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27화 (228/400)

Ep.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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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러 개의 이름을 지녔다.

별들의 축복을 받은 존재, 별의 지혜를 받은 현자, 가장 강인한 수컷 등등.

여러 이름들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별칭은 이것이다.

위대한 오드 그라드.

‘위대하다’는 말만큼 그를 잘 설명해주는 표현이 없었다.

별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그만큼 특별한 생명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환각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지닌 예지 능력 덕분에 그는 자기에게 닥치는 위기를 피해 다닐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자기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무리를 보호했다.

물빛 비늘 시절부터 동족들과 사냥을 나가 그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도왔다. 동족들도 그를 현명한 어린 존재라 칭하며 신뢰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무리에서 가장 강한 우두머리가 되었다. 수많은 동족들의 존경을 받았고, 아름답고 강한 암컷들이 반려가 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 난쟁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별의 흐름이 수십 번 바뀌기 전, 누군가가 둥지에 잠입해서 알을 훔쳤다.

도둑의 정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난쟁이들이었다. 그들은 광물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비행체를 타고 이곳에 왔다.

분노한 그는 난쟁이들이 탄 비행체를 공격하려 했다. 만약 미래가 그에게 경고하지 않았다면 분명 그랬으리라.

그때 본 미래는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그가 습격한 순간, 기묘한 느낌의 난쟁이 중 하나가 전면에 나섰다. 놈은 그를 포함해 동족들을 전부 죽였다. 알들은 난쟁이들이 전부 챙겨 갔다.

어떻게든 파멸을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가 본 미래는 변하지 않았다.

비행체에 탄 기묘한 난쟁이는 격이 다른 존재.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다른 동족들이었다면 포기하지 않았겠지만, 오드 그라드는 아니었다. 미래를 읽는 능력 덕분에 동족과 아예 다른 사고를 해왔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마구 부풀어 올랐다. 그를 위대한 존재로 만든 능력이 역으로 그를 집어삼켰다.

두려움에 먹혀 버린 그가 택한 선택지는 굴종이었다. 난쟁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살려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빌었다.

그가 이런 태도로 나온 것이 의외였던 것일까. 난쟁이, 아니 ‘초월자’는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든 것처럼 보였다.

초월자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오드 그라드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오드 그라드도 모르던 그의 비밀, 하늘에 떠 있는 별들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이 세상의 진실까지.

초월자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순간, 그가 알던 세상은 완전히 조각났다.

사랑하는 반려들, 가끔 함께 장난치던 어린 동족들, 사냥을 나설 때 든든한 백색 비늘의 동족들.

모든 것이 무가치했다. 그들은 저 밖에 나뒹구는 금속 덩어리들과 하등 차이가 없었다.

초월자가 말했다.

오직 오드 그라드만이 ‘유니크’한 존재라고. 별의 화신이 될 자격이 있는 존재니 이대로 죽이기 아깝다고 말이다.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그에게는 초월자가 자기 목숨을 보장해주겠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했다.

초월자와의 거래 후, 그는 살아남았다.

초월자는 친구가 된 증표라며 그에게 귀한 선물까지 안겨 줬다.

하지만 그 자리에 더 이상 동족을 사랑하던 젊은 우두머리는 없었다. 대신 ‘위대한 오드 그라드’만이 남았을 뿐.

그 위대한 오드 그라드가 긴 잠에서 깨어났다.

교활한 ‘검은색 동족’과의 싸움은 불미스럽게 끝났다. 놈의 동족이 둥지를 습격하는 바람에 급히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반역자를 잃은 것은 적지 않은 손실이었으나 그보다 더 문제가 있었다. 검은색 동족에게 살해당하는 미래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그는 초월자의 경고를 떠올렸다.

초월자가 하사한 비석이 그에게 말했다. 그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가 찾아올 것이라고.

하나 오드 그라드는 그 말을 따를 수 없었다. 당장 무리의 이탈자들을 정리하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꿈 또한 그에게 불길한 미래를 알리지 않았다. 그 탓에 안이하게 행동하고 말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평생 자기 능력이 통제할 수 있는 미래만을 선택해 온 그였기에.

이번에도 그는 자기 능력에 의존하기로 했다. 애초에 미래를 보는 능력 덕분에 초월자와 대립하지 않고 살아남지 않았는가. 미래를 보는 힘은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 틀림없었다.

꿈에서 깨어난 오드 그라드가 사념파를 흘렸다.

「마침내」「승리」「보았노라」

며칠 동안 해답을 찾기 위해 꿈속을 헤맨 결과, 미래를 바꿀 방법을 찾아냈다.

「오드 그라드」「명하노라」「모든 동족들」「준비하라」「사냥」「함께하라」

「모든 동족들?」

「둥지」「방어」「불가」

「다시 명하노라」「싸울 수 있는 동족들」「전부」「따르라」「거부」「용서하지 않으리」

반려들이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냈지만 오드 그라드는 듣지 않았다.

꿈에서 그는 봤다.

