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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22화 (223/400)

Ep. 222

스페이스 서바이벌을 클리어한 나는 병원에서 깨어났다.

내가 성인이 된 후 갈라선 부모님들은 나를 껴안고 오열했다. 그들은 나를 꼭 안은 채, 살아줘서 다행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나, 내게는 낯선 모습이었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부터 부모님은 늘 서로를 탓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나 역시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왠지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나는 바람에 부모님과 함께 울었다.

이후 간신히 진정한 부모님은 내게 말했다.

다시 시작하자고.

법률상으로는 이미 남이지만, 천천히 관계를 회복해나가면 좋겠다고.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원치 않은 사실을 눈치 챘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중이라는 것을.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만, 서로 간의 사이는 결코 좋지 않았다. 설령 내가 죽더라도 다시 재결합하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꿈이라는 것을 자각한 순간.

나는 늪 위에서 눈을 떴다.

‘얼마나 잤지?’

나는 하반신과 꼬리를 확인했다. 점액질이 잔뜩 묻은 꼬리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통째로 소실된 집게도 제대로 회복되었다.

꿈을 통해 현실을 엿봐서 그런지, 문득 인간일 때도 이런 회복력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부모님이 이혼할 일도, 친한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집에만 지내는 삶도 모두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쓸데없는 생각.’

진화할 때도 아닌데 갑자기 왜 과거의 일이 꿈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기분만 엉망이 됐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점액질과 함께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냈다. 나로 인해 생긴 늪 표면의 파장이 내 앞에 있는 물체에 가로막혔다.

공생물 포자를 붙인 채 누워 있는 화이트 갤러곤, 함 오르트였다.

둥지에 들어올 때와 비교해 보면 많이 나아졌지만, 괜찮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 부러진 다리나 찢어진 꼬리 부위는 회복되었지만 날개는 반도 재생하지 못했다.

머리에 있던 뿔은 부러진 그대로였다. 좀 더 기다려 봐야겠지만 영영 회복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듯했다.

함 오르트의 상태를 체크한 나는 몸을 일으켰다. 둥지 밖에 나오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밝은 분홍색을 띠는 초대형 해파리였다.

몸을 최대로 부풀린 26호였다. 분홍색 촉수 틈새로 파란색 비늘을 지닌 갤러곤들의 머리가 보였다. 순양함에서 했듯이 추위에 약한 블루 갤러곤들을 한가득 품고 있던 중이었다.

「큰애기야, 안 아파?」

[즈 즈즈 즈즈즈(응. 이제 괜찮아)]

나를 본 녀석이 촉수 하나를 들어 살랑살랑 흔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잠들기 전에는 못 봤던 여러 개의 구덩이가 보였다. 구덩이 위에는 나뭇가지들이 위에 덮여 있었다.

‘여기서 숨어 있었나 보네.’

순양함이 떠나면서 그린 갤러곤과 블루 갤러곤들은 구덩이를 파 들어가 있었나 보다. 우리도 제이슨과의 싸움 이후 비슷한 방식으로 체온을 유지했었기에 금방 알 수 있었다.

현재 구덩이 안에는 그린 갤러곤 대신 다른 생물의 시체들이 들어 있었다.

「중간애기가 잡아 왔어. 큰애기도 배고프면 먹어.」

몸의 회복과 뱃속의 공복감은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기꺼이 녀석의 권고에 따라 구덩이에 든 시체 하나를 꺼냈다.

온몸이 기괴하게 뒤틀리고 혓바닥이 뽑힌 스노우밴시였다. 손에서 느껴지는 냉기를 보니 죽은 지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다.

놈은 전에 몇 차례 먹은 적이 있다. 육포와 말린 오징어가 섞인 맛이 났었다.

나는 손에 쥔 고기를 입에 넣고 씹었다. 원래도 안줏거리 맛에 가까워서 그런지 식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는 차갑게 식은 스노우밴시를 씹으며 26호에게 물었다.

[즈즈 즈즈즈(다른 애들은?)]

「파닥파닥 애들은 사냥하러 갔어. 중간애기가 작은애기랑 큰 파닥파닥이랑 할 말이 있데.」

녀석이 말하는 ‘큰 파닥파닥’은 넬 게르마다.

26호는 파장으로 말하면서 촉수 한 가닥을 뽑아 숲속을 가리켰다.

「같이 저기로 갔어.」

[즈즈즈(고마워)]

순식간에 시체 하나를 해치운 나는 녀석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기어갔다.

체스판처럼 검은색과 흰색만이 존재하는 숲이 보인다. 눈이 얕게 쌓인 땅과 그 위에 자란 검은 나무들. 빽빽하게 얽혀 있는 가지들 사이로 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온다.

