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25화 (226/400)

Ep. 225

‘모방비늘’의 효과는 특정 에너지에 대한 높은 수준의 내성을 제공하는 것.

사이킥 파워에 대한 내성을 확보했으니 오드 그라드의 브레스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감당할 수 있어.’

놈의 브레스는 다른 갤러곤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하다. 맞았을 때 완벽하게 충격을 흡수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내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더 이상 놈의 브레스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도망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위기 감지 능력인데….’

놈의 무리를 와해시킬 방법, 놈의 공격을 견딜 방법 모두 준비했지만 딱 하나가 문제다.

미래를 내다보는 적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나는 아드하이, 26호와 함께 둥지로 돌아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스페이스 서바이벌에는 미래를 읽는 기술이나 특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VR게임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름만 ‘미래 예지’, ‘예언’일뿐 실제로는 회피 능력을 업그레이드시켜 주거나 미니맵에 적들의 동선을 표시해주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니 오드 그라드는 내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불가해의 적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아니야. 그래도 단서가 있어.’

나는 미래 예지 능력을 접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지닌 ‘포식자 감각’ 말이다.

예지에 가까운 위기 감지 특성 덕분에 나는 여러 차례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이 특성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내 기억에 포식자 감각이 전달해주는 미래의 범위는 그리 길지 않다. 몇 분 안팎, 내 몸에 들이닥칠 일들을 미리 보여 준다.

예외라고 한다면 ‘사냥의 표상’을 썼을 때뿐이다.

‘사냥의 표상 상태에서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었지.’

내가 이를 처음 느낀 것은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의 병원에서 탈출할 때였다. 당시 에저튼 기사단이 병원을 포위하려고 움직이던 중이었는데 미리 감지한 나는 그들을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

아마 이는 사냥의 표상이 보유한 특성과 타입 효과를 뻥튀기해주기 때문일 거다.

‘그 점을 생각해 보면 놈의 능력은 특이해.’

놈의 능력은 위험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확실하다. 다만 범위가 상당히 모호하다.

왜냐하면 놈은 내가 사냥 나간 화이트 갤러곤을 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예측하고 공격하러 왔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놈은 내가 ‘심연의 색채’를 쓸 때마다 귀신같이 알아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인데도 어떻게든 피하려 들었으니까.

‘그 말은 직접적인 위기 말고도 볼 수 있다는 건데….’

장기적으로 보면 내가 화이트 갤러곤들을 사냥하는 것이 놈에게 위해가 될 수 있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놈을 죽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행성에 도착했을 때 놈이 바로 날 공격하지 않은 것이 설명이 된다. 갤러곤과 에이펙스를 잡으러 이 행성에 왔지만, 정확히 오드 그라드를 죽이려고 온 것은 아니니까.

‘…잠깐 생각을 바꿔보자.’

이미 놈은 게임에서 한참 벗어난 존재다. 그러니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

‘만약 놈이 여러 종류의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가령 나와 비슷하게 특정한 상태에서만 볼 수 있는 미래, 평상시에 볼 수 있는 미래가 구분될 수도 있다.

간단히 정리해 보면 놈이 볼 수 있는 미래는 두 가지다.

‘눈앞에서 발생한 위험과 먼 훗날에 닥칠 위험한 미래.’

주어진 정보로 판단해 보자면 이렇게 가정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다.

오드 그라드는 자기 목숨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나를 죽이기 위해 덫을 깔았다. 놈의 계략에 휘말린 나는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싸워야만 했다. 그 탓에 비장의 수 대부분을 노출했고.

그러나 놈은 나와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실제로 놈은 심해의 색채와 신의 회초리 때문에 죽을 뻔했다.

이 점을 고려해 보면, 새로운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놈이 보는 미래들은 한계가 있어.’

먼저 장기적인 미래에 발생할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을 보자.

이는 특정 주기나 특정 상황에서만 볼 수 있고, 평소에 자주 볼 수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중간에 미래가 바뀌는 것까지는 반영하지 못한 거다.

‘두 번째로 짧은 시간 내에 닥쳐올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

내가 지닌 포식자 감각과 비슷한 효과인 만큼 한계도 비슷하다. 특정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위험에 대처하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만, ‘위험한 상황 자체’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놈을 죽이려면 두 종류의 미래들 사이에 발생하는 공백을 노려야 한다.

‘섣불리 움직이면 놈에게 걸리겠지.’

함 오르트의 탈출, 아드하이의 성장, 놈이 지닌 반지에 대한 정보, 그리고 모방비늘까지. 지닌 카드는 많지만, 함부로 쓰면 놈이 미리 감지해낼 터.

‘잘못하면 놈이 도망쳐 버릴지도 몰라.’

오드 그라드는 이 행성에 있는 유일한 블랙 갤러곤이다. 여기서 놓치면 유일 특성 중 하나 또한 놓치게 된다.

‘놈이 불리하지 않은 미래를 조성해서 유도해야 해.’