특이한 모습의 산봉우리 위에 그가 서 있었다. 그의 발아래에 상처투성이의 검은색 동족이 깔린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동족의 목을 베고, 놈의 피를 마셨다.

위대한 오드 그라드가 또다시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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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에서 제법 멀리까지 날아온 나는 드넓은 산맥 중 한 산봉우리에 착지했다.

부서진 나무의 잔해와 반짝이는 보석 조각이 섞인 둥지가 보인다. 얼마 전 크리스털윙을 잡기 위해 찾아왔던 쌍둥이 봉우리다.

나는 주인을 잃은 둥지 위에 몸을 깔고 누웠다.

‘지금쯤이면 놈도 봤겠지.’

내가 무리에서 이탈했으니 오드 그라드가 보는 미래에도 변동이 생겼을 거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니 바로 나를 치려고 들 터.

이 주변에 쌍둥이 형태로 솟은 봉우리는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내가 누운 크리스털윙 둥지가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꿈에서 나를 봤다면 찾기 어렵지 않을 거야.’

놈들이 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아직 남았다.

나는 들고 온 가방을 풀어서 안에 있던 장비들을 꺼냈다.

‘블러드 리버, 데몰리셔, 조율자….’

전부 지금까지 싸웠던 적들로부터 획득한 전리품들이다. 내가 꺼낸 것 말고도 둥지에 전리품 가방들이 더 있다.

제사장의 황금창은 이 가방에 없다. 원래는 들어 있었지만 일부러 빼서 구덩이에 던져놨기 때문이다.

‘하늘의 어머니라면 무슨 뜻인지 알겠지.’

녀석들이라면 얼마 안 가 내 의도를 알아차릴 거라고 믿지만, 혹시라도 실패할 수도 있기에 보험을 준비했다.

그녀는 제사장의 황금창이 얼마나 유용한 무기인지 잘 안다. 구덩이에 숨겨둔 창을 확인하면 내 뜻이 뭔지 바로 알아차릴 거다.

‘내가 떠났는데 바로 식사할 리는 없고. 아마 내일 아침쯤이나 발견하겠지.’

지금껏 이렇게 변수가 많은 계획을 실행에 옮긴 적은 처음이다. 그래도 오드 그라드가 알지 못하도록 하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다.

나는 놈과의 싸움을 복기했다.

놈의 위기 감지 능력이 발동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건 크게 두 종류다. 신의 회초리를 썼을 때와 ‘심연의 색채’를 활성화했을 때다.

‘순양함이 터질 때는 정확하지 않지만….’

놈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지 않은 거로 봐서는 미래를 엿보고 피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간단히 말해 놈이 미래를 보고 피했던 공격들은 전부 치명적인 부상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었다.

‘강화된 공포의 주시자는 약간 다르지만 죽음과 직결된다는 점에서는 똑같아.’

심연의 색채가 적용된 ‘공포의 주시자’는 피격 대상이 가장 끔찍한 고통을 계속 체험하게 만든다. 그 상태로는 전투는커녕 비행조차 불가능할 테니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놈은 다른 공격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

블랙 갤러곤의 가죽이 단단하다고 해도 생물인 이상 무적은 아니다. 일반 사이킥 브레스나 다른 공격을 계속 맞으면 상처가 생긴다. 실제로 순양함이 쏜 주포에 맞아 피를 흘리기도 했고.

‘그때는 미래를 예측한 것 같지 않았어.’

컬트 순양함의 주포로 블랙 갤러곤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다. 하지만 일격에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놈의 위기 감지 능력은 ‘자기를 죽이거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치명상을 입히는 단발성 공격’에 한정해서 발현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신의 회초리, 심연의 색채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초능력 반사 장갑은 아직 불명이지만.’

나는 깔아둔 장비를 내려다봤다.

‘놈의 능력과 신의 회초리는 궁합에 안 맞아.’

‘신의 회초리’는 매우 강력하지만, 오히려 그 위력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좋지 않다. 놈의 예지 능력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쪽도 전술을 바꿔야 해.’

나는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활성화했다.

「약탈자의 부정형 다면체: 장비 하나를 포식해 장비 고유의 능력을 특성화시킵니다. 한 장비당 한 번만 가능하며, 다른 장비를 새로 포식할 시 이전 장비의 특성 효과는 소실됩니다.」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 사이보그 플레이어 뮤리엘을 죽이고 얻은 능력인 ‘약탈자의 부정형 다면체’. 당시 컬트들의 궤도 병기 ‘뇌신’을 포식한 결과, 뇌신의 힘을 사용하는 신의 회초리 특성을 얻었다.

그리고 나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장비를 포식할 생각이다.

내 앞에 있는 장비 중 포식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은 총 3종.

뮤리엘로부터 획득한 블러드 리버와 조율자, 신전수호단과 순양함에서 얻은 데몰리셔다.

‘데몰리셔라.’

나는 직사각형 필통을 닮은 총기를 집었다.

