이를 삼킬 때처럼 내 입이 한계치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그 내 흉부에 모여 있던 에너지가 폭발하는 화산처럼 신의 힘을 분출했다. 이름 그대로 뇌신이 휘두르는 회초리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고대의 신화 속에서 태양을 끄는 마차가 하늘을 달리는 것처럼 황금의 열선이 대기를 갈랐다.

뒤이어 용오름, 번개, 눈폭풍. 그 어느 자연 현상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엄청난 폭음이 행성의 대기를 뒤흔들었다.

귀가 없는 아드하이, 넬 게르마조차도 신적인 힘이 만든 초자연적 진동에 몸을 떨 정도였다.

꼬리를 보이며 후퇴하던 오드 그라드가 위기를 감지하고 급히 몸을 피했다. 신의 회초리는 오드 그라드를 지나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졌다. 뇌신의 힘 때문에 행성의 대기를 뒤덮은 검은 구름에 황금빛 거미줄이 퍼졌다.

예상대로 갤러곤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온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 나는 앞에 떠오른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해제하고 날개를 활짝 폈다.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PS-111이 올 거야. 그전까지 버텨야 해)]

「응! 애기들 못살게 구는 나쁜 녀석들 혼내줄 거야!」

「검은색 동족」「강함」「인정」「명령」「복종함」

「큰어른」「멋짐」

넬 게르마의 사념파가 한층 공손해지자 아드하이는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둘 다 방금까지 겁에 질린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초월적인 힘을 지닌 존재가 곁에 있다는 생각에 기운을 얻은 것이었다.

‘다행이네.’

녀석들보다 앞서 날아가면서 나는 몸에 남은 에너지를 체크했다.

다른 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지만 아직 여력이 있었다. 체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돕는 ‘버서커 시냅스’ 덕분이었다.

‘앞으로 두 번 더 쓸 수 있겠어.’

힘을 약하게 해서 쏘면 더 많이 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생각은 없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다 보니 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덩치가 큰 화이트 갤러곤 7마리, 상대적으로 작고 마른 몸집을 지닌 화이트 갤러곤 9마리, 그리고 그린 갤러곤 15마리. 그들 뒤에는 블랙 갤러곤 오드 그라드가 있었다.

놈들은 자기들끼리 사념파로 대화 중이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린 갤러곤들과 몸이 작은 화이트 갤러곤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방금 자기 동족들이 그대로 허공에서 잿더미가 된 것을 봤기 때문이다.

‘우두머리가 없었으면 물러났겠지만….’

몸집이 큰 화이트 갤러곤 한 마리가 옆에 있던 그린 갤러곤을 꼬리로 후려쳤다. 그러자 다른 갤러곤들도 억지로 싸울 준비를 했다.

‘저놈들이 오드 그라드의 반려구나.’

오드 그라드의 총애를 받아서 잘 자랐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몸에서 뿜어내는 사이킥 파워를 보니 함 오르트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반 화이트 갤러곤보다는 훨씬 강한 힘을 지녔다.

‘가능하면 저 일곱 마리를 노려야겠다.’

타깃을 정한 나는 놈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오드 그라드의 명령을 받은 갤러곤들이 일제히 사이킥 브레스를 발사했다.

수십 개의 보라색 광선이 내게 날아온다.

파괴적인 사이킥 파워로 이루어진 공격들. 나는 날개의 각도를 조절해가며 수많은 브레스들을 피해냈다. 물론 전부 피하는 것은 나라고 해도 무리였기에 몇몇 공격은 내 몸의 비늘과 갑각을 때렸다.

「고통 경감 발동!」

그때마다 텍스트박스가 떠오르고, 초능력 반사 장갑에 의해 반사된 열선이 구름 밖으로 튀었다.

맞은 부위에서 시큰한 통증이 올라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모방비늘’의 효과를 얻으려면 적의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아야 하니까.

지금 내게 주어진 과제는 치명상, 즉사를 피할 정도로 맞으면서 싸우는 것. 적들과의 싸움에 집중하면서도 내 몸에 피해가 얼마나 누적되는지도 계산해야 한다.

‘이럴 때는 에이모프 특유의 초감각이 도움이 된다니까.’

내가 모든 것을 신경 썼다면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머리가 터져 버렸을 거다.

피할 것은 피하고, 맞을 것은 맞으며 나아가는 나의 뒤에는 아드하이와 넬 게르마가 있었다. 녀석들은 나를 방패 삼아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왔다.

아무리 아드하이나 넬 게르마가 빠르다고 해도 수십 마리의 갤러곤이 쏘는 브레스를 전부 피해낼 수는 없다. 그러니 녀석들보다도 크고, 방어력도 뛰어난 내 뒤에 숨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게 거리가 어느 정도 좁혀졌다고 판단했을 때.

오드 그라드의 무리를 앞에 두고 나는 사이킥 브레스를 준비했다. 그냥 브레스가 아닌 심연의 색채 버전으로.

내 뒷머리와 목에 주렁주렁 달린 괴물의 촉수가 불길하게 일렁였다. 그 모습을 본 오드 그라드가 급히 사념파를 쐈다.