놈을 어떻게 칠지 고민하는 사이, 우리는 둥지에 도착했다.

둥지 입구에 앉아 있는 하늘의 어머니와 그녀 곁에 엎드려 있는 상처투성이가 된 화이트 갤러곤이 보였다.

「함 오르트?」

아드하이가 사념파를 흘렸다. 녀석의 사념파를 감지한 함 오르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봤다.

딸을 본 어미의 보라색 눈동자가 당혹감에 물들었다.

「유성의 딸」「구세주」「실패했는가?」「왜?」「왜?」

「나」「구세주」「거부했어」

아드하이의 답변을 듣자 함 오르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에 있던 하늘의 어머니도 녀석을 따라 몸을 일으켰다.

「조심해.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어.」

「어째서?」「너」「선택」「잘못됐다!」「오드 그라드」「막을 수 없다!」

함 오르트는 자기 딸이 레드 갤러곤으로 변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싸울 때조차도 냉정함을 유지하던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분노라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함 오르트의 격정어린 사념파에 반응한 아드하이도 지지 않고 사념파를 쏟아 냈다.

「나」「새로운 동족」「선택했어」「과거의 동족」「중요하지만」「이쪽」「더」「중요해!」

「오드 그라드」「어린 동족」「어른 동족」「전부」「죽인다!」

「걱정」「불필요」「큰어른」「작은어른」「못생긴 친구」「아픈 아이」「동족」「모두」「힘」「합쳐서 싸울 거야」

「오드 그라드」「힘」「막강하다」「검은색 동족」「승리」「불가능」「오드 그라드」「검은색 동족」「죽인다」

「큰어른」「약하지 않아」「함 오르트」「모욕하지 마!」

「함 오르트! 진정해!」

함 오르트는 당장에라도 아드하이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날개와 몸이 멀쩡했다면, 옆에서 하늘의 어머니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그랬을 거다.

「실망」「실망」「실망했다!」「유성의 딸」「축복」「버렸다!」「동족의 기대」「버렸다!」

「실망?」「나」「더」「실망」「함 오르트」「동족」「나」「약하다고」「버렸잖아!」

「부정!」「약한 동족」「버린 적 없음!」

「거짓말!」「함 오르트」「거짓말쟁이」「나」「버리고」「구원자」「동족」「구원」「강요」「꼴사나움!」

「!」

둘의 감정이 격해지다 보니 사념파가 점점 원초적인 형태로 변해간다. 함 오르트의 실망과 분노, 아드하이의 설움과 한이 뒤섞인 사념파들로 인해 내 괴물의 촉수가 아릿할 정도였다.

파장 감지에 민감한 26호도 영향을 받은 것인지 몸 색깔이 어두운 분홍색으로 변했다.

「나」「나갔다 올게」

결국 둘 중 먼저 물러난 쪽은 아드하이였다. 뒷발로 땅을 거세게 찬 녀석은 숲 안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무슨 일입니까?”

둥지 안쪽에서 공생물 포자를 단 블루 갤러곤을 돌보고 있던 PS-111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작은애기랑 파닥파닥 엄마랑 싸웠어.」

“주변 환경 요소를 분석한 결과, ‘작은애기’와 ‘함 오르트’ 간의 전투가 발생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친구 말은 너무 어려워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PS-111이 26호와 때 아닌 만담을 벌이는 동안, 함 오르트는 딸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큰 충격을 받았는지 녀석의 몸에서는 절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마구 흘러나왔다.

「이 숲은 안전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26호랑 PS-111 둘이서 아드하이를 데려와 줘.」

「응. 작은애기는 내가 지켜 줄게. 가자. 친구야.」

“알겠습니다.”

26호는 몸을 작게 줄여서 PS-111 등 위에 올라탔다. 한 마리의 씨 데몬과 하나의 뮤턴트 스크리머가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따라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함 오르트는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떨어뜨렸다. 무질서한 사념 형태로 퍼져 나오던 감정도 서서히 갈무리되었다.

간신히 진정한 함 오르트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너」「검은색 동족?」

[즈(그래)]

「유성의 딸」「너」「얘기」「많이」「했다」「너」「유성의 딸」「가르쳤다고」

사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함 오르트는 내 앞에서 앞다리를 굽히고 고개를 살짝 낮췄다.

「함 오르트」「감사한다」「유성의 딸」「구해 준 것」「돌봐준 것」

짧게 감사의 뜻을 표한 녀석은 곧바로 몸을 바로 했다. 나를 쳐다보는 자수정 눈동자으로부터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유성의 딸」「너 때문에」「구원자」「포기했다」「오드 그라드」「동족」「전부」「죽일 것」

[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놈이 그런 일을 버리기 전에 막을 테니까.

함 오르트는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부정했다.

「오드 그라드」「거짓말」「동족」「속인다」「반려들」「어린 동족들」「속았다」「동족들」「오드 그라드」「명령」「따른다」「함 오르트」「검은색 동족」「힘」「부족하다」

[즈(그래?)]