약탈자의 부정형 다면체로 만들어진 특성은 포식한 장비의 특징을 따라간다. 플라즈마 런처를 먹으면 플라즈마 열선, 뇌신은 먹으면 뇌신의 힘을 사용한다. 데몰리셔를 먹으면 물질 조작 효과를 지닌 빔을 쏠 수 있겠지.

‘역시 이건 안 되겠지?’

데몰리셔의 탄환은 아무리 단단한 물질이라도 분해할 수 있다. 심연의 색채로 강화된 사이킥 브레스와 유사한 효과이기에 오드 그라드의 감지 범위에 걸릴 거다.

‘다음은 조율자.’

십자가 모양의 후광머리띠, 조율자는 뮤리엘을 죽이고 얻은 전리품이다.

원래 제이슨도 조율자를 갖고 있었지만, 놈의 몸이 순간이동할 때 장비도 함께 사라져 버려서 얻지 못했다.

‘조율자 능력도 나쁘지 않아.’

컬트의 고유 시스템인 퀘스트 중 9단계를 클리어하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인 조율자.

이 머리띠를 장착하고 있으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때마다 자동으로 가까운 곳으로 순간이동 된다. 몸을 입자화시켜 이동시킨다는 설정이라 순간이동 후에는 신체의 부상이 전부 치료된다는 무시무시한 효과도 있다.

순간이동 횟수는 총 5회. 다시 말해 목숨이 5개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순간이동도 좋지만, 여기서는 쓸모가 없어.’

내게 필요한 것은 놈이 능력이 발동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격 수단이다. 나 자신을 지키는 능력은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현시점에서는 유용하다고 하기 힘들다.

‘남은 것은 블러드 리버.’

나는 손가락 마디만큼이나 작은 거미 모양 기계를 내려다봤다.

얼핏 보면 크기도 작고 귀여운 느낌도 들지만, 실은 매우 위험한 기계다.

‘이래 봬도 스타유니언의 유일급 전쟁 병기니까.’

등급만 놓고 보면 뇌신하고 동급이다. 실제로 제작비용도 둘이 거의 비슷하고.

게임에서 블러드 리버는 플레이어 간의 전투, 희귀 생물 포획, 강력한 레이드 보스급 생물의 약화 등 여러 상황에서 자주 쓰인다.

블러드 리버를 활성화하면 특정 대상에게 달라붙어 생명력을 흡수한다. 흡수 속도가 매우 빨라서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전투력이 크게 약화된다.

미리 감지해서 피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건 불가능하다. 블러드 리버를 구성하는 금속과 도료는 탐지를 무효화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 보조기관도 못 읽어낸다.

‘이것 때문에 뮤리엘과 싸울 때 죽을 뻔했지.’

당시 나는 기계를 바보로 만드는 ‘그렘린 이끼’ 특성을 미리 활성화해두고 있었기에 블러드 리버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아무튼 블러드 리버의 효과를 생각해 보면 이 상황에 적절하다. 놈을 일격에 죽이지 않고 꾸준히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는 공격 수단을 얻는 거니까.

나열한 장비들을 살펴보던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먹구름이 잔뜩 낀 상태라서 시간대를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대충 지금이 밤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천천히 고민하자.’

가방에는 3종의 무구 말고 다른 장비들도 있다.

나는 장비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했다.

사실 뭘 쓸지는 이미 정했지만, 굳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다.

미래를 읽는 적인데 내가 놈을 이길 수 있을까?

혹시라도 놈이 목표를 바꾼다면?

내가 아닌 아드하이나 다른 녀석들을 먼저 공격하면 어떻게 하지?

뒤늦게 알아차려서 돌아갔더니 둥지에 녀석들의 시체만 잔뜩 깔려 있다. 치명상을 입고 죽어 가는 26호가 나를 저주한다. 우리를 버리고 혼자 살아서….

‘그만.’

나는 머리를 바닥에 세게 처박았다.

차가운 눈 덕분일까. 불길한 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지 않아.’

여기까지 오면서 내 계획대로 완벽히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다. 언제나 내가 모르는 변수가 튀어나왔고,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들이닥쳤다.

그러나 나는 살아남았다. 그 어떤 역경도, 그 어떤 강적도 나를 제압하지 못했다.

오드 그라드도 마찬가지다.

놈은 이곳에 올 것이고, 나는 놈의 유전자 정수를 남김없이 포식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고 구름의 위치가 바뀐다. 먹구름이 짙어지고 눈보라와 번개가 함께 몰아쳤다.

악천후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혹독한 기상 상태가 계속되던 와중.

내 보조기관이 무언가를 감지했다.

매우 많은 수의 대형 물체가 이곳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왔구나.’

나는 가방에 있던 장비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약탈자의 부정형 다면체가 활성화 되고 체내의 구조가 뒤바뀐다.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신의 회초리가 떠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보라라는 이름의 장막 뒤에 검은색 날개가 보인다.

긴 기다림은 끝났다.

사냥의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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