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23화 (224/400)

Ep. 223

아드하이의 성장 문제는 이걸로 끝났지만, 아직 남은 것들이 있다.

원래는 레드 갤러곤을 오드 그라드 공략 계획에 포함했었지만, 그 카드는 더이상 쓸 수 없게 됐다.

‘그러니 레드 갤러곤 없이 싸우는 걸로 계획을 수정해야 해.’

녀석의 선택과 별개로 아쉬운 부분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레드 갤러곤은 설정상으로도, 실제 게임상에서도 씨 데몬이나 블랙 갤러곤보다 무서운 최상위 포식자이니까. 붉은 용들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생물군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하나 지금의 아드하이에게 그 정도 힘을 기대할 수는 없다. 레드 갤러곤의 힘을 얼마만큼 쓸 수 있을지 미지수이나, 원본보다는 당연히 약할 것이다.

‘그건 이따가 살펴보는 걸로 하고.’

지금은 먼저 확인해야할 것들이 있다. 나는 하늘의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녀는 함 오르트를 구출하기 위해 둥지에 직접 들어갔다. 어떻게 구했는지, 적 세력의 규모나 상태는 어떤지 등등 물어봐야 할 것이 많다.

「네가 신의 회초리를 썼다는 걸 하늘을 보고 알았어.」

내가 뭘 물어보고 싶은지 알고 있던 그녀는 천천히 용의 둥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후퇴해서 너를 지원할지 말지 고민도 했지만, 나는 날지 못하니까. 무턱대고 가봐야 도움이 안 될 것 같더라. 그럴 바에는 차라리 둥지를 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지.」

[즈즈(하긴)]

「둥지에서 화이트 갤러곤이 전부 빠져나간 덕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어. 실제로 둥지로 진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웬디고의 검은 털에는 미세한 크기의 세균들이 서식한다. 이 세균은 다른 생물에게 큰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일시적인 인지능력 저해를 유발시킨다.

웬디고는 몸의 세균을 인위적으로 퍼뜨릴 수 있다. 세균을 흡입하거나 감염된 자는 짧은 시간 동안 방향감각 상실, 오감의 혼란 등을 느낀다.

‘잠입이나 기습에 안성맞춤인 능력이지.’

그녀 역시 나만큼이나 웬디고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일부러 웬디고로 변신한 것이리라.

참고로 저 능력은 웬디고로 변신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 설정상 검은 털에서 세균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둥지에 갤러곤이 얼마나 있었지?)]

「되도록 피해 다니느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린 갤러곤만 해도 얼추 50마리는 넘을 것 같더라.」

[즈즈(많네)]

그녀가 보지 못한 갤러곤 수나 해츨링들까지 감안하면, 오드 그라드 무리는 구성원이 100마리에 육박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내가 알기로 단일 갤러곤 무리의 구성원 수는 60마리를 거의 넘기지 못한다. 그 이상 늘어나게 되면 먹이 수급에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뮤턴트 스크리머와 처음 싸웠을 때.’

놈이 자폭하는 바람에 숲에 불이 나고 수많은 생물들이 타죽은 적이 있었다. 당시 날아온 갤러곤들은 다른 것보다 먹이를 챙겨서 날아가기 바빴다.

갤러곤은 살아 있는 생물을 사냥하는 것을 즐기는 포식자다. 죽은 생물도 먹긴 하지만 그 우선순위가 낮다. 그런데도 갤러곤들은 불에 탄 시체들을 옮기는 것에 열중했다.

[즈즈즈즈 즈즈즈(굶주리고 있겠군)]

「알이 보관된 곳에는 안 가 봤지만 아마 그럴 거야. 부양해야 할 수가 너무 많으니까.」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놈들이 많은데도 용케도 함 오르트를 구했네)]

「아슬아슬했지만. 그리고 상황이 좋았어.」

[즈즈 즈즈즈(무슨 뜻이지?)]

「함 오르트도 기회를 노리고 있었더라고. 내가 만나서 짧게 설명하자 바로 알아듣더라. 녀석이 협조해준 덕분에 싸움을 최소화할 수 있었지.」

그녀의 말에 난 살짝 놀랐다. 과연 아드하이 어미라고 해야 할까. 범상치 않은 판단력과 배짱이었다.

구출 대상이 적극적으로 협조한 덕분에 그녀는 둥지를 탈출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말했다. 웬디고의 강력한 특수 능력, ‘얼음의 악령’ 덕분이었다.