「주의하라!」

명령을 들은 오드 그라드의 반려들은 재빨리 물러났지만, 다른 갤러곤들은 반응이 느렸다. 나는 그들을 향해 강화된 사이킥 브레스를 뿌렸다.

촉수 끝에서 물방울이 흐르듯 떨어진 파멸의 거품방울이 목표를 물어뜯기 위해 움직였다. 갤러곤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거품에 불과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경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무지한 갤러곤 한 마리가 몸소 증명했다. 내게 열선을 날리느라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그린 갤러곤은 거품이 꼬리에 닿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작은 거품이 물에 떨어진 물감처럼 순식간에 놈의 꼬리를 집어삼키고 하반신을 노리고 있었기에.

갤러곤은 특유의 구강구조로 인해 비명을 지를 수 없다. 대신 놈이 뿌리는 고통의 사념파가 허공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아직 거품이 놈의 몸을 녹이고 있는 중인 놈에게 달려들었다. 아래턱을 활짝 벌리고 머리와 가까운 목 부위를 노렸다. 하반신 전체가 통째로 녹아내리는 통증에 놈은 나의 공격에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턱으로 얇은 갤러곤의 목을 단단히 고정한 나는 그대로 잡아당겼다.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그대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갈고리로 쇠판을 긁는 것 같은 불쾌한 사념파는 뚝 끊겼다. 죽은 갤러곤의 시체는 지표로 추락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26호를 불렀다.

[즈즈즈(부탁해)]

「응!」

녀석이 촉수를 지휘자처럼 흔들자 갤러곤 시체를 갉아먹던 거품방울이 공중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거품들은 다른 갤러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26호가 조종한 방울이 움직임이 굼뜬 갤러곤 하나를 덮쳤다. 나는 방금 했던 것처럼 놈의 고통을 끊어줬다.

「모두 흩어져라!」

오드 그라드의 호령에 갤러곤들이 서로 간의 거리를 크게 벌렸다. 적들의 거리가 다시 멀어지는 바람에 26호와 함께 사이킥 브레스 연계 전술은 그걸로 끝났다.

‘더 죽일 수 있었는데 아쉽네.’

나는 물고 있는 갤러곤의 머리를 꿀꺽 삼켰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어도 맛을 즐겼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부하들을 후퇴시킨 오드 그라드가 다시금 공격에 나섰다.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검보라색 브레스가 나를 꿰뚫으려 했다. 날개로 공기를 박차듯 위로 날아 피한 나는 놈의 부하들이 있는 쪽에 접근했다.

‘이렇게 하면 놈도 공격을 못…이런!’

오드 그라드는 자기 부하들이 맞을 수도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브레스를 토했다. 사이킥 파워로 이루어진 숨결이 내 꼬리 아래를 스쳐 지나갔다. 내 뒤에 있던 어린 화이트 갤러곤은 오드 그라드의 브레스를 맞고 날개에 구멍이 났다.

「위대한 오드 그라드!」「어린 동족」「위험함!」

「검은색 반역자」「더 위험하다」「희생」「불가피하노라」

그 모습에 반려 중 하나가 급히 자기 우두머리에게 사념파를 보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는 날개에 구멍이 나서 추락하는 화이트 갤러곤을 붙잡고 머리를 깨물었다. 버둥거리며 저항하던 놈은 머리가 부서지자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 순간, 예상하지 못한 메시지가 떴다.

「포식 효과 발동!」

‘뭐? 일단 확인!’

다른 때 같았으면 운이 좋다고 기뻐했겠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다. 재빨리 내용만 체크한 나는 아드하이를 불렀다.

[즈으으으(아드하이)]

「확인」

넬 게르마와 함께 다른 갤러곤들과 싸우고 있던 녀석이 백색의 번개처럼 내게 달려왔다.

녀석이 성장하려면 화이트 갤러곤을 포식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한 개체를 통째로 먹기 어려운 상황.

‘나눠 먹어도 적용될지 모르겠네.’

‘테세우스의 배’라는 역설을 생각해 보면 안 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게 지금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녀석과 화이트 갤러곤 시체를 붙잡고 근처에 있는 용오름 안으로 뛰어들었다.

맨몸의 사람은 닿자마자 흔적 하나 안 남길 정도로 강렬한 회오리였지만, 함선 외벽보다 단단한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내가 막아 줄 테니 이걸)]

「하찮은 종자!」「감히!」

용오름 속에 숨어서 아드하이에게 시체를 먹이려고 했는데 밖에서 오드 그라드의 분노에 찬 사념파가 흘러들어왔다. 사념파와 함께 무시무시한 에너지의 흐름이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와 아드하이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 놈의 브레스는 내가 들고 있던 갤러곤의 시체를 남김없이 증발시켜버렸다.

‘놈도 아는구나.’

놈도 갤러곤의 성장에 담긴 비밀을 아는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저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니 이를 굉장히 경계하는 것 같았다.

‘…아드하이의 성장을 경계한다라.’

중요한 정보니까 머리에 기억해 둔 나는 아드하이를 감싼 채로 용오름 밖에 나왔다. 나오자마자 보라색 빛무리가 나를 반겼다.