「검은색 동족」「강하다」「하지만」「오드 그라드」「무리」「더 많다」

나와 싸워 본 적이 있는 녀석이니 내가 어느 정도 강한지는 알 거다. 녀석은 적 세력의 수적 우위를 지적하고 싶은 거겠지.

물론 녀석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만약 녀석과 마주했을 당시에 오드 그라드와 싸웠다면 내가 졌을 테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함 오르트는 내가 싸움을 피하도록 설득하고 싶은 것 같았다. 녀석이 간절함을 담아 사념파를 쐈다.

「오드 그라드」「강하다」「유성의 딸」「너」「소중하다고」「생각한다」「그렇다면」「생존」「더」「중요하다」

[즈으으으 즈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아드하이를 살리려면 오드 그라드를 죽여야 해)]

「검은색 동족」「포기」「안 하는가?」

[즈 즈즈즈즈즈 즈즈 즈즈(그래. 오드 그라드는 내 손에 죽는다)]

「…」

함 오르트는 더 이상 사념파를 보내지 않고 내 눈을 노려봤다.

녀석의 불안해하는 감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내 뜻은 변함이 없다. 나를 엿 먹인 흑룡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죽일 생각이니.

「알았다」「함 오르트」「검은색 동족」「믿는다」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좋아. 놈과 싸웠을 때의 상황에 대해 얘기해 줘)]

「궁금한 점」「물어봐라」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보던 녀석은 결국 설득을 포기했다. 나는 녀석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들을 차근차근 꺼냈다.

-

얼어붙은 평야 너머에 위치한 거대한 협곡.

수백m, 아니 km 단위로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이 깊은 협곡에 다가가면 기괴한 소리가 들린다. 동물이 고통스러워하며 내뱉는 절규와 비슷한 그 소리는 거대한 얼음 협곡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다.

자연 현상이기는 하지만 워낙 흉흉한 소리로 인해 주변에 다른 생물들은 그 협곡에 다가가기를 꺼려한다. 이 협곡에 자유롭게 출입하는 존재는 이 일대를 다스리는 야수의 왕 정도밖에 없다.

하나 최근에는 그 야수의 왕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칩거 중인 것인지 아니면 협곡을 떠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신해서 이질적인 형태의 존재들이 간혹 협곡을 드나들곤 했다. 그들은 이곳이 왕의 영토라는 것을 모르는지 닥치는 대로 주변 생물들을 학살했다. 움직이기만 하면 생물이든 식물이든 관계없이 죽였다. 그 탓에 원래도 서식하는 생물이 적었던 협곡은 완전히 죽은 땅이 됐다.

오늘도 살육을 마친 기괴한 존재들은 고깃덩어리들을 이끌고 협곡에 발을 디뎠다.

워낙 깊어 짙은 암흑만 가득해야 할 협곡 내부. 그들이 내려오자 어둠에 숨어 있던 붉은색 빛들이 하나둘씩 점멸했다.

한참을 내려오던 그들은 마침내 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도착했다. 그들은 협곡에 매달린 상태로 가져온 고깃덩어리를 아래로 던졌다.

그러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붉은빛이 눈을 뜨더니 고깃덩어리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주변 정찰 및 에너지원 확보 임무 수행 완료.”

“초대형 화산 내부에 존재하는 위험원은 현재 파악 불가. 계속해서 조사 진행 중.”

“이 행성에서 활동 중인 인간형 생물의 흔적 발견함. 정체는 ‘메가콥’ 소속 인간들로 추정. 초대형 화산을 조사하기 위해 이동한 것으로 확인됨.”

“2일 전 행성에서 이상기류 발생. 축적한 기상 데이터와 비교 분석 결과, 이 행성 토착 생물들 간의 전투로 인한 기상 이변으로 파악됨.”

“토착 생물의 둥지 감시 도중 발견….”

그들, 아니 뮤턴트 스크리머들은 기계적인 어투로 보고를 이어 나갔다. 평소라면 정규 보고 후 자기들끼리 수집한 정보들을 교환했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고깃덩어리를 삼킨 붉은빛이 다시 번뜩인 것이다.

「피라 일레븐. 명령.」

붉은빛이 나지막하게 읊조리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기상 이변을 만든 존재. 스타링크 데이터베이스와 대조 결과 특수목표A와 82% 유사함.」

붉은빛, 아니 큰 피해로 인해 손상된 신체를 개조 중인 안드로이드.

스타유니언 기계위원회 소속의 최고위원 중 하나인 피라 일레븐이 말했다.

「피라 일레븐. 최고 중요 명령 고시함. 협곡에 잔존하는 S모델 189개체, PS모델 20개체는 특수목표A를 구축하라.」

“명령 확인.”

“명령….”

피라 일레븐의 말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붉은빛이 눈을 떴다.

바람 소리로 가득한 협곡에 스산한 소리가 섞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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