칙칙한 분위기의 숲을 지나다 보니 크기가 제각각인 생물 세 마리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리고 피 냄새도.

숲 바닥에 낮게 깔린 혈향은 제법 익숙했다. 그건 화이트 갤러곤의 피였다.

‘아드하이가 갤러곤의 시체를 먹었구나.’

저쪽에서도 나를 인지했는지 작은 생물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곧이어 나무 사이로 웬디고 모습을 한 하늘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왔어? 몸은 좀 어때?」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아주 좋아. 덕분에 배도 채웠고)]

「언제 깨어날지 몰라 많이 잡아놨는데 다행이네.」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함 오르트는 어떻게 데려온 거야?)]

「어, 그보다 먼저 얘기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 아드하이 말이야.」

[즈즈즈즈즈 즈으으으 즈즈 즈즈즈(그러고 보니 아드하이는? 성장은 끝났어?)]

내 말에 그녀는 침묵했다. 그녀는 검은색 털이 덮인 손으로 두개골을 긁적였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데 직접 봐봐.」

그녀는 내게 손가락을 까딱이며 따라오라는 신호를 줬다.

순간 뭐가 잘못됐나 생각이 들었으나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녀의 반응은 예상과 다른 무언가를 봤을 때 느끼는 난처함에 가까웠다.

그녀를 따라 가니 작은 공터가 나왔다.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고깃덩어리들 사이에 백색의 갤러곤 넬 게르마가 있었다. 녀석이 나를 보고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녀석 뒤에 못 보던 갤러곤이 있었다.

길이는 4m에서 5m 사이 정도 될까? 그리폰으로 변신한 하늘의 어머니보다 약간 더 큰 정도였다.

머리에 달린 여섯 개의 뿔, 입가에 길게 늘어트린 촉수다발, 뱀을 연상시키는 긴 몸통. 모두 갤러곤다운 모습이었지만 한 가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날개. 작은 갤러곤의 날개는 2장이 아니라 4장이었다.

갤러곤의 날개는 흉부 쪽과 가까운 등 위에 있다. 넬 게르마 뒤에 있는 갤러곤도 마찬가지로 커다란 날개가 앞다리와 가까운 위치의 등 위에 달려 있었다.

거기서 추가로 뒷다리와 꼬리가 연결되는 부근에도 작은 날개가 붙어 있을 뿐.

게임에서 날개가 4개 있는 갤러곤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갤러곤 중 최강의 존재이자 볼텍스원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가진 생물, 레드 갤러곤.

‘그런데….’

레드 갤러곤은 이름 그대로 붉은색 비늘을 지닌 존재다. 사이킥 파워가 아닌 드래곤 파워라는 고유 에너지 체계를 사용하는 레드 갤러곤의 비늘은 레드 다이아몬드처럼 신비로운 광택을 내뿜는다.

하지만 넬 게르마 뒤에 있는 저 갤러곤의 색은 붉은색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레드 다이아몬드색은 날개와 뿔에 한정되어 있었다. 녀석의 뿔과 날개는 바닥에 흐르는 갤러곤의 피를 그대로 머금은 것처럼 새빨갛게 빛났다.

그러나 뿔과 날개를 제외한 다른 부위는 여전히 공터에 쌓인 눈처럼 새하얗기만 했다.

붉은색과 하얀색이 뒤얽힌 혼종 갤러곤으로부터 작은 사념파가 흘러나왔다.

「큰어른」「나」「실패했어」「미안해」

반만 성장한 아드하이의 사과를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망해서? 솔직히 그런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으나 그것 때문은 아니다.

내가 당황한 진짜 이유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만 성장한 레드 갤러곤이라니.’

게임에서도 그런 존재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이벤트로 나오는 경우도 아예 없었고.

애초에 레드 갤러곤은 레이드 보스이자 모든 갤러곤을 지배하는 초월적인 존재다. 어중간하게 성장이 걸쳐 있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게다가 화이트에서 레드로 넘어가는 것이 실패하면 블랙 갤러곤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왜 아드하이가 화이트 갤러곤과 레드 갤러곤의 특징이 반반씩 섞인 상태가 됐는지 이해가 안 됐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녀석을 다시 살펴봤다. 아무리 봐도 녀석의 날개는 4장이었다. 축 처져서 눈가 위에 늘어져 있지만 틀림없었다. 녀석의 날개는 물론이고 뿔 역시 피처럼 붉은색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녀석의 눈과 마주쳤다. 얼음 위에 박힌 자수정처럼 아름다운 녀석의 눈동자는 불안한 빛이 가득했다.