「큰어른」「괜찮음?」

[즈즈즈 즈즈즈즈즈(괜찮아. 걱정하지 마)]

적들의 공격에 내 몸의 갑각과 비늘이 박살 나고 벗겨지는 것을 본 아드하이가 걱정한다.

솔직히 안 아프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무조건 참아야 한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긍정적인 신호라면 브레스를 맞을 때마다 고통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모방비늘의 면역 체계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열선을 맞으며 가까운 곳에 있는 갤러곤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놈들은 내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바로 공격을 중단하고 물러났다.

그 틈에 아드하이를 놓아준 나는 공중에 대고 진균 덩어리를 쏟아냈다. 뭉쳐 있는 녹색 점액 덩어리가 땅에 떨어지다가, 도중에 물리 법칙을 역행하더니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26호의 사이킥 파워가 인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진균 덩어리. 그 끝에 있는 것은 몸집이 큰 화이트 갤러곤 반려였다.

놈은 뒤로 피하려고 했지만 26호가 조금 더 빨랐다. 날아가던 진균이 클레이모어처럼 폭발해서 놈의 날개 위에 쏟아졌다.

하얀색의 날개가 산성 진균으로 인해 금세 피투성이가 됐다. 놈은 신경질적으로 퍼플 라이트닝을 쏴서 진균들을 태워버렸다.

나쁘지 않은 대응법이지만 놈이 놓친 것이 있다. 진균보다 눈앞에 있는 적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바로 앞까지 날아온 나를 뒤늦게 확인한 놈이 사이킥 브레스를 쏜다. 거의 동시에 나는 꼬리 끝에 달린 집게를 휘둘렀다.

내게 맞은 사이킥 브레스 중 일부가 반사되어 놈의 몸을 때렸다. 이게 무슨 일인지 당황하는 화이트 갤러곤. 놈이 멈칫하는 동안에도 내 몸에 달린 천연 철퇴는 여전히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중이었다.

이어서 집게가 놈의 복부를 후려치려는 순간, 내 머리 위에서 검은색 용이 나타났다.

「죽어라!」

반려를 미끼로 나를 끌어들인 오드 그라드가 묵직한 앞발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고통 경감 발동!」

노화가 됐음에도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거의 아이스 호러의 돌진에 준하는 힘이라서 하마터면 그 충격에 목이 부러질 뻔했다.

나는 뒤로 빠지면서 놈을 향해 공포의 주시자를 사용했다. 시간이 없어서 심연의 색채를 입힐 수는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 놈의 눈이 흐릿해졌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걸린 것은 맞지만 막강한 사이킥 내성을 지닌 블랙 갤러곤답게 금방 풀어버렸다.

그와 함께 내 눈에 떠오르는 이미지들. 내 죽음을 예지하는 포식자 감각이 발동한 것이다.

「하찮은 것」「잔재주」「소용없다」

놈이 즉발로 사이킥 브레스를 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포식자 감각으로 놈의 공격을 미리 감지한 나는 급히 몸을 굽혀서 공격을 피했다.

‘윽!’

「고통 경감 발동!」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중상을 입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검보라색 브레스가 내 꼬리 아랫부분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 탓에 끝에 있는 집게발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약한 것」「이걸로 끝이니라」

놈의 촉수다발이 검보라색으로 물든다. 지금 피하기는 너무 늦었다.

「큰애기야!」

26호의 파장이 느껴진다. 녀석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것도 엄청난 힘을 지닌 놈의 브레스를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

「큰어른!」

멀리서 나의 위기를 본 아드하이가 도우러 날아오다가 다른 갤러곤에게 가로막힌다.

시간이 느려진다. 놈의 촉수에 힘이 집약되는 것이 느껴진다.

놈의 공격이 막 실행되려는 순간.

오드 그라드 머리 반대편에서 밝은 빛이 보였다.

‘태양? 아니 저건….’

이 행성에도 생명이 사는 만큼 항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저 밝은 빛은 태양이 아니다.

왜냐하면 태양이 우리가 있는 이곳까지 날아올 리가 없으니까.

나나 갤러곤이 쓰는 사이킥 파워와 친숙하지만 뭔가 잡다한 불순물이 섞인 에너지 덩어리.

그것의 정체가 뭔지 나는 안다.

나를 직접 쳐 죽일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에 판단이 흐려진 오드 그라드도 뒤늦게 알아차렸다.

「무슨…?」

놈이 고개를 돌리는 사이, 나는 급히 날개를 접어 아래로 떨어졌다. 1초도 지나지 않아 내 머리 위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땅으로 추락하는 중에 내 눈에 익숙한 비행체가 보인다.

“서브 컨트롤러 ‘에이모프’의 신호를 받아 지원하러 왔습니다.”

「우와! 친구가 왔다!」

아이보리색으로 빛나는 마름모꼴 순양함에서 흘러나오는 방송. 기계처럼 딱딱한 말투의 주인은 나도, 26호도 잘 아는 존재였다.

스타유니언에서 개발한 뮤턴트 스크리머, PS-111.

녀석이 황금 빛줄기의 인도를 받아 이곳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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