얼음의 악령에 당한 생물들은 비정상적인 굶주림으로 인해 이성을 완전히 잃어 버린다. 그녀는 둥지를 도는 그린 갤러곤을 날뛰게 만들어서 적의 시선을 돌리는 식으로 움직였다.

게다가 탈출하는데 가장 큰 난관으로 예상됐던 절벽은 함 오르트가 제시한 의견 덕분에 쉽게 통과했다고 한다.

「원래는 기어 올라가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녀석이 말하길 절벽 아래에 물이 흐른다더라. 그래서 그쪽으로 빠져나왔지.」

절벽에서 뛰어내리자 함 오르트는 사이킥 파워로 낙하 속도를 줄였다. 그 결과 둘은 큰 부상 없이 물 위로 떨어졌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위험했을 거야. 우리가 탈출하던 중에 오드 그라드가 돌아왔거든.」

기막힌 우연이었다. 만약 그녀가 둥지로 귀환했다거나 함 오르트 구출에 시간이 조금만 더 걸렸으면 둘 다 끝장났으리라.

그렇게 수로를 이용해 빠져나온 그녀는 둥지로 돌아왔다.

「돌아오니까 다들 둥지 앞에 구덩이를 파서 숨어 있더라.」

‘아까 봤던 그 구덩이구나.’

녀석들은 웬디고로 변신한 하늘의 어머니를 보고 공격할 뻔했지만, 함 오르트 덕분에 싸움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다음은 틈틈이 먹이 사냥과 정찰을 나갔어. 혹시라도 네가 갤러곤을 달고 올지도 모르니까.」

[즈즈즈(잘했어)]

랭커답게 적절한 상황 판단과 행동력이었다. 내가 칭찬하자 그녀의 안와(眼窩)에 피어오른 호박색 불꽃이 부드럽게 휘었다.

「모프박이가 최근 칭찬이 흔해졌네.」

[즈즈즈(취소할까?)]

「농담이야. 그나저나 함 오르트한테도 들었는데, 오드 그라드에게 기이한 힘이 있다며?」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그래. 놈은 위기를 예측할 수 있어)]

「위기 예측?」

내 말에 하늘의 어머니는 손으로 검은색 두개골을 긁적였다.

「예지 능력 말하는 거야? 게임에서는 별로였는데.」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여기서는 아니야. 진짜 미래를 읽으니까)]

그 말이 갖는 의미를 이해한 그녀가 자세를 바로 했다. 생태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블랙 갤러곤이 미래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그녀도 모르지 않으리라.

「…쉽지 않겠는데. 얼마나 읽을 수 있는 것 같아?」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5분 미만에 발생하는 생명의 위기)]

내다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생명의 위기에 반응한다는 점만은 확실했다.

‘그러고 보면 함 오르트도 놈과 싸웠다고 했어.’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함 오르트한테 들었다고 했지? 놈이 일어나면 물어봐야겠어)]

「어? 함 오르트가 알지 모르겠는데.」

[즈(응?)]

「녀석이 말해 준 능력은 다른 능력이야. 예지 능력이 아니었어.」

[즈즈 즈즈즈 즈 즈즈즈(다른 능력이 또 있다고?)]

그 말을 들으니 나라고 해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예지 능력과 다르게 전투와 관련된 능력은 아니야. 아니, 애초에 능력이라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즈즈 즈즈즈즈(어떤 능력인데?)]

「함 오르트 표현에 의하면 놈은 동족을 속이는 힘이 담긴 광물을 지니고 있다고 했어.」

[즈즈(광물?)]

그 말을 듣자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광석? 혹시?’

놈은 앞발에 정제된 보석이 달린 큼지막한 반지를 끼고 있었다.

갤러곤은 지성을 지녔지만 장비나 옷 같은 것으로 치장한다는 관념이 없다. 그래서 놈의 반지를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다.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그러고 보니 놈은 보석이 달린 반지를 끼고 있었어)]

「보석 반지라. 아마 그걸 말하는 것 같아. 놈은 힘이 담긴 광물을 절대로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다고 했거든.」

함 오르트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드 그라드가 갤러곤치고는 비정상적인 성격을 지녔음에도 다수의 동족들을 부릴 수 있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그 반지가 어디서 났는지는 차치하고 말이다.

‘뭐가 됐든 그 반지가 놈의 지배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정보야.’

전투 중에 놈이 반지를 잃어 버리면?

놈의 부하들은 심하게 동요할 것이다. 가뜩이나 굶주리고 있는데 자기 지배자가 수상한 방법으로 동족들을 부리고 있으니까.

이를 잘 활용하면 오드 그라드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나는 내 손등에 머리를 비비는 아드하이를 내려다 봤다.