오래전 비슷한 눈을 본 적이 있던 나는 순간 움찔했다.

부모님이 싸울 때면 나는 벽장에 숨었다. 그때마다 벽장의 문에 달린 거울과 마주쳤었다.

지금 녀석의 눈빛은 그때 거울에 비춰지던 누군가의 눈과 매우 닮아 있었다.

‘…진정하자.’

마음을 억지로 진정한 나는 녀석에게 파장을 보냈다.

[즈즈즈 즈즈즈(어떻게 된 거야?)]

「나」「큰어른의 기대」「배신했어」

[즈즈즈 즈 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아니야. 난 한 번도 네가 내 기대를 저버렸다고 생각한 적 없어)]

사실이다.

26호, 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 PS-111까지.

나를 도와주고 지탱해주는 녀석들에게 실망스럽다는 기분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두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해 줬고, 내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채워줬으니까.

내 감정이 전해졌는지 아드하이는 조금 진정한 기색이었다. 녀석이 안정된 것 같아서 나는 다시 물어봤다.

「시체」「포식 후」「성장할 때」「안 좋은 기분」「들었어」

[즈즈즈 즈즈(안 좋은 기분?)]

「성장」「완료」「나」「구원자」「변해」「구원자」「동족의 유일한 왕」「붉은 여왕」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그래. 성장하면 붉은색 동족이 될 거야)]

내 말에 아드하이는 고개를 젓더니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면」「나」「더 이상」「큰어른」「곁」「지키지 못해」

[즈(뭐?)]

「붉은 여왕」「동족」「번영」「이끌어야 해」「그것」「유일한 사명」「큰어른」「작은어른」「친구」「아픈 아이」「모두 헤어져」

그 말을 듣자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정상 레드 갤러곤은 갤러곤의 왕과 비슷한 존재다. 모든 갤러곤을 통솔하고, 그들 위에서 군림하는 존재.

그리고 왕은 왕국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나」「고민했어」「동족」「함 오르트」「미워」「하지만」「죽는 것」「보기 싫어」「그래서」「나」「구원자」「길」「걷겠다고」「생각했어」

얌전히 듣고 있는 나를 향해 아드하이가 계속해서 사념파를 흘렸다.

「나」「선택했어」「구원자」「큰어른」「둘 다」「얻겠다고」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그래서 붉은색 동족이 되는 것을 포기한 거야?)]

내 말에 아드하이는 부정하는 뜻의 사념파를 쐈다.

「나」「붉은 여왕」「사명이야」「거부」「불가능」「다만」「유보했어」

[즈즈(유보?)]

「나」「붉은 여왕」「아직」「미흡해」「큰어른」「곁」「배울 것」「많아」

녀석은 넬 게르마 뒤에서 나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앞에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나」「큰어른」「무리」「소속이야」「큰어른」「나」「받아 줄 거야?」

내가 자고 있던 사이, 아드하이는 중요한 선택을 했다.

짧은 시간 결정을 내린 것이었지만, 녀석이 섣불리 정한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녀석의 결정을 폄하할 수는 없었다.

녀석은 왕의 자리를 포기하고 내 곁에 남기를 택했으니.

‘아드하이는 내게 도움이 돼.’

녀석이 얼마나 강해졌을지 모르나 적어도 일반 화이트 갤러곤보다는 우월한 존재가 됐을 터. 운이 좋다면 레드 갤러곤 고유의 힘인 드래곤 파워를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오드 그라드와의 싸움에서는 물론이고, 앞으로 다른 강적과 싸울 때도 녀석은 유용한 전투원이 될 거다.

‘…그것뿐만은 아니지만.’

애초에 녀석이 떠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26호도 그렇고, 녀석도 절대 다른 이들에게 넘기지 않을 거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팔을 뻗었다. 움찔하고 몸을 떠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말했다.

[즈즈즈즈 즈즈즈즈(언제든지 환영이야)]

녀석이 나중에 블랙 갤러곤이나 레드 갤러곤으로 성장할 수 있을 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유보했다는 표현의 뉘앙스를 보면 성장이 불가능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레드 갤러곤은 몰라도, 블랙 갤러곤으로 성장하는 것은 이후에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성장시키는 방법은 모르지만 말이다.

‘그건 차차 알아보는 것으로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 아드하이.

오드 그라드와 싸울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녀석이 강해지지 않았더라고 해도 상관없다.

붉은색 뿔과 날개.

저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보다는 갤러곤들이 더 잘 알 거다.

‘잘하면 내분을 일으킬 수도 있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아드하이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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