녀석을 보니 오드 그라드와 싸울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좋아.’

하늘의 어머니로부터는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 나는 정보를 정리하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가지.

함 오르트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것, 그리고….

‘아드하이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과 내 모방비늘을 활성화시키는 것.’

둘은 서로 연관된 문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일단 둥지로 돌아가자. 해야 할 일들이 많아)]

「그래.」

「얘기」「끝났어?」

[즈(응)]

내 말을 듣자 녀석이 손에서 머리를 살며시 뗐다. 확실히 래드 갤러곤의 특징이 섞여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달라 보였다.

물론 몸이 커진 것, 뿔과 날개의 색깔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달라진 느낌이었다.

‘사념파가 달라졌어.’

전에는 원초적인 감정을 담아서 끊어서 쏘는 식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사념파는 훨씬 정제된 상태였다. 마치 26호나 오드 그라드가 뜻을 전달할 때처럼 말이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의사 전달이 능숙해졌네)]

「변화」「별로야?」

[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아니. 성장하는 것은 좋은 거지)]

녀석의 사념파는 단순한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았으니까. 지금이 내게는 훨씬 편했다.

‘살짝 아쉬운 느낌도 들지만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남은 갤러곤 시체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 넬 게르마와 함께 둥지에 돌아오니, 사냥을 나갔던 그린 갤러곤들이 보였다.

녀석들은 블루 갤러곤처럼 26호의 몸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갤러곤조차 버티기 힘들게 만드는 이 행성의 추위 때문이었다.

‘공생물 포자를 심어 줘야 하나?’

그때 녀석들이 우리를 보더니 26호로부터 몸을 뗐다. 그리고 우리 앞에 다가와 날개와 상체를 땅에 가까이하고 머리를 숙였다.

‘뭐지?’

머리를 숙인 그들의 뿔은 모두 단 하나의 존재를 향하고 있었다.

내 등에 올라타 있는 아드하이였다.

‘흠.’

다른 갤러곤들이 아드하이를 보고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은 처음이다. 녀석은 레드 갤러곤이 되지 못한 존재지만, 갤러곤들 입장에서는 또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일제히 인사한 갤러곤들은 몸을 일으킨 뒤 구덩이에 넣어 둔 시체들을 꺼내 내 앞에 놓았다. 그 모습은 하인들이 주인에게 식사를 가져다 바치는 것과 흡사했다.

‘아니, 이 경우에는 여왕에게 선물을 바치는 신하의 모습일까.’

아드하이는 저들이 왜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배불러」「먹이」「안 줘도 돼」「너희들」「먹어」

「감사함」

녀석이 거절하고 나서야 그린 갤러곤들은 자기들이 잡아 온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린 갤러곤들이 식사하는 사이 나는 공생물 포자를 그들 몸에 붙였다.

그리고 아드하이가 먹다 남긴 화이트 갤러곤의 잔해 일부를 26호에게 전해줬다.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같이 먹고 할 일이 있어)]

「할 일?」

[즈즈 즈으으으 즈즈 즈즈즈(너랑 아드하이랑 둘 다 필요해)]

「알았어. 큰애기는 나만 믿어!」

항상 변함없이 좋은 말만 해주는 녀석이다.

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날개 팔을 들어 녀석을 쓰다듬어줬다. 녀석은 기분 좋다는 듯 몸을 반짝반짝 빛냈다.

26호와 갤러곤의 시체를 나눠먹은 후, 나는 둘을 데리고 다시 둥지를 나섰다.

‘이쯤이면 되려나.’

적당한 공터에서 멈춰 선 나는 아드하이와 26호에게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지 설명했다.

[즈즈 즈으으으 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먼저 아드하이가 새로 얻은 힘을 시험해 볼 거야)]

레드 갤러곤의 힘을 얼마만큼 끌어낼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레드 갤러곤은 드래곤 파워라는 새로운 계통의 힘을 사용하니까.’

녀석이 드래곤 파워를 얼마나 쓰냐에 따라 일정이 약간씩 변동될 거다.

모방비늘에 사이킥 내성을 부여하려면 순수한 사이킥 파워 공격만을 받아야 한다. 드래곤 파워에 대한 내성이 생겨봐야 지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방비늘이 제공하는 내성 효과는 한 번에 한 종류의 에너지만 해당된다. 면역 효과가 지워지려면 며칠 걸리니까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지금」「써봐?」

[즈 즈즈 즈즈즈(응.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드하이가 눈을 빛냈다.

이어서 녀석의 몸에서 붉은색 기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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